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415)
마법은 괜히 배워서-416화(416/502)
# 416
24시간
레기온은 코브라 부대를 따라서 바벨 신전에 도착했다.
부모님에 대한 일은 일단 머릿속에서 지웠다. 이왕 야뉴스가 됐으니 끝까지 정체를 감출 생각이다.
내가 야뉴스가 아닌 레기온이라는 것을 알면 놈들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까.
깜짝 놀랄까?
경악을 할까?
아니면 밋밋할까.
놀라지 않는 놈들의 면상에는 염산 마법이라도 던져 줘야겠다.
“괜찮으십니까?”
셔틀이 슬쩍 와서 물었다.
레기온은 그런 그를 보면서 싱긋 웃었다.
기특한 놈.
평상시에는 꽤 얄미워서 괴롭혀 주고 싶었는데 요 며칠 사이에 그런 감정이 싹 사라졌다.
너 하는 것 봐서 진급도 시켜 주마.
“괜찮지 않으면.”
“역시 레 사장님이시네요. 그런데 이제 어쩌실 생각이세요?”
“기회를 노려야지.”
“트레비아 공작을 응응할 기회?”
“그것도 그거지만 우리가 탈출할 수 있는 기회. 죽으면 다 소용없는 기라.”
“사투리 좀 쓰지 마세요. 너무 안 어울려요.”
“너도 영화 좀 봐라. 얼마나 재밌는 게 많은데. 재밌으면 따라 하고 싶다니까.”
“맨날 바쁘다면서 영화 볼 시간은 어디에 있데요.”
“쉬어야 일도 할 수 있는 기다.”
“아, 넹넹.”
바벨 신전 근처에는 적어도 1만 명 이상의 병력이 배치가 됐다.
하긴 왕위 계승 1순위의 왕자가 인질로 잡혔으니 왕성은 발칵 뒤집혔겠지.
“우리는 저기 뒤로 빠져 있지.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 봤자 좋을 것 하나 없다. 괜히 정체 들통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트레비아 공작 일행은 오무천 일원 중에 한 명인 레기온을 절대 내버려 두지 않았다.
더군다나 초특급 야뉴스는 유명한 협상가가 아니던가.
“트레비아 공작 각하께서 찾으십니다.”
부관 중에 한 명이 레기온을 부리나케 찾아와서 그를 억지로 끌고 갔다.
레기온은 연신 속으로 욕을 하면서 상황실이라고 적힌 막사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같은 시각.
“이 새끼, 우리보고 무식하다고 욕한 이 새끼. 여긴 어디야? 여긴 어디냐고?”
드레이져와 맘마 유지로를 무식하다면서 속으로 욕하며 자신만 따라오라고 자신만만하게 외쳤던 베이컨은 군사 도시 테마가 아닌 THE MA라는 생각도 못했던 도시에 가 있었다.
베이컨은 드레이져에게 맞으면서 귀신에 홀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 * *
“와.”
레기온은 바벨탑을 가까이서 바라봤다. 고개가 절로 돌아간다. 살다 살다 이렇게 높은 건축물은 처음 본다. 그가 알고 있는 가장 높은 건축물은 마탑이다.
그것 역시 인간이 만들어 낸 건축물이라고는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건 더하다.
마탑보다 웅장하고 훨씬 높다.
바벨탑의 최상층은 아예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도 않았다.
이곳에 왜 매년 수백만 명이 넘는 수행자들이 다녀가는지 알겠다.
그냥 수행자가 아니라도 여행객이라면 죽기 전에 반드시 한 번은 와야 할 여행지 혹은 건축물에 속하리라.
“그런데 여기를 몇 명이 점령했다고요?”
레기온이 트레비아 공작에게 물었다.
“확실하게는 모르네. 1천 명이 넘는다는 소리도 있고, 2천 명이 넘는다는 소리도 있네. 하지만 납치범들이 인질보다 많을 수는 없어. 왕세자 전하를 비롯하여 1천 명에 달하는 인질들이 잡혀 있는 상태네. 우리는 납치범들의 숫자가 최소 100명 최대 500명이라고 보고 있네.”
“500명이라…….”
정말 처음으로 겪는 일이 많다.
그런데 500명이나 되는 납치범이 있을 수가 있나?
그건 테러 단체 아냐?
그게 아니면 반대 세력파든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
당연하다.
일을 저지른 자는 돈데크만 일당과 레드 드래곤 프리티아니까.
누가 그들이 여기서 극적으로 만나 넥 하우스 왕국의 왕자를 붙잡아 인질극을 벌일 것이라고 생각을 했을까.
“그럼 이제 어쩌죠?”
“희생 없이 일을 끝내야지.”
“어떻게요?”
“그걸 내가 어찌 아나?”
“네?”
“자네가 전문 협상가 아닌가. 자네가 해결해야지.”
“아, 그렇죠. 제가 협상해야죠.”
머리 아파진다.
