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488)
마법은 괜히 배워서-489화(489/502)
# 489
불타는 들판에도 꽃이 필까 2
레기온의 수염은 덥수룩하다. 눈 밑은 퀭하고 다크 서클이 얼굴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그는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개고생을 하고 있는 중이다.
문득 과거를 되짚어 봤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은 과연 어떠했는가.
와!
눈물 난다.
나처럼 슬픈 인생을 살아온 인간이 몇 명이나 있을까.
지능이 떨어져서 거의 개와 친구를 맺을 뻔한 적도 있었다.
나만큼 다이어트에 빠삭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살을 빼기 위해서 미친 갑옷을 입고 6개월간 인간 같지 않은 생활을 한 적도 있었다.
내가 개고생을 할 때마다 작위는 올라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뭔가의 농간이다.
너 고생했으니까 옛다, 떡 하나 먹어라. 이런 느낌이랄까.
어느새 돈도 많이 벌고 공작의 작위까지 올라갔다.
왕국에서 내 위에는 왕족밖에 없다.
남들이 보기에는 꽤 성공한 인생으로 보일 듯하다.
그런데!
왜 나는 전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정말 죽을 지경이다.
정말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나를 봐라!
중력 100배에만 적응하는 데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다(아직도 200배 중력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밖의 세상에서는 100미터를 달리는 데 눈 한 번 감았다 뜨면 됐다.
이곳에서는?
처음에는 한 시간쯤 걸렸다. 거의 굼벵이가 기어가는 수준이었다.
몸이 너무 무거워서 내장이 파열 직전까지 갔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전력으로 초마력을 사용했다.
24시간 초마력을 사용해서 육체가 압축되는 것을 견뎌 냈다.
잠을 잘 때도, 숨을 쉴 때도, 초마력을 푸는 순간 내 몸무게에 압축이 돼서 ‘펑!’하고 터지고 말 것이다.
만약 그랜드 마스터의 수준으로 이곳에 왔었다가는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강해지기 위해서 들어왔다가 자신의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죽는다니.
그런 비극이 어디에 있단 말이겠는가.
하여튼 나는 6개월간 오로지 이 말도 안 되는 중력에 맞서서 생존에만 집중을 했다.
쉴 새 없이 나타나는 몬스터들은 사실 별 게 없었다. 한 방 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눈앞에서 깝죽거릴 때는 얼마나 속이 뒤집혔던가.
어디서 많이 봤던 개미가 나타나 자신의 발끝을 툭툭 건드리면서 ‘헤이, 친구, 우리 경주 한번 해 볼까.’라고 했을 때는 밟아서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관대하다.
관대해서 밟아 죽이지는 않았다.
“꺼져!”
“헐, 존나 느린 인간 새끼가. 내가 얼마나 빠른지 보여 줄까?”
“꺼지라고!”
아놔!
눈을 의심했다.
개미가 경공술을 펼친다.
아닌가.
중력 200배에 적응이 돼서 겁나 빨라진 개미인 것일까.
아아~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자신은 개미보다 느리다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는 간신히 중력에 적응을 할 수가 있었다.
중력의 적응이 될 때쯤-
눈앞에 갑자기 끝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초고층 탑이 나타났다.
화살표로 ‘들어가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갔다.
들어갔더니 ‘못 나갑니다.’라는 말이 또 적혀 있었다.
이런 어이가 없는 개 같은 상황을 어찌해야 할까.
-나가고 싶으면 전 층을 클리어하시오.
“몇 층인데?”
-9999층.
…….
레기온은 할 말을 잃었다.
아무리 드래곤이 만든 시설이라지만 이건 말도 안 된다. 9999층? 그냥 걸어가도 1년은 걸리겠다.
한데 그냥 걸어갈 수도 없었다.
층마다 생전 처음 보는 몬스터들이 쉴 새 없이 습격을 해 왔다.
가까스로 1천 층쯤 올라가니 그랜드 마스터를 능가하는 괴물들이 다수 출현했다.
피를 토하면서 2천 층쯤 올라가니 초그랜드 마스터급의 괴물들이 ‘넌 이제 못 갈걸’이라면서 떼거지로 습격을 했다.
말도 안 돼!
이거 사실 나를 가둬 놓기 위해서 만든 프리티아의 함정 아니야?
도대체 그년은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시설을 만들 수 있던 것일까.
하긴 작가 마음인데 무엇인들 못 하랴. 개연성 따위는 이미 밥 말아먹었는데.
따지지 말자.
그냥 이런 말도 안 되는 시설이 만들어져서 고생하는 나만 생각하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밤이 되면 하늘에는 별이 가득하다.
별은 시간으로 뭉쳐져 있었다.
-120일 남음.
