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08)
이세계 편돌이-107화(108/331)
107화. 동심 가득한 부업시간 (2)
이후로 3분, 입 꾹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점장 생각이 뭔지 전혀 짐작이 안 갔기 때문이다.
우선 자기를 데려간다는 말에 꼬마의 몸에 생기가 돌아왔고, 점장이 POS기에서 점검 품목 적힌 용지를 인쇄해왔고….
“꼬마야. 동화책에서 용사들이 모험을 떠날 때, 늘 검이나 갑옷을 챙겨갔잖아?”
“내!”
“내!”란다. 저 낯가리는 꼬마가, 파티에 동행시켜준다는 말 한마디에 놀이공원 현장학습 나온 것마냥 눈이며 목소리며 초롱초롱 빛내고 있다.
저기에 대고 뭔 말을 해. ‘당신은 우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라며 유감을 표출해? 저 꼬마가 눈물 글썽이며 용용펀치를 날려 올 텐데?
그걸 맞았다간 심장이 터져 버릴 게 분명했다. 마저 입 다물고 있는 사이, 이번엔 마스크를 챙겨온 점장.
“오늘은 엄청 짧은 모험이라 검이랑 갑옷까진 필요 없구, 간단한 장비만 가져갈 거야. 자, 여기 마스크.”
느닷없이 마스크를 쓰라 하면 싫어할 법도 한데, 애가 크게 고개 꾸벅이며 받아 들고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뒤집어썼다. 끈이 뿔에 걸린 탓에 내가 매만져 주긴 해야 했지만, 어쨌든….
“다 썼서여.”
“응. 마지막으로, 저기 테이블에 꼬마 책가방만 내려놓고 오자.”
“내!”
꼬마가 총총 달려가는 동시에 책가방 벗기를 시전했고, 점장이 나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지금이 질문 타이밍이라는 신호렷다.
“점장님, 이거 괜찮은 거 맞습니까?”
바로 소리 죽여 물었다. 지난주, 우리는 창고에서 빛의 용사 세트를 점검했었다.
점검하던 그때, 장난감 안에서 웬 음침한 유령이 튀어나와서는 ‘드디어 해방됐다’ 따위의 중간보스나 내뱉을 법한 말을 했단 말이지?
그 유령이 특별히 뭔 짓을 하지는 않았다. 뭔 짓을 해보기도 전에 내가 유령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해를 입은 건 아니지만, 그 경험이 썩 좋은 경험은 아니었다. 그 유령을 해체분해한 감촉이 아직도 주먹에 생생하거든.
행여나 그런 일이 또 발생하거든 애 정서에 크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겠냐는 거다.
“그리고, 창고 안쪽에 냉병기스러운 것들도 많잖습니까. 애가 만져보고 싶다고 하면―”
“괜찮아, 문 꼭꼭 걸어 잠가놨거든. 코앞에서만 작업할 거구.”
지하창고 내부가 넓긴 넓어도, 구조가 복잡하진 않다. 긴 복도가 이어져 있고, 복도 입구의 첫 번째 방부터 방 여러 개가 넓은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형태.
첫 번째 방에 제일 덜 위험한 것들이 가득 쌓여있고, 오늘 작업은 그 첫 번째 방에서만 진행이 될 거라 한다. 여기까지 말한 뒤, 점장이 씨익 웃었다.
“또, 오늘 점검할 것들은 저 애가 엄청 도움 많이 될 거야.”
“대체 뭘 갖고 뭘 하는 거길래.”
“그건 비밀. 쫌 이따 알려줄래.”
내가 작업하는 건데 나한테 비밀로 하는 건 뭔 심보야. 싶었으나,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점장도 어련히 생각이 있으니 이러는 거겠지.
“좋아. 그럼 갈까?”
“내!”
“예….”
아무튼 출발. 창고 입구 문짝을 발로 걷어 열었는데, 계단 칸이 원체 높은 탓에 꼬마가 살짝 무서워하더라. 점장이랑 손 한쪽씩 나란히 붙잡아 같이 내려가 줬다.
창고에 도착해서는 언제 무서워했냐는 듯 눈을 반짝이는 꼬마.
“오오, 아조씨. 아조씨.”
“왜.”
“엄청 커여.”
“찬아, 꼬마야. 여기.”
그래도 점장이 부르자, 헉하며 정신 차리고는 쪼르르 따라 들어간다. 꼬마 뒤를 따라 들어가자, 전에 그랬듯 용도가 짐작조차 안 되는 수많은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머가 엄청 만아여. 아조씨, 언니야.”
“꼬마는 이 안에서 뭐가 제일 좋아?”
“안애서여? 에….”
점장 질문을 되풀이한 뒤, 잠깐 생각하는 듯 땅을 내려다보다….
내 얼굴을 올려다봤다.
정정해 뒀다.
“난 비매품이야, 하나야.”
“빔애품?”
“언니가 물어본 게, 여기 쌓여있는 것들 중에 어떤 게 좋냐는 말이었어.”
