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393)
마법은 괜히 배워서-394화(394/502)
# 394
왕좌의 라우젤 2
국왕은 병색이 만연했다. 그의 곁에는 바세라바밥이 붙어서 계속해서 체력 보존 마법을 불어넣어 주었다.
마법이 국왕의 몸을 감쌀 때마다 조금씩 생기가 감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금방 안색이 나빠진다.
그렇지 않아도 건강이 좋지 않았던 국왕이다.
라우젤이 실종만 되지 않았다면 왕위를 물려주고 선왕으로 물러났을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아무래도 내전을 거치면서 공왕에게 사로잡혔던 일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싶다.
그가 숨이 깔딱거리면서도 왕좌에서 버티고 있었던 것은 언젠가 왕자가 돌아올 것이란 믿음 하나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결실을 봤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마음으로 포기했던 라우젤 왕자가 극적인 순간에 생환한 것이다.
국왕이 손을 들었다.
순간 열기가 후끈거릴 정도로 시끄럽던 그랜드 홀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수백 명이 넘는 귀족들과 기사들이 숨을 죽이고 국왕을 바라봤다.
“왕국을 위해서 싸워 준 그대들을 칭송하노라…….”
국왕은 속삭이듯 말했다.
하지만 아직 힘이 남아 있는지 모두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오호, 그냥 늙은이는 아닌데.
레기온은 살짝 놀랐다.
왕족으로 태어나서 자연스럽게 국왕의 자리에 앉은 금수저는 아닌 듯했다.
순간적이지만 눈빛과 목소리에 형용할 수 없는 힘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압도했다.
당연하다.
국왕은 단순한 금수저가 아니었다.
지금이야 그의 병색과 노화로 인해서 왕국이 어지럽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꽤 평화로웠다.
당연하다.
국왕은 강력한 중앙집권을 완성했으니까. 지방 귀족들은 호랑이 같은 국왕의 기세에 기가 죽어서 눈치만 봤을 정도였다.
본래 그는 서른 두 명의 왕자들과 경합을 벌였다. 그 와중에 셋째 형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형들을 모두 참살한다. 동생들도 가만히 두지 않았다.
그 일로 인해서 거의 모든 왕자들이 죽고 충격을 받은 선대왕은 쓰러지고 말았다.
유일하게 남은 왕이 현 국왕이었다.
그는 젊었을 적에 바세라바밥, 시진피 공작, 트럼프 공작, 공왕과 함께 셋째 형을 쓰러트린다.
지금이야 불구대천의 원수가 된 사이지만 당시에는 서로의 등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전우였던 것이다.
지금 세대의 젊은이들은 모르지만 옛 세대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국왕은 그런 길을 걸어온 사내라는 것을.
“하지만 나는 이제 오래된 유물이 되었노라. 새로운 술은 새로운 부대에 담가야 하는 법. 오늘 이 자리를 빌어 공식적으로 천명하노라. 다음 왕좌는 폰 스트라우트 라우젤이 물려받을 것이다.”
모두가 예상했던 바다.
국왕의 말이 이어졌다.
“왕위 승계식은 일주일 뒤에 승전 축제와 함께 열겠노라.”
일주일 뒤?
이 말에는 모두가 놀랐다.
아무리 빨라도 올해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전으로 인해서 수십만의 병사들이 죽임을 당했다. 국방의 힘은 턱없이 약해졌다.
아차 하는 순간, 주변국들이 침략을 해 올지도 몰랐다.
크게 두 눈을 부릅뜨고 전력을 다해야 할 때였다. 국왕이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도 한몫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느닷없이 왕위 계승이라니.
그만큼 국왕의 몸 상태가 안 좋다는 뜻일까.
“지금부터는 모든 국가의 대소사는 폰 스트라우트 라우젤 왕자와 함께하도록.”
공식적인 명령이 떨어졌다.
일주일 뒤에 라우젤은 왕이 된다.
그 전까지도 왕의 대행이다.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게 됐다.
국왕파가 그토록 바라던 꿈이 현실로 이뤄졌다.
국왕은 바세라바밥과 함께 퇴장했다.
라우젤이 단상 앞으로 나섰다.
“다음 왕위를 물려받게 될 라우젤이라고 합니다.”
많이 연습을 해 본 듯이 라우젤은 담담하게 말했다.
와아아아아!
“왕자님! 파이팅!”
그가 앞으로 나서자 함께 싸웠던 수많은 귀족과 기사들이 엄청난 환호성을 내뱉었다.
조금은 쑥스러운 듯 살짝 얼굴을 붉혔다.
레기온이 ‘노래해! 노래해!’ 라고 외치려는데 기겁한 페르시몬 백작이 그의 입을 막았다.
“미쳤나?”
“왜요?”
“새로운 국왕한테 노래를 하라니!”
“안 돼요?”
“…….”
