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27)
마법은 괜히 배워서-27화(27/502)
# 27
리치의 부활 1
줄리안 준남작은 똥을 씹은 표정을 지었다.
살다 살다 별 해괴한 소리를 다 듣는다. 누가 장가를 가? 내 아들이?
“무슨 헛소리냐! 내 아들이 장가를 갔다니!”
“모르셨어요?”
“당연한 소리! 그 녀석이 말도 없이 무슨 장가를 간단 말이냐? 상대는 누구고? 무엇보다 넌 그걸 어찌 알고 있느냐!”
“봤어요.”
“봐?”
줄리안 준남작은 부글부글 끓는 눈빛으로 레기온을 쳐다봤다. 그러든지 말든지. 지금 그를 어떻게 하긴 어렵지만, 그 역시 나를 어쩔 수는 없다. 레기온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제논과 사이콥, 그리고 기사 네 명이 사라진 거죠?”
“그래, 역시 알고 있었군.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이냐!”
“하긴 뭘 해요. 그놈들 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사랑의 야반도주를 한 거예요.”
“사, 사랑의 뭐?”
“사랑의 야반도주.”
“이 개자식! 계속 말장난을 해!”
“장난은 무슨 장난이요. 제가 작은아버지에게 어떻게 이런 걸로 장난을 치겠어요?”
“저, 정말?”
“정말입니다.”
“사, 상대가 누구냐.”
레기온은 여기서 살짝 고민했다. 그들이 오크 여전사들에게 끌려갔다고 말을 하면 안 된다. 하지만 오크들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을 하기도 애매했다. 세상 어떤 인간이 오크와 사랑에 빠진다는 말인가.
아, 있긴 있다. 조나스의 아버지. 도대체 누구인지 되게 궁금하다.
에라, 모르겠다. 고민해서 뭐하냐. 될 대로 되라.
“뒤셀르프 산맥 안쪽에 있는 오크 여전사들과 살림 차렸어요.”
“뭐어어어?”
줄리안 준남작의 두 눈동자가 호박만큼 커졌다.
인간이 타조 알을 낳았다는 말만큼이나 믿을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믿기 힘드시죠? 저도 사실 보고서도 못 믿겠더라고요. 그 녀석 취향이 그쪽일 줄이야.”
“허튼소리 하지 마라! 당장 내 아들이 어디 있는지 말을 해!”
“제가 오크 부족이 있는 곳을 알려 드릴게요. 약도 그려 드릴 테니까 기사들을 데리고 다녀오세요. 제가 백번 말을 해 봤자 믿지 않을 테니까.”
“거짓말이면…… 기사의 명예를 걸고 널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아아, 말이 그렇게 되나요? 졸지에 목숨이 걸려 버렸네. 그런데 작은아버지. 그 상대가 영주인 건 아시죠? 그러니 저도 이렇게 말을 하죠. 그럼 제가 한 말이 맞으면 어쩌실래요?”
“뭐?”
“제 말이 틀렸다면 죽여 버린다면서요. 영주의 목을 걸었으면, 작은아버지도 뭔가를 걸어야죠.”
줄리안 준남작은 머리가 아파 왔다.
뭐지 이 새끼? 맞는 말 같긴 한데 뭔가 묘하게 이상하다. 심각하게 말려드는 기분.
“뭘 원하느냐?”
“제가 뭐 작은아버지 목이라도 바라겠어요? 전 그 정도로 잔인하진 않아요. 작은아버지는 제 목숨을 원하지만 전 자그마한 성의를 원하죠.”
“돈?”
“빙고, 작은아버지 재산 다 거세요.”
“뭐?”
“전 목숨을 거니까 작은아버지 재산 다 거시라고요.”
레기온은 품에서 문서 한 장을 더 꺼내서 재빠르게 작성을 했다.
-레기온의 말이 사실이면 전 재산을 그에게 양도한다.
“자요. 사인하시면 됩니다.”
레기온은 작성한 문서를 줄리안 준남작에게 건넸다.
줄리안 준남작의 표정은 아까와 다르게 일그러졌다. 뭔가 생각이 굉장히 많은 표정이었다.
만에 하나 레기온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지?
“저는 목숨을 걸잖아요. 제 말이 거짓이라면 공개적으로 목이 잘릴게요. 여러분, 모두 들었죠?”
레기온은 저택에서 숨을 죽이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하인들과 메이드들에게 소리쳤다.
