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291)
마법은 괜히 배워서-292화(292/502)
# 292
나를 미치게 하는 것들 3
레기온과 전속하인들은 거대한 얼음기둥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어마어마한 냉기가 반경 수백 미터를 뒤엎고 있었다. 영지가 가장 추울 때나 느껴 볼 법한 냉기였다.
“괜찮으십니까?”
베이컨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그와 부하들은 일단 옷이라도 입고 있다. 가벼운 경장갑도 걸쳤다.
하지만-
레기온은 팬티만 입고 앞장서서 달려왔다.
주인의 뒷모습을 본 베이컨은 벅찬 감동을 느꼈다.
우리 주인님은 항상 솔선수범하시는구나. 갑옷을 입을 시간조차 아까워 속옷 바람으로 나와 우리보다 앞에 뛰어가신다.
아아! 본받아야 한다.
우리 모두 주인님의 투철한 희생정신을 본받아야 해!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긴 한다. 이 추위에 속옷만 입고 있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영지 전체에 막대한 손해다.
“뭐가?”
레기온이 물었다.
“춥지 않으신가 해서요.”
레기온은 씁쓸하게 웃었다. 체질이 바뀌어서 이 정도 온도는 시원해, 라고 말하기엔 너무 비참했다. 반대로 보통의 날씨엔 팬티만 입고 있어야 하지만…… 이라곤 더더욱 말을 못하겠다.
현 상황이라면, 다시 뱀파이어 왕국에 가도 반팔 하나만 입고 다닐 수 있겠다 싶다.
어쨌건 뱀파이어 왕국에서 계속 살 건 아니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본래의 몸으로 돌아가야겠다.
“괜찮아.”
“다행이네요. 근데 도대체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본 드래곤이 사고 쳤겠지 뭐. 일단 대기해. 생존자는 구해 주고.”
“알겠습니다.”
베이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부하들을 시켜 주위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사실 명령을 받은 부하들이 멀리 갈 것도 없었다. 그들의 앞에 놓인 엄청난 얼음덩이 안쪽으로, 어슴푸레 보이던 그림자는 확인을 할 것도 없이 사람의 것이었다.
“도대체 어떤 새끼들인지 확인 좀 해 볼까.”
* * *
셔틀은 모든 서류를 차곡차곡 정리했다.
서류를 책상 모서리에 맞추고 먼지를 털어 냈다. 그리고는 다리보다 긴 팔을 쭉 뻗어서 기지개를 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었더니 허리가 욱신거린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갔다.
은은한 달빛이 비치는 새벽.
바지런한 사람들은 벌써 하루를 시작하는 모양이다. 굴뚝에서 하나둘 아침밥을 준비하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함.”
거의 나흘 밤을 샜다.
워낙 밀려드는 일이 많아서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너무 잠을 자지 못했더니 이젠 두통에 만성피로도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 사장님께서는 참 친절하다.
잠을 자고 있던 나에게 다가와 이불을 덮어 주셨다. 이불을 덮으면서 속삭이듯 말했다.
-어이쿠, 우리 셔틀이 많이 피곤했구먼. 건강관리를 해야지. 이렇게 일만 해서 되겠어? 내가 너무 무능한 사장이라서 미안하네. 하지만 어쩌겠나? 자네처럼 유능한 사람이 없는 것을. 본 드래곤도 잘 만들고, 독약도 잘 만들고, 날 죽이려고 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애교지 뭐.
-오늘도 또 쪽잠이야? 으이그, 좀 쉬라니까! 정말 자넨 뛰어난 인재야. 월급을 몇 배 더 주는 놈들을 봐도 자네만큼 유능한 인재는 보지 못했다니까. 아참, 아직 수습인가? 음음, 벌써 3개월이 다 되어 가는군. 이참에 정규직으로 바꿔 주지. 연봉도 너무 적은 것 같아. 능력에 맞게! 맞아. 능력에 맞는 연봉을 받아야지. 안 그런가?
-셔틀은 우리 영지의 영웅이야. 셔틀이 있기에 내가 마음 편하게 영지민들 앞에 나설 수 있는 거야. 고마워. 셔틀. 다 네 덕분이야. 편히 쉬게.
벌써 이게 몇 번째인가?
이렇게 애정 어린 사장이 어디 있단 말인가? 고작 3골드의 박봉이지만, 어차피 돈을 쓸 시간도 없다.
그래도 돈은 모으지 못했다.
빌어먹을 그 성도에서 낸 과태료 때문이다.
이제 겨우 6골드를 월급으로 받았는데, 그놈에게 과태료로 낸 돈이 20골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놈 잘못이지 우리 사장 잘못은 아니지 않은가?
