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10)
이세계 편돌이-109화(110/331)
109화. 동심 가득한 부업시간 (4)
비상하기 직전의 용을 본 경험이 있는가?
난 지금 막 생기고 있는 참이다. 꼬마가 쥔 별 지팡이 끝에서 대뜸 폭발이 일어나더니, 꼬마의 몸 전체가 비상탈출 좌석에서 사출된 것마냥 튀어 올랐기 때문이다.
“우아!”
외에는 뭘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폭발에 눈이 부시고 폭음에 귀가 먹먹할 뿐이다. 그나마 느낄 수 있었던 건, 옆에 쌓여있던 상자가 굴러떨어지는 바닥진동. 그리고….
―따악.
손가락 튕기는 소리. 이게 오히려 폭음보다 또렷하더라.
이 소리가 울려 퍼진 직후, 창고를 뒤덮고 있던 폭발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봄기운 잔뜩 싣고 오던 풍압도 마찬가지였다.
폭발이 사그라든 자리에 남은 게, 떨어진 채 LED가 점멸하듯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지팡이. 꼬마는 왜인지는 몰라도 2m 허공을 둥둥 떠다니고 있고, 또….
바닥에 널브러져 난장판이 된 창고 짐짝들에, 마지막으로는 점장이 허공에 한 손을 치켜들고 있는 게 보였다. 손 모양이 막 손가락을 튕긴 모양새다.
“점장님, 지금 이게 뭔….”
일이냐 물어보려다 말았다. 점장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뾰로통해서였다. 살짝 찌푸린 눈썹에, 입술은 삐죽 내민 상태.
점장이 불만 표출할 때 짓는 그 표정이다. 눈치를 봐야 할 타이밍 같아 조용히 있었더니, 점장이 주변을 슥 둘러보고는 위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꼬마야. 괜찮니?”
“내! 불이, 엄―청 컸써!”
“좋았다니 다행이네. 찬이는?”
“저야 뭐, 원체 튼튼한 놈이잖습니까.”
방금의 폭발 전부가 마법이어서인지, 몸에는 생채기 하나 안 나긴 했다. 눈에 폭발 잔상이 좀 남아있긴 했지만, 이 정도야 뭐.
“그래도 많이 놀라긴 했습니다. 이게 뭔 상황이에요?”
“장난감을 대충 만든 상황.”
근무하며 들었던 설명 중 제일 두리뭉실하고 건조한 설명이다. 점장도 말하고 나서는 똑같이 느꼈는지 덧붙여왔다.
“찬아. 이 지팡이로 한 번 마법을 쓰는 데에 딱 5만큼 마나를 쓰게 해놨다고 쳐보자. 그러면 다들 마나를 똑같이 5씩만 쓰겠지?”
“예.”
“응. 그러면, 마나를 1% 쓰게 해놨다면. 마나를 10,000만큼 가진 애는 마나를 얼마나 쓸까.”
이건 대답은 안 했다. 점장이 답이 100인 걸 몰라서 물어본 게 아닐 테니까. 우선, 아직도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꼬마를 붙잡아 내려놨다.
“아조씨. 저여, 하늘 첨 날아봣서.”
“그러냐. 점장님, 이 꼬마 마나가 10,000이라 치고, 다른 이종족들 마나 평균은 몇쯤 됩니까.”
“500. 순혈 드래곤이 마나 총량이 엄청 높아.”
상상 이상의 폭발이 일어난 게 이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다른 애들이었으면 500중 5의 규모로 끝났을 마법이, 꼬마가 시전했기 때문에 100짜리 규모의 마법으로 시전이 되어버린 거지.
“순혈 드래곤이 가지고 놀 것도 당연히 감안을 해서 만들어야 되는데, 그러질 않은 거라는 얘기야.”
“음….”
“연산식 하나 생략하려고, 단가 낮추려고. 바보들.”
툴툴대며 발치에 굴러온 빈 박스를 툭 차버리는 점장. 연산식을 생략하는 게 단가 절감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이건 차마 못 물어보겠더라.
점장이 바보라는 단어까지 써가며 누구 욕하는 걸 오늘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내색만 안 할 뿐이지, 아주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이는데 말야….
