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80)
마법은 괜히 배워서-80화(80/502)
# 80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1
쪼로로록-
드레이져는 자신의 잔과 술을 채우면서 물었다.
“그런데 내 초상화는 왜 산 거…… 유?”
“네가 내 고민을 해결해 줬어.”
“그러니까…… 뭐가 말이유?”
“내가 이곳에서 인지도가 조금 없잖아.”
“조금이 아니지…… 요. 아예 없지 않수?”
“…….”
레기온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드레이져는 찔끔했다. 살짝 레기온의 눈치를 살폈다. 기분이 나쁜가? 정정하자. 저 더러운 성격이 폭발하면 길거리에서 대가리를 박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 이 사람은 많은 곳에서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은 드레이져였다.
“생각해 보니 아예 없진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요.”
“그래, 조금은 있지?”
“있수. 확실히.”
없다. 확실히.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아주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면서 포커를 하던 시절에는 알렉산더 가문이 유명했을지 모르지만, 요즘엔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만큼이나 인지도가 없다고 봐야 한다.
나이 좀 지긋한 분들만 알렉산더 가문 얘기를 하면 ‘아~ 그래, 그런 가문이 있었지. 졸라게 강했지만 왕비를 건드리는 바람에 이상한 변방으로 쫓겨난 가문.’ 정도로 기억을 할 것이다.
당연히 레기온은 듣보잡.
그가 남작인지, 영주인지도 관심이 없었다.
있다면 단 하나! 엄청나게 잘생긴 외모 덕분에 인기가 갑자기 올라가고 있다는 정도였다.
그런 놈에게 쫄아서 이런 거짓말을 해야 하는 자신이 문득 싫어지는 드레이져였다.
“그런데 너는 되게 유명하잖아.”
레기온이 말을 이었다.
“뭐, 그동안 쌓아 온 경력이 있으니까…… 요.”
“그럼 내 인지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알 거 아냐. 대체 그게 뭘까?”
레기온은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드레이져는 두 눈을 깜박깜박 거렸다. 내가 왜 네 인지도까지 신경을 써야 하냐? 라는 눈빛이었다.
레기온이 품에서 중철 스태프를 꺼내려고 했다.
아차 싶은 드레이져가 움찔거렸다.
망할 놈, 시도 때도 없이 저걸 꺼내는데, 정말 공포스럽다. 어떻게 마법사라는 놈이 마법 쓰는 걸 한 번도 못 본다. 저 스태프도 마법을 쓰기 위해 만든 게 정말 맞나 싶다.
절대 아닐 것이다.
그런 용도라면 좋은 재질의 스태프가 얼마나 많은데.
‘나쁜 놈, 꼭 구타용으로 저딴 걸 만들어.’
정말 피도 눈물도 없는 주인이다. 사람을 패기 위해서 스태프를 만들다니.
저거에 맞으면 진짜 아프다.
그냥 아픈 정도가 아니다. 순간적으로 영혼이 빠져나갔다가 들어오는 기분이다. 하긴, 무게만 해도 자신의 도끼와 비슷할 지경이니.
그럼 뭐라도 대답을 해야 하겠는데…….
“그건 어떻…… 수?”
“뭐?”
“주인의 단단한 머리를 자랑하는 거유. 사람들 앞에서 돌도 깨고, 강철도 깨고, 나중에는 다이아몬드도 깨고. 이곳에서 주인의 명성이 단숨에 높아질 것 같은데.”
빠아악!
역시나 스태프가 드레이져의 정수리를 정확하게 내리쳤다.
“으으윽.”
드레이져는 손바닥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을 하고 나서 괜히 했다 싶었는데,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일단 그 첫 번째로 너랑 박치기부터 하자. 네 머리를 내 머리로 깨면 유명해지겠네. 그다음에 돌도 깨고, 강철도 깨고, 다이아몬드도 깨고. 아주 좋겠다. 머리 단단한 가문으로 유명해져서.”
레기온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자, 잘 모르겠수.”
“흐음. 이건 어때?”
“뭘…… 말이유.”
“네가 내 후견인이 되라.”
“내가?”
“그래. 네가.”
“귀찮아서 싫은데.”
레기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너를 내 하인이라고 소문내려고. 젊고 대단히 잘생긴 귀족이 드레이져를 하인으로 끌고 다니더라. 이것도 그림은 괜찮지 않아? 그 가문이 어딘데? 알렉산더래. 오오-! 그 예전에 대단했다는 그 가문? 역시 여전히 대단한 모양이군. 어때?”
“안 믿을 거유.”
“내일 백작네 집 앞이나, 광장 한복판에서 네가 대가리 박고 있으면 믿지 않을까?”
“…….”
드레이져는 도시 광장 한복판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원산폭격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미래가 암담해진다.
