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07)
이세계 편돌이-106화(107/331)
106화. 동심 가득한 부업시간 (1)
새벽을 꼬박 지새운 뒤, 아침.
기어코 아침밥은 먹어야겠다는 직장인들 러쉬를 막아낸 뒤, 샌드위치 비닐로 터지기 직전의 쓰레기통을 눌러담고 있을 무렵 점장이 왔다.
“찬아. 쓰레기통 비우는 거 도와줄까?”
반사적으로 시계를 올려다보니 오전 8시 50분.
“괜찮아요. 비우는 거 아니고 눌러 담기만 할 생각이었어서. 오늘 일찍 오셨네요?”
“그게, 아침에 실수로 눈을 일찍 떠버렸어.”
“아. 가끔 그런 날 있죠.”
“일어나서 뭐 할까 생각하다, 찬이랑 창고 점검 같이 해두면 좋겠다 싶어갖구.”
쓰레기통 부여잡고 있는 그대로 사무실 쪽을 바라보았다. 지난주, 저 밑 창고에서 바위에 박힌 검을 갖고 이러니저러니― 얘기했었다.
“좋죠. 지금 바로 들어가십니까?”
“이따가. 모처럼 찬이 얼굴 1시간 더 보게 됐는데, 일하느라 써버리면 아깝잖아. 그치.”
점장이 오늘따라 많이 심심한가 보다. 마침 잘됐다. 나도 어젯밤 겪은 일로 꺼낼 말이 좀 있다.
용량이 절반 정도 남도록 쓰레기통을 눌러 담은 뒤 일어났다. 마침 거리도 출근 시간 끝나서 한산한 참이고….
점장이 적극적으로 쇼윈도 앞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고, 옆자리에 따라 앉았다. 내가 먼저 말했다.
“점장님. 어젯밤에 근무는 별일 없었고, 협업하는 서큐버스분이랑 미팅 가졌었습니다.”
“어제 전화 건 게 그분 맞았구나. 그래서, 소감은 어때? 이 세상 일은 할 만해?”
“이 세상 일이란 생각이 잘 안 들긴 했어요. 그리고 소감은… 어….”
“응, 응.”
“서큐버스는 서큐버스다?”
“응?”
풀어서 말했다. 모쏠 둘이서 솔직해지는 묘약 테스트 한답시고 솔직함 배틀을 벌이기로 했는데, 첫 질문이 내 거주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찬이 사는 곳? 그걸 물어보셨어?”
“예. 제대로 대답은 안 하고 적당히 둘러대긴 했는데, 그 대신 분위기가 좀 요상해져서….”
풀어보겠답시고 나 사는 곳은 왜 궁금하냐― 물어보고, 대답 듣고, 더 어색해져서는 서로 할 말 고르다가, 같이 있던 치와와가 난입해서 깽판을 쳤고―
마지막엔 그럭저럭 잘 풀렸다. 말을 마친 뒤 점장을 바라보니, 점장이 반은 놀랍고 반은 기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찬아. 그러니까, 그 서큐버스분께서 이렇게 자세를 잡으셨다는 거지?”
“예?”
“기다려 봐. 그러니까….”
나를 향해 몸을 돌리고는 무릎에 두 손을 모으고, 어깨는 살짝 움츠리고, 도중에 까먹을 뻔했다는 듯 연갈색 앞머리 손으로 살짝 쓸어내리고.
고개 숙인 뒤에는 앞머리 사이로 애절하게 날 올려다보는데, 어제 서큐버스가 잡았던 자세와 똑 빼닮았다. 차이점이 있다면, 눈물이 그렁그렁하진 않았다는 것.
“이렇게.”
“그 자세가 맞기는 한데, 굳이 재현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물론이지! 내가 생각한 게 맞았는지 확실히 해야 되니까 그렇지.”
크게 납득 가는 논리는 아니었다. 자세를 푼 점장이, 이제는 기특함 가득한 얼굴로 내 무릎을 토닥이더라.
“찬이, 이걸 참았어? 독하다 독해.”
“참았다라면, 제가 그때 뭘 당했다는 얘기세요?”
“유혹 얘기야. 그 서큐버스분이 찬이 유혹한 거라구. 그분께서 의도하고 하신 건 아니겠지만.”
유혹? 29년 살며 들어본 말들 중 제일 나와 연관이 없었던 말이다. 내가 돈이 많은 놈도 아닌데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했대?
진짜로 이해가 안 돼서 가만히 듣기만 했더니, 이런 내용이었다. 엘레나 양이 날 올려다본 그 순간, 무의식적으로 마법을 쓰고 있었을 거란다.
“서큐버스분들이, 전혀 배우지 않아도 스스로 습득하고 사용하시는 마법이 하나 있어. 상대방이 자신한테 호감을 가지게 하는 마법.”
거의 유전자 단위로 연산식과 마법진이 새겨진 수준이라 발동 조건도, 준비 단계도, 사용하려는 의지도 필요 없다고 한다.
