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4)
마법은 괜히 배워서-4화(4/502)
# 4
데이터를 모읍시다 1
레기온은 저택으로 돌아왔다.
그가 돌아오자 정문을 빗자루로 쓸고 있던 노년의 하인 실컷이 토끼처럼 동그랗게 눈을 떴다.
“영주님.”
그래, 맞다. 레기온은 영주다.
가문의 이름만 남아 있는 영주.
몇 년 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의문의 사고사를 당하여 어린 나이에 영주로 취임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한창 뛰어놀 나이에 영주가 되었으니,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해서 작은아버지가 실권을 잡았다.
이후로 영지의 세금은 3배로 올랐고, 매년 겨울이 되면 곡식이 없어서 영양실조에 걸리는 영지민들이 속출했다.
레기온은 세금을 내리자고 작은아버지에게 말했다.
“네가 영지를 다스리는 일에 대해서 뭘 알아? 세금이 어떻게 걷히는지는 알아? 걷힌 세금은 어떻게 쓰이는지는 알아? 도로는 어떻게 놓는지는 알아? 성벽은 누가 짓는지 알아? 다른 귀족들의 침략은 어떻게 막아 내는지 알아? 병사는 누가 훈련시키는지 알아? 모르지? 모르면 닥치고 쭈그리고 앉아 있어. 내가 주는 따뜻한 빵이나 편히 먹으면서.”
“영주는 제가 아닌가요?”
“영주는 너지. 그래서 영주인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뭐든지.”
“뭐든지?”
작은아버지는 코웃음을 쳤다.
작은아버지가 영지를 경영한 이후로 모든 영지민들의 불만은 그에게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 영주인 레기온에게 돌아왔다.
길을 걷다 보면 사람들의 분노가 뼈저리게 느껴졌다.
눈빛은 비수가 되어서 그의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레기온의 머리가 그다지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눈치까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후로 레기온은 작은아버지와 반목을 하기 시작했다. 작은아버지는 레기온을 면전에 두고 ‘버릇없는 새끼, 이제껏 형 대신 키워 줬더니 대가리가 컸다고 대들어?’라고 떠들었다. 하인들과 영지에 속한 기사들이 모두 보고 있었다. 레기온의 얼굴은 시뻘겋게 물들었다.
치욕, 참기 힘든 모욕이었다.
그럼에도 레기온은 그에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작은아버지 곁에 있는 기사들이 명령만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검을 빼 들어 자신의 목을 날려 버릴 것만 같았다.
병신같이…… 쫄았다.
아마도 그날을 기점으로 작은아버지는 레기온을 죽이려고 결정한 모양이었다. 식사에 독을 타거나, 마차의 바퀴가 빠지거나, 누군가 불을 지르거나.
레기온은 목숨에 심각한 위협을 느꼈다.
누가 암살을 시도하고 있는지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영주 자리를 내놔. 그럼 네 목숨만은 살려 줄게. 작은아버지다.
레기온은 영주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키도 작다. 머리도 좋지 않다. 큰 야망도 없다. 그렇다고 패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레기온은 돈과 세력이 없을 뿐이지 자존심까지 땅에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말할 것이다.
자존심이 밥 먹여 주냐고. 목숨보다 중요하냐고. 그래, 난 중요하다. 결코 부모님을 암살했을지도 모를 놈한테 결코 고개를 숙이지 않을 테다.
덕분에 오늘 밤 목숨을 잃을 뻔했다.
위기는 기회라고 해야 할까. 희한한 능력을 얻어서 간신히 살아났다.
이제 반격을 준비할 차례다.
레기온은 늙은 하인인 실컷을 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나마 작은아버지에게 포섭되지 않는 몇 남지 않은 사람 중에 한 명이다.
아마 실컷도 그를 따르느니 차라리 성을 나갈 생각일 것이다. 그만큼 레기온은 그를 믿었다.
“새벽부터 어딜 갔다 오시는 겁니까?”
실컷이 물었다.
“새벽운동.”
“새벽운동이요?”
실컷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생각하기에 영주는 운동, 수련과 같은 몸 쓰는 일과는 담을 쌓았다.
알렉산더 가문은 무가.
