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06)
이세계 편돌이-105화(106/331)
105화. 순수한 미팅에 치와와가 (4)
이야기하는 동안 치와와한테 가능한 피해 안 주려 노력했고, 잘했다 생각한다. 우리 목소리가 컸으면 주둥이 좀 다물라 했을 거고, 몸 건드렸으면 바로 물어뜯으려 들었겠지.
때문에, 이 치와와가 왜 몸을 부들부들 떨 정도로 분노하고 있는지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대답이나 했다.
“아까 말씀드렸잖습니까, 일 얘기 하는 거라고―”
“아니 씹새야, 뭐 일감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어? 그걸 어쩌다 늬들끼리 하게 됐냐니까?”
“제가 채워야 할 할당량 같은 게 있, 근데 그건 왜 자꾸 물어보시는 거예요?”
“씨팔, 이걸 왜 물어보는지를 니가 왜 궁금해하는데?”
이게 대화냐? 이게 대화야?
돌아버릴 것 같다. 헌데 치와와 눈을 계속 보고 있자니, 이 양반이 충혈된 눈 부릅뜬 채로 아예 미동조차 하질 않고 있단 말이다.
눈빛이 목적성을 띠고 있었단 뜻이다. 이 질문에 대답 안 하면, 그땐 진짜 광견병 접종대상으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그런―
이놈은 진짜 그럴 놈이다. 깊게 생각한 뒤, 재해석해서 말해줬다.
“저희끼리 하게 된 건 뭐…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어쩌다가는 염병, 눈 마주치자마자 김치 싸대기라도 갈겼어?”
“그 정도로 운명적인 만남은 아니었고요, 그냥… 어….”
엘레나 양이 술 먹고 토한 걸 내가 치웠던 게 인연이 되어서였지만, 이 얘기는 서로를 위해서라도 하고 싶지 않다. 적당히 둘러댔다.
“밤에 자주 오셔서 얘기하다가, 일감 맞아서 이렇게 됐어요.”
“얘기는 왜 하게 됐는데, 씹새야.”
“왜 하게 됐냐는 좀, 손님.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이게 왜 궁금하신 거예요?”
이쯤 말하면 좀 알아들어라, 인마. 얘기하기 싫다니까?
재차 말을 돌리려 했는데, 치와와가 내 물음에 대답을 안 하고 내 등 뒤를 힐끔 넘겨보더란다. 왠지는 몰라도 엘레나 양을 보려 한 거 같다.
잠시 뒤, 뒤에서 “아.” 짧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엘레나 양이 조심스레 말을 건네왔다.
“저… 찬이 씨.”
“잠깐만요. 아니 손님, 궁금해하시는 이유라도 좀 말을―”
“됐어, 씹새야.”
됐다는 말 한마디 하고는 드러낸 이빨을 집어넣고, 다시 몸을 돌려 노트북을 펼치고 타자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래, 니 할 일 해라.
“말씀하십쇼.”
“저기, 이것도 예―전에 궁금했던 거였는데….”
“예전이면 언제 얘기십니까?”
“저희 두 번째로 만났을 때.”
두 번째면, 서큐버스가 편의점에 와서 사직서를 달라고 했을 때다. 이것도 근무 극초창기에 겪었던 일인데,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때도 인사불성이셨던 건 확실히 기억나는데.”
“그… 그땐요! 일이 좀 힘들었어서, 여튼! 그때!”
“예, 그때. 일이 힘드셨다고 하셨었죠.”
“…네.”
사랑의 묘약 만드는 제약회사를 들어왔는데, 일이 생각한 거랑 좀 다르다고 했었다. 자기가 찾는 진정한 사랑이 아닌 것 같다고.
“어딘가에 하소연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친구도 많지 않고, 좀 내성적이고, 그래서….”
“얘기할 곳이 없으셨다.”
“네. 그래서 그날도, 그냥 집에 들어가려 했는데… 찬이 씨가 떠오르더라구요.”
“…예.”
