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88)
마법은 괜히 배워서-88화(88/502)
# 88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 1
“헉헉헉.”
하인츠는 저택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을 닫고 창문 밖을 슬쩍 보았다. 호위 기사 두 명이 아직 서 있었다. 아무리 ‘기억 바꿔 치기 마법’과 ‘세뇌 마법’을 동시에 걸었다고는 하지만 언제 기억이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저들의 실력이 자신을 넘어서는 순간 그 마법들은 무용지물이 된다.
하지만…….
하지만 이것만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5서클의 벽을 깰 수가 있다.
하인츠는 미친 듯이 기뻐서 미칠 것만 같았다. 소리라도 마구 지르고 싶었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니 몸으로 표현하자.
얼쑤, 덩실덩실.
“여보…….”
아내가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들고 있던 쟁반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쟁반 위에 있던 우유가 든 잔이 바닥을 적셨다.
그녀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하인츠에게 다가와 손을 덥썩 잡은 아내가 말했다.
“가장으로서 많이 힘들었나 보네요.”
“응? 아, 뭐.”
“가요.”
“음, 어딜?”
“나한테는 다 말해도 돼요. 저는 이해하니까요.”
“그러니까 뭘?”
“신전에 가요. 가서 치료 받읍시다.”
하인츠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아놔, 그런 것 아니거든.”
“뭐가 그런 것 아니에요. 애들 볼까 무서워요. 초기 단계 같으니까 지금이라도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 기분이 매우 좋으니까 말도 안 되는 것으로 꼬투리를 잡지 마.”
“기분이 좋다고요? 조울증이네요. 조울증이 확실해요. 포션 몇 병이면 조절이 가능할 것 같아요.”
“아니라고 했지.”
하인츠는 고개를 흔들고는 자신의 서재로 들어섰다. 아내가 울먹이면서 그를 불렀지만 모른 척을 했다.
의자에 앉은 하인츠는 길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레기온 남작에게 받은 책자를 소중히 꺼내서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놓았다.
“드디어…… 드디어……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왔다.”
‘누구나 6서클이 될 수 있었다면 나는 결코 6서클에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by 마몬’ 책 제목을 보자 흥분으로 마구 떨려 왔다.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친필 사인이다.
시장에 돌아다니는 가짜 책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거야말로 가격을 매길 수 없는 전설의 책자다.
“응, 그런데 이건 뭔지?”
책 제목 옆에 작게 쓰인 글자.
‘누구나 6서클이 될 수 있었다면 나는 결코 6서클에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집 1권.
전권 30권.
하인츠는 책상에 얼굴을 묻었다.
씨발…….
그러면 그렇지.
레기온 개새끼.
* * *
에먼은 눈앞에 쌓인 쓸모없는 책자를 보면서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평범한 인간이 드래곤과 친해진 척하면서 뒤에서 칼로 찔러 잡는 법.
-엽기적인 드래곤.
-드래곤과 이별하는 101가지 방법.
-눈먼 드래곤의 도시.
다 쓰레기다!
쓰레기인 줄 알면서 몽땅 사서 확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쓰레기들을 사면서 들어간 돈만 100골드였다. 피 같은 돈이 저런 되도 않는 쓰레기 책들을 구입하는 데 소모가 됐다.
에먼으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한창 업장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이런 쓸데없는 짓으로 자금을 소모하고 있다니.
정보 길드원 대부분을 풀어서 드래곤을 잡는 법을 찾느라 영업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출 수가 없었다.
상대는 ‘크레이지 드레이져’였다.
그 개새끼가 작정하고 여기에 똥물을 뿌리기 시작하면 업장이 파토 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소문대로의 실력이라면 길드는 한 시간도 되지 않아서 간판을 내리게 될 테니까.
“그 새끼 혹시 우리한테 원한이 있는 거 아냐? 도대체 무슨 수로 우리 같은 길드가 드래곤 잡는 법을 알아낼 수가 있냐고!”
에먼은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당신의 드래곤은 나의 드래곤보다 아름답다, 라는 책을 잡고서 드레이져 면상이 던지고 싶었다.
1초, 속은 시원하고 황천길을 건너야 하겠지만.
“보스! 보스!”