가문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마치 기사가 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남성들의 목숨이 짧았다.
만약 알렉산더 가문의 남자들이 오래오래 장수만 할 수 있었다면 왕국의 패권은 바뀌었을 것이라고 실컷은 생각하고 있었다.
이 가문은 엄청난 저주에 걸렸다.
그중에서 이번 영주는 역대 최악이라고 할 법하다.
알렉산더 가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태어나는 압도적인 신체능력을 부여받지 못했다. 작아도 180센티 이상. 레기온의 할아버지는 210센티라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구였다.
크지만 빠르다.
왕국을 둘러싸고 있는 적국은 레기온의 할아버지가 무서워 침략을 포기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다.
이번 영주의 신장은 150센티가 겨우 넘는다.
어렸을 적부터 병치레도 심했다. 도저히 오래 살아남을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실컷은 성심성의를 다해서 레기온은 보필했다.
그런 레기온이 운동을 했다고? 고양이와 원숭이가 결혼을 해서 원숭이를 닮은 고양이를 낳았다는 말만큼이나 믿기 힘든 말이었다.
“정말로 새벽운동?”
옷에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늪지대에 빠졌다가 간신히 살아남은 몰골이지 않은가.
“제 모습이 조금 이상하죠?”
“많이 이상합니다.”
“그냥 모른 체해 주세요.”
“영주님이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지만…… 무슨 일이 있었던 게죠?”
“아마도.”
“작은 아버님과 연관된 일입니까?”
실컷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서 물었다. 그 역시 작은아버지가 영주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니, 저택에서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자들은 없었다.
“뭐, 그렇죠.”
“설마 그가 암살자까지 보낸 것은 아니겠죠?”
실컷은 꽤 긴장을 한 모습이다. 이번에도 영주를 허무하게 잃을 수는 없다는 의지가 그의 눈빛에 가득 맺혔다. 그런 그의 모습이 고마운 레기온이었다.
“알아서 좋을 것이 없을 때도 있다죠. 그냥 모른 척하세요.”
“그래도…….”
“정말이에요. 더 이상 깊숙이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다쳐요.”
“이 늙은 목숨, 알렉산더 가문을 위해서 바치기로 했습니다. 영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못할까요.”
“마음만 받을게요. 전 피곤해서 들어갑니다.”
레기온은 손을 흔들면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아, 잠시만요.”
실컷이 레기온을 불러 세웠다. 레기온은 또 무슨 일? 이라는 표정으로 실컷을 돌아봤다.
“그가 와 있습니다.”
“작은아버지?”
“네.”
“그 양반이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일로 와 있대?”
“모르겠습니다. 부하들을 잔뜩 데리고 왔더군요.”
레기온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이렇게 일찍 들이닥친 적은 없었는데 왜 아침부터 와 있을까.
-정말 몰라서 생각을 하삼?
마크의 목소리가 들렸다.
참 싸가지 없는 말투다. 모르니까 생각을 하지.
-너님이 죽었다고 확신을 하는 것임.
내가 죽었다고?
-그렇삼. 정황상 너님의 작위와 영지를 접수할 계획 같음.
아아, 그렇군.
레기온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나의 비보를 접하기 위해서 일찍 행차를 하신 거겠지. 이거야말로 비극이다. 고작 남작 작위가 뭐라고 저렇게까지 탐을 내는지 모르겠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레기온은 실컷에게 살짝 고개를 까닥거렸다.
실컷은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다. 들고 있던 빗자루를 계속해서 좌우로 움직였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실컷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괜찮지 않으면요.”
“아무래도 작은 아버님께서 해코지를 할 것 같아서.”
“아아,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레기온은 씨익 웃고는 실컷이 깨끗하게 닦아 놓은 길을 천천히 걸어서 올라갔다.
실컷은 레기온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 * *
흐흐, 이럴 줄 알았지.
레기온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유령을 본 것처럼 매우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작은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작은아버지뿐만 아니라 그의 가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 암살 계획을 주도했던 마법사 패링의 표정은 무척 좋지 않았다.
“어떻게 네가…….”
작은아버지가 말을 더듬거렸다.