페르시몬 백작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게 안 될 것은 없는데.
하지만 다시 생각을 해 보니 안 될 것 같다. 이제껏 누구도 왕좌에 앉은 사람에게 ‘노래해! 노래해!’라고 외친 사람은 없었다.
“노래를 못하면 장가를 못 가요. 아, 미운~!”
레기온이 다시 외치려고 한다.
페르시몬 백작은 그의 입을 꽉 틀어막았다.
“하지 마시게.”
“읍읍.”
“부탁이네. 괜히 나까지 경을 치게 하지 말게.”
레기온은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런 말을 했다고 경을 칠까. 그가 알고 있는 라우젤은 그렇게 쪼잔하지 않는데.
“새로운 왕의 성격 때문이 아닐세. 왕권의 격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야. 만약 자네가 그런 소리를 했다가는 라우젤 왕자의 주변인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걸세.”
“그런가요?”
“그렇네.”
아쉽다.
한번 해 보고 싶었는데.
그나저나…….
이제 새로운 교장 선생을 구해야 하는데. 누구로 해야 할까.
레기온은 문득 셔틀과 미백이 떠올랐다.
어쩐지 이 둘을 같이 붙이면 시너지 효과가 엄청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레기온은 고개를 흔들었다. 미백은 이미 성형 마법 센터를 왕국 곳곳에 건립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었다.
미백은 결코 교장 선생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셔틀은?
아아, 걔는 혼자서 안 되겠다.
어쩐지 학생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최초의 교장 선생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의 앞날이 예상된다.
불쌍하니까 셔틀은 패스.
그럼 누구로 해야 할까?
마몬?
아아! 안 되겠다. 학생들 전원이 흑마법사가 되어서 대륙 정복에 나서겠다고 하면 큰일 난다.
-악의 무리가 따로 없삼.
악의 무리?
-너님의 영지가 정상이라고 생각하삼?
당연히 정상이지. 누가 봐도 정상이야. 이상한 면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내 성을 갈아.
-안녕하시렵니까, 를 나가 보는 것은 어떻삼?
안녕하시렵니까, 가 뭔데?
-요즘 뜨는 실시간 마법 방송 프로그램. 고민을 상담해 줌. 내가 고민을 넣고 싶삼.
야! 야! 아니면 어떡할래?
-최우선 순위로 정관 수술부터 해결하겠삼.
오케이. 약속했어?
-오케바리. 그럼 신청하삼.
한다. 아니면 당장 내 그걸 풀어 줘야 한다.
-믿으삼. 너님이 지면 어떡할 거임?
질 리가 없어.
-그래도 지면 어떡할 거임.
삭발?
-노노노. 그 정도로는 안 됨.
그럼?
-몬샌겨랑 결혼하삼.
쓰벌, 이게 미쳤나. 내가 전생에 이어서 이번 생까지 그 못돼 먹은 년하고 결혼을 해야 돼? 죽을래?
-자신이 있으면 거삼. 그 정도는 돼야 내기가 성립하지 않겠음?
음…….
-자신 없으면 짜지시던가.
해.
-진짜?
한다고.
-후회하지 마삼.
너나 후회하지 마. 넌 지면 정관 수술을 풀어 주는 것 외에도 다신 나한테 개기지 마.
-지면……, 너님의 노예가 되겠음.
약속했다.
-콜.
좋아. 콜.
그렇게 레기온과 마크는 전국적으로 유행을 떨치고 있는 안녕하시렵니까, 라는 마법 방송에 출연하기로 결정을 했다.
“자네…….”
페르시몬 백작이 레기온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의 눈빛은 매우 근심스러웠다.
레기온이란 자는 왕국 입장에서 보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대부분이 모른다는 것이 흠이지만. 그런 레기온이 이상했다.
아까부터 계속 허공에 대고 누군가와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네?”
레기온은 페르시몬 백작을 바라봤다.
“혹시 망상증 같은 것이 있는가?”
“망상증이요?”
“누군가 막 말을 시키는가?”
“네? 아, 네.”
헐, 이상하다. 마크가 내 몸속에 있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
“알고 계셨어요?”
“지금 알았네.”
“아, 그러시구나.”
“자네와 같은 초강자도 마음의 병이 있구만.”
“마음의 병이요?”
“내가 잘 아는 신전이 있네.”
정신이 이상한 사람들을 가둬 두는 신전이다.
“자네 정도의 고위 귀족이라면 사지를 결속해서 방에 가둬 두지는 않을 거야.”
“저를요? 왜요?”
“그냥 시간마다 주는 약을 먹고 신관과 면담을 자주 하면 되네.”
“신관하고 왜 면담을 해요?”
“더 이상 나빠지면 안 되네.”
뭐가 나빠져?
“나와 약속을 해 주게.”
“그러니까 뭘요?”
“나와 꼭 신전에 가 보기로.”
“저 바쁜데…….”