부하 중에 한 명이 노크도 없이 사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 새끼가 미쳤나. 누가 허락도 없이 사장실 문을 벌컥벌컥 열어!”
에먼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젊은 부하를 바라봤다. 젊은 부하는 이마에서 쉴 새 없이 땀을 뚝뚝 흘렸다. 애처로워 보일 정도였다.
“그, 그게.”
“그게 뭐? 이 새꺄.”
“누가 찾아왔습니다.”
“누가 찾아왔으면 뭐? 내가 그런 것까지 알아야 돼?”
“그게 아니고. 제가 처리할 문제가 아니라서.”
에먼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그분이야?”
“드레이져요?”
“응.”
“다행히 아닙니다만…….”
“아니야?”
“네.”
에먼은 깜짝 놀랐던 속을 쓸어내렸다. 드레이져였다면 그가 미치도록 꼴 보기 싫어도 맨발로 뛰쳐나가야 했다.
“그럼 뭐야?”
“귀족입니다.”
“귀족?”
“네, 굉장히 잘생긴 귀족입니다. 그런데…… 보고 있노라면 괜히 열이 받고 그런 귀족입니다.”
“그런데?”
“그 자식이 보스를 불러오랍니다.”
“혹시 행패냐?”
“네.”
어쩐지 느낌이 쎄하다. 얼마 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했지 않은가. 본능이 속삭인다. 나중에 뒈지게 맞지 말고 어서 나가서 꽃잎이라도 뿌리라고.
“커스텀과 코스빅은?”
“그, 그들은…….”
괜히 물었다.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지 보지 않아도 뻔하다. 아마도 3합도 견디지 못하고 머리를 박고 있겠지. 3성 기사라고 해서 거금 들여 영입했는데 이젠 영 못 믿겠다.
맨날 맞고 다니는데 무슨 3성 기사란 말인가. 혹시 나보다 약한 것 아냐? 의심하게 된다.
벌컥-
또다시 문이 열렸다.
스태프를 든 사내가 에먼의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엄청나게 잘생긴 사내였다. 얼굴에 귀티가 잘잘 흐른다. 그를 보고 있자니 괜히 짜증이 난다.
스태프를 보는 순간 에먼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
이런 좁은 공간에서 마법사와 단둘이 있다? 그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꺼냈다. 민첩성을 높여 주는 마법 검이다.
이걸 휘두르면 상대는 자신의 목이 어떻게 떨어지는지도 모른다.
넓은 공터였다면 무조건 무릎부터 꿇고 사죄를 했을 것이다. 혹은 마법사를 보호하는 기사라도 있었다면 결코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상대가 마법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멍청한 마법사 새끼.
자신의 무지막지한 마력을 믿고 이런 좁은 곳에 뛰어들었나 본데.
잘못 생각했다.
이런 짓을 저지른 놈의 목을 따고 품에 있는 값비싼 물건을 빼낼 것이다. 딱 봐도 고가의 옷을 입고 있었다. 탈탈 털면 드레이져 때문에 입었던 손해를 만회할 수 있을 듯했다.
“죽어, 등신아.”
에먼의 마법검이 번쩍였다.
상대가 귀족이라고 하더라도 이곳에 들어온 이상 쉽게 나가지 못한다. 지하 길드에서 만큼은 내가 왕이니까.
빠가각!
불꽃은 에먼의 이마에서 먼저 튀었다.
* * *
레기온은 에먼의 집무실 의자에 앉아서 위스키를 마셨다. 엄청나게 맛이 좋은 위스키였다.
“진짜 굉장한 위스키네. 이런 맛 처음이야.”
레기온은 진심을 감탄했다.
-아일랜드산 위스키임. 대륙 최고의 명품.
“오호, 이곳에 와서 두 번째로 기분이 좋네.”
-첫 번째는?
“당연히 ‘썬더 지르콘’에 대해서 알았을 때지.”
-준비는 철저하게. 아무리 드레이져와 페르시몬 백작이 아는 사이라고 해도 이 일은 결코 말해서 안 됨.
“알고 있어.”
레기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드레이져를 떼 놓고 길드를 찾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드레이져는 레기온에게 말했다.
“이제 주인은 백작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됐수다.”
“잉, 그건 무슨 소리야? 그가 미스릴 광산을 포기한데?”
