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432)
마법은 괜히 배워서-433화(433/502)
# 433
불길한 도시 2
레기온은 빙그레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대인배처럼 행동하삼. 평소대로 주먹부터 나가면 누가 공작으로 생각하겠음. 자, 너님이 누구?
레기온 공작.
-맞았음. 어떤 공작?
왕국 최연소 공작.
-맞았음. 어리기에 남들이 얕볼 확률이 무척이나 높음. 이럴 때일수록 주먹질은 하지 말아야 함.
나도 그쯤은 알아.
레기온은 하늘을 바라봤다.
어느새 가을이 다시 찾아왔다.
얼마 전까지 한여름의 폭염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다.
특히 농사를 짓는 늙은 농부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자식들이 이렇게 더우니 밀밭에 나가지 마세요, 라고 만류했다. 하지만 노인네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쟤들도 다 생명이여. 쟤들도 우리들과 똑같이 목이 마르고 힘들어혀. 그러니 내가 도와줘야 해.”
하지만 나이가 많은 농부들은 뜨거운 태양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올해만 열사병으로 서른 명 이상이 숨졌다고 한다.
근래 보기 드물 정도로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런 여름의 태양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뒤로 물러났다. 아침저녁이면 꽤 쌀쌀해졌다.
오전 10시쯤이 가장 상쾌하다. 살짝 쌀쌀하면서도 숨이 깊게 들이켜진다. 하늘은 무척이나 높고 구름 한 점 없는 날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이렇게 기분 좋은 날에 사람을 팰 수는 없지.
암.
레기온은 한쪽 입술을 뒤틀었다. 남들이 보면 야비하고 비웃는 듯한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전생에 몬샌겨는 그런 레기온의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도시적인 남자로 보인다고 말했었다. 세련되어 보인다는 말도 덧붙여서.
왜 갑자기 그녀의 말이 떠올랐는지 모르지만…….
지금 나는 전생 때보다 잘생겼으니까 그런 표정을 지으면 주변 사람들이 몽땅 뻑이 갈 것 같았다.
레기온은 입술을 뒤틀면서 손가락을 흔들었다.
“괜찮습니다. 누구나 실수를 할 수는 있죠.”
최대한 너그럽게.
바세라바밥은 깜짝 놀라 레기온과 애나벨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 애나벨 백작을 자극하면 어떡하나? 너그럽게 웃으면서 받아 줘야지.”
“네?”
“누가 봐도 도발적인 행동 아닌가? 물론 자네의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은 아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아닌 것 같네. 이 노인네의 참견이 너무 심한가?”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참고로 바세라바밥은 재상이라는 지위를 받았다. 하지만 작위는 받지 않았다.
귀족도 아니면서 서열로는 왕 바로 아래였다. 매우 특이한 형태였다. 작위도 없이 재상의 위치까지 오른 사람은 이제껏 단 한 명도 없었다.
5급 공무원이 되면 최소 남작의 작위라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바세라바밥은 한사코 작위를 거절했다. 나라가 안정이 되면 저는 마탑으로 가서 평생 연구에 매진할 겁니다, 라고 라우젤 왕에게 못을 박았다.
그래서 저는 귀족의 작위가 필요 없습니다, 라고도 말했다.
라우젤 왕은 어떡하든 바세라바밥을 묶어 두고 싶었지만 그의 뜻이 워낙 완강했다.
어쩔 수 없이 일시적으로 바세라바밥은 재상의 자리를 맡기로 한 것이다.
역시나 그는 탁월하다. 그가 재상의 자리에 오르자 내실이 빠르게 안정됐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재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시진피 공작의 심한 견제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성벽처럼 굳건하다.
라우젤 왕은 국민들의 영웅이다.
잠룡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수많은 호걸들을 데리고 한꺼번에 전세를 뒤집었다.
비록 국왕파가 시진피 공작과 바세라바밥으로 나눠졌다고는 하지만 라우젤 왕을 미는 귀족들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 왕이 미는 재상이다.
아무리 시진피 공작이라고 하더라도 결정적인 약점이 없다면 바세라바밥을 밀어낼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작위가 없으면서도 바세라바밥은 자연스럽게 레기온에게 하대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레기온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바세라바밥이 극존칭을 썼다면 오히려 그게 더 부담스러웠을 테니까.
바세라바밥의 말에 레기온은 애나벨 백작을 보았다. 눈빛이 무겁게 착 가라앉아 있었다. 그를 호위하고 있는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레기온이 공작이 아니라면 당장이라도 검을 빼 들고 손을 쓸 기세였다.
