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297)
마법은 괜히 배워서-298화(298/502)
# 298
격돌! 세피아 대 포르세 2
포르세 후작은 꿈을 꾸었다.
아주 실감이 나는 꿈이었다.
43년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오로지 하늘만 보고 달렸다.
젊은 어느 날, 지나가던 수도사가 이런 말을 했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면 쉬이 지치고, 또 쉬이 지치면 금방 무너지는 법이오. 뒤를 돌아보며 천천히 나아가시오. 그래야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소.”
개소리다. 헛소리다.
그딴 것은 니들끼리 해라.
나는 저 별이 손에 닿는 곳까지 간 다음 뒤를 돌아볼 테니까.
그러했는데…….
그의 말대로였다.
후작의 위치까지 왔건만.
별이 손에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왔건만.
한 번 넘어지고 나니 일어날 방법이 없었다. 아니 알지 못했다.
모래성 같은 인생이 작은 파도에 의해서 한 번에 쓸려 내려간 기분이었다.
이젠 갈 때까지 갔다.
오거와 목숨을 걸고 결투까지 벌였다.
이런 이상한 마을까지 추락해, 오거와 주먹질을 벌이게 될 줄이야. 정말이지 날개 없는 새가 추락하듯 자신 또한 끝없이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신체 일부를 잃고, 이런 지옥 밑바닥에서 벌레처럼 아등바등거리고 있다는 것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뭐든 해 봐라. 나는 절대 죽지 않는다.
아마도 신은 나를 시험하려는 듯했다.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갔다. 이젠 내 마음까지 꺾으려고 한다.
무엇을 위해서?
나 같은 인간이 무너지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궁금이라도 한 건가?
그래, 좋다. 보여 주지.
이제 후작이란 이름을 버리겠다.
나는 포르세다. 인간 포르세다. 이미 부하들도 다 사라졌고, 이젠 영지도 버리겠다.
성도 버리겠다.
어차피 나는 혼자다. 어렸을 적,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재산을 친척들에게 모두 빼앗긴 후부터 계속 혼자였다.
그래, 나는 포르세다. 성은 없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 최선을 다해 살아남아 주겠다.
그 첫 관문이 바로 세피아란 이름의 오거.
정말이지 엄청난 실력을 지닌 오거였다.
비록 한 팔이 사라졌다 하더라도 7성 유저의 실력을 가진 자신이다.
왕국 7대 강자!
소드 마스터!
감히 팔 한 짝 없다고 누가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겠는가? 나야말로 최강의 실력자다!
막말로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만 주워서 사용해도 치명적인 무기로 만들 수 있다.
나뭇가지를 들면 그것이 바로 다시없을 명검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세피아라는 이름을 가진 오거에게는 조금도 통하지 않았다.
그래, 오거나 지상 최강의 몬스터임은 인정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는 보통의 인간에 대해서지,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고작 오거 한 마리.
실력이 뛰어난 사냥꾼들이 사자나 호랑이를 어렵지 않게 사냥하듯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포르세의 오러는 세피아에게 통하지 않았다. 세피아는 웃으면서 그의 오러를 박살 냈다. 심지어 오러를 뚫고 주먹을 날렸다.
하도 기가 막혀서 날아오는 주먹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말았다. 포르세의 강인한 육신이 데굴데굴 굴러 구석에 처박혔다.
주변 사람들이 그럼 그렇지, 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에구, 덤빌 존재가 없어서 세피아 님께 덤비나.”
“그러게 말일세. 불쌍해서 눈물이 앞을 가리네. 송장을 치우지는 않겠지만…… 미친 놈 하나가 더 늘겠군.”
“제정신으로 돌아오려면 한참 걸릴 텐데.”
“어쩌겠나. 그 지옥 사탕 빨림에 한 번 당하면 누구도 버틸 수 없지 않은가.”
지옥 사탕 빨림인지 뭔지.
포르세는 오랜만에 뚜껑이 열렸다.
그는 계산하는 타입! 싸움도 한 수 한 수 모두 계산하며 해 왔다. 자신이 얻을 것과 잃을 것. 상대가 가진 것이 많으면 슬쩍 봐주기도 하고, 상대가 가진 것이 없으면 아주 박살을 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젠 알았다. 그 짓도 이제 끝이다. 진절머리가 나는 그 예의 갖춘 모습, 이젠 버려 주마.
