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0)
이세계 편돌이-9화(10/331)
9화. 납품받는 편돌이 (3)
팔에 굳은 덩어리를 닦아내는 데에 30분이 걸렸다. 죽는 줄 알았다.
닦는 도중에도 손님들이 찾아와서 한 팔로 일을 해야 했는데, 봉투에 물건을 도저히 못 담겠어서 끙끙대는 걸 윤하 누나가 옆에서 거들어 줬다. 영 부담스러워서 물어봤다.
“퇴근 안 하세요?”
“그 팔에 묻은 거 다 닦아내면요.”
“졸리실 텐데 그냥 가시지.”
“글쎄, 괜찮다니깐요. 찬이 씨가 안 도와줬으면 작업장 찾는다고 지금도 온갖 곳 날아다니고 있었을걸?”
말하며 콘 아이스크림 끝을 밑으로 향하게 집어넣는다. 저거 저렇게 담으면 봉투 터지는데….
“야근 안 하게 된 보답으로 도와주는 거니까, 아무 말 마요.”
그러라니 그러기로 했다.
“개인적으로는 수고비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데….”
“안 주셔도 돼요. 이미 점장님한테 돈 받았고.”
바로 거절했다. 이미 점장이 챙겨준 금일봉만 해도 알바 하루치를 한참 넘어갔으니까. 난 일당만 받으면 충분하단 생각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뭘 더 받고 싶지는 않았다. 사람이 쉽게 돈 벌면 쉽게 망가진다. 윤하 누나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실 줄 돈이 없어. 이번 달 잔고 바닥났거든요.”
“저 물류 때문인가 봅니다.”
“저것도 있고, 담당하던 게 몇 개 더 있거든요. 원래 헌터가 정산 직전엔 쪼들리니까, 이해 좀 해줘요.”
“이해하죠. 월급날 직전에 거지 아닌 직장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찬이 씨도 지금 돈 없나 봐요?”
집세 모자라서 어쩌나 하던 참이었는데 점장이 내 통장에 링거 꽂아준 참이다. 사람이 굶어 죽으란 법은 없구만.
“대신 카드 살아있으니까 마실 거라도 사드릴게요. 찬이 씨 초코우유 좋아해요?”
“좋아하는데, 지금은 못 먹어요.”
“에이, 사양하지 말고.”
“제가 사양하는 게 아니라….”
진짜 먹으면 안 돼서 못 먹는 거다. 이것도 팁이라면 팁인데, 편돌이 하는 도중에 절대, 절대 유제품 먹지 마라.
왜냐면 편돌이 일할 때의 특징 중 하나가 없던 유당불내증도 생겨난다는 것이고, 배탈이 나게 되면 해결할 방법이 딱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 걸어 잠그고 화장실로 뛰쳐나가는 거.
이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한데, 눈치가 엄청 보이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화장실 다녀오라고 대타를 세워주는 것도 아니라 그동안에는 편의점 영업이 중단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장실도 함부로 가기 힘들다. 초소 경계근무 서는 것도 아니고….
생리 현상 갖고 왜 그러냐며 얼굴에 철판 깔 수 있는 성격이어도 가능하면 먹지 마라. 우유 마시고 싶은 거 잠깐 참으면 몸도 마음도 훨씬 편해진단 말야. 전 유당불내증 없는데요? 하는 사람들도 그냥 먹지 말라면 먹지 마. 나도 없던 게 생겼다니까?
비슷한 이유로 폐기 잔뜩 쌓였다고 배 터지도록 주워 먹지도 말고. 경험자가 하지 말라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그럼 커피?”
“아메리카노 부탁드리겠습니다. 투 플러스 원 있던 걸 봐둬서….”
도중에 말을 끊었다. 손님이 와서였다.
시뻘건 얼굴은 표정이 풀려있고, 머리는 반쯤 벗겨졌는데 귀는 양옆으로 뾰족했다. 다섯 글자로 요약하면, 술 취한 엘프였다. 다가와서는 내게 물었다.
“사장… 그… 그, 소주 어딨어?”
“저쪽 냉장 코너 맨 밑에 있습니다.”
설명해 주자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휘청이는 걸음걸이가 심상치 않았다. 저거 딱 봐도 진상 부릴 것 같은데….
가져온 건 참이슬 후레쉬 한 병. 1,800원이다.
“1,800원입니다.”
“잠만 있어봐….”
한참 주머니를 짤그랑거리더니, 50원짜리 100원짜리가 뒤섞인 동전 뭉치를 내게 내밀어 온다. 세어봤더니, 100원이 모자랐다.
