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26)
마법은 괜히 배워서-26화(26/502)
# 26
어서 와! 인간 세상은 처음이지? 3
유서 깊은 저택이다.
대략 천 년쯤 되지 않았을까 한다. 폭풍이 몰아쳐도, 혹한이 몰아쳐도 끄떡없던 저택이었다. 종종 외적에 침입에 맞서 싸우다가 영광의 상처를 입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저택의 귀퉁이가 몽땅 무너져 내린 적은 없었다.
적어도 레기온이 기억하기론.
또 식당 부근인 듯하다. 데카르슨 주방장이 아침을 준비하다가 날벼락을 맞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레기온은 손을 휘휘 저었다.
아침은 언제까지 준비가 되나요?
금방 됩니다.
알았어요, 곧 들어갈 테니까 준비해 주세요. 아, 무너진 벽은 천으로 막아 주세요. 냉기가 장난 아니에요.
알았습니다. 영주님.
역시 데카르슨 주방장과 오랫동안 함께 생활하다 보니까 눈빛만 주고받아도 얘기가 통한다.
그나저나-
레기온은 화가 난 표정으로 패인드를 노려봤다.
“무너진 거 어쩔 거야?”
패인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제가 뭘요?”
“너 때문에 무너졌잖아.”
“제 탓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만. 저 몬스터가 그런 거 아닙니까.”
패인드는 또박또박 말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쟤는 우리 식구라고. 아, 세피아라고 해. 세피아. 너도 인사해. 우리 영지 사람들이야. 뭐, 그다지 볼 일은 없을 테지만.”
레기온은 세피아를 보면서 얘기했다.
세피아는 병사를 한 손에 쥐고 그의 머리를 혀로 핥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크르륵, 크르륵(나는 세피아라고 한다. 형아의 동생이지. 너, 다시 한 번 나한테 칼 휘두르면 뒈진다).
세피아의 살기를 한 몸에 받은 패인드는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그는 나름 실력도 있고 경험도 많은 기사였다.
과거 어린 시절에 동료 몇과 함께 오거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오거 두 마리면 돈이 얼마지? 그는 동료들과 웃으면서 농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전멸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패인드 한 명뿐이었다.
그때 알았다. 실력이 안 되면 깝죽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물론 지금은 그때와 명백히 다르다. 오거도……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섣불리 덤빌 수가 없었다.
미묘한 불길함. 그건 단지 오거에게서만 느껴지는 것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그 대상은 영주였다.
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저 성질 더러운 꼬맹이에 불과했던 영주가, 지금은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영주, 당신. 흑마법에 손댔나? 저런 몬스터를 부리다니, 그 사실이 알려지면 이 영지는 끝이야!”
패인드는 패링만큼이나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눈빛으로 레기온에게 외쳤다.
잉? 저건 또 무슨 소리다냐. 왜 내가 흑마법을 배워? 마크, 너 흑마법사야?
-그냥 단순한 인공지능입니다만. 저 멍청이가 마음대로 착각을 하는 것 같슴요.
그치? 생긴 것도 재수 없게 생겨서. 어쨌든 저 새퀴 때문에 무너진 집을 어떻게 하지?
-돈 내놓으라고 하삼.
돈? 흐응-! 그렇지? 무너뜨렸으면 돈을 내야지.
“너 뒈질래. 집값 물어낼래. 100골드만 내면 봐주지!”
레기온이 패인드를 쳐다보며 우악스럽게 물었다.
“영주…….”
패인드의 눈초리가 정말로 사나워졌다.
“정말 그렇게 막말을 하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저 알량한 오거 새끼 한 마리 믿고?”
“알량한 오거 새끼?”
동시에 세피아의 거대한 육신이 움직였다.
“하아아압!”
패인드도 모든 힘을 검 속에 불어넣었다. 엄청난 힘이 검에 담겼다. 그는 순식간에 번개처럼 움직이며 세피아를 향해서 폭사해 들어갔다.
* * *
“뭐? 돈이 없다고?”
