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38)
마법은 괜히 배워서-38화(38/502)
# 38
본의 아니게 수련 3
레기온은 전장을 벗어났다.
벗어나는 일이야 누워서 스프에 찍은 빵 먹기다.
이곳 라그나로크 최대 전장인 스플리야 평원에서 벗어나는 데만 백 번쯤 죽어 봤으니까. 지금은 저곳에서 밥도 먹고 잠시 쉬었다가 똥도 한판 때리고도 무사히 벗어날 수가 있었다.
아참, 라그나로크가 뭐냐고?
신들의 전쟁이래. 지들끼리 신들이라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어. 원래 내가 살던 세상에서 수만 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데, 개연성이 부족해.
시간대가 잘 안 맞더라고.
어쨌건 남신족, 여신족, 거인족, 인간족, 휴먼족, 해신족, 오크족, 엘프족, 해왕족, 천신족 등등 모든 종족이 휘말린 전쟁이었대.
5,000만 명이 죽었다나 뭐라나.
어쨌건 그 때문에 모든 종족이 대부분의 힘을 소비하는데, 덕분에 전쟁이 끝나고 인간이 대륙의 패권을 쥘 수 있었다네.
인간이 좀 얍삽하잖아.
처음에는 되게 흥미로운 스토리였는데 지금은 귀찮아.
다 귀찮아. 사는 것도 귀찮아. 마법을 다시 익히는 것도 귀찮아. 레벨 업을 하는 것도 귀찮아. 스킬을 익히는 것도 귀찮아.
좋아. 결정했다.
이번 삶은 노숙자다.
평생 얻어먹으면서 살다가 죽어야겠다.
계속된 리셋으로 모든 능력치는 초기화 된다. 그렇다고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머릿속에 든 것은 그대로다.
그다지 지능이 좋지 않은데, 빌어먹게도 8서클 공식까지 몽땅 외워진다.
한 3천 번쯤 살다 보니, 외우기 싫어도 외워지더라.
뭐 리치 마몬이었나? 이름도 좀 가물가물하긴 한데, 그 녀석이 말했던 것처럼 외우고 푸는 게 아니라, 그냥 각인이 되는 것처럼 머릿속에 남아 버렸다.
아, 오래 살면 다 되는구나.
왜 드래곤들이 마법의 종주인지 알겠다.
그 도마뱀 새끼들은 1년에 마법 공식 하나만 외워도 1만 개의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잖아. 젠장. 어쩐지 세더라.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고차원 마법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육체와 정신을 그에 걸맞게 업그레이드시켜야 한다.
그게 꽤 귀찮은 작업이다.
아니, 되게 귀찮은 작업이다.
별의별 수련을 다 해 봤다. 장담하는데 나보다 많은 수련을 해 본 사람은 없다.
인류 역사를 통 틀어도 없을 것 같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현질로 레벨 업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능이 먹통이 됐다나 뭐래나. 그걸 모르고 보석으로 만든 검을 한 번 씹어 먹었다가 뒈진 적도 있었다. 젠장.
그래 봐야 뭐, 이번 생 뭐가 달라질까?
다 해 봤는데 아무 소용없다. 그러니까 이번 생은 노숙자로 편하게 살련다. 노숙자 마스터. 좋네.
전장을 벗어나서 산길을 택했다.
한참을 걷고 나니 더 이상 피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기서부터는 전쟁의 영향권이 아니다.
천천히 마을로 가자.
그리고 하루 종일 잠이나 자자. 밥이나 빌어먹다가 죽어야지. 이번 삶은 노숙자니까.
마음이 편안해진다.
“가진 돈 다 내놔!”
다섯 명의 산적이 나타났다. 레기온은 그냥 걸었다.
“이런 미친 새끼가!”
산적이 검을 휘둘렀다.
레기온은 슬쩍 좌측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을 놈의 품에 넣었다. 기억하기론 이놈이 두목이다. 품에 꽤 돈이 있었지. 품에서 돈 주머니를 꺼냈다.
레기온은 그걸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서 계속 걸어갔다.
산적 두목은 돈을 강탈당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한참이나 뒤를 쫓아오면서 검을 휘둘렀다.
레기온은 보지도 않고 피했다.
이쯤이면 상대를 잘못 찾았다 생각하고 도망갈 법도 하건만, 역시 멈추지 않는다.
나중에는 헉헉거리면서 욕만 한다.
더 나중에는 돈이 없어진 것을 알고서 쫓아와 제발 돈을 돌려달라고 애원했다.
“저희도 어쩔 수 없이 산적이 됐어요. 온 세상이 전쟁 통인데 먹고는 살아야죠. 저는 자식이 다섯이나 돼요. 저 친구들도 자식이 많고요. 그 돈이 없으면 저희는 다 굶어 죽습니다. 무사님, 제발 돈을 돌려주세요.”