아니 왜?
“씨발……, 이거 엿 같아서……. 큼큼, 공작 각하. 제가 무례를 범했나 봅니다. 다시 한 번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저는 상업 도시 컨저링을 맡고 있는 애나벨 백작이라고 합니다.”
애나벨이 레기온에게 군례를 올렸다.
씨발, 이거 엿 같아서……. 작게 말했지만 레기온도, 바세라바밥도 확실히 들었다.
레기온과 바세라바밥을 호위하는 무사는 존 윅 백작이었다.
본래 시진피 공작의 오른팔이었으나 마지막 전투에서 인플레인자와 사스 백작을 효율적으로 막아 낸 공적을 인정받아서 단숨에 백작으로 승급을 했다.
존 윅은 시진피 공작에게서 독립을 했다. 아직도 그와는 끈끈한 연결 고리를 가지고 있지만 예전처럼 서로 간에 느끼는 감정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특히 레기온과 드레이져의 상식 초월의 무력을 목격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
왕국 7대 강자.
존 윅의 생각으로는 그것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닌가 싶었다.
다 때려 치고 왕국 2대 초강자와 5대 강자로 구별을 해야 한다.
당연히 초강자는 레기온과 드레이져였다.
다른 다섯 명의 강자들이 이 둘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실종이 된 포르세 후작조차 이들과 맞상대를 해서 이길 것이라는 이미지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강한 사람은 포르세 후작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레기온 공작과 드레이져 자작은 그의 상식을 한꺼번에 뒤엎은 사내들이었다.
그러한데…….
저 하룻강아지 같은 애나벨 백작이 레기온 공작을 도발한다.
물론 레기온 공작이 조금 기분 나쁘게 했을 수도 있다.
그게 뭐?
공작 각하다.
백작 따위와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감히 공작 각하 앞에서 욕을 내뱉어?
이런 개새끼가.
존 윅이 앞으로 나서면서 검의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애나벨을 바라보는 눈빛이 매우 험악하다.
당장이라도 오러를 가득 담은 검날을 빼 들 것 같았다.
“당신 뭐라고 지껄였나?”
존 윅이 살벌하게 물었다.
존 윅에게 고개를 돌린 애나벨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이건 또 뭐야?”
“당신……. 각하 앞에서 뭐라고 했냐고?”
“내가 뭐라고 하든 당신이 무슨 상관인데?”
“공작 각하 모욕죄로 목을 날리겠다.”
“뭐? 이런 미친 새끼. 처음 보는 새끼가 다짜고짜 내 목을 날리겠다? 한번 해 봐. 이 새끼야.”
참지 못한 존 윅의 검집에서 빛이 사방으로 뻗어져 나왔다. 섬광이 번쩍인다.
동시에 존 윅의 오러가 수십 가닥으로 변해서 애나벨의 전신을 뒤덮었다.
죽일 마음은 없다.
하지만 그가 타고 있는 말을 토막 낼 생각이었다. 그는 시진피 공작파에서 최강의 기사였다.
일군의 한 장군을 맡을 만큼 지휘 능력도 탁월하다.
까가가가강!
그런 그의 검이-
허무할 정도로 막혔다.
애나벨 뒤에 서 있던 거대한 체구의 사내들이 대검으로 오러를 튕겨 낸 것이다.
적어도 2미터 30센티는 될 법하다. 보기 드문 거인들이었다.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았다.
상의는 벗고 있었다.
거대한 대검을 들었을 뿐, 방패도 없었다. 있는 것은 두 개의 구멍이 뚫린 철로 된 안면 마스크였다.
안면 마스크 때문인지 표정을 읽어 낼 수가 없었다.
“호, 제법.”
존 윅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백 명의 호위 기사들도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명령이 떨어지면 금방이라도 검을 빼 들 기세였다.
“그만해요.”
레기온이 존 윅을 말렸다.
“하오나……, 애나벨 백작이 각하를 모욕했사옵니다. 이건 하극상이옵니다. 결코 넘길 수 없는 문제입니다.”
존 윅은 화가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레기온이 어리다고 결코 얕보지 않는다. 그는 아직도 레기온이 얼마나 강한지 무력 수준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렴풋이 사상 최연소 그랜드 마스터가 아닐까, 혼자서 짐작할 뿐이다.
저 나이에 그랜드 마스터라고?
사실 말이 되지 않는다.
