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1)
이세계 편돌이-10화(11/331)
10화. 공작하는 편돌이 (1)
아침이 됐다고 해서 진상이 없지는 않다.
술 취한 진상들 얘기는 아니고. 그 양반들은 술기운에 취해 실컷 진상을 피우다가도 아침 해가 떠올랐다 하면 우웃, 피부가 타오르는 것 같군…! 하며 자기들 집 안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 가는 흡혈귀 같은 성질을 지녔다. 따라서 아침에는 거의 안 보인다.
내가 말하려는 건 직장인들. 정확히는, 시간에 쫓겨 어쩔 줄 모르는 직장인들에 대해서다.
오전 8시 30분 이후에 찾아오는 이 직장인 양반들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순한 맛 진상이 되고는 한다.
외모야 이종족들이니 당연히 다르고, 행동 패턴이나 성별 등도 다 제각각이었으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손님, 계산은 어떤 걸로….”
“네? 아, 카드예요. 지금 정신이 없어서….”
이 양반들은 대체로 정신이 없다.
“3,000원입니다. 담아드릴까요?”
“네?”
“담아드릴까요?”
“아, 아뇨. 아뇨. 괜찮아요. 죄송해요, 정신이 없어서 못 들었네.”
“손님, 카드 가져가셔야죠.”
“네? 어, 아, 죄송해요. 진짜 정신이….”
대충 이런 식이고, 이외에도….
“계산해 주세요!”
리트리버 귀때기가 달린 여자 손님이 계산대 위에 허겁지겁 도시락, 샌드위치, 우유 같은 것들을 올려놓았다. 칫솔 찾던 그 치와와랑 비슷한 종족인 것 같긴 했는데, 외견은 거의 사람에 가까웠다.
순도 10% 코볼트쯤 되겠거니 생각하며 바코드 찍고 가격을 말해줬더니, 바로 만 원을 내밀어 온다.
“9,600원입니다. 담아드릴….”
“거스름돈 안 주셔도 괜찮아요. 수고하세요!”
거슬러주는 3~5초조차 기다리기 힘들었는지, 계산한 것들을 품에 한 아름 안고는 총총 편의점을 뛰쳐나갔다. 꼬리가 축 늘어져 있던 걸 보건대, 지각한 듯했다.
외에 이런 경우도 있었다. 편의점 문 앞까지 달려와서는 폐문 손잡이를 부여잡고 몇 번이나 쾅쾅대는 손님이 있었는데, 대체 왜 저러나 싶어 쳐다봤다가 눈이 마주쳤다. 손잡이를 가리키며 입 모양으로 말하더라. 문이 안 열린다고.
다가가서 옆문을 열어줬다. 머쓱한 표정으로 들어와서는, 똑같이 후다닥 물건 고르고 나가버렸다. 근데 이 양반이 자기 카드를 안 갖고 갔네?
“이런 씨….”
이 시간대에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이렇게 정신줄을 놓고 오는 탓에, 나라도 정신을 차려야 이런 상황이 안 생긴다.
근데 나도 슬슬 졸려서 정신이 없어. 밤샘근무 한 게 얼마 만인지….
포스트잇을 꺼내 메모지에 손님이 왔던 날짜와 시간을 대충 적어 카드에 붙여놓고 포스기 위에 올려놓았다. 점심시간이나 퇴근 전엔 안 찾아올 테니 난 못 만날 것 같고, 인수인계 사항으로 넘겨야 될 것 같다.
이렇게 9시가 딱 지나고 나니, 편의점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사거리는 서부극의 회전초가 굴러다닐 법한 황량한 광경으로 변해버렸고, 돌아다니는 차도, 행인도 거의 없다. 억지로 훑어보아도 취객이 부쳐놓은 부침개나 널린 담배꽁초, 캔 쓰레기나 간간이 볼 수 있는 정도다.
행인이 없으니 편의점도 당연히 한산해질 수밖에. 새벽 언젠가부터 점장과의 전화도 끊고 손님만 받았는데,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니 문자가 와있었다. 8시 50분에 온 문자였다.
[ 안 졸리니? ]돗자리 깔아주면 바로 누워 잠들 수 있다. 그래도 티는 안 냈다.
[ 괜찮아요 ]답장은 바로 왔다. 깨어계셨나 보다.