이유가 정확히 뭔지는 당장 안 물어보기로 했다. 그 전에 할 일이 있다.
“…이건 점검 그만하겠습니다, 점장님.”
“응. 예약하신 분 종족이 코볼트이긴 했는데, 따로 말씀드릴게. 문제 있어서 반품했다고.”
“옙. 야, 하나야. 이제 한 건 더 하면 과자파티래.”
몸 숙여 꼬마 모자를 벗긴 뒤, 뿔 안 닿게 머리 쓰다듬어줬다. 쓰다듬어지면서도 날 올려다보는데, 불안해하는 게 얼굴에 빤히 보이고 있다.
“저… 아조씨.”
“편하게 말해도 돼.”
“언니야한태여. 혹씨여….”
자기가 잘못한 거 아니냐고 묻고 싶은 것일 터다. 슬쩍 점장을 돌아보니 아차 하는 표정이 꼬마와 마찬가지로 빤히 보였다. 살짝 목소리 높여 말을 이었다.
“너 잘못했단 얘기하던 거 아니고, 음… 아. 너 엄청 대단하다는 말 하고 있었다.”
“정말여…?”
“그래. 다른 애들은 작은 불꽃만 일으키고 말 텐데, 너는 엄청 크게 폭죽놀이 했잖어. 무대를 완전 뒤집어 놓으셨다니까?”
“우으….”
“내가 너한테 거짓말한 적 있냐. 너는 커서 뭐가 될까― 이런 얘기 한 거고, 얘기하다 보니 표정이 좀 무거워지고. 그랬던 거야.”
그러니 걱정 안 해도 된다, 말하며 꾸준히 머리를 쓰다듬었다. 도중에 살짝 안심이 됐는지 표정이 풀어진다. 급하게 한 것치곤 꽤 괜찮은 변명이다.
목소리 높여 말했으니 점장도 다 들었을 테고. 꼬마 옆머리에 묻은 먼지를 떼주던 와중에 점장이 옆으로 다가왔다.
손에는 웬 거품총 같은 게 들려있다. 이게 오늘 마지막 작업품인가 보다.
“꼬마야. 수고했구, 이제 딱 하나 남았어.”
“내… 내.”
“괜찮아. 이번엔 엄청 쉬운 거거든. 밖에서 맑은 공기 마시면서 할 거구.”
“밖에 나가서 하신다구요?”
“응. 여긴 나중에 내가 정리할게.”
그래도 최소한의 정리는 했다. 꼬마가 입고 있는 로브 벗기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비닐 주워서 세트로 포장하고.
창고 나와서는 계단 앞에 나란히 섰는데, 꼬마가 잘못한 걸 만회하고 싶었는지 스스로 계단을 올라가겠다 하더라. 꼬리만 눈치 못 챌 정도로 살짝 들어줬다.
다 올라와서 창고 문 닫는 사이, 점장이 꼬마에게 슬쩍 휴식을 권했다.
“꼬마야. 밑에 있으니까 답답했지. 솔직하게.”
“솔찍하개… 내. 쪼금여.”
“그럼 밖에서 잠깐 바람 좀 쐬고 있을래? 아조씨랑 할 얘기가 있어갖구.”
“아, 내.”
꾸벅 대답하고는 로비로 쪼르르 달려 나가는 꼬마. 나가는 걸 확인한 점장이, 들고 올라온 거품총 총구를 이마에 대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거 이마에 대도 괜찮습니까?”
“괜찮아. 살상력 없는 거라서.”
아까 화를 냈던 건으로 꽤나 착잡함을 느끼는 듯하다. 조용히 기다리고 있자니 점장이 말했다.
“애가 다칠 뻔했어.”
“예. 다칠 뻔했죠.”
“마법으로.”
“…아, 마법으로. 예.”
“그래서 화났던 거야. 미안, 찬아.”
꼬마 때문에 화난 건 짐작하고 있었다. 꼬마애든 멍멍이든, 어린애들 대할 때면 사람이 유해지는 게 눈에 빤히 보였으니까.
이건 짐작을 했는데, 뒤의 건 몰랐다. 점장이 마법에 무척 진심이라는 점. 왕년의 대마법사였던 점장에게 있어 마법이란 무엇인가….