갈기갈기 찢겨져서 평생 얼굴을 가리고 살아야 할지도 몰랐다.
“잘못했수.”
“진정성이 안 보이는데.”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중이유. 발 벗고 후견인이 되겠수다.”
“그래, 진작 그럴 것이지. 잘 해야 한다.”
“맡겨만 주슈.”
그렇게 드레이져는 레기온의 후견인 행세를 시작했다.
레기온이 드레이져의 주인이라는 것이 알려져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일단 그런 일이 발생하면 드레이져에 대한 실력에 대해서 의문을 품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가 쌓아 온 명성도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어쩌면 위대한 명성인 ‘왕국 7대 강자’라는 프리미엄이 떨어져 나갈지도 몰랐다.
그럴 바엔 차라리!
레기온의 후견인 행세를 하는 것이 훨씬 낫다. 얻을 것은 없을지 몰라도 잃을 건 없다.
사람들은 아마도…….
레기온이 되게 운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쨌든 이것으로 이젠 정체를 감출 이유가 없어졌다.
그런데 이것들은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모양이다. 해서 드레이져는 레기온이 준 초상화를 넌지시 바닥에 던졌다.
그거 나다.
그러니까 모두 그만 떠들고 나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봐라. 너희들이 너무 떠들어서 귀 아파 죽겠다.
그러나 드레이져의 뜻대로 상황은 돌아가지 않았다.
“어? 어?”
하는 동안 젊은 귀족들은 드레이져의 초상화를 짓밟았다. 론스타의 신발 밑창에는 아예 초상화가 들러붙었다.
“아이 씨, 이건 또 뭐야?”
론스타는 다른 발로 초상화를 밟아서 떼어 냈다. 그 와중에 드레이져의 초상화는 반으로 쭉 찢어졌다.
“왜 이렇게 안 떨어져.”
론스타는 발에 붙은 초상화를 손으로 뜯어내서 좍좍 찢었다.
드레이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신체가 똑같이 찢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점점 속에서 부글부글 끓는다.
저 빌어먹을 병아리 새끼들이.
“모두 동작 그만.”
드레이져는 젊은 귀족들을 향해서 작게 속삭이듯 말했다. 당연히 그의 말을 귀담아 듣는 귀족들은 없었다.
이 병아리 새끼들.
드레이져는 콧김을 확 뿜으며 마나를 활성화시키기 시작했다. 마력으로 전환이 되면서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동! 작! 그! 만!”
가공할 사자후가 터졌다.
시장 통처럼 시끄럽던 천막 안에 엄청난 마력의 회오리가 휘몰아쳤다.
귀족들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우우웁.”
“커허허헉.”
내상을 입은 병아리들이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다. 단 한 명도 드레이져의 사자후를 견뎌 낸 병아리들은 없었다.
“어? 이 새끼들 겨우 이 정도로 쓰러지면 어떻게 해?”
마침 레기온이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어라?”
그는 주변을 돌아보면서 혀를 찼다.
“츠츠, 살살 좀 하지.”
페르시몬 백작이 거금을 들여서 개최했던 성인식 이후 ‘무예열전’은 전면 취소가 되고 말았다.
* * *
레기온과 드레이져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페르시몬 저택을 나섰다.
그곳은 발칵 뒤집혔다.
수십 명의 신관들이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페르시몬 백작과 하인츠도 기겁을 했을 것이다. 영지 전체의 젊은 귀족들이 피를 토하면서 쓰러졌는데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중 몇 명만 문제가 생겨도 페르시몬 백작의 명성엔 큰 흠집이 난다.
자신이 주최한 ‘성인식’에서 젊은 귀족이 죽었다?
이건 정말 보통 사안이 아니었다.
레기온은 인공호흡을 하고 있는 신관들의 어깨를 툭툭 치고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점심은 생선이었어요. 덜 익은 것 같더라고요. 피를 토한 사람들은 모두 생선을 먹었어요.”
신관은 꽤나 놀란 눈치였다.
이 잘생긴 귀족의 말이 맞다면 이건 식중독이다.
백작가에서 내놓은 음식을 먹고 젊은 귀족 대부분이 쓰러졌다.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주방장이 목이 날아가는 물론이고 그 위에 하인츠 자작, 더 위로는 페르시몬 백작까지 책임소재가 있는 문제였다.
레기온은 굉장히 속이 시원한 표정을 지으면서 드레이져와 저택을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밖으로 나와도 괜찮겠수?”
드레이져가 물었다.
“괜찮지 않으면.”
“그곳에 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해서.”
“뭔 상관이야. 백작이건 누구건 지금 정신없을걸. 장담하는데 나를 찾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거다.”
“뭐, 그렇게 장담한다면야. 그럼 나는 일 좀 보러 가도 되겠수?”
“볼일? 무슨 볼일?”