패인드는 세피아에게 멱살을 잡힌 채 아래위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이미 전의는 모두 사라진 모양이다. 다른 이들도 순식간에 결판이 난 둘의 대결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돈도 없으면서 왜 남의 집을 부숴!”
“아으아, 그……거, 제에가 하아아안 게 아니…….”
“이 새끼 또 딴소리 하네.”
세피아가 멱살을 잡은 채 패인드를 몇 바퀴 허공에서 돌렸다. 패인드는 아예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어떻게 하지?
-차용증을 받으삼.
차용증?
-저택을 무너트렸으니 언제까지 돈을 갚으라, 갚지 않으면 압류 들어간다. 사인해라. 안 갚으면 뒈진다. 아, 오크 주술사가 너님에게 사용했던 저주의 정령은 잘 있삼?
몰라. 소환하면 나타난다고 하는데 한 번도 부른 적이 없어서.
오크 주술사는 레기온의 몸에 붙은 저주의 정령을 해제시켜 주었다. 그런데 저주의 정령이 레기온의 몸에 달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크 주술사가 물었다.
‘왜 그에게 붙어 있느냐.’
저주의 정령은 대답했다.
-이 남자에게 엄청난 불행이 몰려 있어요. 가만히 있어도 제가 너무 불행해져서 행복해요. 당분간 이 남자와 함께 있겠습니다.
레기온이 두 눈 멀쩡하게 뜨고 있는데 저딴 소리를 지껄였다. 레기온이 싫다고 한 마디 하려는데, 이미 놈이 들러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정말 엄청난 미스릴만 아니었다면 안 참았을 것이다.
어쨌건 그 이후로 저주의 정령은 레기온의 주변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놈 써먹으셈. 밥값은 해야 하지 않겠삼?
오호, 그래. 맞아.
레기온은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래, 그래. 여기에 사인해.”
레기온은 패인드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패인드는 펜을 잡았다.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치욕이다.
이 치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가 있단 말인가.
“사인하세요. 고객님.”
레기온은 굴러가는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그가 말을 할 때마다 패인드가 움찔움찔 떨었다.
패인드는 슬쩍 세피아를 바라봤다.
-크르르르(뭘 꼬라봐).
패인드는 깜짝 놀라 고개를 숙였다.
저거 정말 오거 맞아? 오거가 저 정도로 강해도 돼?
그의 기억 속에 있던 오거는 눈앞에 세피아처럼 강하지 않았다. 그 오거는 분명히 저 세피아보다 덩치도 컸는데.
블레이드도 통하지 않는 몬스터는 처음 봤다.
자신이 만든 블레이드를 세피아는 어깨로 튕겨 버렸다.
그 뒤로 몇 번의 칼질도 손등에 막혔다. 이건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다. 오거가 비릿하게 입술을 뒤틀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약해 빠진 놈.
그리고 달려와서 보디체크.
그것으로 끝났다. 기억이 끊겨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몰랐다. 깨어나 보니 얼굴이 엉망이었다. 패링에게 듣기론 발목이 잡힌 채로 바닥에 마구 내동댕이쳐졌다고 한다.
그리고 멱살을 잡아 오락가락, 저쪽 하늘로 갔다가 이쪽 하늘로 갔다가…….
‘살아 있는 게 용해. 역시 기사의 육체는 대단해.’
말을 듣고 보니 온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죽다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같이 얼굴이 뭉개져서 무릎을 꿇고 있는 샬롬.
오랜 친구이자 인생이 동반자. 그를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내던질 수가 있다. 그도 그럴 것이다.
샬롬은 자신이 위험에 처하자 저 오거에게 덤벼들었다고 한다. 결과는 보시다시피 이런 꼴이 되고 말았다. 세 대쯤 맞았다는데 아예 얼굴이 못 알아볼 수준이다.
패인드는 문서에 적힌 내용을 읽어 보았다.
-을 패인드는 갑 레기온에게 200골드를 빚졌다.
뭐, 뭐야? 왜 200골드야? 100골드가 아니었나?
그는 레기온을 바라봤다.