“싸여잇는… 앗. 제송해여.”
이제서야 질문 뜻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홱홱 주변을 돌아보다가 한 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중형 냉장고만 한 크기의 보물상자였다.
“보물상자애여, 아조씨!”
“그러게 말이다. 점장님, 저거 진짜 보물상자예요?”
“진짜는 아니구, 미믹. 안에 애들 들어가서 타고 노는 거야.”
“저걸 안에서 타고 논다고요?”
내 어휘 능력이 시험받는 기분이다. 미믹이 그거잖은가. 상자 같은 걸로 변장해 숨어있다가, 누구든 가까이 오면 냅다 잡아먹고 본다는 괴물.
나름대로 고증을 철저히 한 것인지, 미믹의 입이 있어야 할 부분에 이빨 무늬도 아주 정성 들여 그려놨다. 저딴 무시무시한 걸 도대체 왜 애들 장난감으로 만든 거며, 타고 노는 건 또 어떻게 타고 논다는 것인가?
묻자, 점장이 짧게 설명해줬다.
“가정에서 쓰이는 건 드물구, 가을에 학교나 유치원에서 대여하는 경우가 엄청 많아. 학예회 연극용으로.”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러 가는 스토리의 연극. 이 세상 학예회 시즌에 단골로 쓰이는 레퍼토리랜다.
그 연극들에서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면이 보물상자를 발견한 용사고, 그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반전을 주고 싶을 때 이 미믹 장난감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 말씀 들으니 뭔가 설득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궁금하면 안에 한번 살펴볼래? 점검할 건 없긴 하지만.”
“일 아니면 저는 딱히, 아니지. 넌 어쩌고 싶냐? 하나야.”
“안애 봐두 대여? 아조씨? 언니야?”
“물론. 닳는 것두 아닌데 뭘.”
바로 열어봤고, 미믹의 내부 구조가 이러했다. 가운데에 조그마한 운전대, 그 밑에는 액셀과 브레이크. 좌석은 분홍색인 게 혓바닥을 본뜬 것 같고….
좌석 밑에는 안전벨트, 뒤에는 배터리로 보이는 기계장치 하나. 좌우 공간은 텅텅 비어있다. 무시무시한 외견에 비해 내부 구성이 꽤나 단출하다.
꼬마도 아주 흥미가 있진 않았는지, 미믹에서 슬쩍 물러나고는 감상평을 읊조렸다.
“클낫서. 보물이 업서….”
귀에 밟힐 정도로 목소리가 시무룩해져 있다. 점장 눈치를 보니, 꼬마의 근로의욕이 희미해지고 있단 걸 깨달은 얼굴이었다.
“우리가 한발 늦은 거 같다. 점장님, 이거 닫고 바로 일 시작하겠습니다.”
“응. 여기 목록.”
점장에게 점검 품목 목록을 받아 읽어내렸는데, 확인하는 순간 내 근로의욕도 덩달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왜냐면 첫 줄에 적힌 게 글쎄.
“리코더?”
“응. 리코더.”
“점장님. 이거 마법 쓰는 주문은 아니죠.”
“아니? 그냥 리코더인데?”
편의점에서 리코더를 도대체 왜 파냐?
묻는다면, 이런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다. 예를 들면 초등학교나 유치원에서 음악 수업 할 때, 깜빡하고 집에서 리코더를 안 챙겨갈 경우가 있잖은가?
그럴 때를 대비해 초등학교나 어린이집, 유치원 앞 편의점서 리코더를 파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이렇게 창고에 처박아두는 경우는 없지만 말야.
“악보 300곡 내장에 호흡 보정, 자동세척 마법, 최대 2옥타브 조절하는 기능까지 있지. 꽤 비싼 거야, 찬아.”
“허어….”
“색은 분홍색이고.”
점장이 로비에서 이 목록을 왜 안 보여주려고 했는지 이제 알겠다. 지금 내 표정이 보고 싶어서 그랬던 거구만.
“꼬마애가 와줬으면 했던 게, 찬이가 리코더 부는 법을 까먹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더라구. 아니면 잡는 법 기억하구 있어?”
“…예, 기억은 합니다.”
반짝반짝 작은별 정도는 연주할 수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서로 거짓말 안 하기로 약속했으니까. 근데, 이게. 아니….
까놓고 말해서, 내가 이것만은 아무리 일이어도 못 하겠다. 지금 나보고 유치원생과 여고생 외모의 직장상사 앞에서 분홍색 리코더로 반짝반짝 작은별을 연주하라고?
맨정신으로 할 짓이 못 된다. 올라가서 깡소주 3병 가져다 마시고, 뒷일은 오늘 밤의 내게 맡겨버려? 이불 걷어찬 건 나중에 솜 채우고?
“기억은 하는데, 제가….”