“그런 일이 있수다.”
레기온은 의심쩍은 눈빛으로 드레이져를 바라봤다. 바른 대로 말 안 하면 PT를 하든지, 원산폭격을 하든지, 금고아를 조이든지 하겠다는 눈빛이었다.
뜨끔한 드레이져는 솔직하게 말했다.
“정보 길드에 볼일이 있수.”
“정보 길드는 왜?”
“뭐 좀 찾을 것이 있수다. 오랜만에 도시에 왔으니 좀 미뤘던 일들 처리 좀 하려고…… 요.”
“네가 돈이 어디 있어?”
“돈이야……. 뭐 어떡하든 되지 않겠수. 걱정되면 좀 주든가.”
“가불할래?”
드레이져의 표정이 팍 일그러졌다. 독하다. 독해.
“됐수다. 그냥 갔다 오겠수. 저택에서 봅시다.”
“어, 그래. 술 먹고 오면 죽여 버린다.”
드레이져의 등이 살짝 떨렸다.
저 새끼, 술 마시려고 했구만.
“먹고 오면 바윗돌에 갈아 버릴 테니까 알아서 해.”
“더럽고 치사해서 안 먹어!”
드레이져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레기온은 그런 드레이져의 뒷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기 시작했다.
* * *
레기온은 눈앞에 있는 다섯 명의 남녀를 보았다.
몰골이 하도 추레해서 거지들인 줄 알았다. 거지들이 너무 배고프고 힘이 없어서 자신에게 몇 푼 구걸하려고 몰려든 줄 알았다. 그래서 10실버도 준비했다.
그런데 웬걸.
돈 받을 생각은 안 하고 무기를 꺼내 든다. 살기를 풀풀 풍기면서.
“오랜만이요. 레기온 남작.”
우옷! 누군데 나를 알지? 내 잘생긴 얼굴이 벌써 동네방네 소문이 퍼진 건가?
“너무 변해서 못 알아볼 뻔했소.”
“잉? 내 외모가 변한지 어떻게 알아?”
“당신한테 그만큼 당했는데 모르면 병신이지.”
“나한테 당해? 너희가 누군데.”
“…….”
다섯 명의 남녀는 큰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그렇지 않아도 산산이 깨졌던 자존심인데. 이번에는 그 자존감까지 흔들렸다.
“우리를 기억 못하오?”
“모르겠는데.”
“정말로 기억 못하오?”
“모르겠다니까.”
“도대체 왜 기억을 못하오.”
“내가 너희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어?”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어찌 우리를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오.”
“미안하게 왜 그러냐. 기억 못할 수도 있지. 그 검으로 날 공격할 거야?”
“죽일 것이오.”
“나는 너희들이 누군지 모른 채 죽어야 하는 거야?”
“당신을 죽인 사람이 누군지 기억해야 하오.”
“알았어. 기억해 줄게. 너부터 이름 대 봐. 한 명씩.”
“나는 하이모요.”
“나는 스틸.”
“버팔로요.”
“헤일러.”
“미즈셋이에요.”
그제야 레기온의 표정이 밝아졌다.
“아, 너희들이구나.”
“이제 우리를 알아보겠소?”
“응, 알다마다.”
스르렁.
하이모는 검을 빼 들었다. 그의 검에서 블레이드가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다른 용병들도 검을 빼 들고 포위하듯이 레기온 주위로 몰려들었다.
“알아봤으니 다행이구료. 우연찮게 당신을 발견했지만…… 우리한테 한 짓이 있으니 억울해하지 마시오. 크게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 주겠소.”
“아, 죽기 전에 하나만 묻자.”
“무엇을 말이요.”
“너희들 밥은 먹고 다니니? 얼굴이 많이 상했어. 도대체 그동안 뭐하고 다닌 거냐? 얼굴을 전혀 못 알아볼 정도로 망가졌다.”
“뭐?”
하이모는 무척이나 당황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알렉산더 영지를 나서고 나서부터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 덕분에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어떠한지 까먹고 있었다.
서로의 얼굴을 본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볼이 퀭하다. 다크 서클은 턱밑까지 내려왔다. 입고 있는 옷은 다 헤져서 거지처럼 보였다. 손등도 부르텄다. 꼭 거북이 껍질 같았다.
그동안 따뜻한 물로 한 번도 씻지 못했다.
“츠츠, 나 죽이기 전에 밥이나 한 끼 먹자.”
“뭐어?”
“너희가 죽을지 내가 죽을지 아무도 모르잖아. 그러니까 밥이나 한 끼 먹고 시작하자고. 나도 배고파.”
레기온은 가장 가깝게 있던 주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이모와 용병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레기온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이 상황은?
레기온은 멈칫하더니 그들을 향해서 손짓했다.
“뭐해. 어서들 오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