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12)
이세계 편돌이-111화(112/331)
111화. 편의점 직원들이 힘을 숨김 (1)
* * *
며칠 전, 이 엘프 경관과 돈 가방을 하나 찾아낸 적이 있다. 들어있는 금액이 추정 억 단위에, 편의점 앞 전봇대 밑에 쓰레기봉투로 위장되어 있던 거 하나.
그걸 경관이 회수했고, 수사 과정에 진척이 있거든 말하러 오겠다― 라는 얘기를 했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지금 억 단위 금액이 든 돈 가방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간 별일 없으셨….”
“어휴. 당연히 별일 있었죠, 설마 없었겠습니까?”
“?”
예상한 대답이 아니었는지 고개를 미세하게 갸웃해 온다. 매장 상황을 설명하려던 찰나, 진열대 쪽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와츄고나두!!”
“꺄악!”
이젠 설명할 필요도 없겠다. 소몰이 소리에 귀를 쫑긋한 경관이 바로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뒤를 따라갔다. 미노타우로스가 보이는 위치에서 우뚝 멈춰선 경관.
“미안해, 찬아! 실수로 꼬리 밟아갖구― 어, 경관님?”
“잠깐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어, 네! 괜찮아요.”
괜찮다는 말에 바로 미노타우로스에게 다가가 진열대를 살피기 시작한다.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난 점장이 슬쩍 다가와서는 내게 물었다.
“경찰에 신고했었니?”
“신고를 했어도 지금은 못 오죠, 점장님. 시간상으로 봐도.”
“아냐? 그럼 왜… 아, 돈 가방 건으로 오셨구나.”
짤막하게 대화를 나누는 사이 경관이 몸을 일으켰다. 우리 쪽으로 걸어와서는 엄지로 미노타우로스 쪽을 가리키며 읊조렸다.
“많군요.”
“뭐가 말입니까.”
“항목 말입니다. 기물파손죄. 고성방가죄. 영업방해죄. 공연음란죄….”
진열대 부쉈으니 기물파손, 코골이가 고성방가, 저놈 때문에 이러고 있으니 영업방해.
근데 공연음란죄는 또 뭐야. 엘프 어깨 너머로 바라보니, 미노타우로스가 반쯤 웃통을 깐 채 앞발굽으로 자기 배를 벅벅 긁어대는 중이었다.
“원하신다면 바로 연행하겠습니다.”
보기 안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연행까지 하나. 점장과 눈빛 교환한 뒤 생각을 말했다.
“저희는 저분 집에 가시기만 하면 상관없어요.”
“저도. 뭐가 됐든 좋으니 치워만 주십쇼.”
저놈이 벌금 문다고 우리 매장 매출이 올라가는 건 아니잖은가. 우리 장사해야 된다. 점장은 ‘그래, 젊으니까 한 번은 이럴 수도 있지―’라는 느낌이고.
“뭐가 됐든 좋다….”
우리 대답에, 허리춤에서 경광봉을 뽑아서는 머리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하는 경관. 그러길 수 초.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러고 나가서는 금방 돌아왔는데, 손에 뭔가가 들려있다. 비상용 사이렌이었다. 미노타우로스 옆에 가까이 가서는 우릴 돌아보며 조곤조곤히 말해왔다.
“소리가 좀 큽니다. 빛도.”
귀 막고 눈 감으라는 얘기 같다. 눈 감고 귀 막자마자 덜그럭 사이렌 뒤집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웨에에엥!!
“무, 뭐야!”
미노타우로스가 벌떡 일어나며 고함치는 소리, 진열대가 와장창 무너지는 소리, 내 고막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코앞에서 미사일이라도 터진 것 같다.
사이렌 소리가 꺼질 때까지 기다린 뒤 눈을 뜨니, 벌떡 일어선 미노타우로스가 어안 벙벙한 얼굴로 경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 경찰이 여긴 왜….”
“걷기 힘드신 듯 보입니다만….”
퉁명스러움 반, 무미건조함 반으로 대꾸한 뒤 덧붙인다.
“잠깐 태워드리겠습니다. 마침 뒷좌석이 비어있어서.”
“…괘, 괜찮. 괜찮아요.”
어지간히도 당황했는지 존댓말까지 쓰고는, 허겁지겁 바닥의 자기 지갑 챙겨서 뛰쳐나가더라. 이리하여 박살 난 진열대, 유리 조각, 난장판이 된 생필품들―
우리 셋과, 신나는 매장 노랫소리만 남았다. 스피커가 눈치가 없다.