비장한 각오가 필요한 상황이다. 막막함에 점장 눈치를 보니, 점장도 진심으로 이러는 건 아닌 듯 보였다. 얼굴 한가득 웃고 있는 게 오늘은 살짝 얄밉다.
“…제가 밤을 샜잖습니까. 지금 불어도 그, 영혼의 소울을 못 실을 것 같거든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소울은 중대 문제니까.”
이찬은 이 일을 기억할 것이다. 반드시….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기지개를 켠 뒤, 근처 상자에서 분홍 리코더를 꺼내는 점장. 세척 마법 덕인지 상자에서 막 꺼냈음에도 깨끗하다.
“꼬마야. 혹시 유치원에서 리코더 연주 해봤니?”
“내. 근대, 잘은 못 불러여….”
“괜찮아. 이 리코더가, 꼬마 연주하는 거 엄―청 잘하게 만들어 줄 거거든.”
점장이 내게 했던 설명에 마저 보충했다. 300곡 악보 중 원하는 곡이 머릿속과 눈앞 홀로그램으로 떠오르며, 머릿속 악상에 따르는 것만으로도 리코더를 더 잘 불 수 있게 된다는 것.
“오오.”
“어때, 꼬마야. 관심 있어?”
“내! 만이!”
꼬마가 어떤 생각인지 짐작이 된다. 리코더를 잘 불면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좀 더 사이가 좋아질 수 있다. 이런 생각이지 않을까.
의욕적으로 점장이 건넨 리코더를 받아들고는 입에 무는데, 무는 순간 꼬마가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덩달아 나도 놀랐다. 리코더의 바람 빠지는 부분 위로 음악 제목이 가득 적힌 연녹색 홀로그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런 하이―테크놀러지가 어째서 유아용 리코더에?
“노래가 엄―청 만아여! 머리에두, 앞에두!”
“응. 거기서 꼬마가 불고 싶은 노래를 생각하면, 머릿속에서 노래가 들릴 거야. 3, 2, 1, 시작 하구.”
“에… 만아갖구. 어뜬 거 해야대지….”
“꼬마가 좋은 노래.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든, 번호가 좋아서든.”
점장 설명에 눈을 질끈 감는 꼬마. 부는 당사자는 홀로그램을 안 봐도 노래를 고를 수 있나 보다. 끙끙 고민하는 소릴 내며 음악을 고르길 수 초.
꼬마 생각에 맞춰 내려가던 홀로그램의 제목들이 우뚝 멈췄다. 꼬마가 노래를 정한 것 같다. 어디 보자….
“…왕벌의 비행. 뭐야, 이게 왜 있어?”
“왕벌이 막 난대여! 머찔 꺼 같아갖구.”
“찬아. 이건 애한테 좀 힘들지 않을까?”
힘든 수준이 아니라, 이걸 연주하게 뒀다간 꼬마가 연주 도중 산소부족으로 죽어버릴 게 분명했다. 다음 수순은 꼬마애 엄마한테 고소당하는 걸 테고….
“그거 물고 잠깐만 있어봐라, 꼬마야.”
“휘익!”
대답 대신 리코더를 부는 꼬마. 점장과 급하게 머리 맞대고 상의했고, 결론을 내렸다.
“수록곡 내장 마법에 버그 난 거 같아, 찬아. 엄청 함축적으로 표현한 거긴 한데.”
“귀에 쏙 들어오는 설명이네요.”
내가 점검해야 할 게 뭔지도 알겠다. 애 기를 죽이는 노래들이 모종의 이유로 리코더에 생겨난 상태고, 그걸 내가 지우면 된다는 거지.
결론 내린 뒤, 꼬마 옆으로 슬쩍 다가가 엄지손가락으로 홀로그램을 쓸어내렸다. 이 한 곡만 지우고 보자― 생각하며 쓸어내렸더니, 칠판 낙서 지우듯 슥 지워졌다.
“앗. 갑짜기 안 들려여.”
“에고. 왕벌이 날아갔나 보네.”
“그러쿠나. 아십따….”
“너무 아쉬워 안 해도 된다, 하나야. 그거 말벌이거든.”
“헉.”
이 말 직후에 점장한테 등짝 한 대 맞았다. 따끔했다.
“이번 노래는 벌이 날아가 버려서 안 되니까, 다음 거 골라보자.”
“내.”
고개 끄덕인 꼬마가, 다시 눈 질끈 감고는 노래를 고르기 시작했다. 홀로그램 플레이리스트가 한참 동안 움직이다 멈췄고, 이번엔 내가 모르는 노래였다.
“마법피리래여. 이거두 머쪄.”
“마법피리, 밤의 여왕 아리아….”
“이건 제가 모르는 제목인데. 뭔 노래예요?”
“오페라 노래인데, 죽음! 절망! 이건 내 딸이 아니다! 이런 가사가 나오구, 가수가 엄청 화를 내.”
“그럼 리코더로는 힘들겠네.”
말하며 슥 지워버렸다. 이게 플레이리스트 27번째 노래였다.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