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05)
이세계 편돌이-104화(105/331)
104화. 순수한 미팅에 치와와가 (3)
“저 사는 곳이 어디냐고요….”
일부러 되물어봤다. 둘러댈 말을 고르기 위해서였다.
내가 사는 곳. 걸어서 5분 거리, 오가는 길에 작은 공원과 가로수가 있는 평범한 길이지만, 다른 차원에 있다. 오고 가는 방법은 이 편의점뿐이고.
한 달 내리 숨겨온 비밀이고, 점장을 빼면 어느 누구에게도 대답한 적 없는 질문이었다. 거짓말을 해야 한다.
하는 건 하는데, 뭐라고 둘러대는 게 맞냐. 그리 좋은 곳은 아니다? 멀다? 아니면―
“어우.”
“앗.”
취기가 확 몰려들었다. 어지러움도, 발열도. 지금 체온을 재면 아슬아슬하게 38도를 웃돌지 않을까. 추측이지만.
반사적으로 컵을 들어 목을 축였다. 남은 용량의 마저 반을 비우고 엘레나 양을 바라보니, 목 부근에 연신 손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일단 물어봤다.
“…방금 그게 부작용인 겁니까? 엘레나 양도 느낀 거고?”
“네. 저, 찬이 씨. 여쭙기 죄송하지만요. 혹시….”
“죄송해하실 것 없어요. 거짓말하려 한 거 맞으니까.”
고백하는 순간, 몰려왔던 취기며 어지러움이 싹 다 가시는 게 느껴졌다. 다시 멀쩡해진 채로 서로 바라만 보길 수 초.
살짝 어색해졌다. 풀기 위해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부작용 얘기는 들었어도 부작용을 다 해결했을 때의 얘기는 못 들었네요.”
“어… 그러니까, 약이 다 완성되었을 때 말씀이세요?”
“네. 지금은 부작용 덕에 제가 거짓말하려던 걸 알게 됐잖습니까. 이 부작용을 다 없애고 나면 그땐 어떤 식으로 거짓말하려던 걸 알게 되냐는….”
“아. 제가 그걸 말씀 안 드렸네요. 그게, 어떻게 알게 되냐면요.”
방금 느낀 부작용은, 엄밀히 말해서는 부작용이 아니랜다. 약빨이 지나치게 잘 들었을 뿐.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가질 때면, 몸에 여러 변화가 오잖아요? 심장이 두근거리고, 땀이 나고, 말을 더듬고, 입이 마르고―”
그런 여러 증상 중 일부를 의도적으로 발생시킨 게 아까의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예를 들면, 서로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 걸 깨달았다 치자. 서로 기분이 좋을까?
좋지는 않을 터다. 서로 어색해지거나 화를 내게 될 수도 있다. 더 심하면 말싸움하고, 헤어질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될 걸 묘약의 약효, 취기나 어지러움으로 방지해 준다는 것이다. 신체 반응을 조작해서 서로 호감을 느끼는 상태로 유도해 준다는 거지. 플라시보 효과처럼 말야.
“지금은 약이 완성이 덜 돼서, 호감을 느끼는 게 아니라―”
“좀 심한 감기.”
“맞아요. 좀 심한 감기처럼 되어버린 거죠.”
말을 마친 뒤 또다시 정적. 좀 더 어색해졌다.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일부러 말 안 했다. 엘레나 양이 뭔가 말하려 하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십수 초를 기다려도 대답이 없어 입을 열려던 찰나, 엘레나 양이 서두르듯 물었다.
“그. 그 거짓말요. 찬이 씨 마음속에선 어느 정도의 거짓말인가요? 1에서 10까지 친다면.”
“그건 왜… 아. 그게 큰 거짓말일수록 부작용도 강해지는 겁니까? 기록하셔야 되는 거고?
“네. 그 수치에 맞춰서 보조제 용량을 조절하거든요.”
이해했다. 지금 경우에 대입하자면, 숫자 낮춰 불러봐야 취기만 더 올라올 거란 소리겠지.
“10이에요. 가감 없이, 10.”
“…높네요….”
“이유는 생략하겠습니다. 저한텐 소중한 비밀이어서.”
숨기겠다고 솔직하게 고백했다. 거짓말을 한 게 아니어서인가, 취기가 몰려오진 않았다. 고백한 뒤에 바라보니 뭔가 말하려는 눈치 같더라.
“고마워요, 찬이 씨. 그리고, 저….”
“편하게 말하셔도 되는, 아. 제가 좀 더 말씀드려야 될 거 있나요?”
“아뇨! 그건 아니고, 잠시만요. 기록부터!”
허둥지둥 태블릿 PC를 부여잡은 엘레나 양이 휘갈기듯 화면에 뭔가를 입력해나갔다. 입력을 마치자마자 PC를 탁 소리 나게 내려놓고는 사과를 해 온다.