“…저 진열대부터 고치고 보겠습니다. 유리 조각 흩어져 있어갖고.”
“난 물건 정리 하고 있을게.”
“저도 돕겠습니다. 혹시 밀대 있습니까.”
나는 매―직폰으로 진열대 하나하나 시간 되돌려 가며 고치고, 점장은 물건들 유통기한 순으로 정렬하고, 경관은 밀대로 미노타우로스가 바닥에 남긴 땀 자국들 슬슬 닦고….
다 하는 데에 딱 5분 걸렸고, 마지막으로 유니폼 챙겨 카운터로 돌아왔다. 이후엔 곧바로 인수인계.
“방금 진열대 부서진 건 말곤 별일 없었어, 찬아.”
“시제랑 재고 맞는 거고.”
“응.”
“분실물도 따로 없는 거구요?”
“응.”
할 건 하되 짧게 마쳤다. 앞에 경관 세워놓고 질질 끌기는 좀 그렇잖아. 말을 마친 점장과 눈을 마주친 경관이, 묘하게 부드러워진 어투로 말해왔다.
“서로 많이 친하신가 봅니다.”
“아주 정확하게 보셨어요, 경관님.”
점장이 생글생글한 얼굴로 받았고, 난 새삼스럽게 뭔 소린가 싶어 대답 안 했다. 이어서는 수첩을 펼친 뒤 묻더라.
“두 분께 전달드리기 이전에, 확실하게 말씀해 주셔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거 말입니까?”
“두 분께서 이 돈 가방과 정말 관련이 없는지.”
듣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봤다. 편의점 앞 전봇대에 쓰레기봉투로 위장된 돈 가방이 놓여있었다.
방치된 시간이 최소 수 시간. 알바생이 멋모르고 분리수거 해버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시간이다.
분리수거가 안 된 게, 실은 알바생과 모종의 약속이 되어있어서가 아니냐는 얘기다. 가령, ‘저 쓰레기봉투에 돈 들어있으니 버리지 말라’는 언질을 받았다든가―
이 정도 의심은 할 수 있겠다. 의심하는 게 이해는 되는데….
솔직히 좀 그렇다. 우리 그때 좋았잖어, 경관님. 같이 돈 가방 찾고 창고에 마주 보고 앉아서. 어?
생각하며 경관을 안색을 살폈는데, 경관도 정말로 우리가 연관이 있어서 묻는 안색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1도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눈빛이다.
좀 더 생각한 뒤 대답했다.
“관련 없습니다, 경관님.”
“저두요. 전 그때 집에서 과자 먹고 있었다구.”
“예. 답변 감사드립니다.”
형식상 해야 할 질문이었나 보다. 마저 수첩 페이지를 넘긴 뒤에는 절반은 생각, 절반은 적힌 걸 읽어내리는 느낌으로 사항을 전달해줬다.
우선, 동선 파악용으로 눈에 띄지 않는 곳 몇 군데에 감시 마법을 설치해둘 예정이란다. 지금까지는 편의점 앞 거리를 감시하거나 수시로 거니는 식의 잠복근무를 해왔다고.
“잠복근무를 한 건, 혹시라도 사건 관련 인물이 현장에 다시 찾아오는 걸 덮치기 위해서였는데… 이제는 그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되어.”
판단 사유로 여러 가지를 말해왔으나, 나는 ‘찾아올 거면 진즉에 찾아왔을 것이다’라는 말로 이해했다. 그럼에도 감시 마법을 설치하는 건 정말 만약의 경우 동선이라도 파악해둔다는 최소한의 보험장치라나.
여튼 앞으로도 편의점이 해코지당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하고, 이 건은 앞으로 어떻게 수사가 되느냐.
“반마법사, 마법사분들을 한 분씩 초빙하여 자문, 나아가서는 협조를 요청할 생각입니다만….”
이건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기겠지. 경관도 숨기지는 않았다.
“이 건은 사장님. 아니, 이찬 님께 자문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자문 같은 거창한 것까지는 제가 못 해 드립니다만….”
난 전문지식 없는 전문가였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젠 내 몸뚱어리가 이 세상서 꽤 쓸모가 있다는 걸 안다. 상식에 뚫린 구멍 몇 개는 충분히 메꿀 수 있을 정도로.
“몸 안 굴리는 선에서라면, 할 수 있는 만큼은 해 볼게요.”
“감사합니다. 마법사분은 다른 곳에서 따로 수배할 생각이고….”
말 늘이는 게 마법사를 어떻게 수배할지를 생각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 타이밍에서 점장을 슬쩍 내려다봤다. 이미 입 열고 있더라.