“손님. 100원이 모자라는데요.”
“으응? 맞는데? 1,700원.”
“소줏값이 1,800원이라서요.”
“이 병이 100원이잖어.”
말하며 병을 쥐고는 계산대 위에 탁탁 두드리며 말한다.
“지금 여서 원샷하고, 병 주께. 그럼 딱 맞잖어. 그치?”
맞겠냐?
아니, 계산은 맞다. 편의점에서는 공병도 받고 있고, 소주병이 100원이니까. 손님이 땅을 파서 100원을 마저 주워 오든 단기알바를 하든 금액만 채워오면 난 신경 안 쓴다. 근데 문제는 말이다.
“손님, 편의점에서 술 드시면 안 됩니다.”
“뭐? 왜?”
왜긴 왜야? 불법이니까 그렇지.
편의점은 분류상 일반음식점이 아닌 휴게음식점이라, 매장 내부에서 술을 마시는 게 불법이다. 덧붙여서 편의점 밖 테이블 위에 술판 까는 것도 불법이고.
법적으로는 그렇고, 도의적으로는 편의점이 어른들만 오는 곳이 아니잖은가. 손님, 특히 꼬맹이들이 과일젤리 사러 왔다가 술 냄새 맡으면 어떤 기분이겠냐고.
“그, 이해하는데. 사장님 입장을 이해는 하는데!”
설명을 듣고 난 후엔 이렇게 말하더라. 허나 말을 마저 들어보니 이해는 개뿔, 내 말을 듣긴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집이 멀어. 멀다구. 그러니까 여기서 5초 만에, 아니 3초 만에. 먹고 갈게. 나 술 잘 먹어, 걱정 마.”
“손님이 술을 잘 드시고 못 드시고는 상관이 없고, 아예 여기서 드시면 안 된다니까요?”
“얼마 안 걸린다니까? 후딱 마시고 나간다니까?”
대화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 와중에도 손님 두셋이 더 들어와서는 물건 고르면서도 계산대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고.
답답한 마음에 옆을 슬쩍 바라보니, 이 광경을 지켜보던 윤하 누나가 날 보며 슬그머니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자기가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였다.
“괜찮아요.”
괜찮다고 했다. 일단 찾아오면 손님이든 손놈이든 받는 게 내 일이었으니까. 엘프를 노려보며 딱 잘라 말했다.
“여기서 술 드시는 건 불법이고 전 큰일 나기 싫으니, 나가서 술 드신다고 약속하십쇼. 아니면 술 안 팝니다.”
“뭐… 뭐 인마?”
그 뒤엔 그냥 무시했다. 막 물건을 골라 온 손님이 난감해하고 있길래,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네, 손님. 계산해 드릴까요?”
“아… 아, 네.”
엘프 놈이 어안 벙벙히 서 있든 말든, 계산대 앞에 쌓인 라이터 너머로 물건 받아서 계산하고, 보내고, 다음 손님도 받아 보내고. 이 양반들도 종족은 인간이 아니긴 했으나, 최소한 진상은 안 부렸다.
그렇게 손님 셋을 받을 무렵, 화가 잔뜩 오른 엘프 놈이 소리치듯 말했다.
“에이 시팔, 그래. 더러워서 안 먹어, 더러워서!”
“매장 안에서 소리 지르시면 안 됩니다.”
“갈 거야, 새끼야! 나가서 먹을 테니까, 종이컵이나 내놔.”
이 새끼가, 여기가 동네 다방도 아니고 종이컵을 왜….
아니, 아니. 아니다. 종이컵도 파는 거라고 했다간 그거 갖고 또 꼬장 부릴 게 뻔해. 그 전에 빨리 내보내고 싶다.
계산대 밖으로 나와, 커피머신 옆에 진열된 컵 하나를 꺼내 줬다. 종이컵을 받아 든 엘프는 그 자리에서 병을 까고는, 컵에 절반을 채운 뒤에 중얼거렸다.
“시이팔, 빌어먹을 세상이 술도 못 먹게 하네.”
그러곤 나가버렸다. 그 결과로, 반쯤 남은 소주병 하나가 계산대 위에 덩그러니 남았다. 소주병 주둥아리에서는 술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왔고.
“저 이거 좀 버리고 올게요.”
어쨌든 비우고 뚜껑 닫으면 이것도 100원이니까. 윤하 누나는 쓴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같이 나가요. 나도 슬슬 집에 가야 할 거 같아.”
