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172)
마법은 괜히 배워서-173화(173/502)
# 173
용병 아닌 용병 2
레기온은 인생 최대의 판단착오를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다 때려 치고 영지로 돌아가서 6개월간 아니 5개월 이십 일 동안 잠자코 누워만 있고 싶었다. 가는 길에 백화점에 들러서 동영상 마법 기계도 하나 구입하고.
그냥 빈둥거리고 싶었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아. 좀 쉬고 싶다고. 내가 왜!
영주가 앞장서서 개고생을 해야 하는데!
따져 보니깐 너무 억울했다.
드레이져는 지 볼일이 있다고 가서 나타나지 않는다. 주인이 하인의 편의를 봐주고 있는 셈이다.
전속 하인들은 영지에서 수련만 한다.
리치 마몬도 없으니 저녁이 되면 술이나 퍼먹겠지. 아니면 연애를 하든지. 연애? 쓰벌, 나도 못하는 연애를 하기만 해 봐.
다 깽판을 놓을 테다.
독에 중독된 직원들은…… 처음에는 불쌍했다.
그래서 발 벗고 나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렇게 좋은 팔자도 없다. 말이 냉동인간이지 그냥 자고 있는 것이다. 미즈셋은 영지로 돌아가서 다이어트를 한단다.
이런 젠장!
혹시 스톤 헤드교 놈들이 해코지를 할까 봐 용병들도 같이 딸려 보냈다.
그들 중에 몇 명만이라도 빼서 내 수발을 들게 할걸.
하다못해 다산이라도 있었으면 이런 개고생은 안 할 텐데.
다산은 일당 210골드를 꿀꺽하고서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보아하니 다신 눈앞에 나타나지 않을 듯했다. 쓰벌, 210골드. 괜히 호기 부리다가 삥 뜯긴 기분이다.
그리고 레기온은 혼자서 야영을 하고 있었다.
철갑갑주는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250킬로그램이나 되는 갑주에 익숙해지면 그게 더 이상하지.
그는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나뭇가지를 모았다.
여름이라도 밤이 되면 산속은 춥다. 물론 갑주를 입고 있기에 그다지 추위는 타지 않는다.
하지만 불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컸다.
레기온은 아무도 없는 이런 산속에서 모닥불도 없이 혼자서 밤을 지새우기는 싫었다.
-왜 혼자임? 나도 있삼.
넌 좀 꺼져.
그렇게 레기온은 자질구래한 일까지 도맡아서 해야 했다. 마크는 이럴 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너무 귀찮아서-
“네가 오토해서 움직이면 안 되겠냐?”라고 물었더니.
-나도 귀찮삼.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악마 같은 새끼.
“배고파.”
레기온은 바위에 걸터앉은 채 중얼거렸다.
-배고프면 사냥을 하셈. 너님은 철갑을 입은 덕분에 체력 소모가 심함. 계속 먹어 줘야 함.
“아는데 귀찮다.”
사실 이 갑옷을 입고 있는 한 암만 뛰어도 토끼 한 마리 잡기 쉽지 않다. 토끼 한 마리 잡기가 이렇게 어려운 줄 처음 알았다.
토끼 잡겠다고 화염구를 난사했다가 산에 불이 붙었다.
불을 끄기 위해서 워터 마법을 쏟아부었다. 불은 간신히 껐지만 그는 녹초가 되었다.
끝내 쥐새끼 한 마리 잡지 못했다.
아공간에 돈은 썩을 만큼 많은데…… 정작 중요한 먹을거리가 없었다.
-굶어 죽을 거임?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
-설마가 사람 잡는 법. 너님 그러다가 굶어 죽음.
“배를 안 고프게 하는 마법은 없나?”
-그런 마법이 있으면 사람들은 식량 가지고 싸울 일이 있겠음? 잠시 배고픔을 잊게 할 수는 있어도 인간은 무조건 먹어야 함. 먹고 자고. 이 두 가지가 인간의 몸에는 최고의 보약임.
“아아아, 배고픈데. 정말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싫어.”
-그럼 계속 굶든가.
레기온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저 모닥불 위에 토끼 고기가 지글지글 익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배는 고픈데 갑자기 아랫배가 아릿하게 아려 왔다.
신호가 왔다.
일주일에 한 번.
큰일을 치러야 한다.
아아, 정말 싫다.
레기온은 자리에서 일어나 숲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야영지에서 싸는 것보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볼일을 보는 편이 낫다.