“정확히는, 택시 태워주셨을 때 말씀하셨던 거요. 그때 말해주셨잖아요. 사랑은 취미로 할 땐 즐겁지만, 직업이 되면 안 즐거운 거라고.”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내가 진지하지 않았다는 것도. 사랑 타령한 것도, 다음 날이면 ‘내가 편돌이한테 왜 그런 말을―’ 하며 이불 몇 번 차고 까맣게 잊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말았다.
“저한테 그렇게라도 말해준 분이, 찬이 씨가 처음이셨어요.”
“제가요.”
“네. 그런 얘기 함부로도 못 해. 서큐버스가 참 이상한 생각 한다면서 다들 무시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찬이 씨가 들어주셔서….”
날 찾아올 때의 감정이 반은 공포, 반은 기대였단다. 공포. 용기 내어 찾아갔는데 여느 때처럼 똑같이 무시하면 그땐 어쩌나.
기대. 그래도 혹시라도, 다시 한번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까.
“그래서― 뭔가, 말이 좀 길어지네요. 여튼, 궁금한 게요.”
“예.”
“그때… 제 얘기를 왜 들어주셨던 건가요?”
진정한 사랑 타령. 그걸 왜 진지하게 들어줬냐고?
일이어서였다. 나 편돌이잖은가. 진상 손님 처리하는 게 편돌이 업무 중 하나고, 솔직히 편의점에서 사직서 찾는 게 진상 짓 맞기는 하잖아.
라고 이제는 대답을 못 하겠다. 취기가 올라올 테니까. 그때 사랑 상담 해주며 느꼈던 것들을 머릿속에 정리해 대답했다.
“진심처럼 보여서였어요. 사랑 얘기 하시는 거.”
“그야, 저는 그게 진짜로 궁금해서―”
“올해로 스물넷이시고. 그렇죠.”
“나이는… 네.”
“저는 그 나이 때, 뭔가에 진심이었던 적이 없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시작한 일이 주유소 건맨이었다.
전국구 총잡이가 되고 싶다는 원대한 야망 따위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그게 다였어. 그러다 알바생 많다면서 쫓겨났고….
바로 다른 곳 찾아가서 다시 일 시작했다. 젊었던 덕인지 그땐 그게 되더라. 길게는 반년, 짧게는 3개월.
기계적으로 일하다가, 필요 없는 부품 취급을 받아 떨궈지고, 떨궈지거든 제 발로 다른 기계 찾아 스스로를 끼워 넣었었다.
거의 10년을 그렇게 살아왔다. 내가 잘못 살았다 생각하진 않아. 남들 다 그렇듯 나도 돈이 필요했고, 그래서 돈 벌었을 뿐이다. 그게 다다.
헌데 말이다. 그게 다인 삶이라 해도, 10년을 살다 보면 한 번은 돌아보게 된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나. 수십 번 돌아보면 가끔, 아주 가끔 뭔가가 빠져있다는 기분을 느낄 때가 온다.
“그게 그때였던 거죠. 나는 살면서 이 서큐버스처럼 뭔가를 진심으로 바라고, 얻으려 했던 적이 있었나?”
“그… 그 정도까진 아니에요….”
“그럼 엘레나 양이 연기를 무진장 잘한 거네. 호소력 짙게. 전 거기에 당한 거고.”
내겐 진심 같았고, 그래서 부러웠고, 내심 대단하다 느꼈었고….
동시에 걱정도 들었다. 이게 진심이라 해도, 개인의 진심을 받아줄 만큼 세상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진정한 사랑 찾는 게, 솔직히 많이 허무맹랑한 얘기긴 하잖아요? 실제로 그런 얘기 취급도 받으셨을 거고.”
“그건… 네. 받았었어요.”
“힘들겠다 생각했었습니다. 그게 반복되다 엘레나 양 마음이 꺾이거든, 그… 어… 상실감? 그것도 그만치 클 거라 생각했었고….”
그러면 아쉬울 것 같더라. 엘레나 양에게도, 내게도.
“난 그렇게 못 살았으니까, 엘레나 양이라도 원하는 답 잘 찾았으면 좋겠다. 좀 도와주고 싶다. 그래서였어요.”
“…….”
“그래서였어.”
이게 맞다. 그때 난 이 생각이었어.
