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14)
이세계 편돌이-113화(114/331)
113화. 게이트가 편돌이에게 미치는 영향 (1)
* * *
바로 답장했다. 일을 같이 하더라도 뭔 일 하는지는 알려줘야 될 거 아니냐. 누구 말려 죽일 일 있어?
보낸 답장에 2시간 동안 대답을 안 하더라. 아예 전화를 해볼까 했는데, 답장 확인조차 못 하는 와중에 전화는 또 어떻게 받겠냐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 생각에 이후로는 따로 연락 안 했고, 혼자서 불타는 말 갈기나 늑대 이빨 만지는 걸 상상하며 전전긍긍했다. 이러고 아침.
늘 그랬듯 직장인들이 몰려왔는데, 사소한 변화가 있었다.
[ 게이트 발생 후로 30시간이 지난 현재, 게이트는 아직도 닫힐 기미가― ]“손님, 카드를 아직 안 주셨는데요.”
“…….”
“손님?”
“…아, 죄송해요. 여기.”
죄다 폰으로 뉴스만 보고 있다. 출근러쉬하는 양반들, 테이블에 자리 잡아 샌드위치 먹는 양반들, 심지어 바깥에 신호 대기하던 샐러맨더까지.
운전대에 폰 올려놓고 화면을 보고 있다는 게 카운터에서도 보였던 것이다. 화면이 보이진 않았지만, 매장 안 이종족들이 죄다 뉴스 보고 있으니 마찬가지로 뉴스 보고 있는 거겠지.
신호가 바뀌어서도 움직이질 않다가, 뒤차가 빵빵대기 시작하니까 그때서야 출발하더라고.
이런 것들을 보며 체감한 점. 학원지구에서 게이트가 열리는 게, 엄청 위험한 일까지는 아니어도 무척 신기한 일까지는 된다는 것이었다.
뉴스 보는 표정들이 무겁진 않아서였다. 비유하자면, 멀리 떨어진 공장서 불났다는 소식을 접했다는 느낌. 여튼, 9시쯤 되어서는 으레 그랬듯 직장인들이 전부 떠났고….
10시가 되어 점장이 왔다. 내게 손 흔들며 인사하려다, 멈칫하고는 물었다.
“찬이, 표정이 많이 우울해 보이네. 무슨 일 있었어?”
“없었는데, 밤에 생길 예정 같아서 말입니다….”
윤하 누나한테 짧은 톡 받은 걸 말하자, 점장이 팔짱 낀 채로 걱정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윤하, 진짜 많이 바쁜가 보네….”
“점장님께서도 누나랑 따로 연락하신 거 없으세요?”
“나는 톡도 못 했어. 요새 물류도 조금씩만 부탁하구 있었구. 윤하가 굳이 가져다줄 필요까진 없을 정도로.”
앞뒤가 살짝 안 맞는 느낌이다. 누나가 가져올 필요 없는 간단한 물류를 왜 누나한테 부탁을 해?
“윤하가 타고 다니는 말 있잖아. 날아다니구, 콧김 세게 뿜는 애.”
“…그게, 기억이 날 것 같기는 한데….”
콧김 뿜는 강도가 얼마인지는 몰라도, 누나가 근무 첫날에 말 타고 날아왔던 건 기억이 난다. 그걸로 뭉친 드래곤 비늘, 지옥마 박제도 가져다 나르고 그랬었지.
“그 애가 입에 물어서 날라주고 있어. 파손 잘 안 되는 것들 위주로.”
“자기가 알아서요?”
“응. 컨테이너로 실으면 빌딩 외벽 건드리니까. 전깃줄도 그렇구.”
누나가 컨트롤 안 하면 아주 섬세한 비행까지는 안 되는 모양이다. 말을 맺고 나서도 점장은 여전히 걱정스럽다는 얼굴이었다.
“애가 잠은 자고 다니는 건가 모르겠네, 참.”
“만나거든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그 전에 저도 좀 자고….”
밤새 뭔 일 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서인가, 유독 졸렸다. 점장에게 간단히 인수인계한 뒤, 배웅받으며 퇴근.