간신히 허리를 옆으로 꺾어서 엉덩이 쪽에 있는 작은 노출구를 열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노출구를 열기가 쉬웠다.
그러나 근육의 양이 늘어나면 날수록 손이 그곳까지 닿지 않는다. 이제는 허리를 90도로 비틀어야만 간신히 손에 닿을 지경까지 왔다.
근육의 양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철갑을 걸치고 있는 이상, 철검을 들고 다니는 이상.
레기온은 문득 불안해졌다.
만약-
근육이 더 불어나서 노출구까지 손이 닿지 않으면 어쩌지? 마법을 펼치려고 하더라도 눈에 보여야 한다.
노출구에 손이 닿지 않으면.
“쓰벌! 안 돼!”
레기온은 투구를 감쌌다.
더 이상 근육이 늘어나서는 안 된다. 잘못하면 재앙이 발생한다. 똥이 갑옷 안에 계속 차오를 수도 있었다.
이번 일만 끝나면 무조건 영지로 돌아간다. 그리고 환자처럼 가만히 누워만 있어야지.
근육 더 키웠다가는 정말 큰일이 나게 생겼다.
악몽으로 점철이 된 미래를 생각하면서 레기온은 서서 큰일을 보았다.
정말 적응이 안 된다.
레기온은 행복한 생각을 하기로 했다.
마크를 만나고-
마법을 배우고-
살이 찌고-
지능이 떨어지고-
250킬로그램 갑옷을 입고-
서서 똥을 싸게 되고-
젠장! 내 과거는 불운해! 전혀 행복했던 기억이 없어!
레기온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러다가 우울증 생기겠다. 그렇지 않아도 정신분열증이란 의심을 받는데. 우울증까지 생기면 신전에 강제로 입원을 당하게 된다.
“저기 돈데크만 님?”
누군가 레기온을 조심스럽게 불렀다.
아아! 나는 불행해!
왜 이렇게 불행할까.
“돈데크만 님?”
그는 레기온을 또 불렀다.
레기온은 ‘돈데크만’이라는 이름 때문에 자신을 부르는지 몰랐다. 아니 아예 누군가 접근을 하는 것 자체를 몰랐다.
완전히 정신을 놓고 있었다.
그것은 마크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누가 코앞까지 다가오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깜짝 놀란 레기온은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넘어지면 인생 쫑 난다.
“누, 누구야?”
“저는 의뢰인의 수하인 로우스쿨이라고 합니다. 미리 연락이 간 것으로 압니다만.”
로우스쿨인지 뭔지 처음 들어 본다. 누군데? 당신은?
“역시 돈데크만 님은 약속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군요. 혹시나 해서 2시간 빨리 출발했는데, 먼저 와 계실 줄이야.”
그러니까 넌 누군데?
“먼저 먼 길을 오신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큼큼. 근데 이건 무슨 냄새가.”
고개를 숙이던 로우스쿨은 코를 막았다.
굉장히 코에 거슬리는 냄새가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
“어이쿠, 돈데크만 님, 이리로 오시죠. 이곳은 야생동물들의 화장실인 모양입니다.”
로우스쿨은 옆으로 물러났다.
레기온은 그를 따라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젠장, 싸다 말았는데. 닦지도 못했는데.
졸라 찝찝하다.
모닥불로 장소를 옮긴 로우스쿨은 품에서 커다란 가죽주머니를 꺼내서 레기온에게 건넸다.
“착수금 10만 골드입니다. 대륙 어디서든 현금화시킬 수 있는 전표입죠. 이미 한 바퀴 돌렸기에 추적은 불가능합니다. 나머지는 일이 끝난 후에 드리겠습니다.”
레기온은 돈을 받았다.
헐! 이게 웬 꽁돈이냐?
“일은 언제 시작하시겠습니까?”
일? 무슨 일? 도대체 당신은 누군데?
“언제든지.”
레기온은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순발력에 대해서 너무 뛰어나다며 자화자찬을 했다.
“저희 쪽 정보에 의하면 마탑의 노인네들은 3일 후에 항구도시 씨엠으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그때가 기회라고 여겨집니다.
마탑의 노인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마탑이란 소리를 듣는 순간 레기온은 불길함을 느꼈다. 마탑, 노인네, 3일 후, 씨엠……. 이거 뭔가 이야기가 한쪽으로 흐른다.
이놈들이 대체 누구기에 마탑을 노리는 걸까?
마탑을 건드릴 정도의 세력은 적어도 왕국 내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적어도 그들과 한판을 붙기 위해서는 최소한 어지간한 왕국 수준의 총력을 기울여야 할 판이다.