-이것을 클리어하지 못하면 넌 인간쓰레기. 여기서 나가도 제 역할 못 함.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누우면 저런 글자 때문에 열불이 나서 다시 일어나게 된다.
“깬다! 반드시 클리어해서 내가 드레이져보다 잘났다는 것을 보여 주고 만다! 중력 100배! 그 까짓것!”
불쌍한 레기온.
그는 평생 동안 중력 200배에서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 * *
베이컨은 정신을 차렸다.
“나 살아 있는 건가.”
신급 언데드가 발사한 수천 발의 거대한 에너지를 전속 하인들과 함께 막아 냈다. 정확히는 그가 가장 먼저 몸을 날려서 정면에서 막아 냈다.
그것은 어떤 마력보다 사악하고 강력했다.
만약 모든 마력을 짜내지 못했더라면 놈의 에너지를 소멸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대충 상상이 간다.
갈릴레오가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성벽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겠지.
놈의 상식 초월의 에너지에는 방어 탑도, 방어막도 소용이 없었다.
모조리 한꺼번에 증발시켰을 것이다.
도대체 저런 괴물이 인간계에 왜 나타났는지 기가 막힐 따름이다.
베이컨은 로또에게 짜내듯이 말했다.
“전원 후퇴시켜! 한곳에 힘을 결집해야 돼. 우리의 힘만으로는 놈들을 막아 낼 수가 없어.”
로또는 눈물을 흘리면서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너는 영원히 내 마음속에 있을 거야. 잘 가. 친구. 내가 죽는 순간까지 너를 기릴게.”
뭘까.
친구가 눈물을 흘린다.
나를 죽는 순간까지 기린다고 한다.
그런데 왜 나는 기분이 더러운 거지?
저 새끼 죽탱이를 날려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쉽게도 저 자식의 죽탱이를 날려 버릴 시간이 없었다.
“가라! 어서!”
“안녕! 내 친구야!”
친구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대를 이끌고 후퇴했다.
아, 젠장.
작가 새끼.
나를 죽이는 게 맞았네.
그런데…….
과연 주인님은 나의 죽음을 보고 오열을 할까? 분노를 터트리면서 ‘너희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리라!’ 외치며 레벨 업을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나의 작은 소원을 들어주시오!
나 역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소이다.
헤이즐러와 겨우 키스만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제발 장가 갈 때까지만이라도 살게 해 주시오.
그리고 베이컨은 의식을 잃었다.
…….
……
…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놀랍게도 베이컨은 의식을 되찾은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신께 기도를 한다.
하지만 베이컨은 이미 막장의 끝을 보여 주고 있는 소설을 쓰고 있는 작가에게 기도를 드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이다.
“끄응.”
베이컨은 몸을 일으켰다. 단전이 텅 비어 있었다. 신급 언데드의 포격을 전심전력을 다해서 막느라 마력이 모두 소비가 된 것이다.
베이컨은 그랜드 마스터다.
일반인의 범주를 한참 벗어났다.
다른 무인들처럼 하루 종일 앉아서 마나를 모을 필요가 없었다.
가만히 있어도 마력은 저절로 찬다. 주변의 자연력을 억지로 끌어모아서 마력을 채우는 일도 가능했다.
베이컨은 크게 호흡을 하고는 마력을 빠르게 불러 모았다. 워낙 단전이 커졌기에 본래의 힘을 되찾는 데는 1~2시간이면 될 듯하다.
그러나 그 1~2시간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것이 문제였다.
베이컨은 주변을 살폈다. 아직도 언데드 군단이 내뿜는 사기가 전 지역에 진동을 하고 있었다.
그는 주위에서 가장 높은 나무 위로 단숨에 올라갔다.
“우글우글하네.”
베이컨은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 깨달았다. 충격파에 휘말려 산봉우리 두어 개를 날아서 이곳까지 처박힌 모양이었다.
덕분에 상황이 어떤지 한눈에 보인다.
동쪽의 성벽은 반쯤 무너졌다. 그 앞으로 끝도 보이지 않을 만큼 온갖 종류의 언데드들이 진군을 하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모든 병력이 철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 새끼들이…….”
친구들은 그대로 성벽에 남아서 밀려드는 언데드 군단을 단신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전속 하인들.
레기온 공작과 처음부터 함께 해 온 무인들.
그렇기에 주인님에 대한 감정은 애틋하다. 그런 주인님의 영지가 초토화되고 있었다.
이곳은 주인님의 땅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땅이기도 하다.
결코-
더러운 것들에게 짓밟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리라.
친구들도 자신과 같은 마음인 것이다.
“새끼들, 도망칠 것처럼 얘기를 해 놓고서는.”
어쩐지 코끝이 시큰거렸다.