그들은 모두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봐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공증을 섰어요. 저는 마을 회관 앞에서 목을 내밀고 있을게요. 작은아버지는 와서 제 목을 자르시면 돼요. 제 모든 권리도 양도할게요. 영주 자리 가지세요. 남작 작위도 가지세요. 만약 작은아버지의 손으로 제 목을 치시는 것이 부담스러우시면 저 패링한테 자르라고 하세요. 저한테 꽤 불만이 많아 보이니까.”
“아, 아니, 그게.”
“어서 사인하세요. 이곳 영지를 작은아버지가 모두 가질 수 있어요. 생각해 보세요. 작은아버지가 그토록 차지하고 싶던 영주의 자리예요. 모든 것을 손에 쥘 기회라고요. 사인만 하시면 다 가질 수 있어요. 사인을 하세요. 사인만 하면 돼요.”
줄리안 준남작은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다.
그는 펜을 잡고 레기온이 건넨 문서에 사인을 했다. 아니 하려고 하는 찰나에 패링이 재빠르게 그것을 낚아챘다.
“줄리안님, 뭐하시는 겁니까. 여기에 사인을 하시면 큰일 납니다. 정신 차리세요.”
패링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레기온에게 얼마나 많이 맞았는지 얼굴이 엉망이다. 그래도 눈빛은 굳건했다.
물론 제논이 오크 따위와 결혼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레기온이 저토록 자신만만한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것을 확인하기 전에는 절대로 문서에 사인을 해서는 안 된다.
뭔가 속임수가 있다.
확인을 할 수 없다거나, 최악의 경우 이미 죽인 뒤 혼인을 했다는 오크만 나설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것만으로도 저 어설픈 계약은 짐이 될 것이다.
패링은 확신한다.
영주는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상황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저 영악하고도 잔인한 두뇌회전. 원래 저 영주가 이 정도는 아니었다.
줄리안 준남작의 손에서 문서를 뺏어 간 패링을 보면서 레기온은 피식 웃었다. 그래, 너 잘 걸렸다.
“뭐하는 짓이지?”
“제논님의 생사가 확인되기 전에는 그 어떤 약속도 할 수 없다.”
“없다는 반말이고 씹새야.”
“할 수 없…… 습니다.”
“완전 배 째라네. 내 말이 틀리면 죽이고, 내 말이 맞으면 보상은 하지 않겠다고? 세상에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여러분, 패링이 하는 말을 들으셨습니까? 영주를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어요.”
“내, 내가 언제.”
“좋아. 그럼 네가 대신 책임져.”
“무, 뭘 말입니까.”
“나도 목숨을 걸 테니 너도 목숨을 걸어. 패링. 그게 공평하잖아.”
레기온은 패링을 보면서 웃었다.
그의 웃음을 보는 패링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언제부터일까. 도저히 레기온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무력은 자신이 훨씬 강한데.
패인드와 샬롬이 훨씬 강한데. 세력도 우리가 훨씬 강한데. 뭐지? 도대체 뭐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거야.
얼굴이 창백해진 패링에게 다가온 레기온이 다시 한 번 속삭이듯 말했다.
“너도 목숨 걸어. 씨발놈아.”
* * *
“하하하하, 호호호호호, 히히히히, 킥킥킥킥.”
마을로 향하는 거리를 걸으면서 레기온은 쉴 새 없이 웃었다. 십 년 묵은 체증이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좋삼?
“그럼, 그럼. 이젠 위장약을 안 먹어도 될 것 같아. 그 새끼 때문에 그 동안 내가 얼만 속을 끓였는데.”
-보고 있자니 너님이 무서워짐. 설마 패링이 문서에 사인을 할 줄은 몰랐음.
“할 수밖에 없었지. 아님 작은아버지가 전 재산을 걸어야 하는데. 양자택일, 그가 만약 사인을 하지 않았다면 충성심을 의심 받았을 거야.”
-오호, 대단하삼. 지능이 90밖에 안 되는 것 치고는 꽤 잘 만든 각본이었음.
“아차차, 맞아. 내 지능은 90이었지. 아니, 겨우 90 정도밖에 안 되는 지능을 가지고 이렇게 뛰어난데. 만약 평범한 110의 지능을 가진다면 보통 사람들보다 월등하게 뛰어다나는 말이잖아. 그렇지?”
-…….
마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 새끼는 조금만 띄워 줘도 저 지랄이야.
“왜 말이 없지? 혹시 속으로 욕하는 거 아냐?”
헐, 대단한데. 정말 지능이 90밖에 안 되는 거야? 다시 한 번 뇌구조를 스캔해 봐야겠다, 라고 마크는 생각했다.
그때였다.
망막에 문자가 떠올랐다.
-‘성군의 자질’ 스킬이 레벨 다운 됐습니다.