“아마도 그럴 거유.”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다 아는 방법이 있수다.”
레기온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드레이져를 쳐다봤다. 드레이져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입술을 쿡 다물자마자 레기온은 말했다.
“PT 8번 준비.”
“그는 내 사제요.”
1초도 되지 않아서 드레이져의 입에서 바른 말이 튀어나왔다.
정말 끈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드레이져다. 의리도 없나. 예의상 한 10분쯤은 참을 줄 알았는데.
“사제?”
“그렇수다.”
“원래 페르시몬 백작이 수도승이었어? 너도 수도승이고?”
드레이져는 이게 뭔 개소리야, 라는 눈빛으로 레기온을 바라봤다. 정말 느닷없이 멘탈 공격을 해 온다.
“무슨 수도승 말이유?”
“사제라면서.”
아, 정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구나.
“그 사제 말고! 내가 사형! 백작이 사제! 사부님과 사형제! 뭐, 이런 것 말이유!”
드레이져는 끝내 화를 벌컥 내고 말았다. 덕분에 1시간 동안 끔찍한 PT체조를 하고 말았지만.
그런 관계로 페르시몬 백작이 더 이상 마수를 뻗치지 않는다고 드레이져는 장담했다.
그래, 그건 참 좋은 일이다.
하지만 레기온의 볼일은 남아 있었다.
설사! 상대가 왕족이라고 하더라도 ‘썬더 지르콘’은 포기하지 못한다.
“이 지하실은 참 마음에 드네.”
-뭐가 말임?
마크가 물었다.
“방음이 확실하잖아.”
-돈도 많이 벌었으니 영지에 이런 거 하나 만드셈.
“그건 아니다. 고문실 만들었다가 걸리면 진짜 개 쪽이다.”
레기온의 말대로 건물 안쪽에서는 에먼과 길드원들의 심문이 한창이었다.
심문이라고 읽지만 고문에 가까웠다.
이럴 때는 리치 마몬이 제격이다. 외모만으로도 심장마비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빛이 비치면 인간의 외모가 살짝 보이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단발머리 해골이다. 저번에 삼킨 보석의 부작용 같지만 그것이 더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더군다나 고문하면 리치 아닌가.
예전에 마몬에게 물을 적이 있었다.
“리치들은 정말로 사람을 잡아다가 막 껍질을 벗겨 내고, 팔다리를 뗐다 붙였다 실험을 하고 그래?”
“그렇사옵니다. 리치뿐만 아니라 흑마법사들도 모두 행하는 건전한 실험이옵니다.”
“그게 어딜 봐서 건전한 실험이야? 엽기잖아. 우엑 토 쏠려.”
“주인님께서는 인간의 의료기술을 누가 발전시켰다고 생각하십니까?”
“응? 의료기술? 신관이잖아.”
“어찌 의료기술을 신관 따위가 발전시킬 수가 있단 말입니까. 신관은 단지 신성력에 의존했을 뿐입니다. 신성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의원들에게 전해지는 병을 고치는 기술은 저희 어둠의 마법사들에게서 전해진 것입니다.”
저어어어언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인간의 육체를 마구 해부하던 놈들과 의관들이 어찌 같은가. 둘 사이의 연관관계가 레기온의 머릿속에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인간, 동물들의 육체는 저희가 가장 잘 압니다. 당연히 어떤 병에 걸렸는지도 파악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육체로 실험을 하다 보니까 본의 아니게 병도 고칠 수 있게 되었다 이 말이야?”
“그렇사옵니다. 반대도 가능합니다.”
“어떤 반대?”
“인간의 몸을 고칠 수도 있지만 가장 고통스럽게도 할 수 있습니다.”
“고문?”
“맞사옵니다.”
리치 마몬은 안광은 번쩍이면서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그 기술을 여기서 써먹게 될 줄이야.
-아아아아악! 차라리…… 죽여 줘. 죽여 주세요. 제발. 시키는 일은 모두 하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거짓말 안 할게요.
얼마나 고통이 심한지 방음이 잘 되는 저택에서도 에먼의 비명이 얕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소리로다.”
레기온은 남은 위스키를 모두 마셨다.
-아아아악! 제발 그만해 주세요. 설계도요? 네, 제가 그 저택을 분해시켜서라도 구해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