말이 되지 않지만 심증으로 레기온 공작은 그랜드 마스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심증은 점점 굳어져 가고 있었다.
만약 레기온과 드레이져가 같은 그랜드 마스터라면?
왕국의 홍복이다.
최소한 50년간은 어떤 외적의 침입에서도 맞설 수 있게 됐다.
그랜드 마스터란 단어가 주는 무거움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 어떤 인간도 그랜드 마스터 앞에서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담하건대…….
레기온과 드레이져가 정말로 그랜드 마스터라면…….
라우젤 왕이 성군이라면…….
이 셋의 시너지 효과가 왕국을 제국으로 탈바꿈시킬지도 몰랐다.
제국이라.
얼마나 가슴이 뛰는 단어인가.
존 윅은 언제부터인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기에 사상 최연소 그랜드 마스터일지 모르는 레기온에게 불경한 애나벨에 대해서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하지만 레기온 본인이 괜찮다고 한다. 본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자신이 더 이상 주제넘게 나설 수는 없었다.
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삼킨다.
그는 검집에 검을 집어넣으면서 애나벨을 노려봤다.
애나벨은 싱글싱글 웃으면서 입 모양으로 ‘뭐? 뭐? 어쩌라고?’라고 말했다.
정말 살의를 불러일으키는 새끼다. 명령만 떨어지면 단숨에 목을 쳐 내고 싶었다.
그 전에 애나벨 뒤에 서 있는 기이한 형태의 호위 무사들을 걷어 내야겠지만.
“개새끼가 짖는다고 인간이 같이 짖으면 꼴이 뭐가 됩니까.”
레기온이 말했다.
“네?”
존 윅은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다.
하지만 애나벨은 레기온이 무슨 말을 하는지 단박에 알아들었다.
그의 송충이 같은 눈썹이 심할 정도로 비틀렸다. 술을 마신 것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입술이 옴짝달싹거린다.
“우리는 인간답게 행동합시다. 개새끼처럼 행동하지 말고. 멍멍 짖으면 우리는 턱을 간질이면 됩니다. 그럼 개들은 좋아해요.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짖으면 좀 팬 다음에 개장수한테 팔아 버립시다.”
“아, 큭큭큭. 그래도 되겠습니까. 좀 버릇이 없는 개새끼 같던데.”
“칼로 할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다. 이렇게. 이렇게.”
레기온은 개를 밟는 시늉을 했다. 그럴 때마다 애나벨은 자신이 밟히는 것처럼 움찔움찔거렸다.
“이렇게 밟으시면 됩니다. 안 짖을 때까지. 개새끼들은 맞아야 말을 잘 듣거든요.”
“알겠습니다.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일단은 개새끼가 짖는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겠습니다.”
“네네, 인간은 인간답게. 개새끼는 개답게.”
“네, 인간은 인간답게. 개새끼는 개답게.”
존 윅은 터지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면서 애나벨을 바라봤다.
어이구, 저 새끼, 눈깔 봐라. 사람 잡아먹겠네.
애나벨의 눈동자는 흡사 언데드의 안광처럼 엄청나게 살벌한 기운을 대놓고 뿜어 대고 있었다.
그런 애나벨을 보는 존 윅은-
아주 속이 시원했다.
굳이 주먹이 아니더라도 말로도 사람을 이렇게 짓뭉갤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바세라바밥 님 가시죠. 제국의 공주가 올 시간이 다 됐습니다.”
“으음, 그러자고.”
바세라바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애나벨을 슬쩍 바라봤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머리에서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츠츠츠.
이건 자네의 불찰일세.
레기온 공작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개기면 어떡하나.
이만한 걸 다행으로 알게.
레기온 공작과 얽혀서 무사했던 사람은 한 명도 본 적이 없네.
바세라바밥은 애나벨의 명복을 빌어 줬다.
어차피 오늘은 애나벨의 성에서 하룻밤을 신세 져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5성급 호텔을 잡고 싶지만 이곳에서는 그 정도로 수준 높은 호텔은 없었다.
제국의 공주를 모실 수 있는 곳은 애나벨 백작의 성 정도밖에 없었다.
그러니 더 이상 레기온 공작에게 까불지 말고 조용히 죽어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레기온 개새끼.”
애나벨은 그럴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는 목에 건 목걸이를 손으로 꽉 쥐었다.
목걸이에서 검은빛이 흘러나와 애나벨에게 마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는 스톤 헤드교의 독실한 신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