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09)
이세계 편돌이-108화(109/331)
108화. 동심 가득한 부업시간 (3)
300종 수록곡 전부 검토하고, 28곡 지우는 데 걸린 시간이 10분. 예상보다는 꽤 빨리 끝났는데, 꼬마 도움이 무척 컸다.
“으음… 불랙… 쌩…?”
“블랙 생텀 사가. 이것도 지워야 될 것 같아, 찬아. 40분짜리 교향곡이거든.”
“이야, 누가 지은 건진 몰라도 제목 참 멋지네.”
꼬마가 불어보겠답시고 선곡한 모든 곡이 하나같이 정신이 나간 곡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드래곤 특유의 촉이 발달해서인 건지, 단순히 멋진 단어 서너 개 섞인 것만 고르다 이렇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불러보구 시펏는대. 아까 것두, 이번 것두.”
이러는 거 보면 후자 쪽에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300곡 분류하는 동안 뭘 골라도 하면 안 된다는 말만 들은 탓인가, 꼬마가 눈에 띄게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으음, 어뜬 걸 해야 대지….”
“점장님. 지우는 건 이쯤 해야 될 것 같습니다.”
“응. 찬이 작업할 때 목록 계속 봤는데, 딱히 문제 없겠더라구.”
점장과 소리 죽여 짧게 상의했다. 리코더에 걸린 마법이 수록곡, 호흡 보정, 자동세척, 옥타브 조절 마법.
4종류 중 수록곡 마법을 지금 해결한 참이고, 나머지 셋은 꼬마가 연주를 해보면 바로 해결될 문제라 결론 내렸다. 애가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니 연주할 노래는 점장이 골라주고.
“저기, 내가 엄청 좋아하는 노래가 하나 있는데. 혹시 연주해줄 수 있니?”
“내. 열씨미 하깨여.”
“고마워, 꼬마야. 번호는 180번.”
번호 미리 점지해 둔 걸 보면, 이렇게 될 걸 점장도 미리 짐작했던 것 같다. 점장 손짓에 맞춰 플레이리스트가 슥슥 내려가다, 180번대에서 딱 멈췄다.
노래 제목은 고장 난 괘종시계. 고딕틱한 느낌의 제목이 연주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었으나, 꼬마는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우아.”
“어때. 머릿속으로 들어보니까 괜찮지?”
“내. 노래가 예뻐. 해바두 대여?”
“물론이지.”
점장 고개를 끄덕인 꼬마가 리코더를 다시 입에 물고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이후 곧바로 연주 시작.
노래는 체감 시간으로 딱 1분 정도 연주되었고, 도중에 뚝 끊겼다.
“…헤엑.”
폐활량 이슈가 터져버렸기 때문이다. 꼬마가 얼굴 빨개진 채로 몇 번 숨을 몰아쉬고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우리 눈치를 보더라.
박수로 화답해줬다. 점장은 빠른 박자의 물개박수, 나는 느릿느릿 풍선박수.
“뭘 그리 걱정했냐? 이렇게 잘 불면서.”
80% 진심 담아 말해줬다. 호흡법이 미숙한 탓에 연주가 중간에 몇 번 끊기긴 했어도, 이어지는 동안은 편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삑사리도 없었고.
노래 자체는 뭐, 잔잔하고 조용한 노래였다. 길 걷다 어디선가 들려오거든 잠깐 멈춰서서 귀 기울일 듯한 그런 노래.
“맞아. 덕분에 아침부터 귀 호강했어, 꼬마야.”
“정말여?”
“응. 막힘없이 부는 게, 연습 엄청 한 것 같던데?”
“내! 저여, 헥. 숨 시기가 힘들엇는대여, 이거루 하니깐 만이 편했서.”
지금까지도 호흡법이 어려워서 힘들었다는 말 같다. 많이 편했다는 말은 호흡 보정 마법이 잘 작동했다고 받아들이면 될 것 같고….
“그리구여, ‘소리가 쫌 더 높앗스면―’ 생각햇는대여, 헥. 생각하니까는 막 높아져써.”
이건 옥타브가 알아서 올라갔다는 소리일 거고. 이 마법 두 종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그리구― 헥.”
“힘들면 나중에 말해주라, 하나야. 리코더는 잠깐 나 주고.”
“내.”
반응이 뿌듯했는지 만족스러운 얼굴로 리코더를 건네오는 꼬마. 받아 들어 면면을 살핀 뒤, 돌림쇠 부분을 열어 안팎을 살폈다.
숨이 불어넣어지는 곳과 빠지는 곳. 두 곳 다 물기 하나 없이 깨끗하다. 나 어렸을 적엔 잠깐만 불어도 침 흥건해져 갖고 막힌 소리만 났었는데.
“수록곡 마법 빼고 나머진 잘 굴러가는 거 같습니다. 점장님.”
“찬이는 그렇게 생각해?”
“아무래도요. 아까부터 집중해서 봤는데, 딱히 이상한 것도 안 보였고.”
