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41)
마법은 괜히 배워서-41화(41/502)
# 41
무임금 노동자들 1
수련실.
레기온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마나의 양은 꽤 된다. 마나를 마력으로 전환하면 3서클 중반의 마법까지도 사용할 정도는 된다. 사실 단전 크기가 커진 것은 꽤 오래전 일이다. 단지 2서클의 벽을 깨지 못해 마나가 놀고 있었을 뿐이다.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타임루프 덕분에 대부분의 마법을 기억하고 있다.
아니,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왜 기억이 안 나지? 이상하다.
-너님의 지능을 생각해 보셈.
내 지능이 뭐 어때서.
-하아…….
마크 이 새끼가 인공지능 주제에 한숨까지 쉬었다.
-너님 지능은 69. 지나가던 개 하고 맞짱을 뜰 수준임. 너님이 지금 말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놀랄 지경임. 뒤뜰에 놀고 있는 누렁이도 사람 말 하겠다고 설치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임. 그런데 기억이 안 나는 게 이상하다고? 너무 양심 없는 것 아님?
야, 그래도 만 년이 넘는 생을 살았는데. 겨우 지능이 낮아졌다고 다 꺼먹는 건 너무 억울하잖아.
-그럼 지능을 좀 유지하든가! 이게 도대체 몇 번째임. 장난침? 이제 좀 쓸 만해졌다 싶으면 망가지고, 쓸 만해졌다 싶으면 망가지고. 난 뭔 죄임?
아, 젠장! 뭐 이런 엿 같은 경우가 다 있다냐.
지능이 무슨 오뉴월 엿가락도 아니고, 늘었다가 줄었다가 지 맘대로야? 그렇게 개고생을 하고서도 결국 나는 2서클 정도의 마법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건가.
-지능이 높아지면 기억이 날 거임.
정말?
-당근.
사실 기억이 안 나도 상관이 없었다.
그가 익힌 마법에 대한 자료는 마크가 이미 업데이트를 해 놓은 상태니까. 필요할 때 하나씩 꺼내어 단련시켜도 되고, 최악의 경우 뇌에 직접 다운로드를 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직접 익히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다운로드의 경우 대뇌피질의 신경계를 압박하여 뉴런의 전자적 제어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어, 잘못하면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도 피치 못할 상황에선 해야지.
“뭐라고?”
-너님에게 한 말 아님. 신경 끄셈.
그래? 그럼 이제 어떡해?
-당연한 소리를 물으셈. 지능 높이기 특훈에 들어가야지.
미스릴?
-대량으로 구입하셈. 근처 동굴에 들어가서 한 달 내내 미스릴만 먹을 거임.
이런 소문이 있던데.
-무슨 소문?
100일간 미스릴만 먹던 곰이 인간 여자가 됐다는. 그것을 참지 못한 호랑이는 인간이 되지 못했다는.
-…….
할 말을 잃었던 마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능이 낮아지니까 생각도 못함? 그래서 어쩌겠다고? 100일 채워서 곰이 되는지 안 되는지 확인해 보고 싶으삼?
아니, 뭐 그렇다고.
-차라리 지능이 80이 될 때까지 생각이란 것을 하지 마셈.
생각을 하지 말라고? 그게 말이 되냐!
-그게 나를 도와주고, 너님을 도와주는 거임.
레기온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삐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맞다. 이 낮아진 지능으로 뭘 하겠는가? 어딜 돌아다니기도 무서웠다. 가끔 방에 들어가는 길도 헷갈린다.
-오크 마을에서 얻어 온 미스릴 얼마나 됨?
1킬로그램은 되겠는데.
-한 번에 털어 드셈.
헉, 이걸 다?
-어서!
레기온은 구시렁거리면서 미스릴을 삼켰다.
-상급 미스릴 1,000그램 해체합니다. 지능이 +4 상승합니다.
아싸, 73.
-주인님의 현재 몸무게는 85킬로그램입니다.
열흘간 먹지도 못하고 개고생을 했더니 몸무게가 알아서 쫙 빠졌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곧 105킬로그램까지 몸무게가 상승합니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입니다. 혈압이 상승합니다. 지방간이 생성됩니다. 당뇨가 의심됩니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십시오.
씨발.
또다시 지옥 다이어트가 눈앞에 펼쳐졌다.
