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36)
마법은 괜히 배워서-36화(36/502)
# 36
본의 아니게 수련 1
레기온은 패링의 저택에 위치한 지하 연구실에 와 있었다.
마법사는 어지간해서는 자신의 연구실을 오픈하지 않는다. 설사 가족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연구실을 공유하는 사람은 마법을 가르쳐 준 스승이거나 함께 마법을 연구하는 소수의 동료뿐이다.
무엇보다 패링은 치매에 걸리더라도 아마 레기온에게 만큼은 연구실을 개방하지 않을 것이다. 즉, 레기온은 패링이 집을 비운 사이에 몰래 들어왔다.
“이 자식이 감히 그딴 식으로 장난을 쳐?”
아마도 놈은 이곳에 가장 아끼는 보물을 모아 놨겠지.
한 번 두고 보자고. 여기서 네 보물이 다 사라진 것을 안 다음에도 그렇게 뻔뻔하게 웃고 다닐 수 있는지 말이야, 큭큭큭.
레기온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다.
이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한 기분이었다.
레기온이 패링의 지하 연구실에 몰래 잠입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 쓰벌놈이 눈뜬 채 내 코를 베어 갔다.
놈이 비웃던 그 표정이 아직도 지워지지 않는다. 만약 지금과 같은 ‘굉장히 탁월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지 않았다면 아직도 열이 받아서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니고 있을 터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오늘 밤 이후로 벽을 치면서 데굴데굴 굴려야 할 사람은 그놈이다.
이곳에 있는 값나가는 물건을 싹 쓸어갈 생각이니까.
그래도 전 재산은 아니니 내 손핸가? 제길!
“그래서 괜찮은 건 좀 있어?”
레기온이 물었다.
-스캔 중.
마크는 구석구석을 살폈다.
-좌측에 보석함이 있음. 모두 챙기셈.
보석함?
-예압. 꽤 희귀한 보석들도 많음.
오호, 그렇단 말이지.
레기온은 빙긋 웃으면서 보석함으로 다가갔다. 보석함을 열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 맛있겠다.
보석을 보자마자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쳤나 봐.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레기온은 깜짝 놀라서 자신의 머리를 후려쳤다. 젠장, 괜히 쳤다. 손가락 부러질 뻔했다. 도대체 이놈의 머리는 뭘로 변한 것일까.
레기온은 보석을 모두 챙겼다.
양은 많지 않지만 꽤 희귀한 보석들이다. 무슨 맛이 날까 살짝 궁금하기도 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흔들었다. 무슨 맛이라니. 아니 대도시에 가져다 팔면 얼마나 받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어쨌든 고가의 보석을 챙긴 것만으로도 놈의 배는 꽤 아플 것이다.
-오오옷!
왜? 왜?
마크의 감탄사에 레기온이 다급히 물었다.
-정면에 있는 그림을 떼어 내 보셈.
이거?
레기온은 패링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가리켰다. 하여간 마법사란 놈들은 하나같이 제정신이 아니다. 왜 자신의 누드를 그려서 연구실에 걸어 놨는지 모르겠다.
“금고네?”
-맞삼, 금고임.
“열 수 있어?”
-내 우수한 인공지능으로 금고를 여는 데 3초 걸림.
일단 이놈 하고 있으면 굶어 죽을 일은 없겠다.
마법이 걸려 있는 금고는 아니다. 숫자 8개를 맞추면 되는 구조. 사실 마법을 걸면 보통 사람은 해제하기 어렵지만, 도리어 상급의 마법사들은 편하게 해제 가능하다. 그래서 아예 복잡한 수식이 들어가는 기계식 금고를 사용한 건데, 안타깝게도 기계식 금고는 마크에게 쉽게 뚫린다.
삐익-
금고의 문은 정말로 3초 만에 열렸다.
“이게 뭐야?”
금고 안에는 지도 한 장만 덜렁 놓여 있었다.
-흐응-! 지도 아님?
“지도인 건 나도 알거든?”
-그런데 뭘 물음.
“중요한 게 있을 줄 알았더니, 고작 지도 한 장 들어 있으니까 그렇지!”
-호오! 그러고 보니 이상함. 이거 꽤 열기 힘든 금고였는데 말임. 내용 좀 보여 주삼.
마크의 말에 레기온은 중앙 탁자에 지도를 폈다.
-오호!
“왜 그래?”
-이거 제법 괜찮은 내용인 듯.
“뭐가?”
-어쩌면 대박 가능성 있음.
“그러니까 뭐가?”
-내 데이터에도 없는 것임.
“그러니까 뭐냐고!”
-던전 위치임. 그중 몇 개는 히든 던전으로 보임.
“히든 던전? 그게 뭐야?”