내 눈을 가리키며 말하자, 점장이 재차 물어왔다.
“찬이 체질로?”
“네.”
내 이세계산 체질의 특징 중 하나. 마법 걸린 물건을 유심히 보면 일렁임 같은 걸 추가로 볼 수 있다. 자격증 딸 때 요긴하게 써먹었다.
이걸로도 뭔가 알 수 있겠다 싶어 중간중간 유심히 봤는데, 리코더 연주를 하는 동안은 눈에 띄는 변화가 없었다. 세척 마법이 작동했을 순간에도 마찬가지였고.
다른 마법들이 연주 도중에 이상 작동 했다면, 일렁이는 게 커지거나 줄어들었을 거다. 마저 생각을 말하자, 점장이 바로 수긍하고는 덧붙여왔다.
“찬이도 이제 많이 적응했나 보다.”
“그러게 말입니다. 지지난달만 해도 이런 일 하면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러니까 사는 게 재밌는 거지. 아무튼 리코더는 이걸로 끝.”
내게 리코더 받아 들어 두어 번 털고는 다시 상자에 집어넣는 점장. 먼지 붙을 거야 뭐, 마법이 알아서 해줄 거고.
“수고했어, 꼬마야. 위에서 물 가져오면 마실래?”
“갠차나여, 아직 쌩쌩해갖구.”
“그럼 바로 두 번째로 넘어가자. 찬아, 거기 미믹 뒤에 라면박스 보이지.”
점장이 가리킨 곳을 바라보니, 미믹 뒤에 대형 라면박스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는 게 보였다. 포장은 박스테이프 한 겹으로 단출하다.
“보여요. 근데, 마법 걸린 상품이 왜 라면박스에 담겨있는 겁니까?”
“임시방편. 상자가 구겨진 채로 왔거든.”
그래도 비닐 포장 잘 되어 있고, 얇고 튼튼한 물건이라 괜찮다 설명하는 점장. 난 마법 걸린 물건을 저렇게 보관해도 괜찮냐고 물어본 거였는데 말이다….
몰라. 괜찮으니까 이렇게 했겠지. 적당히 생각하며 박스테이프를 뜯고 내용물을 꺼내 들어봤다. 비닐 포장 안에 검보랏빛 천 뭉치 같은 게 들어있고, 비닐에 붙은 태그에 적힌 게―
“…대마법사 변신 세트. 하나야, 이거 변신 세트라는데?”
“변신?!!”
변신 두 글자를 들은 꼬마의 꼬리가 위로 솟구치고, 느릿느릿 프로펠러를 돌려대기 시작했다. 내가 음성인식으로 시동을 걸어버렸구만.
서둘러 포장을 벗긴 뒤 펼치자, 밑으로 검보랏빛 천이 부드럽게 축 늘어져 일렁였다. 점장에게 소감을 말해줬다.
“마법사 로브인가 봅니다. 사이즈는 유아용이고.”
“어, 찬이 어떻게 알았어?”
“본 적이 몇 번 있긴 해서요. 실물로는 처음이지만.”
“실물로는 처음. 아아.”
적당히 감상 주고받으며 상자 안쪽을 마저 확인했다. 로브 외의 구성품이 별 모양 장식 달린 마법봉, 주름진 고깔모자….
고깔모자에 반쯤 깔려 있는 A4 사이즈 책자. 책자 표지에 큼지막하게 ‘사용 설명서’라 적혀있다. 이걸 찾고 있었다.
“점장님, 저 이거 잠깐 읽고 있겠습니다. 점검할 때 참고할 거리 있겠다 싶어서.”
“좋아, 난 애한테 로브 입히고 있을게. 꼬마야, 만세!”
“내!”
이참에 후딱 읽어야겠다. 설명서 1페이지, 제목과 완구회사 제목, 장난감 소개 문구. ‘대마법사가 되어 수많은 마법을 부려보세요!’ 이건 넘기고….
2페이지 이후로는, 페이지들 대부분이 그림과 서술로 때워져 있는 구성이었다. 주로 왼쪽 페이지에 마법 명칭과 마법진 도형 그림. 오른쪽에는 허공에 마법진을 그리는 순서.
서술은 대체로 식이다. 예를 들어, 화염 마법을 쓰는 법.
1. 지팡이를 준비한다. 2. 별 모양 지팡이의 끝을 눈높이까지 들어 올린다. 3. 지팡이 끝을 대략 30cm/s의 속도로 역시계방향으로―
“이런 씨, 이렇게 적어놓으면 애들이 알아?”
“찬아, 그 부분은 넘겨도 돼. 나도 잘 알거든.”
답답해서 중얼거려 본 건데, 점장이 옆에서 받았다. 생각보다 빨리 입혔다.
“점장님께서는 마법 쓰실 때 지팡이 안 쓰시지 않아요?”
“나야 이제 필요 없으니까 안 썼지. 연산식도 머리로 직접 계산하니까.”