얕은 잠에 빠졌던 셔틀.
매번 쪽잠을 빠지려면 사장님이 문을 열고 들어와 저런 말들을 하고 갔다.
우리 사장님은 정말 인간적인 것 같아.
셔틀은 진정 감동을 했다.
이제껏 사장님은 자신을 길거리에 나뒹구는 돌덩이 정도로만 취급하는 줄 알았다. 아니면 수십 마리의 해골이나 불러내서 무료로 일을 시키는 반장 정도?
아니었구나.
사장님이 나를 그토록 끔찍하게 생각하는 줄 몰랐다. 이래서 사람은 겪어 봐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알아봐 주는 주군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고 했던가.
그토록 사장님이 싫었는데.
암살할 방법을 남몰래 찾고 있었는데.
그런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사장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셔틀은 피로가 날아가는 것을 느끼며 구석에 있는 서류를 살폈다.
“사장님께서는 그자들을 모두 살려 주실 생각인가?”
본래 생존자는 250명 정도.
그들은 모두 넋이 나간 상태였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갑자기 본 드래곤의 공격을 받아 순식간에 강력하던 부대가 전멸하게 될 것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남은 놈들은 감히 덤빌 엄두도 못 내고 항복했고, 그 숫자가 거의 250명에 이른다.
문제는 얼음기둥이 되어 버린 녀석들.
“죽었을까?”
그때 상황이 떠올랐다.
사장님은 얼음기둥을 두드리며 물었다.
“절대 0도라서 아마 아직은 살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면 곧 죽겠죠.”
“그렇겠지? 우리 애들 냉동인간 만들 때와는 다르니까.”
사장님께서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만드라고라 남은 거 있지? 그거 가져와라. 그래도 같은 왕국 놈들인데, 이렇게 죽으면 너무 비참하잖아. 살려 줘야겠어.”
셔틀은 이때 이미 조금 감동했다.
나쁜 놈이라고, 마왕의 현신이라고, 악 그 자체라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자신을 공격하려던 놈들을 살리기 위해 그 비싼 만드라고라까지 사용하다니!
덕분에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 가던 300명가량의 기사와 병사들도 목숨을 구할 수가 있었다.
그 모습은 가히 성자!
셔틀은 사장님에 대한 악의적인 눈꺼풀이 완전히 걷혔다. 이제는 사장님을 위해서 살아가리. 슬쩍 다른 사람들도 보니 자신과 같은 표정들이었다.
똑똑-
누군가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셔틀은 대답했다.
문이 열리자 셔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외의 인물이 찾아왔다.
“어?”
절대마수 리치 마몬.
7서클 마스터의 완전무결한 마수!
대체 이 무시무시한 괴물이 새벽부터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을까.
“어는 무슨. 잘 있었나?”
리치 마몬은 약간 허공에 뜬 채로 밀려오듯이 스르륵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보통 사람들이 보자면 그런 움직임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버린 것이다.
하지만 셔틀은 네크로맨서.
리치가 내뿜는 사악한 마력에는 이상하게 친근감을 느낀다.
셔틀이 무시무시한 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살고 있는 이곳 영지에서 그나마 가장 친근감을 느끼는 존재가 리치 마몬이었다.
스르르륵, 들어온 리치 마몬이 소파 상석에 앉았다.
“차 드릴까요?”
“차는 나중에 마시지. 일단 앉아.”
“네.”
셔틀은 조심스럽게 마몬의 대각선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리치 마몬이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다른 자들에 비해서라는 말이다. 아직 정면으로 앉긴 조금-아니 상당히-불편하다.
세피아, 누벼누벼는 아예 말도 붙이기 어려웠다.
무지막지한 드레이져에게는 접근조차 하기 싫다. 전속하인들도 마찬가지. 사실 영지에 도착해서 가장 놀란 것이 전속하인들이다.
무슨 하인들이 저렇게 강해?
이건 사기 아닌가?
마법과 오러를 동시에 사용하는 부하가 수십 명이나 되다니.
나중에는 500명에 달하는 정규직 병사들 역시 마법이나 마나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하긴 이 영지에 사는 누가 평범하려고.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마음이 편해졌다고 리치 마몬을 향해서 “헤이, 베이비, 왓썹!” 이렇게 인사를 할 순 없잖은가?
셔틀은 마른침을 삼키고 양쪽 무릎에 손을 얹은 채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잠시 뜸을 들이던 리치 마몬이 입을 열었다.
“자네 던전 탐험 좀 할 줄 아나?”
“던전 탐험이요?”
“그래.”
“뭐, 아무래도…… 그런 쪽에 익숙하긴 하죠.”