“뭘 봐? 아, 왜 200골드냐고? 협상이 틀어졌잖아. 맨 처음 100골드 제안했을 때 받았어야지. 그래서 200골드야. 이건 승자의 정당한 권리라고.”
저 씹쌔. 귀족 맞아? 악질 사채업자 아냐?
“이건 정당한 거야. 왕국 법전에도 나와 있다고. 빌려간 돈은 반드시 갚아라. 이율은 양측의 합의하에 따른다.”
그런 법이 있던가?
패인드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
평생 검술만 연마했던 그는 그런 법이 있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물론 레기온도 모른다.
그냥 아무 말이나 막 던진 거다. 아니면 말고. 다행히도 패인드 또한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패인드는 손가락을 덜덜 떨면서 문서에 사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릿속에 집에 있는 아내와 아들 둘이 떠올랐다. 재산을 모두 털면 200골드는 어찌어찌 마련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모든 돈을 영주에게 지불하면 자신들은 어디로 간단 말인가.
자칫하다간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다.
사인을 받은 레기온은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문서를 샬롬에게 내밀었다.
“이, 이건 뭡니까?”
패인드가 절망 속으로 빠지는 것을 샬롬은 똑똑히 목격했다. 패인드가 서명한 문서를 자신에게 내밀자 기겁할 정도로 놀란 샬롬이었다.
“저, 저는…… 부순 게 없는데요.”
“연대 보증.”
“여, 연대 보증이요? 그게 뭡니까?”
“그런 것도 몰라?”
샬롬은 고개를 흔들었다. 모른다. 그런 말을 처음 들어 본다.
사실 레기온도 모른다.
마크가 이왕 받을 것, 연대 보증을 세우라고 해서 알게 된 것이다. 돈 받는 입장에서는 아주 좋은 제도라는 건 확실하다.
“얘가 돈 안 갚으면 네가 대신 갚는 거야.”
“제, 제가 왜?”
“너희 둘은 친구잖아. 아니야? 그냥 동료일 뿐이야? 겉으로는 우리는 친구 노래를 부르면서 뒤돌아서면 욕을 하는 사이였어?”
“아, 아닙니다.”
“아니면 사인해. 당신들의 우정은 영지 내에서도 파다하잖아. 자식들도 크면 결혼시키기로 했다면서. 말만 그런 거야?”
“그런 것 아닙니다. 저희의 우정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그럼 사인해. 자, 여기다 하면 돼.”
샬롬은 펜을 잡았다.
솔직히 사인하기 싫었다. 만에 하나 패인드가 돈을 갚지 못하면 자신이 대신 갚아야 한다. 이 말을 마누라한테 어떻게 말을 하란 말인가. 그렇다고 사인을 안 하게 되면 그들 사이에 우정은 거짓이 된다.
진퇴양난이었다.
“어라, 망설이네. 봤어? 패인드. 샬롬의 우정은 말뿐이었어.”
“아니라고요. 합니다. 해요.”
샬롬은 레기온이 내민 문서에 사인을 하고 말았다.
레기온은 씨익 웃었다. 됐다. 그의 품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와 패인드와 샬롬의 몸속에 들어갔다.
그들은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놀랄 것 없어. 약속의 정령이야.”
-헐, 저주의 정령을 그렇게 둔갑시켜도 됨?
시끄러.
“너희가 약속만 지키면 정령은 다시 내게로 돌아와. 하지만 약속을 어기면…….”
레기온이 엄지로 목을 그으며 말을 덧붙였다.
“악몽을 꾸면서 생을 마감하게 될 거야.”
그는 문서를 고이 접어서 품에 넣었다.
아, 악마다. 이놈은 악마야. 패인드와 샬롬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사람의 인격이 완전히 변할 수가 있을까? 아니다. 원래 이런 놈이었던 것 같다.
하긴 어렸을 때부터 성깔 하나는 정말 독했었지. 단지 힘이 약해서 무시했던 것이다.
레기온은 줄리안 준남작과 패링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들의 얼굴이 참 볼만하다.
붉으락푸르락.
