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234)
마법은 괜히 배워서-235화(235/502)
# 235
천공불멸 누벼누벼 2
레기온은 철검을 빼 들다 멈췄다.
자꾸 스스로가 전사인 줄 착각한다. 이러다가 정체성에 심각한 고민이 생길 듯하다.
나는 마법사야.
마법사가 자꾸 검을 휘둘러서 어쩌자는 거지.
레기온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직업의식을 되새겼다.
어차피 자신은 다크 로드가 되었다. 까놓고 왜 마음 약하고 수줍음이 많은 자신이, 다크 로드가 됐는지 아직도 이해가 가지 않긴 한다.
다크 로드!
대륙 정복을 원하는 그런 놈들이 되는 것 아닌가?
고서에 나오고, 전설상에 온갖 패악을 저지른 놈들. 그런 놈들이 다크 로드가 아니냐고.
왜 난데!
내가 뭘 했다고 다크 로드가 돼서 흑인까지 돼야 하냐고!
“후우.”
레기온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억울해서 갑자기 흥분했다. 이제는 환골탈태인지 뭔지를 해서 ‘멋짐 폭발’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도 배 이상 강해졌다. 더군다나 무한 증폭 스킬인 ‘나만 잘났다’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멋짐 폭발’ 스킬을 사용하는 날!
대주교 개잡놈을 잡아서 반드시 똑같이 만들어 주리라!
아차! 멋짐 폭발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날- 내가 흑인이 됐다는 것을 만천하에 까발리는 날이구나.
안 되겠다.
서둘러 2차 성형수술부터 받아야겠다.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리는 인생이다. 내가 바란 것은…….
그저 영지민들과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뿐이었는데.
조금 더 바라면 겁나 예쁜 여친도 생기고, 조금 더 바라면 미스릴 광산에서 나오는 돈으로 평생 호의호식하고, 조금 더 바라면 여자들한테 인기도 겁나 많고.
딱 그 정도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정도의 희망은 안고 살지 않나.
그런 면으로 봐서는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소귀족인가.
어쨌든-
이제 나는 마법사답게 마법을 사용해야겠다.
고대 마법도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한데 언제까지 철검을 휘두를 수 없는 노릇이니까. 아니 아직 스태프를 사용하지 못하니까 겸사겸사 같이 사용하자.
그런데 다크 로드는 마법사야? 기사야?
느닷없는 레기온의 질문에 마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는 업데이트가 된 고서들을 살폈다.
2천 년 동안 2번의 다크 로드가 강림했다. 중간계로 치자면 2번의 다크 로드와 흑룡의 침공으로 세 번의 극악한 전쟁을 겪은 셈이다.
하지만 다크 로드가 침공했다는 소리만 있지 어떤 식으로 무력을 사용했다는 말이 없었다.
-그는 무시무시했다.
-그는 공포와 절망의 상징이었다.
-그는 보는 자들은 다들 눈이 썩었다.
-그를 본 인간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무릎을 꿇었다.
그래, 다크 로드가 굉장히 무시무시한 존재인 것은 알겠다. 그런데 걔들은 어떤 무력을 사용했냐니까?
마크가 진지하게 나섰다.
-개인의 취향이라 생각함.
개인의 취향?
-그렇삼. 다크 로드의 직업이 꼭 뭐라고 나오기가 힘든 게…… 왜 번역하면 어둠 군주 아니겠음? 군주가 꼭 검술만 쓰라는 법도 없고, 마법만 쓰라는 법도 없으니, 각자 취향대로 하지 않았을까 생각됨.
아하, 그렇구나. 그러니까 내가 마법을 쓰든, 검술을 쓰든 상관이 없다는 말이지?
-정확함.
완전히 틀렸다.
다크 로드는 지옥의 군주다.
지금 상황을 지옥을 다스리던 현직 다크 로드가 봤다면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것이다.
-당장! 내 권능을 사칭한 놈을 잡아서 끌고 오너라!
그렇다.
다크 로드의 실질적인 무력은 마법이나 오러가 아니었다.
세상의 인과를 무시할 수 있는 절대적 권능!
그것이 다크 로드가 가진 힘인 것이다.
하지만 레기온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주변에 다크 로드, 그랜드 마스터, 0서클 초수퍼 대마법사, 노바 로드 등등.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레기온은 터질 것 같은 근육으로 왼손에 철검을 잡았다.
차가운 갑옷에 그의 근육이 꽉 낀다. 근육이 갑옷을 뚫고 나오지 않을까 겁이 난다.
그리고 오른손으로 마법을 캐스팅했다.
비록 마력을 200퍼센트나 높여 주는 스태프가 없다고 하더라도, 이딴 와이번쯤이야.
무려 1년에 10억 골드 이상을 벌어다 줄 중요한 재원인데.
-쿠오오오오!
강력한 화염의 브레스가 레기온을 향해서 날아들었고-
“흐흡.”
레기온은 짧게 호흡을 멈추며 철검을 휘둘렀다.
꽈지지지직!