만약 마탑이 공개적으로 마법사들의 소집령을 내린다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만큼 마탑이 지닌 전력은 막강했다.
“그러니까 나 보고 마탑의 노인네들을 죽이라는 거지?”
노인네라고 하면 마탑의 장로들을 뜻하는 것인가. 누군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네? 허락하신 것 아니었습니까? 저는 그렇게 알고 왔습니다만.”
레기온의 말에 로우스쿨은 경계심을 보였다.
“아니, 할 것은 해야지.”
도대체 로우스쿨이란 자는 누굴까?
“혹시 돈이 적으십니까?”
로우스쿨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탑의 노인네들이야. 당연히 이 정도면 푼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
“하긴 50만 골드나 되지만…… 그 노인네들의 목숨 값에 비하면 푼돈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허걱!
50만 골드!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10만 골드 외에도 40만 골드나 더 받을 돈이 있다고? 영지에 돈은 많지만 더 많으면 당연히 더 좋다.
500만 골드면 어떻고, 5,000만 골드면 어떤가, 주기만 해 봐라 내가 다 써 주겠다.
“좋습니다. 70만 골드는 어떻습니까.”
“70만 골드?”
레기온의 눈빛이 번쩍였다.
이놈들 되게 돈 많은가 본데?
레기온의 흉포한 눈빛을 본 로우스쿨은 마른침을 삼켰다. 역시 돈데크만은 만만하지가 않다. 하긴 제아무리 왕국 7대 강자라고 하더라도 이번 일은 목숨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마탑의 현자 바세라바밥과 콘티넌트 공왕이 얽힌 일이다.
이번 일이 성공하면 천지개벽이다.
마탑의 현자 바세라바밥의 종말과 함께 내전의 서막이 열린다.
왕실을 수호하는 바세라바밥의 죽음은 콘티넌트 공왕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을 맺을 것이다.
그러나 바세라바밥을 처리하는 일이란 결코 쉽지가 않았다. 그를 보호하는 수호 마법 3인방도 그렇지만 본인이 정말로 강했다.
해서 콘티넌트 공왕은 심혈을 기울여 암살자를 선별했다.
그리고 그 암살자는 죽음의 도살자 돈데크만으로 낙점되었다.
돈데크만은 빛과 어둠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방랑 기사였다.
강하지만 죽는다고 해서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죽으면 다른 누군가가 왕국 7대 강자를 채우면 된다.
그 사실을 레기온은 알 턱이 없었다. 그저 로우스쿨과의 대화에서 퍼즐을 맞춰 나가야만 했다.
레기온의 눈빛에 주눅이 든 로우스쿨은 다시 배팅을 했다.
“80만 골드는 어떻습니까?”
“…….”
허걱! 야! 마크 들었냐?
-응? 허걱, 뭐임? 저 남자 누구임?
이 새끼, 상대가 암살자였으면 어쩔 뻔했어. 자꾸 직무유기 할래!
-너님을 믿으니깐 안심하고 다른 자료 찾고 있었음.
무슨 자료?
-그런 게 있음. 어쨌든 저 남자 누구임?
레기온은 로우스쿨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너님을 돈데크만인지 뭔지로 또 오해를 한 거임?
맞아.
-너님과 돈데크만은 무척 닮은 모양임.
전혀 안 닮았다.
소문만 그렇게 퍼졌다.
로우스쿨인 입안이 메말랐다. 악당 중에 악당은 돈데크만이라고 하더니 정말인 듯했다. 50만 골드로 약속을 해 놓고 또 이렇게 판을 깨려고 하다니.
이 개자식은 판돈을 올리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백만 골드. 이 이상은 안 되오. 우리도 자금이 그렇게 넉넉한 편은 아니라서.”
-허걱! 배, 백만 골드?
마크도 놀라 자빠졌다.
레기온도 턱이 빠져라 입을 벌렸다. 투구로 얼굴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면 대번에 들켰을 것이다.
“어떻소?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겠소?”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일단 콜.
“선수금은 반.”
“나머지 40만 골드는 숙소에 도착하면 드리겠소.”
레기온은 주먹을 꽉 쥐었다.
아싸! 떼돈 벌었다.
“나머지는 마탑의 노인네. 바세라바밥의 목이 날아가는 순간 모두 드리겠소.”
레기온은 쥐던 주먹을 멈췄다. 하도 놀라서 두 눈을 껌벅껌벅 거렸다.
누구?
바세라바밥?
그 살아 있는 전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