“후우.”
베이컨은 전심전력으로 경공술을 펼쳐서 동료들에게 달려갔다.
* * *
스물네 명의 소드 마스터이자 7서클의 마법사들.
인간계에서 보기 드문 마검사들이지만 그들은 악전고투를 벌이고 있었다.
문득 오크 마을로 장가를 간 다섯 명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본래 주인님에게 사로잡힌 탈영병은 서른 명이었다. 그중에서 스물다섯 명은 전속 하인이 되었고 다섯 명은 아마존 오크들에게 장가를 갔다.
그들은 지금 자식들을 잔뜩 낳고 잘 살고 있었다.
오크들이 대단한 것인지-
그놈들이 대단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낳았다 하면 한 번에 서너 명씩이다.
즉 전원이 쌍둥이들만 주구장창 낳고 있다는 소리였다. 특히 칼리 같은 경우에는 세쌍둥이를 3번 연속으로 낳았다. 자식만 9명이란 소리다.
대단하다.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덕분에 그때 헤어지고 나서 딱 두 번 봤다. 그는 육아에 지쳐서 우울증까지 왔다고 한다.
그들은 아쉽게도 무사로서의 길을 포기했다. 그 친구들의 목적은 자식들을 무탈하게 성인이 될 때까지 잘 키우는 것이다.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무사로서의 길을 선택했다. 결혼을 한 사람은 피라니아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번도 꿈 꿔 보지 못했던 경지에 도달했다.
소드 마스터.
우리는 탈영병인데.
꿈이라면 그냥 삼시 세끼 밥을 굶지 않고 먹는 것뿐이었는데.
참-
우리 많이 출세했다.
그렇지. 얘들아?
전장을 마음껏 누벼 봤다.
호사도 누릴 만큼 누렸다.
그러니-
이제 우리 모두 주인님께 은혜를 갚자.
스물네 명의 소드 마스터급 마검사들이 뿌려 대는 마법 검을 막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3등급으로 진화한 포식 마수, 영혼 강탈자, 다크 엔젤과 같은 사단장급 언데드들조차 그들의 막강한 전력을 막지 못하고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하지만-
그들의 무력도 한계에 다다랐다.
2등급으로 진화된 전설급 언데드들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정확히는 한두 마리라면 상대할 만한 전력이지만…….
보라!
리치 마몬의 소환수인 본 드래곤이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적어도 수십 마리 이상이다.
움직이는 다크 타워가 백 대 이상 밀려온다.
저것들을 스물네 명이서 무슨 수로 막아 내란 말인가.
그래.
어찌어찌 저것들을 막아 낼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저것만은 도저히 무리였다.
친구들 중에서도 차원이 다른 무력을 보여 주던 베이컨을 일격에 보내 버린 괴물.
초거대 신급 언데드를 전속 하인들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막아 내기가 불가능했다.
굼벵이처럼 생긴 초거대 신급 언데드.
그것에도 이름이라는 것이 있다. 신계의 인물들은 그것을 향해서 ‘엔시언트’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인류의 발생과 함께 나타나는 초고대의 괴물이기 때문이었다.
더욱 무서운 것은-
이것은 성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 많은 죽음과 사기를 흡수하게 되면 놈은 거대한 날개를 가진 나방과 흡사한 괴물로 변화한다.
신계는 그것을 ‘아이노우’라고 불렀다.
그 괴물에 대해서는 신계도 어쩌지 못할 정도로 강력했으니까.
놈이 성체로 바뀌게 되면 인류는 멸망한다. 그것은 기정사실이다.
아이노우가 한 번 펄럭일 때마다 발생하는 죽음의 가루는 반경 수백 킬로미터까지 날아간다.
즉, 놈이 대륙을 휘 한 번 저으면 죽음의 가루로 뒤덮인다는 것이다.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존재는 아무것도 없었다.
설사 드래곤의 브레스라고 해도 불가능하다.
막는 방법은 딱 하나!
성체가 되기 전에 놈의 숨통을 끝장내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무슨 수로 강대한 마력을 무차별적으로 쏘아 대는 굼뱅이 새끼를 막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죽을 수는 없잖아.”
절망감에 빠진 전속 하인들에게 베이컨이 말했다.
“어라? 안 죽었냐?”
로또가 반가운 표정으로 베이컨을 맞이했다.
“아직은 안 죽었다.”
“차라리 그냥 도망가지 그랬냐. 어차피 이곳에 오면 다 같이 죽는 것을.”
“도망간다고 해서 다른 곳은 괜찮고? 짧든 길든……, 저것들이 대륙을 끝장낼 것 아니냐.”
“하긴…….”
베이컨과 전속 하인들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 신급 언데드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도대체 저것을 어쩌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