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is learned for nothing RAW novel - Chapter (90)
마법은 괜히 배워서-90화(90/502)
# 90
단발머리 그 리치 1
불독과 론스타는 손을 잡았다.
그들은 젊은 귀족들 중에서 레기온에게 가장 큰 원한을 가진 자들이었다.
불독은 백작이 주최한 연회장에서 개처럼 까였고, 론스타는 백작령에 막 도착했을 때 처참하게 당했다.
각각 영지에서 옥이야 금이야 귀한 대접을 받고 자랐다. 누구도 그들에게 손가락질 한 번, 욕 한 번 하지 않았다.
부모들도 조부도 매를 든 적은 없었다.
그들은 태어나서 누군가에게 그렇게 매를 맞아 본 적도 없었고 무시를 당해 본 적도 없었다. 계속해서 악몽을 꿀 만큼 그들의 원한은 사무쳤다.
도저히 이대로는 못 넘어간다.
레기온!
그 자식의 뒈진 모습을 봐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시체 위에 오줌이라도 갈겨 줄 생각이다. 생각만 해도 10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다.
불독은 호위 기사 3명을 동원했다.
론스타도 호위 기사 3명과 함께했다.
본인들까지 합해서 도합 여덟 명이다. 이 정도면 저쪽 구석의 남작 따위 충분히 까부수고도 남을 전력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붙어 있는 덩치 큰 용병이 눈에 거슬리지만 겨우 한 명이다.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담을 넘어서 레기온의 숙소에 잠입했다. 메이드들과 하인들, 요리사도 퇴근했다. 남은 것은 레기온과 그 덩치 큰 용병 둘뿐이다.
다른 숙소에는 경비병이 붙어 있었지만 이곳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 소문이 사실인가 보군.”
론스타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문 말이오?”
불독은 론스타에게 물었다.
“백작 각하에게 찍혔다고 하더군요.”
“백작 각하에게?”
“그렇소. 백작 각하가 그와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소문이 이미 쫙 퍼졌소. 경비병도 철수시켰고. 너 따위를 위해서 쓸 돈은 없다, 라는 뜻이겠죠.”
“호, 그것 참 반가운 소문이구려.”
“레기온이 뒈져도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구료.”
“대충 마무리를 짓겠지요. 범인을 찾을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요. 그에게 원한을 가진 자들도 꽤 되고.”
“그 개새끼가 내 발밑에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고 비는 모습을 꼭 봐야 속이 시원하겠소.”
“그렇게 될 것입니다.”
불독과 론스타의 눈빛에서 흉광이 어른거렸다.
물론 그들이 아는 진실과 다르다.
페르시몬 백작이 꼴 보기 싫은 사람은 레기온이 아니라 둘째 사형인 드레이져였다. 더군다나 드레이져를 누가 건드릴 수가 있단 말인가.
경비원들로 그를 지키려고 하는 것이 더 웃긴다.
불록과 론스타는 그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이곳에는 괴물과 범이 한꺼번에 자고 있는 악의 소굴이라는 것을.
* * *
리치 마몬은 정원에 있던 그네를 타고 있었다.
끼이이익-!
끼이이이익-!
횃불은 바람에 펄럭펄럭 거린다.
모두가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정원. 인기척이라고는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사사사삭, 바람이 불어서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만 들렸다.
100퍼센트 자유도를 보장받은 리치 마몬은 자신이 원할 때 현실 세계로 나오는 것이 가능했다.
소환수에 불과한 자신이 자유자재로 현실세계와 왕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주인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리치 마몬의 충성도는 나날이 높아졌다.
얼마 전부터는 충성도 90에 달했다.
레기온이 부모의 원수가 되지 않는다면 변절할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부모님도 이미 돌아가셨으니, 변절할 이유 자체가 없다.
그가 굳이 정원까지 나와서 생각에 깊게 잠긴 이유.
다름 아닌 주인 때문이었다.
마몬은 주인이 사용한 ‘고대 마법’을 보고서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주인의 소환수가 되고 나서 어떤 비밀이 있는지 어렴풋이 눈치챘다.
주인은 ‘어떤 유령’에게 빙의가 됐다.
가끔 자고 있던 주인이 벌떡 일어나 혼자서 돌아다니기도 한다. 마몬이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그 유령’이 주인에게 좋은 쪽으로 행동을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 또 한 가지 비밀을 알게 됐다.
상상도 못했던 ‘고대 마법’에 사용.
리치 마몬이 ‘탈모 방지’를 위해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고대 마법을 주인이 사용한 것이다.
3서클의 공격마법이 자신이 가진 6서클의 공격마법의 위력과 비슷했다.