브레스가 반으로 갈라지면서 옆으로 튕겼다.
튕겨진 불덩이가 와이번들의 둥지들로 날아들어서 불이 붙었다. 새끼 와이번들한테 먹이를 주던 엄마 와이번들이 기겁을 하면서 뛰쳐나왔다.
창공불멸 누벼누벼의 눈빛이 움찔거렸다.
이제껏 어떤 상대도 자신의 브레스를 막아 낸 적이 없었다. 아니 몇 번 있기는 했다. 그들은 가까스로 살아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을 쳤다.
지금처럼 반으로 갈라 버린 적은 처음이었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인 줄 아느냐!
누벼누벼의 광포한 외침이 산맥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놀란 새들이 푸드득 소리를 내면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어린 와이번들은 두렵고 흥미가 가득한 눈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어 구경을 했다.
창공불멸 누벼누벼는 더욱더 광포하게 외쳤다.
아이들과 암컷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와이번 족 최강의 전사로서 물러나는 꼴을 보여 줄 수가 없었다.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 줘야 한다.
-쿠아아아앙! 감히 인간 따위는 천공의 대지에 발을 내딛지 못한다. 다섯을 세겠다. 꺼져라!
“세.”
레기온이 대답했다.
-뭣이?
“다섯 세라고.”
레기온은 캐스팅을 마쳤다.
창공불멸 누벼누벼의 머리 위에 거대한 검은색 손바닥이 생성됐다. 레기온도 오랜만에 시전해 보는 마법이었다.
맞으면 진실을 토해 내는 부처님 손바닥.
고대 마법 중 하나라는데, 제천대성이라는 말 안 듣는 돌원숭이를 갈굴 때 썼던 마법이란다.
정말이지, 특이한 마법이 아닐 수 없다.
-정녕! 네놈은 두려움을 모르는구나! 내 3연발 브레스를 보고 싶으냐!
“시끄럽고. 빨리 세. 다섯.”
-이익.
창공불멸 누벼누벼가 불타는 눈빛으로 레기온을 쏘아봤다. 어린 와이번들은 손에 땀을 쥐면서 그를 응원했다.
저 재수 없는 인간을 이 땅에서 내쫓아 주세요. 아니 저희에게 인간고기의 맛을 보여 주세요.
아, 부담스럽다.
누벼누벼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런 몸만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저 조그만 인간을 끝장냈을 텐데.
“아, 새끼. 말귀를 못 알아듣네. 내가 셀게. 다섯, 넷, 셋, 둘, 하나.”
-자, 잠깐!
“됐어. 잠깐은 무슨.”
순간 거대한 검은 손바닥이 벼락처럼 내리찍혔다.
쿠쿠쿠쿠쿵!
소리와 함께 창공불멸 누벼누벼는 납작하게 짓눌렸다. 엄청난 압력이었다. 그가 아니라 보통의 와이번이었다면, 개구리가 발에 밟히듯이 터져 버렸으리라.
무시무시한 공격이었다.
-크허허허헉!
고통을 참지 못한 누벼누벼는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헐떡거렸다.
철컹철컹-
레기온은 그런 누벼누벼에게 다가갔다. 누벼누벼의 어지간한 새끼 돼지보다 큰 눈이 레기온을 쏘아봤다.
“와이번 족 최강 전사라면서?”
-그렇다! 왜? 안 믿기나!
“응, 안 믿겨. 왜 이렇게 약해? 브레스 빼고는 제대로 보여 준 게 하나도 없잖아. 입만 나불나불 거리고.”
입만 나불나불 거리고!
창공불멸 누벼누벼에겐 치욕적인 말이었다. 인간 따위에게 이딴 말을 듣게 될지는 태어난 이후로 처음이다.
-몸이 안 좋아서 그렇다!
“몸이 안 좋아서?”
-그래, 몸이 좋았으면 네깟 놈쯤은 한입에 삼켰을 것이다.
“병에 걸렸냐?”
-비슷하다.
“죽을 병?”
-그건 아니고.
“뭔데?”
-디스크다.
레기온의 미간이 팍 일그러졌다. 인간들도 허리가 아픈 사람들이 많은데. 다른 종족이라고 해서 별 게 없구나. 아픈 것들은 다 똑같네.
“어쩌다가?”
-애들을 대신해서 무거운 것 들다가 허리 삐끗했다.
“언제 다쳤는데?”
-알아서 뭐하게?
“고쳐 주면 다시 한판 붙을래?”
-네가 나를 고쳐 준다고?
“그래. 어쩔래?”
-무슨 속셈이지?
누벼누벼는 의심이 많은 눈으로 레기온을 바라봤다.
인간이 공짜로 허리를 고쳐 준다고?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 하지만 근 7개월간 허리가 아파서 꼼짝을 못했다.
처음 허리가 다치고 그곳을 쓰지 않다 보니 다른 쪽의 뼈가 어긋났다. 지금은 골반도 비뚤어진 것 같았다. 산속에 있는 약초는 몽땅 먹었지만 좀처럼 차도가 생기지 않았다.