잉? 이건 뭔 소리야. 레벨 업도 아니고 레벨 다운?
-영지민들의 원한이 굉장히 깊어졌습니다. 불행력이 +10 높아졌습니다. 오늘은 집에서 머무는 것을 권장합니다. 불운이 레기온님에게 덮칩니다.
이봐, 이봐,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내가 뭘 했다고 영지민들의 원한이 깊어져?
-줄리안 준남작, 패링, 패인드, 샬롬의 원한이 깊습니다.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않으면 불행력이 강화됩니다.
그제야 ‘성군의 자질’ 패시브 스킬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았다.
레기온은 다시 짧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오! 닝기미! 맞아. 그들도 영지민들이지! 젠장!”
* * *
레기온은 마을의 대장간까지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다행히도 이곳까지 내려오는 동안은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자신에게 그리 큰 불행이 닥칠 것 같지는 않았다.
영지에서 일이 일어나 봐야 얼마나 심한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꽤 자비로운 영주잖아.
-자뻑의 화신이삼.
그는 자신이 영지민들에게 따뜻하게 대해 줬다고 생각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이리 자애심이 강할꼬.
모든 영지민들이 자신을 존경할 것이라고 여긴다.
-도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을까.
넌 좀 조용히 해라.
어쨌든 영지민들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각별하다. 그렇기에 행운력은 +100. 작은아버지 패거리의 불행력 -10. 합치면 +90이다.
불행은 생기지 않는다. 오로지 행운만 생길 뿐.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
-너님이 생각하는 행운력 +100은 말도 안 되는 상상임. 영지민들은 먹고살기 바빠서 그런 생각 안 함. 농기구로 잠깐 너님에게 고마움을 가짐. 행운력 +10. 줄리안 준남작 패거리에 불행력 -10. 여기서 쌤쌤 됨. 조심하셈. 더 떨어지면 곤란함.
레기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을 들들 볶아도 결코 영지민들만큼은 괴롭히지 않겠다고.
마크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레기온은 대장간에 도착했다.
대장간의 주인은 심슨이라는 남자였다.
3대째 알렉산더 영지에서 대장간을 운영하는 집안이었다. 심슨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고조할아버지가 장인정신이 투철한 드워프였다고 한다.
돈을 좀 밝혀서 그렇지 실력은 확실하다. 이런 변방에서 시골 사람들 농기구나 만들어 주고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어이, 심슨.”
레기온은 망치질을 하고 있는 심슨에게 손을 흔들었다. 심슨도 레기온을 발견했다. 그는 밝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물건 찾으러 오셨어요? 영주님.”
“응, 잘 됐어?”
“그럼요. 잘 나왔습니다. 대신 이게…….”
심슨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정말 예나 지금이나 저 돈 밝히는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
“얼마야?”
“70골드는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비싸?”
“비싸다니요. 딱 하나 만들었는데, 그 정도 들었습니다. 다른 것도 만들려면 수백 골드는 들어갈 겁니다. 영주님은 정말 돈이 있긴 있으십니까?”
“있어.”
“엄청난 광산을 발견하셨다는 소문이 돌던데. 진짭니까?”
“그랬으면 광산을 개발하고 있지. 이러고 있겠어?”
“아항, 그렇죠? 그럼 돈은 어디서…….”
“더 이상 묻지 마. 하지만 분명히 있어.”
“아, 넵. 알겠습니다. 어쨌든 물건은 여기 있습니다.”
심슨은 대장간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대장간에서 일을 하는 직원들과 함께 거대한 뭔가를 끌고 나왔다. 도르래에 올려놔서 끄는 데도 무게가 엄청나 잘 밀리지 않았다.
레기온은 뒤따라온 세피아를 바라봤다.
“이거 네 거야.”
-크르르륵(내 거)?
“들어 봐.”
레기온은 도르래 위에 있던 천을 치웠다. 그러자 강철로 만들어진 메이스(철퇴)가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보통 메이스가 아니다.
세피아가 사용할 메이스다.
보통 인간의 것보다 다섯 배는 무겁고 세 배는 큰, 엄청난 사이즈였다. 보통 사람들은 아예 들지도 못한다.
세피아는 허리를 숙여서 메이스를 들었다. 묵직함이 대단하다.
-크르르륵(이거 멋진데).
세피아의 입에서 만족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곧 다른 선물도 줄게.”
-크르르륵(다른 선물도 있어)?
“그럼. 강철 갑옷을 만들어 줄 거야. 그럼 넌 최강의 오거가 될걸.”
레기온은 세피아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