나는 그냥 포르세니까!
벌떡 일어난 포르세가 더욱 강한 기세로 달려들었다.
“하아압!”
-쿠아아아앙!
왕국 7대 강자 중에 한 명인 포르세와 압도적인 피지컬로 기사들은 몇 수 아래로 보는 괴물 오거 세피아가 세기의 대결을 벌이기 시작했다.
둘의 대결은 거의 새벽이 다 돼서 끝났다.
승자는 포르세.
단전이 텅 비어 버렸다. 아마도 30분만 더 싸움이 지속되었어도 그는 더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세피아가 싸움에서 패한 이유는 자만심 때문이었다.
외팔이가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자만심!
포르세는 이겼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자신이 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저 세피아라는 괴물과 무기를 들고 싸웠다면, 진 것은 자신이었을 것이다.
“허어억.”
포르세는 꿈에서 깨어났다. 악몽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온몸이 흠뻑 젖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해가 떴는지 천막의 틈 사이로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갈증이 심해서 물을 찾았다. 물을 찾다가…….
그는 옆에 누워 있는 조나스를 보았다.
쭉 빠진 그녀의 등은 나신이었다.
따, 딸꾹.
포르세는 너무 놀라서 딸국질이 튀어나왔다. 숨이 멎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그의 사고가 마비되었다. 새벽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도통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냥 망망대해를 지나오기라도 한 듯 깜깜하다. 왜 조나스가 나신으로 옆에 누워 있는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혹시 하는 생각에 이불을 살짝 걷어 봤다.
에구머니나!
자신도 나체였다.
뭐야. 이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아저씨, 일어났어요?”
조나스의 달콤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손을 뻗어서 포르세의 팔을 찾았다.
“기싱꿈꼬또요? 우쭈쭈-!”
조나스가 상체를 일으켰다.
으으. 다 보인다.
정말 군살 하나 없는 완벽한 몸매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아주 조금 기억이 돌아온다.
세피아와 사투를 마친 그는 오크들이 만든 술이 담긴 술병을 들고 꿀꺽꿀꺽 마셨다. 너무 독해서 목이 막혀 ‘컥컥’ 거렸던 기억도 난다.
평상시라면 결코 물 마시듯이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맨 정신으로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독한 술을 몽땅 마셨다.
그렇게 한 병.
또 한 병.
또 한 병…….
그리고 필름이 끊겼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걸까?
“당신이 왜 여기에…….”
말을 내뱉고도 아차 싶었다. 느낌상 하지 말았어야 할 말 같았다.
역시나.
조나스의 고운 미간이 움찔거렸다.
“아저씨, 기억 안 나요?”
“…….”
“뭐야. 아저씨. 지금 혹시 오리발 내미는 거예요?”
“아, 아니. 그게.”
“엄마가 남자는 결코 믿지 말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죠. 어제는 저랑 결혼하자고 그렇게 졸라 대더니.”
결혼?
내가?
“모든 것을 해 주겠다고 했잖아요. 여기에 정착해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돈을 벌겠다고.”
포르세는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
오크 마을에 정착을 해서 오크 여성과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고? 내가? 정말로?
“자기 전에 했던 말은 다 거짓이었던 거예요? 그냥 어린 저를 어떻게 한 번 해 보고 싶었던 거예요?”
“아, 아니. 이게…… 새, 생각이 안 나서.”
“아, 그러니까 술을 많이 마셔서 생각이 안 난다? 흑흑. 어떡하면 좋니. 아가들아.”
조나스는 아랫배를 잡고 눈물을 흘렸다.
미친. 무슨 아가?
하루 만에 생기는 아기가 어디 있어?
포르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조나스는 서럽게 울면서 외쳤다.
“나는 알아요. 알 수 있어요. 우리 오크들은 임신이 되면 바로 느낄 수가 있죠. 인간들과는 조금 달라요.”
미치겠다.
뭔지 모르지만 갑자기 아기 아빠가 됐다고?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나, 나는.”