패링은 얼마나 화가 치미는지 눈동자의 핏줄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들은 섣불리 레기온에게 덤비지 못했다. 그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세피아의 위압감이 상당했다. 나서면 죽이는 것이야 문제가 안 되겠지만, 이미 사람들 앞에서 영주가 공표했다.
자신이 동생처럼 생각하는 놈이라고.
자칫 저 오거를 죽이기라도 했다만, 졸지에 영주를 죽이려 한 것과 같은 처지가 될 수 있다.
기사들이 장난치듯 영주를 가지고 놀았던 것이야, 줄리안의 배경으로 어떻게든 할 수 있지만, 줄리안 스스로 나서지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래서 슬쩍 패링을 쳐다봤는데…….
안 돼요, 안 돼!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자신의 마법이 과연 저 오거에게 통할 거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저 빠르고 강한 패인드와 샬롬이 개처럼 두들겨 맞지 않았던가? 자신은 한 대만 맞아도 사망이다.
레기온은 저택 내부에서 이곳을 쳐다보고 있는 로하스에게 손짓을 했다.
다리 아프다. 의자 가지고 와.
레기온의 눈짓을 알아차린 로하스는 재빨리 의자를 가지고 왔다.
레기온은 자리에 앉으면서 다리를 꼬았다.
“패링.”
“…….”
패링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대답하지 않았다.
“개새끼, 졸라게 싸가지 없네. 작은아버지. 저 새끼 예전부터 마음에 안 들었는데 처형해도 됩니까?”
“무슨 헛소리냐?”
줄리안 준남작은 분노를 안쪽으로 삼키면서 가까스로 대답했다.
“보셨잖아요. 저 자식이 얼마나 안하무인인지. 정말 해도해도 너무 싸가지가 없다니까요. 방금도 불렀는데 본 체만 체하잖아요. 이거 완전 귀족 모욕 아닙니까?”
“못 들은 걸게다.”
“정말요? 이렇게 거리가 가까운데?”
“패링은 청력이 별로 안 좋다.”
“아하.”
레기온의 입술이 뒤틀렸다.
어차피 몽땅 처분을 하긴 할 건데…… 지금은 때가 아니다. 한 번에 완벽하게 처리하려면 명분이 필요했다.
하나만 걸려 봐. 개쉐들.
“어이, 패링.”
레기온이 다시 패링을 불렀다.
“왜……. 불러…….”
“저 씹새 봐라. 영주가 부르는데 왜 불러래. 작은아버지, 아무리 봐도 저건 귀족 모욕죄가 맞는데요. 분명히 들으셨죠. 지금 처형해도 되겠죠?”
레기온의 말에 세피아의 거대한 육체가 움직였다.
그 압도적인 살기는 패링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해 낼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왜……. 그러십니까?”
패링은 가까스로 목소리를 이끌어 냈다.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다.
“너 분명히 미노타우로스의 산다고 그랬지?”
“그렇습니다.”
“그럼 5천 골드 가지고 와.”
“무, 무슨. 1천 골드면 충분한 것을.”
“아하, 1천 골드? 그런데 씨발 놈이 나한테 백 골드짜리 전표를 던져?”
“아, 아니. 그것은.”
레기온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패링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배를 발로 차 버렸다.
퍼억!
배를 맞은 패링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눈에 살기가 가득했다.
“어쭈구리. 이 새끼 봐라.”
레기온은 패링의 면상을 발바닥으로 찼다. 얼굴은 맞은 패링의 목이 휙 꺾였다.
입에서는 피가 튀었다.
다시 눈에 심지를 켜고 고개를 들어서 몇 대 더 때려버렸다. 눈 깔 때까지.
“아, 이 새끼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레기온은 짧은 머리를 휘휘 문질렀다. 그리고 줄리안 준남작에게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작은아버지, 이 새끼 그냥 처형하죠. 이런 새끼가 옆에 있으면 작은아버지 체면만 망가진다니까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그것보다…….”
줄리안 준남작이 어금니를 씹으며 하려는 말을 레기온이 가로챘다.
“제논 때문에 왔어요?”
“그래, 분명히 너라면 알고 있을 텐데.”
“알죠.”
“어디 있지?”
“장가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