* * *
라우젤은 레기온을 접견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컷에게 듣기론 굉장히 곱상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의 영주라고 했는데.
그 영주는 어디 가고-
눈앞에 부담스러울 정도로 살이 찐 돼지가 한 마리 놓여 있었다.
레기온은 연신 손수건으로 이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땀을 닦아 냈다.
흐익, 더러워.
현명한 영주, 잘생긴 영주,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영주, 영지민들을 아낄 줄 아는 영주, 영지민들이 존경하는 영주라는 상상은 레기온을 보는 순간 와장창 깨졌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돼.
라우젤은 그렇게 몇 번이나 다짐을 했지만 영주를 볼 때마다 그 생각은 사라졌다. 도대체 어딜 봐서 저 돼지가 현명해 보인다는 말인가.
쓰벌! 사람 앞에 두고 코딱지 파지 마!
야! 야! 그거 나한테 튕기기만 해 봐!
으아악! 저 새끼가 미쳤나. 뺨에 묻었어. 아, 진짜.
라우젤은 부글부글 끓는 마음을 억지로 다스렸다. 어쩐지 이런 일이 익숙한 느낌이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그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레기온이 물었다.
“그렇소. 아니 그렇습니다.”
라우젤은 자신도 모르게 자꾸 ‘예사 낮춤’을 사용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할 때 하는 말투다. 왜 이런 말투가 입에 착착 감기는지 모르겠다. 저택의 하인들이 약초꾼 주제에 건방지다면서 한 마디씩 했다.
우리 영주님의 마음이 좋아서 별다른 소리 안 하지, 다른 영지 같았으면 귀족 모욕죄로 진작 처형됐다고.
“자네가 어디서 발견되었는지 알고 있겠지?”
“뒤셀르프 산맥에서 발견이 됐다고 했습니다.”
“자네가 살아난 것은 기적이었다네. 같이 있던 동료들은 모두 트롤에게 죽었지.”
“그렇습니까…….”
기억나지 않는 동료들이지만 안타까웠다.
자신은 기억을 잃었어도 살아남았다. 그것이 중요했다. 산다는 것. 하지만 동료들은 다신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자네는 약초꾼이었던 것 같네. 알고 있나?”
“실컷에게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약초를 구별할 줄 아는가?”
“이상하게 그것도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흠, 그거 아쉽군.”
레기온은 턱을 만지작거렸다.
영지에도 약초꾼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신전과 전속계약이 되어 있었다. 그들이 구하는 약초는 모두 신전에 들어간다.
이놈이 쓸 만하면 좀 부려 먹으려고 했는데…….
그래도 공짜 밥을 먹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 그러면 할 줄 아는 것은 뭔가?”
“잘 모르겠습니다.”
라우젤은 솔직하게 말했다.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잘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몸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네. 잘 생각을 해 보게.”
공짜 밥은 결코 먹일 수 없다는 레기온의 강력한 의지였다.
“글쎄요.”
-약초꾼이 아닐 수도 있음요.
마크가 끼어들었다.
약초꾼이 아니라고? 딱 봐도 약초꾼이잖아.
-잘 보삼. 라우젤의 얼굴이 무척 흼. 맞삼?
맞아.
-저 말은 태양빛을 자주 보고 살지 않았다는 뜻임.
설마 광부?
-…….
마크는 자꾸 말문이 막힌다.
지능이 떨어지니 상상도 못하는 답변이 마구 튀어나왔다. 이 순간에 광부를 떠올리다니! 자신의 인공지능에 떠오른 3천 가지의 답변 중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가능성이다.
너님 최고.
-손바닥을 보삼. 굳은살이 하나도 없음. 옷도 좋고, 얼굴은 하얗고, 힘든 일은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증거임.
서, 설마 그 사람인가?
-누구?
선생님!
-가능성이 높음.
둘 다 삽질한다.
“보아하니 자네의 직업을 내가 알 것 같아.”
“정말입니까?”
라우젤의 눈빛이 반짝였다.
“자네는 선생이었네.”
레기온은 단정 지었다.
“제가 선생이었다고요?”
라우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아닌 것 같은데.
“맞네. 거울을 보게나. 이마에 나는 선생이었어, 라고 써 있네.”
-너님은 지능이 떨어져도 약 파는 것만큼은 최고임. 대박.
시끄러.
“제가 정말 선생이었을까요.”