그나마 필요한 조건이 있다면 딱 하나, 서큐버스에게 이런 마음이 있어야 한다. 눈앞의 상대가 나를 좋아해 줬으면 하는 마음.
“그 마음이 사랑이란 얘기는 아니구.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 보기만 해도 좋다, 그냥 좋다, 이런 것들도 전부 다 좋아하는 마음이잖아.”
“그건 이해했고, 다음은 이런 식인 겁니까? ‘날 좋아해 줬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고, 그때면 무의식적으로 마법을 사용해서―”
“응, 응.”
“그 마법에 당한 상대방이 서큐버스한테 호감을 가지게 되고… 다음에는… 이게 맞는 건질 모르겠네.”
“거의 맞아. 사랑하게 되는 거. 절대는 아니구, 대충 99% 정도?”
그 99%에 달하는 평균을 어젯밤 내가 깎아 먹었다, 를 끝으로 점장이 설명을 마친 뒤 덧붙였다.
“하지만 찬이는 마법 안 통하니까… 음… 순수한 화력으로 밀어붙이셔야겠네.”
“순수한 화력은 또 뭐야. 저 총 맞는 거예요?”
은유법 섞인 말 같아 물어봤다. 점장이 잠시 말을 고르다가, 어깨 으쓱하고는 마무리 지어버렸다.
“몰라두 돼. 아무튼, 당분간 안심해도 되겠다.”
“들어도 잘 모르겠으니 그냥 넘길랍니다. 아무튼 또 여쭙고 싶은 게, 거기에 저만 있는 게 아니었거든요?”
내 등 뒤에 치와와 한 마리가 앉아서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다. 나한테는 안 통하더라도, 그 양반한테는 영향이 있었어야 되는 거 아닌가?
“그야, 그 서큐버스분이 찬이 말고는 눈에 뵈는 게 없으셔서지.”
“그건 무슨….”
“잘 모르겠으면, 그냥 그런 줄 알면 돼. 그리구, 찬아.”
“예.”
“그 치와와분이 어제 중간에 끼어드셨다 했잖아.”
치와와 얘기는 적당히 넘어가려 했었다. 나한테 툭하면 육두문자 내뱉는 양반 얘기를 점장이 좋아할 것 같진 않아서였다.
“했었는데, 크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그 양반 원래 입에 욕 달고 다니는 양반이라―”
“화내겠다는 게 아니구, 혹시 그 치와와분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셔?”
“그건 아직 못 물어봤습니다. 궁금하시면, 나중에 왔을 때 커피 얻어먹은 거 돌려주면서 슬쩍 물어보―”
“그거. 커피 얻어먹었다는 거. 그게 신경이 쓰인단 말야.”
‘내 생각에는―‘ 운을 떼며 손깍지를 낀 채로 검지를 톡톡 맞대는 점장. 아주 확신을 갖고 말하는 건 아닌 듯 보인다.
잠깐 생각하다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글쎄.
“그분 말야, 찬이 엄청 마음에 들어 하는 거 아닐까?”
척수반사로 대답했다.
“네? 그 씹새가요??”
“어허, 찬아.”
“아. 이게 그, 죄송해요 점장님. 죄송한데, 방금 하신 말이 진짜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아서 그렇습니다.”
“글쎄. 뒤는 몰라도, 앞 정도는 맞지 않을까?”
“그 양반, 제 이름이 씹새인 줄 안다니까요?”
내가 인생 3년 살아야 얻어 처먹을 욕을 그 양반한테 다 처먹었다. 지금 내 울화통에 그 치와와 욕이 가득 쌓여있다고. 통 뚜껑이 닫히질 않는다니까?
“그래두, 찬이랑 서큐버스분 중간에 얘기 끊겼다면서. 그때 딱 끼어들어서 풀어주셨다, 이렇게 가정해 보면 좀 다르지 않아?”
“그렇게 생각이 안 돼서 그렇… 아니….”
복식호흡 한 번 하고, 생각을 해봤다.
그 양반이 그간 나한테 던지고 간 치약, 숙취해소제를 포함해 두고 간 것들, 그리고 어젯밤 일. 그게 단순한 변덕이 아니라, 나름대로 날 신경을 써준 결과였다?
치약 두고 간 것도 짬처리가 아니라 정말 내 치아 건강이 걱정돼서였던 거고, 숙취해소제도 내 간 수치 챙기라고 준 거였다?
어제 끼어든 것도, 모쏠 둘이 하도 답답하게 구니까 풀어줄 겸 몰래 신경 써준 거였다. 사실은 절름발이가 범인이었다….
“반전이네, 진짜….”
“찬이네는 치와와가 엄청 난폭한가 보다. 내 말 실감 안 날 정도로.”