이봐요, 작은아버지. 어떻게 네가? 라는 말은 실토를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고요. 저렇게 감정도 숨기지 못하면서 무슨 작위를 노린다고.
“어떻게 제가 살아 있냐고요?”
레기온이 웃으면서 물었다.
작은아버지도 가문의 핏줄을 잘 타고났다. 2미터가 넘는 거한이다. 완력만으로는 왕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고 자부하는 모양이다. 사라진 가문의 내공심법만 익혔더라면 손에 꼽히는 기사가 됐을 것이란 평이 자자했다.
즉, 그 말은 심법을 익히지 못해서 힘만 강한 기사로 남았다는 얘기와도 같다.
모르긴 몰라도 작은아버지는 사라진 가문의 내공심법을 찾기 위해서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었을 것이다.
그런 작은아버지가 당황하는 모습이란…….
꼴좋다. 개쉐끼.
“뭐? 아,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작은아버지는 급히 입을 다물었다. 하마터면 자신의 입으로 조카를 암살하려고 했다는 사실에 대해서 실토를 할 뻔했다.
이곳 저택의 식당에는 많은 눈과 귀와 입이 있다.
잘못하면 소문이 퍼진다.
소문은 발이 없다. 퍼지는 속도가 빛보다 빠르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하면…… 저택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여야 한다.
“뭘 그렇게 놀라는 표정을 지으시나. 인생이란 다 그렇고 그런 거죠.”
레기온은 작은아버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다리를 꼬고 식탁 위에 놓인 샐러드를 손으로 집어서 입안에 넣었다.
굉장히 무례한 행동이었다.
작은아버지는 계속해서 자신의 목숨을 노릴 것이다. 목숨을 노리고 있는 상대한테 굽실거릴 필요는 없었다. 그가 암살자를 보낸 순간 혈연의 관계는 완전히 끊겼다.
눈앞에 거구의 남자와 자신은 ‘원수’일 뿐이었다.
레기온은 으적으적 씹은 샐러드를 꿀꺽 삼켰다. 손에 묻은 소스를 바지에 아무렇게나 닦았다.
그런 레기온을 보면서 작은아버지는 눈살을 찌푸렸다.
“배가 고프면 제대도 먹지 그래. 아니면 씻고 먹든지. 여기까지 악취가 나는구나.”
“악취요?”
“그래, 악취.”
“아아, 그렇군요. 여기 딱딱하게 굳은 것 보이시죠?”
레기온은 옷에 묻은 피를 가리켰다. 이미 색은 검붉게 변하고 고체처럼 변질이 되어서 피라고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하지만 저들은 모른 척을 한다.
“암살자들의 피예요.”
“으음.”
암살자란 말에 작은아버지는 얕은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옆에 있던 패링을 슬쩍 쳐다봤다.
일처리를 어떻게 한 거야?
질책의 표정.
패링은 고개를 조아리면서 분노한 눈빛으로 레기온을 노려봤다.
노려보면 어쩔 건데. 씹새야.
“제가 어떻게 살아왔냐 하면 말이죠. 한 놈은 단검으로 목을 찔렀어요. 이렇게.”
레기온은 실감나게 상황을 재현했다.
그의 행동에 당황한 작은아버지와 가신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지켜봤다. 어제와 확연하게 다른 레기온의 기운이 그들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뭐랄까. 매우 찜찜하다.
“이 피는 놈을 죽일 때 튄 거예요. 모두 다섯 놈이더라고요. 두 놈은 머리를 날렸어요. 완전히 사라졌죠. 남은 두 놈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는 눈치더라고요. 이게 뭐지? 저렇게 허약한 자식이 우리를 어떻게 죽일 수 있는 거지? 그들이 당황하는 사이 저는 그들의 내장을 갈기갈기 찢어서 죽였어요. 저는 마음이 무척 넓거든요. 그래서 고통 없이 죽여 버렸어요. 암살자들은 편안히 엄마의 곁으로 갔을 겁니다.”
레기온의 말에 식당 안은 찬물이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거, 거짓말!”
마법사 패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레기온은 천천히 목을 뒤로 젖혔다. 앉은 자세에서 거만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가운데 손가락을 펴서 패링에게 겨눴다.
“뭐가 거짓말이라는 거지, 패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