말을 해 놓고서 셔틀은 아차 싶었다.
왠지 던전에 대해서 ‘던’ 자도 몰라요, 라고 말을 해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오오! 다행이군. 이번에 고서를 찾다가 고대 마법사들의 던전이 있는 곳에 위치를 발견했거든.”
“어떤?”
“흑염의 전생자 몬먹어도고라는 마법사에 대해서 알아?”
몬먹어도고? 무슨 이름이 그러냐.
“처음 들어 봅니다만.”
“고대 마법사니까 잘 모를 수도 있어. 나랑 같이 그가 잠든 던전에 좀 가 봤으면 하는데.”
가기 싫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하다. 흑염의 전생자 몬먹어도고라니.
“제가 할 일이 좀 많아서…….”
“내가 허락을 받았어.”
“누구한테?”
“주인님한테.”
“벌써요?”
“응, 주인님한테 8서클에 도전한다고 했거든. 잘 하고 오래.”
“마몬 님께서 8서클에 도전하신다고요?”
“그래.”
우와! 놀랍다.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8서클 마법에 도전하다니. 좋아, 그렇다고 치자.
그럼 너만 도전을 하라고.
왜 나까지 끌고 가는데.
“싫어?”
“네?”
“표정 보니까 싫다는 느낌이 들어서. 되게 싫은가 보다.”
“제, 제가 언제요?”
“얼굴에 써 있다니까. ‘좋아. 그렇다고 치자. 그럼 너만 도전을 하라고. 왜 나까지 끌고 가는데.’라고 써 있는데.”
셔틀은 창백하게 변했다. 뭐, 이런 괴물이…….
“뭐, 이런 괴물이라고?”
“아, 아뇨. 아닙니다. 갑니다. 가야죠. 제가 모시고 싶던 분이 바로 마몬 님이었습니다.”
셔틀은 당황하면서 외쳤다. 내가 미쳤지. 이런 괴물한테 친근감을 느끼다니.
“나한테 친근감을 느꼈어?”
미치겠다.
“미치겠다고?”
“죄송합니다. 무조건 마몬 님을 따르겠습니다.”
생각을 하지 말자. 그냥 죽은 듯이 살자. 까라면 까고. 하지 말라면 말고. 이러다가 제명에 못 살겠다.
그렇게 리치 마몬과 셔틀은, 푸른 언덕에 배낭을 메고 황금빛 태양 아래에서 지옥마수들이 축제를 여는 그곳으로 떠났다.
* * *
“허억허억.”
포르세 후작은 비틀거리면서 걸었다.
이미 방향 감각은 완전히 상실했다. 자신이 어디를 향해서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것은 착각이었다.
뒤셀르프 산맥은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넓었다.
봉우리 중에서 하나에 오르자 산의 바다는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후로 방향 감각을 잃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몬스터의 습격이 없다는 것이다. 몬스터의 소굴이라고 알려진 뒤셀르프 산맥이건만. 대신 다른 것들이 포르세 후작의 목숨을 위협했다.
독충, 뱀, 독초, 독수와 같은 것들이었다.
최소한의 마력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체력을 갉아먹다가는 그것도 언제 바닥이 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 죽는가. 나! 포르세가! 이곳까지 올라오기 위해서 개가 되어 살았는데!”
포르세 후작은 분노했다.
나이 마흔셋.
아직은 창창한 나이다. 그는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 무엇이든 했다. 공왕의 그림자가 되어서 손에 피를 묻히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곳까지 왔는데!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있었다.
아니 무너졌다. 7성급 기사가 되어서 왕국 7대 강자가 되면 무엇을 하는가.
이렇게 아무도 없는 곳에서 쓸쓸히 죽어 갈 것을…….
이토록 허무하게 갈 줄 알았더라면…….
문득 첫사랑 그녀가 생각난다.
출세를 위해서 떠나보낸 그녀, 지금쯤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서 잘 살고 있겠지. 간혹 떠올린 적은 있지만 그때뿐이었다.
지금처럼 가슴이 저리도록 생각이 난 적은 없었다.
“쿨럭쿨럭.”
포르세 후작의 양쪽 무릎이 풀렸다. 그의 전신이 휘청거렸다. 잘린 왼팔 때문인지 체력의 소모가 몇 배는 심했다.
“어?”
흐릿한 눈빛에서 그녀가 보인다.
젊었을 적에 그녀였다. 아니 훨씬 아름다운 것 같았다.
“당신…… 오랜만이야.”
포르세 후작은 빙그레 웃으면서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그의 앞에는 아마존 오크 여전사의 최강자로 꼽히는 조나스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