-쉽게 말해서 보통 던전보다 고대의 던전이나 훌륭한 마도사, 혹은 대단한 마계인들이 만든 곳으로 엄청난 가치의 보물들이 있을 확률이 높은 곳임.
“오오오! 그래?”
레기온의 표정이 눈에 띠게 밝아졌다.
엄청난 가치의 보물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진다. 돈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지금까지 무시를 당한 것도 금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희귀한 보석이 생기면 그만큼 힘이 생기는 것이나 마찬가지. 이젠 보석의 중요도가 훨씬 커졌다.
-더 놀라운 것을 알려 주겠음. 사실 히든 던전의 경우 시간이 오래돼서 트랩들이 망가졌을 확률이 아주 높음. 즉, 위험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임.
“정말?”
-정말임. 너님 정말 우주 최강의 운임!
“오오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레기온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잖아도 마크에게 뒤셀르프 산맥에 몇 개의 던전이 있다는 정보는 들었었다. 그래서 당장 달려가려고 했는데…….
-뒈지고 싶으면 가셈.
개놈이 딱 한 마디 했다.
그래도 가겠다고 했더니, 한 마디 덧붙였다.
-그나마 절반은 트랩 던전이고, 나머지 절반 중에 절반도 쓸 만한 건 없을 가능성이 높음. 어느 게 쓸 만한지는 나도 모름. 특히 너님의 능력으로는 첫 번째 트랩도 못 깰 거임.
하지만 히든 던전이라면 얘기는 달라지지 않는가? 쉽다며? 찾는 게 어려운 거지, 위험하지 않다며.
레기온은 히든 던전에 위치가 적힌 지도를 품에 넣었다.
하지만-
-히든 던전이 꼭 안전하리란 법은 없음.
마크가 이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레기온은 알지 못했다.
* * *
레기온은 세피아와 함께 뒤셀르프 산맥을 일주일째 뒤지고 있었다. 영지까지 왕복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이유로 아예 야영에 필요한 물품을 준비해서 나왔다.
실컷이 기겁을 하면서 그를 말렸다.
“영주님, 안 됩니다.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산맥에서 기약 없이 머무신다니요. 수련도 좋지만, 물론 세피아 님이 옆에 있다지만 그래도 몸 상하십니다.”
레기온은 피식 웃었다.
“됐어.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작은아버지가 가만 안 둘걸?”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꼭 열흘 안에는 돌아와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레기온은 알았노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아직 못 찾았어?
-좀 기다려 보셈. 계속 스캔하고 있음.
마크가 순차적으로 360도를 회전하며 스캔했다. 그가 할 수 있는 공간적 한계는 약 20미터. 대략적으로 지도에 표시된 범위는 작게는 반경 3키로, 크게는 10키로. 쉽게 생각했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왜 패링이 던전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알 것도 같았다.
-동쪽으로 40미터 가셈.
-남쪽으로 40미터 가셈.
-남쪽으로 40미터 가셈.
-남쪽으로 40미러 가셈.
“야, 거긴 절벽이거든.”
-그럼 동쪽으로 40미터 가셈.
어느새 또 밤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부엉부엉-
끼리릭, 끼리릭-
크르릉, 크르르릉-
밤이 되면 온갖 소리가 어둠을 뚫고 들려왔다. 낮에는 들리지 않던 소리들. 제법 섬뜩하다.
레기온은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아서 불을 피웠다.
그가 마른 나뭇가지들을 모으자 세피아가 돕고 싶었던 모양이다.
근처에 있던 죽은 나무들을 뿌리째 뽑아 왔다.
헐! 이걸 어쩌라고? 이놈은 정말 너무 과하다. 이 나무에 불 붙이면 날 다 세겠다.
그래도 제법 쓸 만한 것이 금방 달려가 노루 한 마리를 잡아 왔다. 둘은 노루를 통째로 구웠다. 레기온이 다리의 일부를 먹고, 나머지는 세피아가 한입에 삼켰다.
-크르릉, 크릉(형아, 부족하다. 배고프다)!
쓰벌, 이놈은 먹어도 너무 많이 먹는다. 가성비라는 게 이럴 때 쓰는 건가?
“내일부터는 두 마리 잡아 와. 오늘은 참고.”
녀석이 삐진 듯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훌쩍거렸다. 역시 어린 녀석이라 꽤 귀엽다.
아차, 몇 년 만 더 있으면 사춘기인데. 오거의 사춘기는 어떤 거지? 이거 감당이 되나? 문득 두려워진다.
-님하!
담요를 둘둘 말고 나무에 기대어 잠을 청하는데 마크가 그를 불렀다.
왜?
-어서 불 끄삼. 누군가 접근하고 있음.
-크르르르릉(형아, 일어나라. 뭔가가 이곳을 향해서 온다).
세피아도 느낀 모양이다.