취기도 올라오지 않는다. 내가 거짓말을 하진 않았나 보다.
말 마친 뒤엔 머쓱해져서 시선을 피하고 있었는데, 엘레나 양이 대뜸 목소리를 높여왔다.
“저, 저기요! 찬이 씨!”
“어우, 깜짝이야. 살살 좀 부르셔요.”
“앗, 죄송해요. 그게, 저… 어제 근무는 어떠셨나요?”
“예?”
“네! 저도 들어드릴게요!”
왠지는 몰라도 의욕이 넘쳐흐르는 것 같은데 말이다. 어쨌든 어제 근무가 어땠냐면… 어….
“어제야 뭐, 별일 없었… 어우.”
“앗.”
또다시 취기가 몰려온다. 이런 젠장할, 이거까지 말해야 돼?
“…어제, 진상 손님들 와서 고생 좀 하긴 했어요.”
“네? 진상 손님들요?”
“예. 그게, 오크 열둘이었는데―”
“야, 씹새야.”
이 양반은 대화 좀 하려는데 자꾸 끼어들어. 돌아보니 치와와 테이블 위에 있던 노트북이 사라져 있었다. 어깨에는 가방을 짊어진 채다.
“퇴근하시게요?”
“퇴근은 아까 한 게 퇴근이고, 새끼야. 코볼트 놀리냐?”
“예, 예. 집에 가시게요?”
“그래. 커피 추천이나 좀 해줘 봐. 두 잔.”
“아까 드신 거 또 드시면 되는 거 아녜요?”
“써서 그래, 씹새야.”
그럼 블랙이 쓴맛으로 먹지 뭘로 먹는데. 얘기하기 전에 이놈 계산부터 해주고 와야 할 것 같다.
“엘레나 양. 잠깐 계산 좀 하고 오겠습니다.”
“네.”
양해를 구한 뒤 커피팩 진열대에서 아무 생각 없이 두 개 집어왔다. 뭘 줘도 욕부터 할 놈이니, 아까 엘레나 양이랑 나 먹었던 거 두 개.
가져오자, 치와와가 카드 내밀고는 서비스까지 부탁해 왔다.
“얼음컵에 담아주고.”
“그거 셀프라니까요. 그리고, 얼음컵에 미리 담으면 들고 가는 건 어떻게 들고 가시게요?”
“씹새야, 봉투는 폼이야?”
그래, 니 마음대로 해주마. 얼음컵 두 개 까서 커피 담고, 봉투에 넣고.
빨대 두 개 챙겨서 치와와에게 쥐여주자, 치와와가 등 돌려서는 저벅저벅 걸어 나갔다. 정문이 아닌, 나 앉아있던 테이블 위로 말이다.
그 위에 커피를 올려놓자, 엘레나 양이 고개를 갸웃하며 치와와를 올려다보았다.
“어?”
“뭐. 머리 핑크빛인 년아.”
“…나쁜 말 그만하셔요….”
엘레나 양이 소신껏 해온 이의제기를 귓등으로 흘리고는 나가버리는 치와와. 카운터에 남은 포장지들을 버린 뒤, 테이블로 돌아와 해설해 줬다.
“저 양반 이것저것 막 주고 가요. 안 먹으면 왜 안 먹었냐고 욕해대고.”
“어… 그럼, 이것도 저희 먹으라고 주신 거예요?”
“그런 거 같은데, 모르겠네요. 이상한 양반이라서. 정 고마우시면, 나중에 마주치거든 고맙다고 말이라도 해보셔요.”
은근 자주 오니까 또 마주칠 일 있을 거다. 말했으나, 엘레나 양이 아주 적극적으로 고개를 붕붕 저었다.
“저, 털 알레르기 있어서.”
“그럼 어쩔 수 없네. 마음은 됐고, 커피만 받죠.”
“네.”
“그럼… 아까, 오크 열둘 왔다는 얘기까지 했었죠.”
* * *
이후로는 쭉 내 일 얘기만 했다.
“와, 그 늑대인간 어르신분이 엄청 대단한 분이신가 봐요.”
“추정이긴 한데, 네. 소싯적에 주먹 좀 쓰신 분 같더라고.”