“그럼 이 지팡이가 연산식 대신 계산해 주는 막대기 모양 계산기다….”
“그게 거의 맞는데, 딱 한 가지가 달라.”
그 한 가지가 무엇인고 하니, 책자에 설명된 대로 지팡이를 휘두르면 원래는 정말 불꽃 마법이 써졌을 거란다. 이게 제대로 된 지팡이였다면.
“계산기는 항상 정해진 정답만 내지만, 이 지팡이는 항상 정해진 오답만 내게 만들어졌다― 이 말이야.”
“정해진 오답은 또 뭐랩니까.”
“딱 한 군데, 의도적으로 연산식을 틀리게 적었다 보면 돼. 시각효과는 확실하게 구현하되, 위력은 0에 수렴하도록 말야.”
“0에 가깝다는 건, 0은 아니라는 말씀이신 거고.”
“그렇지. 불 마법 쓰면, 어… 봄바람 온기 정도는 느껴지겠다.”
내가 점검해야 할 게 뭔지도 감이 잡힌다. 봄바람 온기가 풀파워 찜질방으로 진화하거나, 에어컨 바람으로 바뀐다거나 하는 걸 조절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자니, 유니폼 옷깃이 꾹꾹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조씨, 아조씨.”
내려다보니, 꼬마가 로브와 모자를 뒤집어쓴 채로 날 올려다보고 있는 채였다. 온통 흰색이었던 녀석이 검보랏빛으로 배색이 바뀐 게 또 색다르다.
눈 마주치자마자 양팔을 좌우로 뻗는 꼬마. 로브가 꼬마 몸보다 큰 건지, 팔을 뻗었음에도 로브에 가려 팔이 보이질 않는다.
“쨔쟌.”
“이야. 너 그러고 있으니까 진짜 마법사 같다, 야.”
“히히.”
대답한 뒤에 발치를 보니, 꼬리가 로브 밑으로 삐져나와서는 바닥에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빨리 끝내고 마법 쓰게 해야 할 것 같다.
“외에 작동방식은, ‘시전자의 마나를 신체에 무해할 정도로 극미량 빌려 쓴다’고 되어 있네요. 이건 마석 안 쓰나?”
“최근에 출시된 장난감들은 마석 잘 안 쓰더라구. 태양열 발전하는 것도 있고.”
“알뜰살뜰하네.”
“그러게 말야. 혹시, 주의사항은 어떻게 적혀있어?”
“주의사항은… 지팡이로 누구 때리지 마라, 핥지 마라, 삼키지 마라.”
별 지팡이 길이가 30cm 자 정도 된다. 애 데리고 차력쇼라도 시키라고?
“별거 없어 뵙니다. 바로 시작하실래요?”
“응. 꼬마야, 오래 기다렸지.”
“아녀. 오래는 아니구, 쪼끔 기다렷서. 언니야.”
“그래도 기다리게 했으니, 그만큼 이 언니가 자세하게 알려줄게. 대마법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를 말야.”
“오오.”
대마법사란 단어에 꼬마 꼬리가 로브 밑에서 들썩이고, 점장은 언니란 말 들은 탓인지 은근히 목소리가 들떠있다. 다음에 둘만 냅둬도 잘 놀겠네.
“자아, 우선은 손목을 이렇게….”
작게 몸을 숙여 꼬마의 손목 옆에 자기 손목을 나란히 댄 뒤, 검지를 펴서는 휘젓는 점장. 왕년에나 쓰고 말았을 동작일 터인데도 유려하다. 전문가의 포스 같은 게 막 느껴진다.
점장의 손가락 끝에 맞춰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고, 지팡이로 열심히 따라가기도 하는 꼬마. 첫 두어 번은 동작이 잘 안 맞은 건지 허탕을 쳤고, 다음 세 번째.
“오오. 불이애여.”
별 모양 지팡이 끝에서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점장 말마따나 뜨겁진 않은 건지, 아예 지팡이 끝을 코앞까지 가져가는 꼬마.
“꼬마야, 그러는 거 위험해서 안 돼. 나중에 진짜 지팡이 쓸 때 큰일 나.”
“앗, 내.”
사격할 때 얼굴에 총구 들이밀지 말라는 주의사항처럼 들린다. 꼬마가 곧바로 코에서 지팡이를 떼고, 점장이 마저 말을 이었다.
“좋아. 다음에는, 이 마법의 위력을 조절해보자.”
“위력여?”
“응. 이건 꼬마가 머리로 ‘얼마나 크게 만들까~’ 생각하는 게 첫 번째야. 꼬마는 이 불꽃을 얼마나 크게 만들어보고 싶어?”
“으음….”
꽤나 깊은 고민이 이어진 뒤, 꼬마가 두 팔을 크게 벌리며 대답해왔다.
“쩌어는여, 불꽃노리! 엄청나게 큰 불꽃노리. 여기가 꽈악―”
직후, 창고가 꽉 찰 정도로 엄청나게 큰 불꽃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