자고 일어나서는 9시 55분 즈음에 맞춰 출근했는데, 누나는 없고 낯익은 녀석 하나가 계산대 위에 앉아있었다.
“아, 찬이 왔어?”
“멍!”
멍멍이였다. 말 걸기에 앞서, 주변을 슬쩍 살핀 뒤 물었다. 저 멀리서 드워프 손님이 물건을 고르고 있어서였다. 목소리 살짝 죽여 대화했다.
“반갑다, 야. 점장님, 얘 언제 왔습니까.”
“10분쯤 됐어. 손님 많으셔서 대화는 따로 안 했구.”
“손님들이 뭐라고 하진 않았고요?”
“오히려 귀여워하시던데? 이 애가 인사드려서 그런가 봐.”
“헥헥헥.”
점장 말에 혓바닥을 쑥 내밀고는 날 올려다본다.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긴 한데, 사람이랑 하는 짓 다를 게 없던 놈이 느닷없이 개처럼 구는 게 어색하기 짝이 없다.
뭐 하다 왔는지가 궁금하긴 했지만, 바로는 안 물어봤다. 유니폼 갈아입고 와서 잠시 카운터에 서 있자, 물건 고르던 드워프가 와서는 면도크림 하나를 올려놓았다.
“효과 어떠냐.”
“저는 인간이라 모르고, 이게 자주 매진되기는 해요.”
“알았다.”
카드 내밀어오길래 계산해줬다. 면도크림 주머니에 넣고는, 멍멍이 머리를 슥슥 쓰다듬은 뒤 나가더라.
나가고 나서야 묵은 숨을 푹 내쉬는 멍멍이.
“후우! 본견, 하고 싶은 말을 꾹 참느라 죽는 줄 알았소!”
“뭔 하고 싶은 말?”
“무척 반갑소이다, 사장님. 그간 잘 지내셨소?”
평균보다 살짝 못 지냈다, 대답하려다 말았다. 잘 지냈냐 물어보는 이 멍멍이가 잘 지낸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난 잘 지냈는데, 너는.”
“어떤 게 말이오?”
“니 꼬리 말이다. 왜 그렇게 됐어?”
이 멍멍이가 영물이라 재생 능력 같은 게 있다. 귀에 가볍게 난 상처 정도는 잠깐 한눈판 사이에 나을 정도.
꼬리에도 이렇다 할 상처가 보이진 않는다. 헌데, 털이 반쯤 빠진 상태였다. 털 빠진 위치며 생김새가 딱 개한테 물려서 벌어진 일이란 게 보인다.
묻자, 흔들거리던 꼬리를 축 늘어뜨리는 멍멍이.
“…눈치가 참 빠르시구려. 과연 그 대사장님에 그 사장님이오.”
“점장님께서 먼저 물어보셨나 봅니다.”
“응. 대답은 못 들었구.”
“그게, 꽤나 길고 잔인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아서… 말을 아꼈소. 미안하오, 대사장님.”
이러면서 고개를 꾸벅 숙인 뒤 힐끗힐끗 점장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어째 이놈은 나갔다 하면 늘 대서사시를 하나씩 만들어서 오는 것 같다. 멀쩡하게 이러면 몰라, 늘 한 군데씩을 다쳐서 오니 원….
아무튼 긴 이야기가 된다 하니, 시간부터 확인했다. 딱 10시 정각 지나고 있었다. 점장에게 슬쩍 권했다.
“퇴근하셔요, 점장님. 나중에 들은 얘기 따로 말씀드릴게.”
“응? 난 딱히 상관없는데?”
“얘가 좀 불편해할 것 같아서 그래요. 다른 이유도 있고.”
말하자, 점장이 잠시 후 고개 끄덕였다.
“그럼 들어갈게, 찬아. 얘기 잘 하구.”
“옙. 인수인계 사항 있습니까?”
“놉.”
이러고는 퇴근. 점장이 버스정류장 벤치에 앉는 걸 확인한 뒤, 멍멍이에게 물었다.
“야, 멍멍아. 점장님 많이 어려 보이시든?”