협상가란 직업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셔틀이나 존재감 제로에 가까운, 왜 굳이 레기온을 쫓아다니면서 죽음의 공포를 느껴야 하는지 모르는 새로운 교장 선생인 프로파일러도 그런 직업에 대해서는 모른단다.
한다는 소리가 누구나 아는 이런 것이다.
“협상가란……. 협상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 아니겠습니까?”
저 주둥아리를 확!
차라리 입이나 열지 않았으면 미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셔틀은 그나마 예뻐 보이는데 이상하게 프로파일러는 밉상이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밉상이라고 해서 이곳에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나 갔다 올게, 하다가 튈 생각이니까.
잉?
왜 부모님 원수를 투고 튀냐고?
지금 나는 넥 하우스 군단의 한복판에 있다. 넥 하우스의 강자들이 우글우글거린다.
여기서 트레비아 공작 목 하나 따고 장렬하게 전사하라고?
아아아~!
말이 안 되잖아.
2보 전진을 위해서 1보 후퇴를 하는 것뿐이다.
지금도 놈을 어떻게 죽여 줄까 계속해서 고민 중이다.
마크가 ‘나한테는 놈을 찢어 죽일 방법 1만 가지쯤 있삼.’ 이라고 한다.
믿어야 하나.
죽일 방법이 1만 가지라면 믿겠다.
찢어 죽일 방법 1만 가지라니.
좌로 찢고 우로 찢고 횡으로 찢고 종으로 찢고…….
난 네 가지밖에 생각이 안 나는데.
그래서 물어봤다.
“한 10가지만 가르쳐 줘.”
-그때 가면 가르쳐 주겠삼.
구라야.
구라구나.
개구라 마크 새끼.
원래 인공 지능이라는 기능이 저런가? 입만 열면 구라네.
“초특급 야뉴스.”
트레비아 공작이 레기온의 등을 툭 하고 밀었다.
깜짝 놀란 레기온이 트레비아 공작을 바라봤다.
“네?”
“이미 이곳 군단장에게 당신의 소개를 해 두었소.”
“그, 그래서요?”
“어찌 됐든 협상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소?”
“무슨 정보가 있어야 협상을 하죠?”
“당신은 어떤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완벽하게 협상을 이끌어 낸 인물이라고 알고 있소만.”
“맞아요. 맞습니다. 맞는데 최소한의 정보가 주어진 상태에서 그런 일도 가능한 것이라고요. 다짜고짜 얼굴도 모르는 납치범에게 가서 ‘어디 편찮으신 곳 없으십니까?’라고 물어볼 수는 없잖아요.”
“흐흠, 그것도 그렇군. 그래. 무엇이 알고 싶소?”
“앞서 나선 협상가들을 만나 보고 싶습니다. 최소한 그들은 납치범들과 몇 차례 협상을 가졌을 테니까요.”
“아쉽게도…….”
“아쉽게도라니요?”
“모두 죽었소.”
“왜, 왜요?”
“왜긴. 저 잔학무도한 것들이 협상가들을 보이는 족족 잡아 죽였소.”
딸꾹.
미치겠네.
그럼 나보고 저 무시무시한 납치범 소굴로 들어가서 죽고 오라고?
-죽긴 왜 죽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저들이 7성급 이상의 전사라도 됨?
(작가 주 : 맞다. 된다.)
-또는 저들이 8서클 이상의 마법사라도 됨?
(작가 주 : 맞다. 된다.)
아니겠지. 무슨 인질범이 그렇게 강해? 그렇게 강했으면 진작 왕국의 귀족 작위를 받았겠지.
(작가 주 : 누구 때문에 저들이 저렇게 됐더라.)
-그러니까 내 말이. 저들 중에서 너님에게 해를 끼칠 사람은 없음.
오호.
-이제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삼?
한 번에 알겠다.
레기온은 빙그레 웃었다.
머릿속에 작전이 착착 떠올랐다.
놈들과 협상을 하는 척 다가간다. 놈들이 화를 날려도 마법을 날려도 어중간한 공격으로는 날 다치게 할 수 없다.
놈들에게 달려가 우두머리를 잡는다.
제압한다.
난 영웅이 된다.
트레비아 공작과 독대를 한다.
놈의 목을 따고 홀연히 사라진다.
그럼 트레비아 공작을 죽인 자는 초특급 야뉴스가 되겠지.
초특급 야뉴스.
초특급 야뉴스.
야, 야, 야, 야, 야뉴스.
아, 젠장.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들어.
이것 봐.
음유시인들이 부른 노래가 귀에 맴돌아서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잖아.
작전대로라면 어차피 사라질 놈.
더 이상 놈의 이름을 부르는 노래 따위는 안 불러도 되겠지.
머릿속이 환해졌다.
레기온은 트레비아 공작을 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저한테 맡겨 주십시오.”
“역시 초특급 야뉴스. 하지만 혼자서 괜찮겠소?”