“나도 바쁘네. 약속을 해 주게. 자네에게 결코 해가 되지는 않을 걸세.”
“시간 얼마 안 걸리죠?”
“당연하지.”
“알았어요. 백작님의 부탁인데 그 정도는 들어줘야죠.”
레기온은 진정으로 몰랐다.
그곳이 어디인지를.
“다음 공신!”
라우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레기온은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라우젤이 직접 공신들에게 상을 주고 공적을 치하하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힘든데 상을 주는 라우젤은 더 힘이 들 것 같았다.
“페르시몬 백작!”
-와아아아! 북의 패자! 페르시몬 백작!
엄청난 환성이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에이즈 후작의 최측근인 폐암 백작의 목을 날려 버린 장본인이 페르시몬 백작이었다. 폐암 백작이 국왕군에 입힌 피해는 엄청나다.
그를 막지 않았다면 적어도 1만 명 이상의 병사들이 더 죽임을 당했을 것이 확실하다.
에이즈 후작과 정면으로 부딪쳤던 국왕군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페르시몬 백작이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였다.
페르시몬 백작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는 시진피 공작에게 인사를 한 다음 라우젤에게 무릎을 꿇었다.
시진피 공작이 공신들을 향해서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페르시몬 백작, 그는 내란을 일으킨 수괴들 중에 한 명인 폐암 백작의 목을 벰으로써 큰 공을 세웠다. 이에 국왕 대리인인 나 라우젤 왕자는 그대에게 전설 아이템 2점과 북부의 대지 2만 헥타르를 부상으로 내린다. 그리고 페르시몬 백작을 후작으로 승급시킨다.”
-우와와아아! 후작이래. 대박!
-초고위족 귀족이야. 나는 언젠가 페르시몬 백작 각하가 후작의 작위까지 오를 줄 알았다니까.
-와! 부럽다.
곳곳에서 축하의 소리가 쏟아졌다.
페르시몬 백작은 무릎을 꿇고서 움찔거렸다. 자신도 그런 높은 작위까지 받을 줄은 예상하지 못한 모양이다.
라우젤은 페르시몬 백작의 어깨와 머리에 검을 대고 성수를 뿌렸다.
짧지만 엄숙한 의식이 치러졌다.
레기온의 곁으로 돌아온 페르시몬 백작의 얼굴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토록 담대한 사내조차 자신이 받은 엄청난 상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계속해서 공신의 수여식이 이어졌다.
그런데…….
거의 모든 공신들이 상을 받았건만 레기온은 호명되지 않았다.
드레이져도 자작의 작위를 받았다.
그는 돌아오면서 ‘아 씨, 귀족 따위는 되고 싶지 않았는데.’라고 투덜거렸지만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눈은 묘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베이컨도 남작으로 임명이 됐다. 그는 울면서 단상에서 내려왔다.
“엄마, 하늘에 계신 엄마! 저 귀족 됐어요. 보고 계시죠?”
본래 그는 탈영병이다. 탈영병이 레기온에게 시비를 걸었다가 된통 당하고 수십 년의 강제적인 계약을 맺었다. 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의 신분은 전속 하인이다.
그런 그가 남작의 작위를 받았다.
어찌 기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나 그의 엄마는 아직 살아 있다.
그가 말한 것을 들었다면 쌍노무 불효자식이라고 욕은 있는 대로 처먹을 것이다.
“그런데……. 왜 자네를 부르지 않지?”
페르시몬 백작이 아니, 이젠 후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그럴 수도 있죠.”
레기온은 짐짓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겉보기와 다르게 그는 똥줄이 탔다.
만약 시진피 공작이 자신을 호명하지 않으면 어찌 될 것인가.
그냥 이대로 논공행상이 끝난다면 나는 어찌 되는 것일까.
이게 무슨 개망신이냐!
다 상을 타고 나만 뻘쭘하게 있다가 그랜드 홀을 나간다? 만약 혼자 왔다면 변명거리라도 생각을 했을 텐데 그게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
특히 드레이져와 베이컨이 일부러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쳐다보고 있었다.
쳐다보지 마!
저 새끼들 눈탱이를 그냥 확!
레기온은 뒷짐을 지고 일부러 웃었다. 웃음이 나지 않는데 억지로 웃으려니 입가에 경련이 나는 것 같았다.
미치겠다.
아직도 안 부른다.
“마지막으로…….”
시진피 공작이 ‘마지막’을 언급했다.
아아아!
레기온은 두 손을 잡고 빈다.
상 안 줘도 돼.
승급 따윈 안 해도 돼.
그냥 호명만 해 줘.
쪽팔려서 죽기는 싫으니까.
제발…….
시진피 공작이 좌중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번 내전에서 가장 큰 공을 세운 자는…….”
두구두구두구.
“레기온 백작.”
시진피 공작의 입에서 ‘레기온’이란 단어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