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402)
마법은 괜히 배워서-403화(403/502)
# 403
사막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1
프로파일러는 쌓아 놓은 상자 위에 앉아서 멍하니 밤하늘을 바라봤다.
손에는 독한 싸구려 위스키가 들려 있었다.
혈의 사막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술은 금지된다. 설사 마신다고 하더라도 입만 축일 정도였다.
결코 취해서 몸을 가눌 정도로 마시지 않는다. 마시게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목숨과 직결이 된다.
만에 하나 거대 괴수라도 습격을 해 오는 날에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자가 가장 먼저 먹이가 될 뿐이니까.
하나 프로파일러는 금기를 깼다.
그냥 술에 취해 버렸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도대체 삼십 년의 내 인생은 뭐였을까.”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템테이션에 가려져 있지만 그는 촉망받는 학자였다.
아는 사람은 안다.
그가 천재 괴수학자라는 것을.
언젠가 그로 인해서 괴수학의 지각 변동이 생길 것이라고 예상하는 학자들도 꽤 많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는 교장 선생이 됐다.
솔직히 말하면 안일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냥 잠깐 쉰다는 느낌으로 갔다 오면 되지.
공작의 제안이다.
연봉 문제는 둘째 치고 공작의 제안을 뿌리치기란 쉽지가 않았다.
막말로 성질 더러운 공작이라면 자신의 목숨쯤은 초개처럼 가지고 놀다가 버릴 수도 있기에.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쳐 보지요.”
한 서너 달 가르치다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면서 그만두겠다고 말을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자신을 추천한 템테이션 박사님을 재추천하려고 했다.
“지금쯤이면 템테이션 박사님의 몸도 많이 나았을 것입니다. 연세가 많아서 걱정이 되지만 워낙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그분이라면 충분히 위대한 교장 선생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완벽한 계획이었다.
레기온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알겠어요. 일단 여기 계약서에 사인을 하시죠.”
레기온은 계약서를 내밀었다.
고급 종이였다.
그런데 왤까.
그곳에 사인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읽어 보세요. 읽어 보시고 사인 하셔야죠.”
읽어 봤다.
상당히 좋은 조건이었다.
상여금이 자그마치 2천 퍼센트.
경조사비, 휴가비, 교육비, 주거비, 관리비, 세금 면제까지 엄청나게 좋은 조건이었다.
월급도 눈이 떡 벌어지도록 많다.
자그마치 90골드.
일반 농부들이 한 달에 5골드 정도 버는 것을 감안하면 파격적일 정도로 많은 월급이었다.
더군다나 계약금 200 골드란다.
월급에서 빠지는 선월급 개념이 아니라 순수하게 계약금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또 하나.
연 1만 골드의 연구비용을 투자한다, 라고도 적혀 있었다.
1만 골드!
1천 골드도 아니고.
그 돈이면 방학 때 실컷 연구에 매진할 수가 있었다.
돈이 썩어 나도록 많은 귀족인가?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많은 돈을 나에게 주는 것일까.
그는 학자다.
후원금이나 투자금이 없으면 연구는 중단이 된다. 때문에 학자들은 언제나 가난하다.
하지만 이렇게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 주는 투자자가 있다면 학자는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칠 수가 있었다.
프로파일러는 지원금에 혹해서 계약서를 끝까지 읽지도 않고 사인을 하고 마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사인을 마치는 순간 계약서가 빛을 냈다. 엄청나게 불길한 빛이었다.
그 빛 속에서 어떤 검은 그림자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프로파일러의 몸속으로 쑥 하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프로파일러는 기겁했다.
“뭐, 뭡니까? 이건?”
“뭐가요?”
“조금 전 검은 그림자가 저한테 들어온 것 같은데요.”
“그래요?”
레기온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래요’라니요. 조금 전에 검은 그림자가…….”
“계약이 완료됐다는 의미입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말 그대로예요. 자, 여기 계약서 한 부씩 나눠 가집시다. 심사숙고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계약 파기는 양쪽이 동의해야만 가능합니다. 어느 한쪽이 반대를 하면 계약은 계속 유지됩니다.”
여기서부터 비교도 안 되는 불길함이 프로파일러의 전신을 휘감았다.