이걸 묻고 답을 듣기엔 시간이 많지 않다. 나도 일 마치고 퇴근해야지. 대신, 늘 해왔던 짧은 생각 하나를 꺼내 대답했다.
“사람이 둘 있을 때 말입니다.”
“응.”
“어떤 막장 상황이 벌어져도, 둘 중 하나가 침착하면 다른 한 명도 침착해지게 되더라고요.”
나도 화가 났었다. 저 장난감을 만들었을 븅신들, 특히 7살 먹은 자식 있는 부모 븅신들한테 한번 물어보고 싶다. 늬들 자식들한테 이거 갖고 놀게 할 수 있냐고.
근데 나까지 화내면 꼬마 입장이 엄청 난처해질 것 같더라. 그래서 잠자코 애 달랬다. 다행히도, 내가 낼 화까지 점장이 다 내줬다.
“점장님 덕에 체감한 거긴 하지만요.”
“내 덕에?”
“근무 첫날 얘깁니다. 저 여기서 딱 10분 일하고, 점장님께 ‘여기 녹색 괴물들이 막 돌아다녀요―’ 하면서 징징대고 그랬잖습니까?”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 점장 대처가 무척 침착했다.
만약 29살 사내놈이 내게 느닷없이 전화해서는 ‘내가 이세계서 날아왔다―’ 주장해 온다면. 난 그게 진실이라 받아들였을까?
절대 못 그랬다. 뭔 약 했길래 그런 소리 하냐며 되물었겠지.
점장은 그걸 했고, 그 덕에 나도 그나마 침착해져서 여기서 일하고 있는 거다. 그걸 지금 똑같이 했을 뿐이다.
“그 침착한 거랑 이 침착한 게 난이도가 다른 건 알지만, 뭐… 음….”
도중 말이 막혔다. 말하는 동안 점장이 단 한 번도 고개를 안 돌리고, 뚫어져라 날 바라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담스럽다.
“…부하직원 놈이 잠깐 주제넘은 말 해봤습니다. 예.”
그래도 겨우 맺었다. 잠시 뒤, 점장이 씨익 웃고는 받았다.
“믿음직하다. 찬이.”
“감사합니다. 화 참은 보람이 있네.”
* * *
점장과 편의점 밖으로 나와 거품총을 건네받았다. 이게 오늘의 마지막 작업품, 매―직 비눗방울 페인트건.
점장이 이걸 쥐여주고는 곧바로 사용법도 설명해 줬는데, 다 듣고 나서도 이게 대체 뭔 소린가 싶었다.
“비눗방울은 허공에서 터지잖아, 찬아. 페인트는 바닥이나 벽에 묻고.”
“상식적으로는 그렇죠.”
“이건 그 두 개를 합친 거야. 허공에서 터진 뒤, 그 반경만큼 허공을 칠하는 거지.”
감속 마법, 물 마법, 빛 마법 셋이 적절하게 조합되어 적절하게 효과를 발휘한다고. 주의사항은, 먼지가 많은 곳에서는 가급적 사용하지 말 것.
“그래서 밖으로 가지고 나온 거야. 허공에 먼지 묻으면 보기 안 좋잖아.”
“…들어도 잘 모르겠는데,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 판단해도 되겠습니까?”
“그럼 그렇게 하자. 꼬마야, 기다리느라 지루했지.”
“아녀. 아침채조 하고 있었어갖구.”
나오기 전에 팔 휘적거리는 걸 봤다. 그게 아침체조였나보다.
“꼬마야. 이거 지금 쏴 볼 거거든? 혹시 모르니까 잠깐 뒤에 있어봐라.”
“앗, 내.”
혹시 모른다는 말에 살짝 겁먹은 건지, 쪼르르 달려와서는 내 유니폼 옷깃을 부여잡는다. 세게 부여잡지는 않았다.
“이거 유효 사거리는 얼마쯤 됩니까, 점장님.”
“옆에 다이얼로 조절 가능하구, 지금은 3m로 해놨어.”
거리에 대고 쐈다간 사고 나겠구만. 행인이 없는 걸 확인한 뒤, 오른쪽 도보를 향해 거품총 방아쇠를 살짝 당겨봤다.