레기온은 피식 웃었다.
-이놈들의 레퍼토리는 어째 한 번도 안 변하냐?
마크도 웃었다.
처음에는 저 자식들 말에 속아서 돈을 돌려줬다.
너무 고맙다면서 같이 가자는 말에 겁도 없이 마을까지 쫓아갔던 적도 있었다.
니미,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다 거짓말이었다. 저 새끼들은 탈영한 탈영병들이었다. 새끼가 있기는 개뿔. 저 자식들 함정에 빠져서 죽었다. 열이 받아서 이후로 저 자식들을 스무 번이나 죽였다. 처음에는 그냥 마법으로 태워 죽였고 다음에는 칼로 찔러 죽였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서 끊는 물에 데쳐 죽이기도 했다.
“꺼져, 또 죽여 버리기 전에.”
레기온은 눈물을 질질 짜는 산적들을 향해서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육체는 리셋되어 뚱뚱한 몸매 그대로지만 지식과 쌓인 경험은 어디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의 눈매는 보통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웠다.
깜짝 놀란 산적들이 레기온과 두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도망쳤다.
* * *
노숙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디가 좋을까?
-노숙자를 정말 하고 싶슴?
왜? 하면 안 돼?
-가장 적은 숫자기는 하지만 117번이나 노숙자로 생활했음. 노숙자의 말로는 그다지 좋지 않음. 얼어 죽고, 굶어 죽고, 건달들한테 맞아 죽고, 몬스터의 먹이로 던져지고, 장기매매 조직한테 잡혀 가서 내장 다 뽑혀서 죽고. 너무 비참함.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럼 뭐하지?
-좀 편하게 사셈. 노예 잔뜩 두고, 검투사 구경이나 하면서, 첩 100명쯤 거느리고 씨나 뿌리면서.
헐! 야, 야. 여자들한테 돌 맞을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네.
-아차, 쏘리.
그러니까 왕처럼 살고 싶단 소리지? 그런데 왕은 하기 싫은데. 너무 할 게 많아서 골치 아프잖아. 권력 투쟁도 심하고.
왕은 아니지만 비스무리 한 것을 세 번 해 봤다.
나쁘진 않은 삶이었는데, 겉은 화려하지만 그다지 매력적인 자리는 아니었다.
전쟁통에 얻어진 자리.
독살과 암살에 너무도 쉽게 노출된다.
어쨌든 시민들에게 잡혀서 단두대에 목이 잘린 적도 있었다. 목 잘리고 다시 리셋.
일단 배고프다. 밥부터 먹고 생각해 보자.
-오케바리.
레기온은 근처 도박장으로 향했다.
“어서 오십쇼!”
덩치 큰 종업원이 레기온을 보면서 싱긋 웃었다. 레기온도 싱긋 웃었다.
1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레기온은 도박장 전체의 돈을 싹쓸이해서 밖으로 나섰다.
이곳도 오백 번쯤 들렀다.
누가 어떤 패로 이길지 다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쉽게 말해서 레기온이 가장 먼저 돈을 조달하는 곳이 도박장이었다.
곧 이어 도박장에서 여러 명의 칼을 든 사내들이 쫓아 나온다. 매우 살벌하게 생겼다. 그들을 보면서 시민들은 놀라서 좌우로 흩어졌다.
“거기 서라!”
레기온이 말했다.
“거기 서라!”
머리를 빡빡 깎은 사내가 소리쳤다.
“네 이놈 사기를 치다니. 목이 몇 개라도 모자라는 모양이구나.”
레기온이 다시 말했다.
“네 이놈 사기를 치다니. 목이 몇 개라도 모자라는 모양이구나.”
빡빡머리 사내도 말했다.
“돈을 내놓고 간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돈을 내놓고 간다면…… 목숨만은…….”
대머리 사내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레기온을 쳐다봤다.
“우리 어디서 본 적 있나?”
“봤지.”
“어디서?”
“네 마누라보다 많이 봤을걸.”
대머리 사내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정신병자인가.
“이 새끼를 잡아다가 산에 묻어. 어차피 이런 놈 하나 없어진다고 해도 아무도 모를 테니까.”
레기온이 말했다.
대머리 사내와 그의 부하들의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게 무슨 소리야?
“네가 할 말이야.”
“뭐?”
대머리 사내와 부하들은 불안한 눈빛으로 레기온을 보았다. 뭔가 좀 이상한데…….
“당신 누구야?”
“나는 이상하게 반말이 듣기 싫더라. 누구세요, 라고 해야지.”
“뭐?”