“경관님, 경관님.”
“예.”
“그 자문 말인데, 혹시 제가 해도 될까요?”
점장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경관. 이 엘프 경관은 점장이 왕년의 대마법사라는 걸 아직 모른다.
“업주님께서 말씀이십니까.”
“네! 저 마법사거든요. 왕년에는 대마법사였구.”
“…혹시 자격증 보여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확인 절차가 필요한가 보다. 난 카운터 밑에 던져놨던 자격증 꺼내 올려놨고, 점장은 잠깐 기다려 보라 하고는 주머니를 뒤지고….
“아, 지갑 안 가져왔다!”
지갑을 안 가져왔댄다. 근데 마법사라는 걸 증명하는 데에 꼭 자격증이 필요한가?
“경관님. 그냥 점장님께서 마법 슥 보여드리면 되지 않습니까?”
“안 됩니다.”
“그래. 마법사 자격증 따면, 위험할 때나 필요할 때 아니면 마법 쓰면 안 된다구. 회수당한단 말야.”
지하에 꼬마 데리고 내려가서 대마법사 세트 점검할 때. 폭발 순간에 점장이 마법을 쓰는 듯한 동작을 취했던 게 떠오른다. 머리 위로 손가락 튕겨서, 딱.
이 경우엔 꼬마가 천장으로 사출되어 머리를 아야 할 뻔한 상황이었으니, 위험할 때와 필요할 때라는 조건이 둘 다 성립한다. 그땐 그랬다 치고, 지금은 어쩐다.
“찬아. 조금만 위험해져 볼래? 진짜 조금이면 되는데.”
“뭐, 한 3분 정도 숨 참고 있을까요?”
“아냐. 장난이었어. 그러면… 음….”
팔짱 끼고는 생각에 잠겨버린 점장. 잠시 뒤에 뭔가 떠올랐다는 듯 사무실 방향으로 고개를 홱 돌리고는, 경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기, 경관님. 전에 찬이한테, CCTV 영상 복사해 가셨단 얘기를 들었는데.”
“예. 투기하는 당시 상황이 찍혀 있어서.”
“저는 그 영상 아직 못 봤는데, 혹시 영상 한 번 더 봐주실 수 있나요? 이번엔 저도 같이.”
이건 잘 모르겠다. 그 영상에 돈 가방 두는 장면 외에 다른 게 찍혀 있었나?
경관도 떠오르는 게 없는지 잠시 말이 없었으나,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문제없을 것 같습니다. 소유주가 업주님이시니.”
아무리 봐도 참 고지식한 엘프다. 대답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린 경관이, USB를 하나 꺼내서는 우리 쪽으로 내밀어왔다.
“영상 재생 가능한 장비가 있습니까.”
“지금 꺼내겠습니다. 잠시만….”
하여 계산대 위에 태블릿PC 올려놓고, PC 밑에 잭 꽂고, 그 잭에 USB를 꽂고. 로딩이 끝난 뒤 화면에 영상이 떠올랐는데, 전에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다.
“범행 전후로 5분씩 남겨 잘라뒀는데, 어떤 부분을 보여드리면 될는지.”
“등장 순간부터 쭉.”
“예.”
경관이 스크롤 옮겨 앞으로 당겼고, 오른쪽 위 구석에 고블린이 등장한 시점에서 멈췄다. 화면에 얼굴을 가까이한 점장이 직접 재생 버튼을 눌러, 재생.
화질이 좋아진 덕에 좀 더 많은 게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별거 없는 영상이었다.
고블린으로 추정되는 후드를 쓴 누군가가 등장. 들고 온 쓰레기봉투를 내려놓은 뒤, 무거웠는지 손을 한 번 풀고는 그대로 퇴장.
“…….”
헌데 점장 눈에는 뭔가 보였나 보다. 아무 말 없이 직접 영상을 뒤로 되감고, 다시 한번 뚫어져라 쳐다보는 점장. 전에 본 적 없을 정도로 집중해있는 게 위화감마저 들 정도다.
한 번 더 재생한 영상이 멈출 때까지 바라보다, 침음하며 입을 열었다.
“이 고블린분, 찾는 건 금방 찾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예? 정말요?”
“응. 근데, 찾더라두 당장 얘기는 못 들을 거야.”
“…자세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옆에서 경관이 묻는데, 어느새 손에 수첩을 꺼내 쥔 상태였다. 점장이 곧바로 대답했다.
“입원했을 거라서요. 대학병원 응급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