어제 일부터 시작해서 기프트카드 200만 원 긁었다는 얘기, 군부대서 잔뜩 몰려와다가 담배 탈탈 털어간다는 얘기, 단골로 오는 용 꼬마 하나가 있다고도 했다.
“어쩜, 귀엽네요….”
“그럼 직접 보시면 돌아가시겠네. 걸어 다니는 솜사탕이에요, 걔가.”
이런 식으로 1시간가량을 내 얘기만 했는데, 하면서도 ‘편의점 알바 얘기가 그렇게 재밌나?’라는 걱정이 들더라.
아예 직접 물어봤는데,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이 매번 똑같았다.
“아뇨? 엄청 재밌는데요?”
취기는 안 올라왔다. 그래, 여기 근무가 멀리서 보면 희극이긴 하겠다. 여튼, 도중에 손님 오면 난 계산하러 가고, 엘레나 양은 태블릿 PC에 항목들 적고….
“세상에, 담배공사에서 일하시는 요정은 처음 들어봐요.”
“저도요. 그런데 엘레나 양, 슬슬 시간 다 된 것 같은데.”
“벌써요? 에이… 앗.”
벽에 걸린 시계 보고는 화들짝 놀라더라. 아예 시간을 안 봤나 보다. 당황한 표정으로 태블릿 PC를 확인하고는, 안심되는 듯 표정을 풀었다.
“다행이다. 얼추 목표량은 다 채운 것 같아요.”
“제가 거짓말을 그렇게 많이 했나 봅니다. 어째 죄송한데.”
“아뇨. 거짓말만 체크한 게 아니라, 서로 솔직할 때에도 부작용이 발동하는지 체크해야 하거든요.”
잠깐 생각한 뒤, 수긍했다. 서로 솔직하게 얘기하는 도중에도 부작용이 막 생겨봐, ‘이놈은 매번 거짓말만 하나?’ 하면서 의심할 거 아냐.
“오늘이 첫 미팅이라 간략하게 대화 시간으로만 체크한 건데, 이상 작용 전혀 없었고.”
“밥값 했다는 걸로 이해하겠습니다. 처음은 어떻게 되기는 했고, 그럼….”
다음 미팅. 서로 상의하다가 내가 먼저 연락준다 했다. 지금 이 미팅도 내가 전화를 안 받아서 급하게 잡혀버린 미팅이었다.
“네, 전화 기다릴게요. 찬이 씨. 그리고, 저….”
“예.”
“꼭 일 얘기가 아니어도, 얼마든지 전화 주셔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한 게 연애하는 척이다. 연애하는 척하는 사이라면 일이 아니더라도 서로 전화하는 게 맞지 않냐는 논리.
글쎄? 싶었으나, 얼굴 붉히면서도 할 말 다 해오는 게 꽤나 용기 내어 꺼낸 말 같았다. 내 귀엔 논리적으로 들리기도 했고.
“가능한 만큼 해보겠습니다. 낮에는 근무 끝나고 자야 되니까, 밤에.”
“저, 밤에 엄청 늦게 자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걱정 안 해요. 알아서 조절할 거니까. 그럼 엘레나 양. 어….”
“네?”
“즐거웠습니다. 나중에 또 봬요.”
진심이었다. 내 얘기 들으면서 엄청 자주 웃고, 고개 끄덕여 주더라고. 근무하며 개고생한 게 아주 개고생은 아니었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아뇨, 뭘요! 저도 좋았고! 그럼―”
나중에 또 봬요. 받아주고는 바쁜 걸음으로 퇴장.
이후엔 카운터 의자에 앉아서 새벽을 지새웠고, 지새우는 도중에는 이상 사항이 하나 있었다. 거진 30분 단위로, 어떤 말 한마디가 머릿속에 자꾸 재생되더라고?
눈에 살짝 눈물 맺힌 채로, 두 손 가지런히 모은 채로. 엘레나 양이 내게 말했던 한마디.
[ 저랑 그러는 거… 싫으신가요? ]그게 재생될 때마다 체감을 해버렸던 것이다. 확실히 서큐버스는 서큐버스다, 이러면서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