“저 말고 쟤들도 있는데요. 뭐.”
레기온은 셔틀과 프로파일러를 가리켰다. 그들은 주변의 기세에 눌려서 기가 팍 죽어 있었다. 우리는 지금 적진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고요, 라고 외치는 눈빛이었다.
특히 저 새끼……. 프로파일러. 그렇게 대놓고 살려 주세요, 라는 눈빛으로 주위를 쳐다보지 말란 말이다.
“시종들이 무슨 힘을 쓰겠소. 괜찮은 호위 기사들을 몇몇 빌려드리겠소.”
“아닙니다. 많은 병력은 저들의 노여움만 키울 겁니다. 잘못하면 왕세자 전하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어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들도 왕세자 전하는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막판에 몰리면 어찌 될는지 저도 장담할 수가 없어요.”
“그럼?”
“최대한 저들을 자극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말이오?”
“일단 포위부터 푸세요.”
포위를 풀라는 말에 트레비아 공작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아, 실언을 했습니다. 포위를 풀라는 뜻이 아니고 조금 뒤로 물리라는 소리입니다. 이 상태를 보세요. 당장 왕세자 전하를 풀지 않으면 몰려가서 몰살을 시키겠다, 라는 기운을 풀풀 풍기지 않습니까.”
“아아, 무슨 뜻인지 알겠소. 그럼 다음 사안은?”
“그거면 됩니다. 일단 멀찌감치 떨어지세요. 저들도 안심을 하게끔. 아, 저들이 우리와 협상을 할 마음이 생겼구나, 라는 생각을 가지게요. 이렇게 바벨탑을 둘러싸고 협상가를 보내니 족족 죽이죠.”
“역시 대협상가답소. 곧바로 시행하겠소.”
트레비아 공작은 부관들에게 레기온의 말을 전했다.
명령은 시행됐다.
바벨탑을 둘러싸고 있던 1만에 달하는 병력이 천천히 뒤로 물러났다.
한 100미터쯤?
장난해?
“한 천 미터쯤 물러나시죠.”
“너무 멀지 않소?”
“어차피 저들은 포위망을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그러니 좀 멀어도 상관없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후, 알겠소. 당신은 왕국의 보물이오.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꼭 신호를 보내시오. 내, 공작께 달려오겠소.”
“알겠습니다. 마음이 너무도 따뜻해지는군요. 그럼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리기 위해서 노력을 하겠습니다.”
“무운을 빌겠소.”
“트레비아 공작 각하도요.”
트레비아 공작은 군대를 뒤로 물렸다.
저들이 꽤 멀리 떨어졌다.
이제야 레기온도 한숨을 돌렸다.
“어쩌시려고요?”
셔틀이 재빠르게 다가와 불안한 눈빛으로 레기온을 바라봤다.
“인질범들을 친다. 그리고 왕세자를 구한다.”
“…….”
셔틀과 프로파일러는 잘못 들었나? 라는 표정이었다. 레 사장이 드디어 미쳤나? 라는 표정 같기도 하고.
“왜? 내 말이 안 믿겨?”
“제가 그 말을 한다면 믿기겠습니까?”
“네가 하는 말은 안 믿겨. 하지만 나잖아. 나라고. 레기온.”
“누가 뭐래요? 존나 짱 쎄고 잘난 척 쩌는 레 사장님.”
“이 새끼가 맞먹으려고 하네.”
“저는 진실을 말했을 뿐.”
“어쨌든 나니까 할 수 있는 일이야. 겨우 500명이라고.”
“500명을 어찌 다 상대합니까?”
“너는 불가능하지만 나는 가능하다니까.”
“흐흠.”
“그 못 믿겠다는 표정은 뭐지?”
“아니요. 믿을게요. 혹시 초그랜드 마스터로 변신하고 그래요?”
“초그랜드 마스터?”
그랜드 마스터도 아니고 초그랜드 마스터라니. 그런 말은 처음 들어 본다.
“동영상에서 봤는데 그런 게 있더라고요. 불타오른다! 불타오른다! 나는 분노에 불타오른다. 초그랜드 마스터! 초그랜드 마스터!”
“그래?”
“네.”
“나도 한번 봐야겠다.”
사실 8성급에서 살짝 정체된 느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9성급까지 어찌 도달해야 하는지도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분노로 인해서 불타오르면 초그랜드 마스터로 변하다니.
혹시 그게 9성급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힌트를 얻게 됐다.
레기온은 셔틀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새끼, 넌 진급이다.
“어쨌든 내가 놈들의 우두머리를 잡을 거야. 너는 뒤로 프로파일러 보호하면서 빠져 있어.”
“500명이나 있는데 그게 가능할까요?”
“나니까 가능하다.”
셔틀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레기온을 바라봤다. 저 쩌는 자신감. 도대체 실패하면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저러나.
“자, 그럼 한번 가 볼까.”
레기온은 자신감에 찬 발걸음으로 선두에 서서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