3서클과 6서클이란 단순히 숫자 세 개의 차이가 나는 것, 그 정도가 아니다. 수식과 마나, 얽힘, 결계, 쓰임 등의 여러 단계에 따라 공격력으로 따지면 수배 많게는 수십 배의 차이를 만드는 것이 서클의 단계이다.
이를 테면…….
3서클 마스터 마법 파이어 월과 6서클 마스터 마법, 두 파이어의 위력은 하늘과 땅의 차이라고 할 정도다. 3서클의 고대 공격 마법의 위력은 자신의 6서클 마스터 마법에 육박한 힘을 보여 준다.
그렇다는 말은 6서클의 고대 마법이라면…….
보통의 8서클, 혹은 9서클의 힘을 보여 준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8서클 헬파이어급의 6서클 마법이라니!
9서클 메테오스톰급의 6서클 마법이라니!
이러다가 저 주인님이 8서클, 9서클의 고대 마법이라도 쓰면, 이 대륙이 반으로 쪼개지는 건 아닐까? 생각만 해도 무시무시하다.
리치 마몬은 손가락으로 탐스럽게 자란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궁금하기는 하지만 탐나지는 않는다.
이미 주인님의 거룩한 뜻으로 인해서 평생의 소원이던 풍성한 모발을 얻지 않았는가.
리치 마몬은 고개를 들어서 보름달을 바라봤다.
보름달이 떠 있기에 마력이 더 올랐다.
“그래, 주인님을 위해서 기도를 올리자.”
리치 마몬은 보름달을 보면서 두 손을 곱게 모으고 레기온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보자면 그 모습이 무척이나 경건하다.
마치 주신을 위해서 기도하는 ‘성녀’와도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 * *
불독과 론스타는 걸음걸이를 멈췄다.
그들을 따르던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한곳에 꽂혀 있었다. 모두 얼이 나간 것 같았다.
“아직 저택에 남아 있던 사람이 있었던 같군요.”
론스타가 말했다.
“어쩔까요?”
그는 고개를 돌려서 불독을 바라봤다.
그들은 레기온의 목을 치려고 왔다. 같은 귀족끼리 살해가 가능한 경우는 결투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국법에 의해서 벌을 받게 된다.
지금 그들이 저지르려고 하는 짓은 분명 불법이다.
목격자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저 기도를 올리고 있는 여자를 죽여서 입을 막아야 한다. 누군가 저택에 침입했다는 것을 들켜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으니까.
“내가 처리하죠.”
불독이 나섰다.
그는 단검을 쥐고 조심스럽게 기도하는 소녀를 향해서 걸어갔다. 숨을 죽이고 조용히. 발걸음 소리는 전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머리카락을 손가락을 넘기는 그녀의 외모를 보고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데스티니!
“저,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불독은 눈을 의심했다.
달빛에 비친 그는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중성적인 아름다움이 있었다.
아니 여자가 확실하다.
저 탐스럽고 아름다운 머릿결은 남자라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이니까.
사르르르~
바람이 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 바람에 휘날린다. 향긋한 그녀의 체취가 불독의 뜨거워진 심장을 마구 뒤흔들었다.
그는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그녀를 죽일 수가 없소. 당신이 하시오.”
불독은 들고 있던 단검을 론스타 손에 쥐어 주었다.
그러나 론스타도 ‘기도하는 소녀’의 아름다움을 목격했다. 불독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환상적인 자태를 뿜어 대는 장면은 그의 각막에 똑똑히 박혔다.
론스타는 주먹을 쥐었다.
고개를 흔들면서 불독이 건넨 단검을 받지 않았다.
“목격자가 있어서는 안 되오.”
불독은 눈살을 찌푸렸다.
“나도 알고 있소.”
“그럼 어서 저 여자를 해치우시오.”
“난 못하겠소. 당신이 하시오.”
“허허, 겨우 저런 여자 한 명 해치우지 못해서 어찌 큰일을 하겠소. 우리는 자작가의 장자가 아니오. 전공을 세워서 백작으로 승급도 해야 하지 않겠소.”
“그건 그거고 난 못하겠소. 당신이 하시오.”
“제가요?”
“그래요. 당신이 하시오. 당신이 먼저 나서지 않았습니까.”
불독은 머뭇거렸다. 저 가녀린 기도하는 소녀에게 다가가 머리채를 잡고 목을 뒤로 꺾은 다음 이 단검으로 목을 벤다? 그럼 엄청난 피가 솟구치면서 자신의 얼굴은 몽땅 적시겠지.
으으, 차마 못하겠다.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는 괜히 먼저 나섰다면서 후회했다.
불독은 호위 기사들을 바라봤다.
“너희들이 저 소녀를 처리해.”
“도련님.”
“왜?”