“내일쯤 출발하죠. 그럼 잘 부탁합니다.”
레기온은 활짝 웃으면서 막사를 나갔다.
뭐지? 뭔가 잘못된 것 같은데.
프로파일러는 계약서를 다시 살펴봤다.
휙휙!
계약서를 넘기던 프로파일러는 그대로 석상처럼 굳어져 버리고 말았다.
– 갑의 연구 결과로 얻어지는 모든 이득은 을에게 모두 귀속된다.
– 갑은 10년간 교장 선생의 직무를 의무적으로 해야만 한다. 천재지변에 의해 급사를 한다면 자연적으로 계약은 종료된다. 하나 10년이 지나도 갑이 별다른 말이 없다면 자동적으로 10년간 재계약이 이어진다.
기가 막혔다.
10년?
90골드라는 월급과 매년 1만 골드라는 후원금이 없다면 곧바로 그만둘 생각이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엄청나게 부담스러웠다. 자신은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생각했던 프로파일러는 곧바로 레기온을 뒤쫓아 갔다.
“공작님.”
“네?”
“이 계약서 수정 좀 해 주세요.”
“어떤?”
“여기 10년간 의무적으로 교장 선생을 해야 한다는 문장이요. 1년으로 고쳐 주시면 안 됩니까?”
“호…….”
레기온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순간적으로 프로파일러는 전신이 얼어붙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샌드 사마귀가 눈앞에 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엄청난 공포였다.
뭐지? 도대체 뭐지?
마치 거대한 포식 동물 앞에서 몸이 굳어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발끝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뼈가 굳어졌고 혈관은 막힌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히고 전신의 털이란 털은 하늘을 향해서 곤두섰다.
딱딱딱딱.
이빨이 저절로 위아래로 부딪쳤다.
사막인데…….
밤이 되면 사막의 기온이 내려간다고 하더라도 이 정도로 춥지는 않는데.
냉동 창고에 들어간 것처럼 그의 전신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제야 프로파일러는 뭔가를 깨달았다.
단순히!
레기온이 아부를 잘해서 젊은 나이에 공작의 자리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이건…….
괴수를 능가하는 힘이었다.
평생 연구만 해 온 자신은 짐작도 하지 못하는 무시무시한 강력함.
이게…….
레기온 공작이었구나.
“1년으로 고치시겠다고요?”
레기온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물었다.
프로파일러는 머리를 굴리지도 못했다. 본능적으로 대답을 해야만 했다.
“아뇨.”
“아닙니까?”
“네, 20년으로 하겠습니다.”
“진짜요?”
“정말이지요.”
그렇게 계약서는 수정되었다.
수정된 계약서를 들고 레기온은 방정맞게 뛰면서 숙소로 돌아갔다.
레기온 공작이 눈앞에서 사라지자 긴장이 풀리는 프로파일러였다.
그는 10년에 줄을 쫙 긋고 20년으로 고친 계약서를 바라봤다.
내 무덤…….
내가 팠다.
어찌 슬프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하여 그는 에라,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술을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
누군가 그에게 잔 하나를 내밀었다.
프로파일러는 자신에게 잔을 내민 이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잘못 본 줄 알았다. 해골이 눈앞에 있었다. 눈을 비볐다. 다시 봐도 해골이 맞다.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아왔나.
자꾸 왜 이딴 것들하고 엮이지.
“납니다.”
“누구?”
“샌드 사마귀한테서 그쪽을 구해 줬지요.”
“아하.”
그제야 이 해골이 누군지 기억났다. 자신과 템테이션 박사님을 일으켜 준 그 해골이었다.
“인간들이 보기에는 저와 다른 친구들이 잘 구별이 가지 않죠?”
“아, 뭐…….”
맞다.
그 해골이 다 그 해골이다. 뭐가 다른지 전혀 구별이 가지 않는다. 어떤 표시를 했다고 하지만 프로파일러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였다.
“저는 해골 소대의 소대장입니다. 그냥 소대장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아, 네.”
술이 확 깨는 것 같았다.
정말 특이한 경험이다.
해골이……. 자신에게 술을 따라 주면서 고민 상담을 해 준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다.