[ 밤샘근무 오랜만일 텐데 고생했어 ] [ 평소에도 밤에 잠을 잘 안 자갖고, 좀 버틸 만했던 거 같아요 ] [ 잠 꼬박꼬박 자야지. 나중에 몸 상해.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 [ 저도 알죠. 근데 잠이 안 왔어서…. ]그간 취직 걱정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자고 살았으니까. 물론 오늘이라고 꿀잠 잘 자신도 없다. 혈액팩이랑 편자로 저글링하는 꿈꿀 것 같아.
이 문자를 받을 즈음, 편의점 정문의 벨이 짤랑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 슬쩍 들어 정문을 바라봤는데, 손님이 보이지는 않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편의점 벨이 가끔 제멋대로 짤랑이는 경우가 있긴 했던지라, 이번에도 그런 거겠거니 하고 다시 스마트폰 문자에 집중했다.
[ 듣기로는 수면제 비슷한 것 같은데, 처방받아야 먹을 수 있는 거 아녜요? ] [ 찬이 너희는 그러니? 왜? ]나 사는 세계는 수면제를 잠깐이 아니라 영원히 잠드는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그렇다. 근데 여긴 이세계잖아?
[ 저 사는 곳은 수면제가 다른 용도로 쓰이고는 하거든요. 그, 영원히 잠드는 걸로. ] [ 어… 그 생각은 못 해 봤네. ] [ 저희도 생각만 가끔 하지 실천은 거의 안 해요. 저한테 통할지도 모르겠고. ]내 체질이 괴상하다는 건 어제 경험으로 잘 알았고, 포션도 마법적인 가공이 되어있을 테니 나한테 먹힐 것 같진 않았다. 헌데 이 얘길 하고 나니, 점장은 오히려 흥미가 돋은 듯했다.
[ 음, 통할지 아닌지는 먹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 [ 진짜 만드시게요? ] [ 걱정 안 해도 돼. 오래 안 걸리니까, 교대 전에 하나 만들어서 가져가 볼게. ]살짝 점장의 편린을 본 듯한 느낌이 든다. 사실 호기심이 왕성한 성격이 아닐까….
“저기여….”
누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코맹맹이 소리였다.
앉은 채로 고개를 들어 다시 한번 정문을 바라봤으나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은 것 같진 않아서 두리번거리다, 계산대 앞에 웬 뿔 두 개가 돋아나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게 뭐냐?
일어나서 내려다보자, 꼬마 여자아이 하나가 긴장한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는 채다.
그런데 이 꼬마가… 새하얬다.
머리카락도 새하얬고 피부도 새하얬으며, 눈썹은 옅은 흰색이긴 했으나 도드라진 속눈썹은 여지없이 하얀색. 등에는 조그만 날개가 돋아있었는데 이것도 하얀색이었고,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늘어진 큼지막한 꼬리도 하얀색.
복장은 그렇지 않았는데, 빨간색 구두를 신고 옆구리엔 분홍색 파우치 가방이 매여져 있었으며, 신고 있는 양말은 검정색이었다. 이것들까지 다 하얬으면 밀가루 뒤집어쓴 줄 알았을 거다.
“어….”
말을 더듬던 꼬마는 우선 내게 꾸벅 인사를 해왔다. 눈동자는 호박색이었다.
“안녕하새여.”
“어… 안녕.”
인사를 받아줬는데,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으며 내게 말을 거는 것도 굉장히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낯을 가리는 것 같다.
“어… 그게….”
“찾는 게 어떤 거니?”
존대를 썼다간 애가 더 어려워할 것 같아서 말을 편히 했다. 잠깐을 망설이던 꼬마는 용기가 생긴 듯 내게 물어왔다.
“혹시 색종이 잇서여…?”
그건 문방구에서 찾는 게 맞지 않겠냐?
그런데 신기하게도, 색종이를 본 기억이 떠오르긴 하는데 말이다. 기억을 더듬어 세 번째 코너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세 번째 코너 위쪽에 한번 찾아볼래?”
“내.”
대답하고 세 번째 코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고는, 30초가 넘도록 나오질 않았다. 왠가 싶어 가봤더니, 색종이가 있긴 했는데 위치가 진열대 꼭대기라 놓인 위치에 키가 닿질 않고 있는 것이었다.
까치발을 한 채로 끙끙대며 손을 뻗다가, 날 보고는 살짝 울먹이는 소리로 말해온다.
“제송해여, 손이 안 닿아여….”
“그러냐….”
색종이를 집어 든 뒤, 카운터로 함께 걸어와서 바코드를 찍었다. 1,500원이란다. 꼬마는 분홍색 파우치를 한참 동안 뒤적거리다 꼬깃꼬깃 5,000원짜리 한 장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그러고는 또 주저하기 시작한다. 난 나대로 꼬마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스쳐 지나가듯 뭔가를 깨달았다.