대머리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예언하나 할까?”
“무, 무슨.”
“당신 아내 임신했지?”
“그런데…….”
대머리 사내는 의심 많은 눈빛으로 레기온을 바라봤다.
저 돼지의 돈을 뺏어야 하는데 섣불리 다가설 수가 없었다. 뭐랄까. 묘한 위화감이 대머리 사내의 감각을 계속해서 건드렸다.
“네 뒤에 있는 저놈의 이름이 칼리지?”
레기온은 대머리 사내 뒤편에 있는 건달치고는 잘생긴 남자를 가리켰다.
“칼리는 어떻게 알지?”
대머리 사내가 되물었다.
“예언자라고 했잖아. 잘 들어. 네 아내의 뱃속에 있는 아이는, 네 아이가 아냐. 너는 아마 다른 사내의 아이를 키우게 될 거야.”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소름 끼치도록 잔인한 말이다.
“뭐, 뭔 개소리야!”
“너 2개월 전에 수도까지 가는 상단 호위를 했었지?”
“그, 그런데.”
“그때부터야.”
대머리 사내는 심장이 크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불길한 예감이 매우 강하게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레기온은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칼리를 가리켰다.
“칼리와 당신 아내가 무척 친할 거야. 애기가 태어나면 누굴 닮았는지 보라고.”
“거짓말! 이 미친 새끼야! 어디서 되도 않는 소리를 하는 거야!”
“예언이라니까. 나한테 욕하지 말고 칼리한테 물어봐. 어이, 칼리. 이 대머리 아저씨 마누라 엉덩이에 점이 몇 개 있었지? 세 개? 이봐, 대머리 아저씨. 맞아?”
칼리라는 남자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너, 너는 어떻게 알아?”
칼리는 레기온에게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그게 중요해? 대머리 아저씨 마누라의 애기가 누구의 씨인지 그게 가장 중요하지. 자, 나는 예언을 했어. 그러니까 나머지는 지지든 볶든 알아서 하라고.”
레기온은 싱긋 웃으면서 자리를 피했다.
대머리 사내는 살기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칼리를 바라봤다.
“너……. 이 개새끼……. 내가 없는 동안 우리 마누라 좀 잘 봐 달랐고 했더니 그따위 짓을 해?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긴 꼴이야. 이런 씨발.”
“혀, 형님. 그, 그게…….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 술에 취해 있어서…….”
“죽여 버릴 테다. 죽여 버릴 거야!”
대머리 남자는 칼리를 향해서 칼을 휘둘렀다.
레기온은 이미 익숙하다는 듯이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가든 길을 갔다.
레기온은 걸음을 멈췄다.
그의 눈앞에 굉장한 미녀가 서 있었다. 매우 신비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다.
신장은 그보다 훨씬 크다.
대략 170센티 정도. 가슴도 풍만했다. 허리는 레기온의 허벅지보다 얇은 것 같았다. 머리카락은 밤하늘처럼 새카맣다. 눈동자의 색은 매우 깊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마을만 수천 번을 넘게 들렀다.
모든 사람들의 사생활은 손바닥의 손금처럼 낱낱이 꿰고 있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처음 봤다.
이상하네.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상황임. 경고하겠음. 장난처럼 저 여자를 대했다가는 큰일 남.
큰일 나면 죽겠지?
-아마도.
다시 살아나겠지?
-아마도.
경고가 무슨 필요 있나?
-쏘리, 아차 싶으면 그냥 죽으셈. 살려고 버둥거려서 고통을 당하지 말고.
그래, 차라리 그게 낫다.
“누구?”
레기온은 눈앞에 여자에게 물었다.
“내 이름은 라일락이라고 해요. NPC죠.”
라일락이라고 소개한 여자가 말했다. 표정 없이 입술만 달싹거리면서 움직였다. 마치 인형을 보는 것 같았다.
야, 야, NPC가 뭐야?
-Non-Player Character의 준말임.
그게 뭔데?
-히든 던전을 창시한 자가 만든 인공지능 캐릭터임.
허걱! 정말? 그럼 너와 같은 인공지능인 거야?
-기분 나쁘니까 나와 비교하지 마셈. 나보다 5단계는 낮은 인공지능이니까.
“그런데 NPC가 나한테 무슨 볼일이지?”
레기온이 물었다.
“당신의 이름은 알렉산더 드 레기온.”
“맞아.”
“당신은 히든 던전에 바이러스로 판명되었습니다.”
“바이러스?”
“네.”
“바이러스가 뭔데?”
-저 NPC년이 너님을 보고 세균이라고 한 거임.
이런 니미. 오래 살다 보니까 별 거지 같은 꼴을 다 당하네. 나보고 세균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