“연세가 어리신 게 맞지 않소? 어딜 어떻게 봐도 고등학생이시던데.”
“그건 백번 공감한다. 공감하는데, 알 거 다 아시는 분이다. 왕년에는 대마법사셨고.”
며칠 전, 꼬마와 멍멍이가 동시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이 녀석이 5천 원권을 5만 원이라며 주워와서는, 매장에 있는 햄버거를 죄다 달라고 했단 말이다. 꼬마에게는 꼬박꼬박 아가씨라는 호칭을 썼고.
그때 느낀 게, 이 녀석한테 은근히 상남자스러운 면모가 있지 않냐는 점. 말투만 보면 선비에 가깝고, 상남자의 면모도 아직은 막 자라난 새싹 수준에 불과하긴 하지만….
굳이 즈려밟을 필요는 없지 않냐는 생각이었다. 어린 사람 배려하는 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
“그런…! 아니, 참말이오?”
“그래. 그리고, 나이 얘기 할 때마다 꿀밤 때리신다.”
이 이유도 있었고. 점장 앞에서 이 녀석한테 ‘나이 많은 분이니까 괜찮다―’ 따위의 말을 했다간 봐. 얄짤없이 꿀밤 맞았을걸?
그래서 일부러 퇴근하라고 한 거다. 집 가는 중에 점장이 알아서 눈치채겠지만 말야.
“전혀 몰랐소이다. 본견, 실례되는 짓을 해버렸구려….”
“그런 거 신경 안 쓰실 분이니까, 너도 너무 맘 쓰진 말어라.”
“…감사하오, 사장님.”
내게 깊게 고개 꾸벅이고는, 눈웃음 지으며 덧붙여 온다.
“늘 느끼는 거지만, 사장님께서는 본견의 마음을 아주 잘 아시는구려. 관심법이라도 쓰시는 것 같소이다.”
“우리 하루 이틀 본 거 아니잖냐. 이건 그만하고, 이번엔 뭔 일 있었던 거야?”
“아. 처음부터 이야기하겠소이다. 우선, 하나 아가씨의 집에 갔었는데….”
잔디 정원이 있었댄다. 도중에 말을 끊었다.
“정원? 그 꼬마 집에 정원이 있어?”
“그렇소. 그것도 꽤나 좋은 정원이 말이오. 공원 잔디는 몸을 뉘면 타이어 가루로 털이 범벅이 되는데, 거긴 그렇질 않았으니.”
“허어….”
꼬마 사는 곳이 단독주택이라도 되나 보다. 원룸 사는 입장으로서 집 평수나 정원 크기 같은 게 살짝 궁금하긴 했지만….
일단은 마저 들었다. 정원에서 실컷 놀던 와중, 해프닝이 발생했다고.
“아가씨와는 나뭇가지를 가지고 놀았소. 아가씨가 힘껏 던지면, 본견이 힘껏 달려가서 물어오는 식으로 말이오. 헌데….”
“헌데?”
“나뭇가지가 그만, 정원 나무 꼭대기에 걸려버리고 말았지 뭐요.”
정원에 심어진 나무 자체도 원체 커서, 꼬마가 손뼉으로 두들기거나 강아지가 박박 긁는 수준으로는 택도 없었다 한다.
하여 둘이 멀거니 서서는 나무에 걸린 나뭇가지를 올려다봤는데, 그때 꼬마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를 못하고 있다고.
“무척 슬퍼 보이는 표정이었소. 조금만 살살 던질걸, 다른 곳에 던질걸. 중얼거리기도 하셨고….”
자신이 나무에 발톱을 박아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면, 걸린 나뭇가지를 다시 물고 내려올 수 있었을 거다. 민첩했다면, 번개 같은 속도로 나무를 타고 올랐을 거다.
허나 자신은 한낱 포메라니안일 뿐이었고,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고.
“그때, 그때 본견이 말이오….”
이 이상은 차마 말을 못 하겠는지, 훌쩍대는 걸 넘어 눈물 몇 방울을 또르르 흘리더란다. 눈물이 털에 스며드는 걸 바라보며 물었다.