“아뇨, 귀여울 땐 귀엽습니다. 난폭하기만 한 녀석들은 기르는 사람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고. 저 양반도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김밥 집어 던지거나 술병 깨 먹은 적은 없었으니 말이다. 그랬으면 아예 말도 안 걸었지. 그렇다 해도, 날 마음에 들어 한다? 신경을 쓴다?
이것만은 도저히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싫다. 날 신경을 쓰는 거면, 내 이름 두 자를 씹새로 개명하려 들면 안 되는 거잖아….
착잡해하고 있자니, 점장이 어깨에 손 얹으며 말해왔다.
“정 그러면, 나 근무할 때 그분 오시거든 한번 말 나눠볼게. 어떤 느낌인지.”
“해보시고, 마음에 안 드시면 경찰에 신고 좀 해주십쇼.”
“응.”
마무리 지은 뒤 동시에 시계를 바라봤고, 9시 10분이었다. 점장이 먼저 일어났다.
“슬슬 일어나자, 찬아. 일찍 끝나믄 또 얘기하구.”
“옙. 저희 오늘 할 일 많습니까?”
“많지는 않아. 점검할 거 세 개 있구, 위험하지도 않―”
점장이 말하는 도중, 짤랑. 정문 벨 소리가 울렸다.
“지금 들어오신 손님만 딱 받겠습니다.”
“응. 나는 그동안 목록. 어?”
또다시 말을 멈추는 점장. 막 들어온 손님이 무척 반갑다는 얼굴이다.
누가 온 거길래― 싶어 돌아보니 내게도 반가운 얼굴이었다. 보조바퀴 달린 네발자전거, 흰색 머리에 검정색 뿔.
“아조씨, 안녕하새… 앗.”
“오냐.”
용 꼬마였다. 인사를 받아줬으나, 꼬마가 매장 안에 바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점장과 눈 마주치더니, 유리문 끄트머리 부여잡은 채로 가만 서 있기만 하더라.
“오랜만이네, 꼬마야. 놀러 온 거야?”
점장 질문에 살짝 몸을 움츠린다. 그래도 몇 번 얼굴 본 사이라 익숙해진 건지, 움츠린 게 오래가지는 않았다.
“…내, 내에. 오늘 유치원이 쉬어갖구… 저 못 노라여?”
“아니야! 전혀. 얼마든지 놀다 가도 돼. 여기 내 가게거든.”
“가, 감사해여. 언니야.”
꼬마가 뚜방뚜방 다가오자, 뿌듯함 가득한 얼굴로 머릴 쓰다듬는 점장.
“아무리 봐도 말야, 애가 참 착해.”
“지금 언니라는 말 들으셔서 그러시는 거죠. 점장님.”
“그래! 뭐! 서로 오고 가는 게 있어야지!”
“그게 맞죠. 하나야, 너 멍멍이랑 같이 헤어졌었잖냐. 잘 놀았어?”
순식간에 말이 오고 가서 그런가, 꼬마가 당황했는지 눈만 끔벅인다. 허나 잠시 후, 한마디로 정리해 말해줬다.
“저이 집애서여, 같이 어―엄청 뛰어놀다가여, 해어졌서여.”
집에서 뛰어놀았다는 거 보면 얘 집이 생각대로 넓은 게 맞나 보다. 시간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꼬마 앞에 몸 숙이고 말해줬다.
“하나야. 미안한데, 오늘은 아침에 놀아주기가 좀 힘들다.”
“엣.”
“나도 니랑 노는 거 재밌어서 좋은데, 바빠서 그래. 바빠서.”
지하창고 들어가서 뭐 좀 해야 한다, 10시 전후로 끝난다, 적당히 설명해 주려 했다. 헌데 이 녀석이 뒷말은 안 듣고, 첫 한마디에 눈을 반짝여오더라.
“지하창꼬?”
“그래, 우리 편의점 지하창고. 좀 던전같이 생겼는데, 던전은 아니고.”
“떤전? 모험?”
“모험 떠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일하는 거라니까.”
풀어 말해줬으나, 눈이 두 배로 반짝이기 시작한 게 영 심상치가 않다. 뒷말은 이제 들리지도 않는 것 같다.
“재밋겟다… 아조씨….”
“안 돼, 하나야. 놀러 가는 거 아니고, 저 밑에 먼지도 많다고. 너 또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래?”
“…우으. 감기는 시러여… 싫치만….”
모험을 포기할 수도 없다는 눈치였다. 얘를 어떻게 뜯어말려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 점장이 꼬마 어깨를 살포시 붙잡고는 말했다.
“꼬마야. 아저씨랑 나랑 일하러 가는 거야, 일. 일 알지?”
“아라여. 저이 엄마야, 혼자서 일하러 가셔….”
“그렇구나. 일이라서, 놀러 가는 건 안 돼.”
안 된다는 말에 시무룩해진 꼬마에게, 점장이 붙잡은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이었다.
“놀러 가는 건 안 되고, 갈 거면 같이 일하러 가야 되는데….”
“에….”
“혹시, 과자 잔뜩 먹고 싶은 생각 없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