이 꼬마, 드래곤인 것 같다.
샐러맨더와 드래곤이 분류상으로 같은 파충류이긴 할 텐데, 샐러맨더랑은 느낌이 좀 달랐다. 샐러맨더가 뱀이랑 비슷했다면, 이 꼬마는 딱히 뭐랑 비슷하다 정의를 내리기가 좀 애매했기 때문이다.
실사 사진보다는 그림에서 공통점을 찾기가 더 쉬울 듯한, 그런 애였다.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던 꼬마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다시 내게 물었다.
“그… 혹시, 가위도 있나여.”
“있을걸? 잠깐만 여기 있어 봐.”
커터칼은 확실히 봤는데, 가위가 있었는지는 가물가물하다. 커터칼이 있는 코너로 가서 찾아보려 했는데, 꼬마는 여기 있으란 말을 못 들었는지 내 뒤를 쫄래쫄래 따라왔다.
그래서 같이 찾아봤다. 커터칼 옆에 가위가 진열되어 있긴 했다. 3,600원짜리.
“여기 있네.”
“내. 근데… 3,600원이내….”
아까 꼬마가 5천 원짜리를 내밀던 걸 떠올렸다. 색종이랑 가위 합쳐서 5,100원. 얘가 가져온 게 딱 5천 원이라면, 100원이 모자라서 이건 못 산다.
“돈이 모잘라여….”
“미안하다, 꼬마야. 내가 가격을 매기는 게 아니라서.”
내 추측이 맞은 듯 꼬마는 굉장히 난감한 듯한 눈치였다. 잠깐 생각해 보다, 100원이라면 내가 줘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손님들이 안 가져간 거스름돈이 제법 됐으니까.
“100원이면 내가 그냥 줄 수 있는데.”
“아녀, 안 주셔도 대여.”
“안 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렇지.”
“엄마가, 다른 사람 돈은 함부로 받는 거 아니랬서여. 큰일 난다구.”
“어머니께서 뭐 하시는 분이길래?”
“회사 다니구 계세여.”
“그러냐.”
내가 밤에 팔 집어넣은 드래곤 비늘이 귀농한 드래곤들 거라고 해서, 난 이 세계 드래곤들은 다 밀짚모자 쓰고 괭이질하고 다니는 줄로만 알았다.
근데 정상적으로 회사 다니는 드래곤들도 있나 보다. 확실히 자가용 없어도 날아다니면 되니까 출퇴근 편하긴 하겠다.
이후에 내가 졸려서 그랬던 건지, 애가 난감해하는 게 측은해서 그랬던 건지는 몰라도, 내 입에서는 의도치 않게 질문이 계속 튀어나왔다.
“그런데, 색종이랑 가위로 뭐 하려고?”
“제가여, 어제 유치원에서 배운 게.”
“어. 배운 게.”
“어린이날 말구, 어버이날이라는 것두 있대여.”
그러고 보니 다음 주부터 5월이다. 난 어린이도, 어버이도 아니어서 신경 안 쓰고 산 지 꽤 됐지만.
“어린이날은 알구 있었는대, 어버이날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아서, 신기했어여.”
“신기해할 만하지.”
“근데여, 어린이날에는 엄마가 맨날 선물 주셨는대, 저는… 어버이날에 엄마한테 선물을 해드린 적이 없어서여… 그래 갖구….”
이 꼬마가 색종이랑 가위를 사려는 이유가 이것인 듯했다. 카네이션을 만들어 어머니께 드리고 싶다는 것.
그런 거면 딱히 가위가 없어도 종이접기를 하면 되지 않냐고 넌지시 물어봤으나, 꼬마는 자기 손을 내밀며 대답했다.
“저어가여… 종이접기를 잘 못해여….”
조막만 한 손에는 새하얗게 발톱이 돋아나 있어, 이래서야 종이를 접기는커녕 발톱으로 다 찢어먹지나 않으면 다행일 듯싶었다. 염병, 이 세상은 내 상식이 좀 통할만 하다 싶으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튀어나와.
“내가 미안하다….”
“아니애여, 저어가 못하는 건대여 머….”
그러고선 잠시 정적.
꼬마는 고민하는 듯했다. 어머니께 선물을 해드리고는 싶은데, 돈이 없어서 가위를 살 돈이 없다. 근데, 매장에서 가위를 팔지는 않아도 쓰는 건 있었던 것 같은데….
“꼬마야.”
“내.”
“가위 빌려주는 건 괜찮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