점점 허리는 아프고-
밤일도 못하고-
이러다가 둥지에만 누워서 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실제로 그는 허리가 아파서 누워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런데 그런 허리를 고쳐 주겠다고?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다.
“속셈이랄 것까지야. 그냥 나와 계약을 하자. 딱 보아하니 너희들 기생충 약 안 먹지?”
-기, 기생충 약?
“그래, 아오, 이 날개의 털 빠지는 것 봐라. 다 기생충 때문이야. 약 먹으면 다 나. 허리 아픈 것? 고쳐 줄게.”
-저, 정말 그게 가능한가?
“당연하지. 우리는 약을 제공하지.”
-네가 원하는 것은?
“노동력.”
-노동력?
“그래. 상부상조하는 셈이지. 결혼했나?”
-했다.
“애는 몇이야?”
-으음.
사실 그는 한창 신혼이다. 하지만 허리를 다치는 바람에 그날 이후 부인과의 사이도 소원해졌다. 처음에는 부인도 그를 안타깝게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마누라의 짜증이 늘었다.
언젠가부터 마누라는 자꾸 밖으로 나돈다.
집에 좀 붙어 있어, 라고 외쳤더니 ‘그럼 당신이 먹이를 구해 오든가! 굶어 죽으란 말이야!’라고 되받아쳤다.
어쩐지 딴 와이번이란 바람이 난 듯한 느낌도 들었다.
치욕적이었다.
허리가 다친 것만으로 와이번 족 최강의 전사가 이렇게 추락을 하다니.
“행복한 가정을 되찾고 싶지?”
-찾고 싶다.
“그럼 나랑 계약해.”
-정말 허리를 낫게 해 줄 수 있나?
“허리뿐이냐. 아픈 와이번들 다 데리고 와. 최소한 병에 걸려서 죽는 와이번은 없게 해 줄게.”
누벼누벼의 마음이 흔들린다.
쿠쿠쿠쿠쿵!
그는 슬쩍 근육의 인간과 맞붙어서 싸우고 있는 비벼비벼를 보았다.
저, 저런.
비벼비벼는 와이번 족에서 두 번째로 강하다.
만약 자신이 아니었다면 최강자 자리에 올랐을 것이다. 서열 1위와 2위답게 사이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2위인 비벼비벼가 호시탐탐 최강자의 자리를 노린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말로 버텼지만 곧 최강자의 자리를 그에게 내놔야 할 것 같았다.
허리가 다친 상태에서는 그와 맞상대를 하지 못한다.
엄청나게 맞고 끌려 나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은퇴를 하는 편이 조금이라도 품위 있게 내려오는 길이라고 누벼누벼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젊은 나이에 은퇴라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계속 버텼다가는 비벼비벼에게 완전히 발릴 테니까.
그런데!
자신도 인정한 강자 비벼비벼가 근육질 사내에게 개처럼 까이고 있었다.
불쌍하다 싶을 정도로 맞는다.
맞다 맞다가 끝내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아, 이 새끼, 약골이네. 뭐 이 정도 맞고 도망을 쳐? 오구오구보다 참을성이 없잖아.”
근육질의 사내에게 용서란 없었다.
도망치는 비벼비벼의 날개를 잡고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비벼비벼는 항거를 하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살려 줘!
와이번 족 누구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비명이었다.
비벼비벼가 저렇게 애처롭게 비명을 지르는 모습은 차마 눈을 뜨고 보기 힘들었다.
-아아악! 이 악마! 도대체 왜 우리한테 이런 못된 짓을 하는 거야!
어린 와이번들이 분노와 혈기를 참지 못하고 레기온에게 덤벼들었다.
“응?”
왼쪽 어깨에 철검을 얹고 있던 레기온이 고개를 돌렸다.
어린 와이번들은 무심결에 휘둘러진 철검에 맞아서 기절했다. 바닥에 떨어진 와이번들이 거품을 물고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창공불멸 누벼누벼는 쓰러진 채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저자는 악의 화신이다.
벌써 우리 부족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어. 만약 계약을 하지 않으면 우리 부족은 노예로 끌려가게 될 거야.
하아! 신이시여.
우리가 너무 안이하게 살아와서 이런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아하하하! 나는 날개 달린 것들이 다 싫어!”
드레이져의 광소가 울렸다.
비벼비벼는 사력을 다해서 도망쳤다. 그러나 그의 불쌍한 비명 소리가 서식지 안에 울려 퍼질 뿐이었다. 드레이져의 광기에 모든 와이번들은 극도의 절망과 공포에 휩싸였다.
적막이 찾아왔다.
모두가 입을 열지 못했다.
-크흐흐흑, 계약하겠소.
누벼누벼는 울면서 말했다.
레기온은 누벼누벼가 왜 우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약 주고, 음식도 제공한다는데 왜들 지랄이야. 지랄은.
요즘 들어서 자신이 점점 나쁜 놈이 되어 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