“내 말을 믿게나. 내가 다른 것을 몰라도 사람 보는 눈은 꽤 정확하다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그러니 자네는 기억을 찾을 때까지 우리 영지의 아이들을 좀 가르쳐 주게나. 조금 창피한 일이지만 글을 읽지 못하는 아이들이 꽤 되거든.”
“알겠습니다. 영주님의 뜻이 그러하시다면.”
라우젤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싸!
무임금 고급 인력을 확보했다. 잘 됐다. 이참에 학교나 설립해야겠다.
레기온은 씨익 웃었다.
아무도 라우젤이 황태자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 * *
레기온은 마차를 끌고 뒤셀르프 산맥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마차를 끄는 것은 말이 아닌 세피아다.
도로가 있으면 좋을 텐데…….
매번 올 때마다 하는 생각인데, 이놈의 산길, 지긋지긋하다. 그나마 초입까지는 마차를 끌고 갈 수나 있지, 그 뒤로는 아예 마차가 들어갈 수도 없다.
무엇보다 길 자체도 험난하다.
마차가 없으면 미스릴을 운반할 수 없고, 그나마 마차도 세피아가 아니면 이동이 안 된다.
“효율이 너무 떨어져.”
미스릴이 넘치는데 가져올 방법이 없다니, 이렇게 억울할 수가 있는가?
“뭔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겠는데.”
그래서 생각한 게 오크족 마을까지 쭉 깔린 도로.
미스릴 팔아서 자금은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는데, 그게 또 팔기는 아깝다. 차라리 미스릴 광산까지 길을 놓을까? 아니다. 그랬다가 작은아버지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그것도 곤란하다.
이런 고급 정보는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
무엇보다 누굴 여기까지 데려와서 공사를 시킨단 말인가? 영지민들? 택도 없는 소리다.
“여러분, 영주가 명령합니다. 일을 할 수 있는 남자들은 모두 나와서 도로를 건설하세요.”
아마도 행운력이 폭락하고 불행력은 급상승을 하겠지. 행운력이 바닥을 치면 급살을 당할 수도 있었다. 무섭다. 사람들 기분 좀 거슬렸다고 급살이라니.
영지민의 원한이 무서워서 강제동원도 함부로 할 수가 없다.
덕분에 영지민들에게는 ‘우리 영주님은 역대 최고로 자비로우셔!’라는 말을 듣긴 하는데……. 덕분에 행운력이 쑥쑥. 요즘 하는 일마다 운이 따른다.
그것 하나는 좋다.
뒤셀르프 초입에 들어섰다.
여기서부터는 산길이다. 레기온이 마차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쿵!
하도 살이 쪄서 마차에서 뛰어내리자 무릎이 시큰거렸다.
-경고, 경고, 무릎의 연골이 나갈 수 있습니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자제 바랍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꽤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겨우 5킬로그램 뺐다. 아직도 100킬로그램이었다. 이제 내성이 생겼는지 살도 잘 빠지지 않는다.
-크르르릉(형아).
세피아가 레기온을 불렀다.
“왜, 브라더.”
-크르르릉(나 언제까지 마차 들고 다녀야 돼)?
세피아는 레기온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힘들어?”
-크르릉(조금).
하긴 매번 1톤에 가까운 짐을 수십 킬로미터씩 운반을 해야 하니 힘들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아무리 오거라도 체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미안하다. 매번 너만 고생시키는구나.”
-크르르릉(아니야. 내가 미안해. 괜히 형아한테 부담을 준 거 같다).
레기온의 따뜻한 말 한 마디에 힘들던 생각이 싹 사라지는 세피아였다.
레기온은 그대로 생각에 잠겼다.
오크족 마을까지 도로를 닦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도로만 생긴다면 정말 일이 쉬워질 텐데. 골치가 아프다.
그 순간 행운력이 움직였다.
스르륵-
수십 명의 사내들이 레기온과 세피아의 앞을 막아섰다. 하나같이 흉악한 얼굴이다. 모두 검과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들은 헤죽헤죽 웃으면서 레기온을 바라봤다.
산적인가?
대머리에 덩치가 큰 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두목인가?
그는 거대한 핼버드를 어깨에 걸치고는 레기온에게 말했다.
“가진 것 다 내놔.”
그들을 보면서 레기온은 활짝 웃었다.
역시 행운력이 최고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