“다름이 아니라 고민이 꽤 큰 것 같아서요.”
“뭐,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 사장과 계약을 맺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에는 공황 상태에 빠지죠.”
“레, 레 사장이요?”
“네, 레기온 사장.”
“공작 각하를 그렇게 불러도 돼요?”
“고용주와 피고용인이지만 종속 관계는 아닙니다. 그는 저희에게 현물을 주고 저희는 노동을 제공합니다. 평등한 관계죠. 아, 전속 하인이나 드레이져 같은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술이 취해서 그런가.
해골 소대장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공작 각하와 대등한 관계라고? 그게 말이 돼?
“그쪽도 마찬가집니다.”
“제가 공작 각하와 대등한 관계라고요?”
“당신은 신분 관계와 노동을 제공하는 것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나눠서 생각하세요. 당신은 교장을 하는 대신에 레 사장에게 후원금과 월급을 받는 겁니다. 만약 레 사장이 돈을 주지 않거나 계약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 당당하게 해지 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아하!”
프로파일러의 눈빛이 반짝였다.
“물론! 레 사장에게 돈이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왜요?”
“그는 부자니까요.”
“얼마나 부자길래…….”
“엄청난 부자입니다.”
“시진피 공작 각하만큼이나?”
해골 소대장은 피식 웃었다.
“더 많아요?”
“국왕보다 더 많습니다.”
“허걱.”
“국왕과 모든 귀족들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을 겁니다.”
“개, 개인이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레 사장한테는 돈 귀신이 붙은 모양입니다. 뭘 해도 빵빵 터집니다. 라스베가스 아시죠?”
“알죠. 환락의 도시 라스베가스. 왕국 최고의 유흥지. 왕국 세금의 20퍼센트 이상을 그곳에서 충당한다고 하죠? 공왕의 영지 아니었던가요?”
프로파일러가 생각하기에는 공왕의 영지였다. 하지만 공왕은 패해서 알카트라즈 감옥에 갇혔다.
모든 영지와 재산은 국고에 귀속이 됐다.
그럼 라스베가스는 공유지가 된 건가?
“라스베가스는 진작 레 사장에게 넘어갔습니다.”
“네?”
이건 진짜 깜짝 놀랐다. 무슨 수로?
“라스베가스가 파산을 했거든요. 그걸 레 사장이 삼켰습니다.”
“아, 아니……, 그 거대한 도시가 왜 갑자기…….”
“저도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그저 라스베가스는 레 사장의 영지라는 것밖에. 그 외에도 많습니다.”
“또 있어요?”
“해상 도시 씨엠.”
“부자와 가족들이 가장 많이 찾는 해양의 도시 씨엠!”
“맞아요. 씨엠도 라스베가스 만만치 않게 돈을 벌어들이죠. 라스베가스가 욕망을 만족시키는 도시라면 씨엠은 관광의 도시죠. 둘이 가면 셋이 돼서 나온다는 공공연한 소문이 돌 정도.”
“서, 설마…….”
“네, 다 레 사장 겁니다.”
꿀꺽.
프로파일러는 마른침을 삼켰다.
레기온은 단순한 공작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거물이었다. 장난스러운 외모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낮게 봤던 것 같았다.
실수다.
명백한 판단 착오였다.
“제가 그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를 알겠습니까?”
해골 소대장은 그의 잔에 술을 따라 주면서 말했다.
“조금…….”
“당신은 엄청난 행운을 거머쥔 겁니다.”
“행운…….”
“그리고 템테이션이란 학자는 넝쿨째 굴러온 행운을 보기 좋게 발로 차 버렸구요.”
“그, 그런가요…….”
“당신은 운이 좋은 남자예요.”
해골 소대장은 빙그레 웃으면서 프로파일러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남은 술병을 들고 왔던 길로 사라졌다. 그가 술병을 들고 목구멍으로 꿀꺽꿀꺽 삼킨다.
그 아까운 술이 갈비뼈 사이로 다 흘러내렸다.
프로파일러는 해골 소대장의 뒷모습을 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난 행운을 잡은 걸까.”
그는 진정 몰랐다.
거대한 행운과 거대한 불행이 동시에 그의 몸을 엮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