“죄송해요. 제가 이상한 질문을 해버렸네요….”
“이상한 질문은 아니죠. 이런 거 비밀 삼는 제가 이상한 거지.”
“그…래도요, 곤란해하시는 거 같아서….”
“정 그렇게 찝찝하시면, 저도 호기심 하나 해결하겠습니다. 저 사는 곳 여쭤보신 이유가 뭐예요?”
진짜로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재력이 궁금하니 사는 집을 에둘러 물어보자 따위의 생각을 할 서큐버스가 결코 아니잖은가. 답답할 정도로 순수하고 착하니까.
헌데 그걸 제외하고 나니 정말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더라. 단순히 한번 와보고 싶다, 이딴 이유는 아닐 거 아냐. 우리 집에 황금송아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유요? 저, 그게 진짜 사소한 이유라서….”
“사소한 이유인데 당황은 왜 그렇게 하신대?”
“그러니까… 그! 찬이 씨께서 가까운 곳 사시면! 공통점이 많아지니까― 히끅.”
이 논리면 서울 사람들 1,500만 명이 죄다 이웃사촌이 되어버리는데?
솔직한 대답으로 들리진 않았다. 묘약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엘레나 양 말이 끝나자마자 내 몸 곳곳에 술을 돌리더라고.
“히끅. 사, 사실은 이게 아니고요. 찬이 씨 집에서 차 한잔―”
묘약 왈, 이것도 거짓말이란다. 시큰해진 코가 또다시 시큰해지는데, 이게 겹쳐서 딜이 들어오니 취기가 두 배로 밀려오는 거 같다.
“와, 당분간 주류 코너는 쳐다도 못 보겠습니다.”
“히끅. 이유가. 이유가요… 진짜 별건 없고….”
엘레나 양 말투가 귀에 익은 말투로 돌아왔다. 첫 만남 때 두 번, 술 진탕 먹고 취해서 찾아왔을 때. 기어코 부작용에 취해버린 모양이다.
“그냥, 히끅. 가보고 싶었어요. 찬이 씨가 얘기 들어주시는 게, 너무 좋아서….”
“허어….”
“좋고, 편해서요… 저도 퇴근하고, 찬이 씨도 퇴근해서 찬이 씨 집 가면… 저희 밤새도록 얘기할 수 있는 거잖아요….”
“밤새는 거야 지금도 가능하잖아요. 저 밤샘 근무 하는 놈인데.”
“아녜요. 아냐. 그걸로는 안 돼. 피처 맥주도 있어야 되고… 나쵸도 있어야 되고….”
처음 그때처럼 술주정 부리듯, 투정 부리듯 중얼대고 있고, 입술을 삐죽 내민 얼굴엔 홍조가 가득하다. 이거 가만 냅두면 위험한 거 아니냐? 나도 슬슬 간 수치가 걱정되는―
“저는 요 며칠, 그 생각만 했는데요… 찬이 씨는….”
이거는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마주 봤다가, 몸이 멈췄다.
엘레나 양 자세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이제 막 날 올려다보고 있는 형세였다.
모은 무릎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있고, 부여잡은 손에는 땀이 맺혀 반짝였으며, 살짝 흘러내린 앞머리 사이의 에메랄드빛 눈동자엔.
“혹시… 저랑 그러는 거… 싫으신가요…?”
“…….”
“히끅.”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이거 위험한 거 맞다.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엘레나 양팔을 부여잡았다.
“앗.”
“안 싫어요. 안 싫고.”
풀렸던 눈이 돌아왔다. 체질이 제대로 일을 해준 거 같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티슈 통에서 휴지 두 장 뽑아 건넨 뒤에 마저 말을 이었다.
“눈물도 닦으시고, 술은 서로 생각 좀 해봅시다. 엘레나 양.”
“네? 눈물요? 술?”
어리둥절해하다 퍼뜩 깨달았다는 듯 숨을 들이켰다.
“찬이 씨, 제가 술 얘기를 했나요? 방금?”
“맥주 피처랑 나쵸 사서 제 집 놀러 오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방금.”
“ㄴ, 네? 으으,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요 며칠 그 생각만 했다고도 하셨고― 자기랑 노는 거 싫냐고도 물어보셨었고―”
“그만. 그만하셔요….”
싫다. 방금 막 생명의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내가 위험했다고. 내가.
“제가 대답은 아직 안 했고요, 부작용 때문에 정상 아니신 것처럼 보여서 도중에 끊었습니다.”
“…아, 네. 부작용이, 종족별로 편차가 있기는 해서요… 감사해요, 찬이 씨.”
“감사하긴 뭘요. 전문가인데.”
말을 마친 뒤, 잠시 조용히 있었다. 내 눈치를 보던 엘레나 양이 슬쩍 태블릿 PC를 집어선 ‘네가 이런 말들 했다’라 말해 준 것들을 휘갈기듯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곁눈질로 몰래 바라보니 거짓말 수치가 10이더라.