“꼬마애가 너한테 뭐라고 하진 않았을 거 아니냐.”
“전혀 안 하셨소. 무척 착한 아가씨였어. 본견에게는 자기가 잘못 던져서 미안하다고, 대신 다른 거 하고 놀자고 그러셨고….”
결국엔 다른 거 하고 놀았단다. 벽돌담의 벽돌 세기, 붙어 앉아서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기. 그렇게 놀며, 멍멍이가 결심한 게 하나 있단다.
“본견, 아가씨를 보며 생각했소. 사장님뿐이 아닌, 의지 받고 싶은 존재가 하나 더 늘었다고. 한시라도 빨리 그리되고 싶다 생각했소.”
문제는 어떻게 의지 받는 존재가 되는지다. 꼬박 하루를 웅크려 있거나, 태양을 올려다보거나 한 끝에 멍멍이가 내린 결론이 이러했다.
“혹시, 본견이 흑풍파 이야기를 했던 걸 기억하시오?”
듣는 순간, 이놈이 단단히 미친 짓을 했다는 생각이 확 몰려왔다.
“…너 지내는 공원 깡패견들이잖냐.”
“그 흑풍파들을 마주칠 때면, 늘 꼬리를 말고 도망치기 바빴소. 두려웠기 때문이오. 그 억센 이빨에 물려 또다시 귀를 다칠까 봐.”
“아니….”
“하염없이 생각했소. 무언가가 두려워 도망치기만 하는 본견이, 누군가의 의지가 될 수 있겠냐고. 이 두려움은 극복해야만 할 두려움이라고.”
아직도 촉촉한 눈가를 슥 닦아내고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하여 도전장을 던지려 했소. 흑풍파에게 말이오. 싸워 이겨내어, 본견의 영역을 보장받겠다는 생각이었소. 이 꼬리는 그때….”
“멍멍아.”
말을 뚝 멈춘 멍멍이가 내 눈을 바라보고는, 움찔했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말씀하시오.”
“네가 한 일 말이다. 나는… 자랑스럽게 말할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으….”
“말 늘이는 게 아니라, 멍멍아. 거울 한번 봐. 니 꼬리털 앙상하다고. 상처 금방 나으니까, 털도 금방 자랄 거라 생각해서 그런 거냐?”
낫는 거야 아주 잘 낫겠지. 재생 능력 있으니까.
하지만 마음은 안 낫는다. 이놈도 그렇고, 나도 마찬가지다.
나한테 한 번, 딱 한 번만 물어봤으면. 그랬으면 절대로 이런 짓 하게 안 놔뒀다. 이런 위험한 짓거리 하고 살 줄 알았으면, 카탈로그로 적당한 개집부터 알아봤을 거고.
“네가 길에서 살겠다고 했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인간이고 너는 강아지니까, 서로 다르게 살아야 하니까 존중해 주려고 했었어. 여기까지 이해하냐?”
“이해하오….”
“네 몸뚱아리가 스폰지여서가 아니었다고, 인마. 네가 위험을 피하면 피했지, 이번처럼 대가리 직접 박는 짓은 안 할 놈인 줄 알아서였….”
도중에 멈췄다. 목소리 높아지려는 게 스스로 체감이 되기도 해서였고….
의문이 들어서였다. 말마따나, 이 녀석이 아무 생각 없이 대가리 직접 들이받을 놈이 아니다. 분명 이렇게 행동하게 된 계기가 있다.
“보, 본견. 아주 생각 없이 갔던 건 아니외다….”
“…그럼 다행이고. 어떤 생각이었는데.”
“죄송하외다. 그래도, 흑풍파 견들. 전에는 말이 통했었단 말이오. 본견을 이기더라도 머리를 짓누르기만 했을 뿐, 대놓고 물어뜯으려 들지는 않았었단 말이오. 헌데.”
이 부분에서는 울음기가 쏙 빠진 채, 도저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말해왔다.
“이번에는, 그… 말이 통하질 않았소.”
“말이 안 통했다고?”
“그랬소이다. 다들, 입가에서 엄청 침을 흘려대고들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