레기온은 벌떡 몸을 일으켜 모닥불을 껐다.
둘이 아니었다면 누군가 나타나 목에 칼을 들이대도 전혀 모른 채 저세상으로 갔을 것이다.
담요를 접어서 배낭에 넣고는 자리를 피했다.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서 누워서 상황을 지켜봤다. 바로 옆에 세피아도 몸을 숨겼는데 어두운 숲이니 이곳까지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점점 커진다. 이제야 알겠다. 한 명이 아니다.
“세 명인가?”
-다섯 명임.
마크가 가르쳐 줬다. 그즈음 상대가 누군지 눈에 들어왔다. 이 새끼 제법 정세 파악이 빠르다.
한 명은 패링.
곧 나타날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나 빨리 올 줄이야. 하긴 연구실에 있던 값나가는 물건을 모두 털렸으니 눈이 뒤집히지 않으면 정상이 아니지. 더군다나 히든 던전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는 지도까지 사라졌으니 오죽할까.
다른 네 명도 안면이 있다.
한 명은 충성을 맹세한 깁스, 세 명은 레기온에게 된통 당한 적이 있는 이름뿐인 어쌔신들.
“모닥불에 온기가 있다. 그 자식 조금 전까지 여기에 있었어. 분명히 근처에 있다.”
패링은 어금니를 부득부득 갈면서 말했다.
“정말로 영주님이 맞을까요?”
깁스가 물었다.
“맞다니까. 도대체 몇 번이나 물어보지.”
패링의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증거도 없잖습니까. 솔직히 믿기지가 않습니다. 영주님이 뭐가 부족해서 패링님의 물건을 훔칩니까? 사실 그냥 그날 목을 쳤어도…….”
영주는 리치와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뒀다.
리치가 어떻게 됐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리치의 던전을 영주가 차지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영주는 던전을 풀어서 영주민들에게 꽤 많이 나눠 주었다.
지금 영주는 엄청난 부자다.
그런 영주가 패링의 연구실을 왜 턴단 말인가? 더군다나 그날 아침, 그냥 약속대로 패링을 죽였어도 아무 탈도 없을 상황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패링이 오버하는 거라고 깁스는 생각하고 있었다.
“증거 보여 줘?”
“증거요?”
깁스가 되물었다.
“그래.”
“보여 줄 수 있으면 보여 주십시오. 그럼 믿겠습니다.”
멀리서 듣고 있던 레기온도 귀를 쫑긋거렸다. 지하 연구실을 엉망으로 만들긴 했지만 증거는 남기지 않았는데. 뭐지? 설사 심증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증은 없다고 생각하는 레기온이었다.
패링은 모닥불이 있던 곳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커다란 엉덩이 자국이 있었다.
“오거가 앉았던 자리야.”
“아…….”
깁스는 단번에 납득했다.
영지민 중에서 영주가 오거를 애완동물로 데리고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 깁스는 믿지 않았다.
오거를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이 세상 천치에 어디 있단 말인가. 깁스뿐만 아니라 누구도 믿지 않았다.
말이 되는가? 오거를 키운다고?
설마 했던 깁스는 오거를 데리고 다니는 영주를 직접 보고 얼마나 기겁을 했던가?
영주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게 겁먹지 마. 우리 애는 안 물어.”
니미, 안 물긴 뭘 안 물어.
그는 오거를 직접 본 후 자신도 모르게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목줄이라도 하고 다니든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레기온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 젠장, 내가 등신이지. 저런 것도 안 지우고.
-헐, 너님, 바보임? 저런 실수를 하다니. 도대체 뭐하는 거임?
네가 말 안 해도 잘 알거든. 망했다. 저 자식 근데 지금 날 죽이겠다는 거야, 뭐야?
-죽기 전에 던전이나 찾으셈. 던전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으삼?
졸라게 궁금해.
-그러니까 던전을 먼저 찾아서…….
찾아서? 뭐.
-너님이 좋은 아이템은 갖고 후진 아이템은 패링 주삼. 이것밖에 없었다고. 히든 던전의 지도는 빌렸다고 끝까지 발뺌 하시고.
오호, 그거 괜찮은데?
괜찮긴 개뿔. 그 말 하는 순간 패링이 마법을 졸라 난사하겠지. 역시 아이큐가 떨어지니 속이기가 너무 쉬워. 마크는 굳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얼른 뒤로 빠지셈. 여기 있다 패링한테 잡혀서 욕바가지로 먹지 말고.
고개를 끄덕인 레기온은 포복자세를 유지한 채 뒤로 물러났다.
-크르르릉(형아, 같이 가).
“쉿, 조용히 해. 걸리면 개 쪽이야.”
-크르르릉(알았다. 형아).
둘은 그렇게 그 장소에서 재빠르게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