그러자, 뾰옹.
노란색 비눗방울 한 방울이 발사되었다. 탁구공만 한 비눗방울이 바람에 실려 두둥실 날아가다가, 허공에서 우뚝 멈춰 섰다.
우뚝 멈춰 서서는 순식간에 팽창하는 비눗방울. 거의 짐볼 수준으로 크기가 부풀고는 그대로 고정된다. 부풀면서는 반투명해진 게, 색 짙은 선글라스를 낀 기분이다.
5초 정도 기다린 뒤, 점장에게 물었다.
“저거 터지긴 터져요?”
“터지지는 않구, 팔 집어넣으면 팔이 그대로 쏙 들어가 버릴 거야. 아마도.”
“아하. 머리 집어넣으면요?”
“그대로 숨 쉬는 거지. 숨 쉴 때마다 크기가 작아지겠지만.”
그대로 내버려 둘 경우, 1분쯤 뒤에는 감속 마법이 풀려 바닥으로 가라앉을 거랜다. 바닥에 닿아서는 그대로 흩뿌려진 뒤 증발할 거라고.
“그럼, 애가 흡입한다거나 하면―”
나중에 배 아픈 거 아니냐. 물어보려던 찰나, 유니폼 옷깃이 꾸욱 당겨졌다.
뒤로 몸 젖혀 꼬마를 바라보니,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다. 자기가 내 옷을 당기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다.
“얘쁘다….”
“먹어도 별 지장 없어, 찬아. 저거 레몬 맛이거든. 노란색이잖어.”
“눈에 들어가면 엄청 따가울 것 같은데. 다른 색으로 바꿀 수는 없습니까?”
“사거리 조절하는 다이얼 반대쪽 보면, 다른 다이얼 하나 더 있어. 24색까지.”
돌려서 반대 면을 보니, 점장 말대로 24칸 분할 다이얼이 하나 박혀 있었다. 한쪽 끝은 흰색, 한쪽 끝은 검은색.
“위험할 거 하나 없는 장난감이니까, 맘 편히 점검해도 돼.”
“알겠습니다. 하나야, 이제부터 넌 서부의 총잡이가 된다.”
“총자비?”
고개를 갸웃하길래, 말없이 거품총을 건네줬다. 오래 기다렸다.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서는 앞으로 뚜방뚜방 걸어 나와 허공에 방아쇠를 당기는 꼬마. 노란색 방울이 허공으로 솟아 고정된다.
고정된 방울을 신기해 죽겠다는 눈으로 바라보다, 도로변 쪽을 제외한 온 사방에 방울을 쏴대기 시작한다. 신기해하느라 다이얼 돌릴 여유조차 없는 건지, 색이 죄다 노란색이다.
체감상 5분쯤 지켜봤는데, 내 눈으로는 딱히 이상한 걸 못 느끼겠더라. 점장에게 슬쩍 말했다.
“저거 마석 넣어서 쓰는 거죠. 손잡이 쪽에.”
“응. 문제없는 것 같아?”
“계속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마석이 얌전하더라고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다행이다. 슬슬 들어갈 준비 할래?”
“아뇨, 저 애 가면 저도 가겠습니다. 잘 갖고 노는 중에 집 보내기도 그렇고.”
폰으로 시간 확인해 보니 10시 3분이었다. 어차피 늦은 거, 좀 더 있다 가지 뭐….
갑자기 떠오르는 게 있어 말을 걸었다. 꼬마에게.
“그, 하나야.”
“와아, 어엄청 얘뻐.”
“야. 그러다 눈알 빠지것다.”
“헉, 눈 빠지면 안 대.”
화들짝 놀라서는 날 바라보는 꼬마. 마저 물었다.
“하나야, 오늘 유치원은 안 간 거지.”
“앗, 내. 오늘은 선생님이, 집애 잇으라구 하셧서여.”
“왜. 뭔 일 있어?”
매달 자체적으로 쉬는 날이 있다. 이런 이유에서일 줄 알았고, 정말 별생각 없이 물어본 거였다. 헌데 꼬마 대답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오늘은 위허매갖구, 오면 다칠지도 모른대갖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