“저희들은 기사입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기사서약을 했습니다. 어린아이와 여자는 죽이지 않기로.”
불독의 미간이 좁아졌다. 이 호위 기사 놈들이 여자들을 개처럼 패는 일을 몇 번이나 목격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를 죽이지 못한다고 한다. 어디서 구라를 까고 있어. 솔직히 말해. 저 소녀의 신비로움에 압도를 당해서 그런 거잖아.
“그럼 다 같이 갑시다.”
“다 같이요?”
“그래요. 눈 딱 감고 칼을 휘두릅시다. 안 그럼 오늘은 그냥 돌아가야 한단 말이오. 사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겠소. 레기온, 그 자식이 낄낄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또 봐야 하겠소?”
불독의 말에 론스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기온의 뻔뻔한 면상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좋습니다. 갑시다.”
불독과 론스타, 호위 기사들은 ‘기도하는 소녀’를 향해서 천천히 다가갔다.
어느새 그들은 ‘기도하는 소녀’가 있는 곳까지 다다랐다. 가까이서 보니 더 신비롭다. 그녀의 주변에는 은은한 녹색 광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정령들이 그녀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스르렁.
그들은 칼을 뽑았다.
“소녀여, 우리를 원망하지 말거라. 네가 운이 없었을 뿐이다.”
불독은 짧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모양이다.
소녀는 고개를 돌려서 불독과 론스타, 호위 기사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거짓말처럼 굳어져 버렸다.
뭐지? 이 괴물은?
리치 마몬의 얼굴은 멀리서 보면 희미하게 광채가 난다. 인간처럼도 보인다. 모두 레기온이 먹힌 보석 덕분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실체가 드러난다.
그는 흉악한 리치였다.
“이 쓰벌 것들은 뭐야.”
리치 마몬의 양손에서 거대한 화염이 동시에 생겨났다.
* * *
레기온과 드레이져는 아침 일찍 저택을 나섰다.
레기온은 ‘죽기 전에 여행해야 할 백작령의 100가지 명소’라는 책자를 뒤적거렸다.
그가 찾을 곳은 대장간이다.
1만 호가 넘는 이곳에서 대장간을 찾는 것은 토박이가 아니고서는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각각의 도시에는 상점과 길을 찾을 수 있는 책자를 판매한다.
“도둑놈의 새끼들.”
어차피 이 책을 보고서 여행객은 돈을 써야 한다.
그냥 공짜로 나눠 줘도 모자랄 판에 20실버나 받아 처먹다니. 레기온은 자신의 영지도 발전을 하게 되면 똑같이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뭐야, 저건.”
레기온은 걸음을 멈췄다.
아침부터 못 볼꼴을 봤다. 메이드들이 저 모습을 봤다면 기겁을 하면서 온갖 비명을 질렀을 터였다.
여덟 명의 사내가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발가벗은 채.
그들의 흉물스러운 그것도 모두 노출이 됐다. 새끼손가락보다 못한 그것은 레기온의 눈앞에서 덜렁거렸다. 누군가 그들의 똥꼬에 깃발을 꽂아 놨다. 깃발에는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내가 왜 아침부터 저런 역겨운 모습을 봐야 하지?”
레기온은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드레이져를 바라봤다. 네가 그런 것 아냐?
“나, 나는 아니유. 내가 왜 저런 변태스러운 짓거리를 한단 말이우.”
깜짝 놀란 드레이져는 양손을 흔들었다.
그도 놀랐다. 어떤 미친놈이 사내들은 저런 몰골로 이곳에 매달아 놨을까. 저택과 거리가 꽤 떨어져 있기에 전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정말 아니야?”
“정말 아니우. 내 이름을 걸고 맹세하오.”
“그럼 누가 저런 짓을 한 거야?”
“글세……. 누가 그랬으까나. 아주 예술작품을 만들어 놨소.”
드레이져의 말대로 행위예술 같은 느낌도 들었다. 거시기는 덜렁덜렁, 거꾸로 매달려서 흔들흔들.
레기온은 고개를 흔들고는 불독과 론스타의 앞을 지나쳤다.
“그런데 쟤들 알아?”
“모르겠소. 처음 보는 애들이오.”
“그래? 난 낯이 좀 익은데.”
“착각이오.”
“그런가.”
불독과 론스타는 레기온이 나타나기 1분 전에 깨어났다.
그의 얼굴이 보이자마자 눈을 감고 기절한 척을 했다. 이런 몰골로 도저히 아는 척을 할 수가 없었다. 내려 달라는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주신에게 빌었다. 차라리 제 기억을 없애 주세요.
주신은 그들의 자그마한 소원도 들어주지 않았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레기온이 자신들을 기억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너무 치욕적이어서 죽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들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