작성을 마치고 PC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엘레나 양이 자세를 바로잡고는 내게 물었다.
“이건 다 적었고… 찬이 씨. 저기.”
“그래서 대답이 뭐냐, 그거 물어보시려는 거죠.”
“…네.”
고개 푹 숙이면서도 부정은 안 한다. 이왕 말 꺼낸 거, 대답이라도 들어야 타산이 맞겠다는 생각인가 보다. 바로 대답했다.
“힘들어요. 지금은.”
“지금은요?”
“애매하게 대답해서 죄송하긴 하지만, 예.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집에 놀러 오고 싶다, 이거 자체는 난 괜찮다. 나도 집에 틀어박혀서 밤새 술 먹는 거 좋아하는 편이니까. 내 세상에서 같이 먹어 줄 놈이 없어서 그렇지….
근데 지금은 그 반대다. 술 같이 먹어주겠단 서큐버스는 있는데, 술 먹을 집이 없어 집이. 생각해 보니 이게 뭔 정신 나간 상황인지 모르겠다.
“지금이 힘든 거면요. 그러면, 저….”
“나중에?”
“네. 나중에.”
글쎄다. 하루가 멀다 하고 온갖 기괴한 일이 일어나는 판국에, 나중 일을 내가 어떻게 확답을 하겠냐마는….
“생각해 보겠습니다. 긍정적으로.”
집. 생각을 좀 해 봐야겠다. 긍정적으로.
“네.”
엘레나 양이 짧게 한마디 대답해 왔다. 내가 확답을 해준 게 아님에도,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표정이다. 저게, 참….
“그럼 이다음에는, 어….”
“잠깐 쉬시죠? 소주 세 병 내리 마신 기분이야, 지금.”
“앗, 네.”
서로 동의한 뒤, 침묵했다.
소주 세 병을 내리 마신 기분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내 주량이 많으면 여섯 병쯤 된다. 쉴 생각 없었다는 뜻이다.
그래도 텀을 둔 건… 아니 씨, 뭘 어떻게 얘기해야 하냐. 평범하게? 그게 뭐였냐?
늘 그랬던 것처럼 하면 된다. 머리로는 안다. 다짐도 해놨다. 헌데 방금 대화를 나누고 난 지금은 그 다짐을 대체 어떤 용기로 해낸 것인가, 하나도 실감이 안 난다.
나랑 밤새 대화를 하고 싶다잖은가. 며칠 그 생각만 했다잖아. 내가 그걸 싫어할까 걱정하다, 눈물까지 글썽이며 물어본 게 방금이다.
거기에 확답을 못 했다. 나중에라고 대답한 게 이제 와서 미안하다. 이 세상 살던 놈도 아닌 내 어디가, 어째서 편하단 건지도 모르겠고, 이것도 미안해해야 할 일이구나. 나도 똑같이 편하다고 대답했어야 하는데.
지금 대답하기엔 타이밍이 늦었다. 그래도 먼저 화두 던지는 게 맞지 않나. 내가 연상이고 내가 의지가 되어야 하는데. 막막함에 엘레나 양을 쳐다봤다가, 눈이 마주쳤다.
“저….”
“네?”
“그게, 아녜요. 죄송해요.”
뭐라도 말해야 하는데, 엄두가 안 나서 차마 못 꺼내겠다는 느낌이다. 지금 내가 똑같은 기분이라 잘 알겠다. 고개 붕붕 젓고는 다시금 목이 타는지 커피를 홀짝인다.
또 뭐가 죄송하냐고 물어볼까? 아니다. 커피 마시는 걸 봐서인지 나도 목이 탄다. 마시려 했는데 얼음 녹은 커피가 묽다. 물이랑 다른 게 뭔지.
마신 뒤, 쇼윈도 밖을 바라봤다. 사랑하는 척조차 이렇게 어려운데, 사랑은 도대체 어떻게들 하고 지내는 거냐.
진짜 모르겠다.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냐.
“이런 씨팔.”
엘레나 양이 화들짝 놀랐고, 이번엔 나도 놀랐다. 몸 들썩여 뒤를 바라보니, 치와와가 막 노트북 자판에 샷건을 치기 직전이었다. 얼굴 표정으로 짐작해보면 분노 수치가 대충 9쯤 되는 것 같다.
“염병, 별거 아닌 부분이 막히니까 더 빡치네.”
“그, 지금 하시는 일이 잘 안되시는 겁니까?”
“씹새가, 그건 왜 궁금해하는데.”
아니, 니가 들으라는 듯이 말을 했….
모르겠다. 잠깐 욕받이 좀 하면 머리가 좀 풀리겠다 싶어 기다렸더니, 치와와가 노트북을 쿵 덮고는 우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대뜸 이런 걸 묻더라.
“늬들 말야, 대체 어쩌다가 편의점에서 그 개소리들을 처하게 된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