그렇게 나란히 밖으로 나왔다. 근처 하수구를 찾아 소주를 흘려보내고 뚜껑을 닫고. 윤하 누나를 바라보니, 입에 전자담배를 물고 있었다. 의외다 싶어 물어봤다.
“담배 피우세요?”
“폈었죠. 이거 금연초예요. 담배 아니고.”
“아. 전담인 줄 알았어요. 요즘은 금연초가 전담으로도 나오네.”
“정작 이걸 못 끊고 있어서 문제지만요. 찬이 씨는 담배 피우나?”
“피웠었는데, 끊었어요. 몇 년 전에.”
“아, 정말?”
나도 담배를 몇 년 피우긴 피웠었다. 군 입대할 즈음부터 회사 다니기 직전까지 피워댔으니 한 5년 됐나.
“어떻게 끊었어요?”
“끊고 싶어서 끊은 건 아니고, 살 돈이 없으니까 알아서 끊게 되더라고요.”
정확히는, 스스로가 한심해져서 끊었다.
회사 취업 1년 차에는 월급이 하도 쥐꼬리여서, 여기서 돈 빠지고 저기서 돈 빠지고 하다 보니 생활비도 빠듯했다.
그렇게 두 달 살다 보니 ‘어디 굴러다니는 돈 없나―’ 하며 방 구석구석을 뒤지는 게 일상이 되었는데, 정작 4,500원 모으고 나면 그걸로 담배 사러 편의점에 가게 되더란다.
그러다 4,500원도 못 찾게 됐을 즈음, 허탈감에 거울을 보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담배를 태우는 게 아니라, 담배가 날 태우고 있다고.
그 이후로 끊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쓴 방법은 그냥 껌을 씹고, 씹고, 또 씹으면서 버티는 것이었는데, 잇몸이 헐도록 껌을 씹어대고 나니 어질어질한 금단 증세도 사라지고, 담배 냄새도 역해지더라.
그러다 보니 끊게 됐다. 이 얘길 하고 나니, 윤하 누나가 고개를 갸웃하면서도 감탄해 왔다.
“그건 찬이 씨가 근성이 있어서 성공한 방법 같은데요…?”
“저도 추천하겠다고 한 말은 아니에요. 그냥, 전 그랬다고.”
그러고선 잠시 대화가 끊기고, 이후에 누나가 슬쩍 말을 꺼냈다.
“찬이 씨, 알바 계속 할 거죠?”
“그럴 것 같아요. 근데 왜요?”
“방금 진상 보니까 PTSD가 도져서 그래요. 혹시나 싶어서.”
말하며 윤하 누나는 허리춤에 찬 칼을 슬쩍 만지작거렸다. 도움받았다간 왠지 큰일 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계속 해야죠. 오늘 일은 오늘 일이고… 금일봉도 받았는데, 내빼면 좀 그렇지.”
“그럼 다행이구요. 근무 시간은 언제부터 언제까지예요?”
“밤 10시부터 아침 10시까지요.”
“매일?”
“네.”
“버틸 수 있겠어요?”
“못 하면 못 하는 거죠, 뭐.”
“음… 그럼 며칠 뒤에도 계속 있을 거고….”
그야 계속 있겠지. 그런데 느낌이 꼭, 말을 걸어줬으면 좋겠다 싶은 혼잣말이었다.
그래서 물어보려 했는데, 윤하 누나는 씨익 웃고는 휙 휘파람을 불기만 했다. 그러자 반대편 건물의 주차장에서 페가수스가 날아와 착지하고는 콧김을 뿜어댔다. 이놈은 종이 서러브레드일까, 홀스타인일까?
그 위에 올라타서는 페가수스의 갈기에 머릴 슥 기댄 채로 말해온다.
“당분간은 못 오고, 며칠 뒤에 또 한 번 봐요.”
“매일 오시는 게 아니었어요?”
“마물 관련 물류 담당하는 게 좀 힘들어서요. 시간도 좀 걸리고.”
거 바쁘게 산다. 이어서 고삐를 잡은 뒤,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왔다.
“나 갈게요. 수고해요. 찬이 씨.”
나도 인사나 건네보기로 했다.
“야간운전 조심하고, 윤하 누나.”
누나는 한 방 먹었다는 듯 멍하니 날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리고는 답했다.
“걱정 마. 내가 경력이 몇 년인데?”
이렇게 서로 말을 놨다.
* * *
이후에도 몇 시간 동안 손님 수십 명을 더 받았고, 그사이에 진상도 몇 있긴 했지만 그건 당장은 넘어가고.
마침내 아침 해가 떴다. 힘세고 좋은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