“됐어요. 당신을 믿었던 제가 바보예요. 나가요. 이 일은 결단코 그냥 넘어가지 않겠어요.”
포르세는 머리가 어질어질 거렸다.
사과의 말이든 뭐든 지금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일단 생각부터 정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엄청난 후회를 할 것만 같았다.
포르세는 바지를 대충 입고서 막사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는 어떤 생각도 할 시간을 가질 수 없었다.
-크르르릉(형아, 저 새끼야. 저 새끼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어).
눈앞에 괴물 오거와 암흑제왕인 레기온 백작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 * *
조나스는 빙긋 웃으면서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포르세의 거의 정신이 반쯤 나갔다. 그가 비틀거리면서 나가는 것을 보자 조금 불쌍한 생각도 들었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어제 아니 그러니까 몇 시간 전.
세피아와의 대련에서 저 외팔이 남자는 승리를 거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물론 세피아가 완전 무장을 하지 않았다.
세피아가 마법무구로 완전무장을 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저 남자도 완벽하게 실력발휘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 역시 검을 들지 않았다. 기사가 검을 들지 않는 다는 것은 전력의 반 이하를 내려놓고 싸운다는 말과도 같다.
더군다나 저 남자는 왼팔까지 잃지 않았던가.
본래 실력은 훨씬 더 높은 경지였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외팔이 사내는 세피아를 꺾었다.
둘 모두 풀 무장을 한다면 외팔이 사내가 조금 더 유리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분위기는 착 가라앉았다.
모두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세피아가 졌어. 레 사장, 마몬, 드레이져 말고도 저렇게 강한 인물이 이곳에 있을 줄이야.
하늘의 제왕 누벼누벼조차 혀를 내둘렀다.
포르세는 날카로운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머쓱해진 오크들과 고블린, 인간, 와이번들은 헛기침을 하면서 ‘오늘 잘 놀았어. 다음에 보지.’라는 말을 하고는 제 갈 길을 갔다.
어차피 축제가 끝날 시간이다.
오늘 뒤처리를 맡은 청소부들을 빼고는 그 많던 아인과 인간들이 싹 사라졌다.
포르세는 비틀거리면서 탁자 위에 놓인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
술을 좋아하는 오크들도 저렇게 급하게 마시지는 않는다.
오크들의 술이 얼마나 독한데.
포르세는 단 번에 다섯 병이나 되는 술을 들이부었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아저씨, 아저씨. 정신 차려요!”
조나스가 쓰러진 포르세에게 달려갔다.
그를 흔들었지만 완전히 곯아떨어졌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사랑하는 딸아.”
아마데우스가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한 동생을 안고 조나스에게 다가왔다.
“응?”
“때가 온 것 같다.”
“무슨 때?”
“비록 외팔이지만…… 엄청난 강자더구나.”
조나스는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승부욕이 강한 그녀도 인정한다. 포르세는 자신보다 한 수 위다.
“이런 남자를 어디서 구하겠니.”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서 어쩌라고?
“다 딸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내 마음을 이해해 주길 바란다. 아니면 시집 안 간 다른 언니들과 연결할까? 혼밥 지겹지도 않냐.”
“그만.”
“알았어. 그만할 테니 이번만큼은 내 뜻을 따라 주길 바란다.”
아마데우스는 오크족 여전사들에게 눈짓을 했다.
여전사들은 대번에 그녀가 무슨 뜻으로 저런 눈빛을 보냈는지 이해 했다.
사실 조나스도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다.
오크족 여전사들은 의식을 잃은 포르세를 조나스의 막사로 옮겼다.
옷을 다 벗겼다. 속옷까지 몽땅.
그리고 조나스를 막사 안으로 밀어 넣었다.
“무슨 뜻인지 알지?”
조나스와 친하게 지내는 샤론 언니가 한쪽 눈을 찡긋거렸다.
“잘 모르겠으면 내가 들어가고. 저 남자 내 스타일이거든.”
그렇게 막사의 문은 닫혔다.
이걸로-
한때 왕국 최강의 기사 중에 한 명인(다행히도 지금은 돌싱인) 포르세의 재혼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