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17)
이세계 편돌이-116화(117/331)
116화. 게이트가 편돌이에게 미치는 영향 (4)
* * *
자격증 따는 과정에서 체득한 요령이 하나 있다. 물건 하나에 여러 종류의 마법이 걸려있을 때, 없애고 싶은 마법만 골라 없애는 것.
그리고, 마법이 모두 똑같은 양의 마나만 사용하는 건 아닐 터다. 예를 들면 감속, 무소음, 충격 흡수 마법. 이 세 마법에 들어가는 마나량도 전부 다르겠지. 약한 마법, 강한 마법.
이 생각을 지금 써먹어 볼 생각이다. 불을 삼키는 물, 물을 태우는 불. 둘 중 한쪽의 마나량이 더 많은 걸 강한 마법과 약한 마법으로 구분 짓는다면?
둘 중 한쪽만 골라서 지울 수 있겠지. 뭐가 지워질지는 몰라도 말이다. 말하자, 누나가 눈만 몇 번을 끔벅여댔다.
“너 참, 이런 일 5년쯤 해본 녀석처럼 군다? 1달도 안 된 게 아니라. 무슨 인생 2회차야?”
“낯간지러운 말 하지 말고, 이거 진짜 해? 둘 중 한쪽 지우면 그냥 물 되거나, 그냥 불 되는 건데.”
병 용량이 대략 100ml쯤 되어 보이고, 내용물이 절반 좀 넘는다. 말인즉, 까딱 잘못 쏟는 순간 누나 사무소로부터 의문의 손해배상 청구서가 날아오고 만다는―
“해. 이거 가져왔다고 어디 말도 안 했고, 써먹으려고 가져온 것도 아니니까.”
“그럼 이걸 도대체 왜 하는 건데….”
“필요하니까. 모자라면 전부 써도 상관없어.”
이게 진심인가 싶어 눈 마주쳤는데, 누나 표정이 진지하기 그지없다. 이러는 의도가 뭔지는 여전히 쥐뿔 몰라도….
“밖에서 할 테니까 나와 봐, 누나.”
이게 바람이라면 바람대로 해줄 뿐이다. 병을 쥐고 밖으로 나와 주변을 슥 둘러봤다. 음산한 거리 꼴을 보니 몇 시간은 매장에 줄창 파리만 날리고 있을 것 같다.
돌아보자, 누나가 품에 멍멍이를 끌어안은 채였다. 바로 물었다.
“바로 한다.”
“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이미 생각해 뒀다. 복잡하진 않다. 병 속의 내용물을 몇 방울씩 손등에 떨어트리는 것.
문제는 어떤 생각으로 이걸 해야 하는가. 전에 지우고 싶은 마법을 지울 때는 ‘무엇을 지워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점장이 말해줬으니까.
지금은 그걸 모른다. 불과 물의 마나량이 다르다는 것만 알 뿐, 그 마나량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러면 소거법이다. 수치상으로 100부터 시작해, 이기는 놈 나올 때까지 간다.
심호흡한 뒤, 손등에 내용물을 두어 방울 떨궜다. 액체인지, 기체인지도 모를 무언가가 흔들리듯 손등에 떨어져서는….
화륵 타올라 사라지고, 옅은 수증기를 내며 증발했다. 뜨겁거나 차갑지 않고 무감각하다. 응당 느껴야 할 온각과 냉각마저 체질이 지워줬나 보다.
슬쩍 돌아보자 멍멍이는 귀를 바싹 접은 채로, 누나는 살짝 염려된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호기심 해결해줬다.
“나한텐 안 뜨거워, 누나. 차갑지도 않고.”
이제서야 표정이 풀린다. 다시 집중했다. 둘 중에 100어치 마나를 머금은 건 없었다. 다음은 90쯤을 생각하고….
“…오오. 사장님께서 무척 진지해지셨소, 윤하 아가씨.”
“쟤 전에도 저러더라고. 태생이 저런 타입 같아.”
뭐래.
이렇게 네 번을 시도한 끝에 승패가 결정됐다. 50을 생각하고 병을 기울이자, 손등에 떨어진 액체가 수증기를 뿜어내며 사라졌다.
반면 불꽃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손등에 심지 없는 촛불처럼 머물러서는 한참을 타오르더라고. 기다리다 지겨워져서 손 흔들어 쳐냈다.
“이거 물 태우는 불인 듯? 불타는 물이 아니고.”
“그래. 그렇게 보인다.”
“다 했으니까 이제 좀 말해줘 봐. 이 짓 왜 한 건가.”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누나 반응이 단순한 호기심으로 질답 주고받을 문제가 아니라는 반응이었다. 귀찮다는 얼굴이 되어서는 멍멍이를 내려놓고, 금연초를 꺼내더라.
한 모금 깊게 빨아 내뱉은 뒤 말하는데, 말투마저 귀찮아하는 티가 팍팍 났다. 날 향한 건 아니었고.
“그거 학원지구 게이트에서 생겼던 거 가져온 거야. 뉴스에 나온 그곳.”
“아니, 누나 그 안에는 언제 들어갔다 나왔어?”
“여기 오기 직전에 잠깐. 여튼, 그게 원래는 학원지구 쪽 게이트에서 안 나와야 정상이거든?”
이 도시 기준, 각 구마다 열리는 게이트 내부의 풍경이 각각 다르다고 한다. 아까 테마 어쩌고 했던 게 이 얘긴가보다.
학원지구 쪽 게이트가 바다. 동남쪽으로 10km쯤 떨어진 산림공원 쪽 게이트가 화산지대이며, 이 물 태우는 불도 그 화산지대 쪽에서나 주로 발견되는 매질이라고.
그래서 이걸 보고 맨 처음에 누나가 의심한 게, 바다 테마 게이트 내부의 해저에서 작은 화산이 터진 게 아니냐는 거였단다. 그 왜, 어디 섬나라에서 화산이 터졌다― 이런 개념으로 말야.
“그래서 너한테 그게 맞는가, 아닌가 확인을 부탁했던 건데… 아니네.”
“아닌 거면 어떻게 되는데.”
“동조하고 있다는 게 되지. 산림공원 쪽 게이트랑 학원지구 쪽 게이트랑.”
문맥 그대로 받아들였다. 동조. 자신의 의견이나 행동을 다른 무언가에 맞추는 것이고, 맞출 무언가가 없으면 성립이 되지 않는다. 말인즉….
“산림공원 쪽에도 게이트가 열려있는 게 있다?”
“거기까진 나도 모르지. 이미 열렸다 닫혔을 수도 있는 거고, 진짜로 열려있을 수도 있고.”
“허어….”
“전에도 말했지만, 게이트가 열려있는 거 자체는 별 위험이 안 돼. 공간 왜곡돼서 겉보기엔 엉망진창 되어 있어도, 게이트 닫으면 원래대로 돌아오니까.”
이건 전에도 얘기해 줬었다. 게이트가 열려있는 것 자체는 별 위험이 없지만, 열린 게이트가 제멋대로 닫혀버리는 순간 문제가 된다고.
그 문제로 누나가 든 게 지진 등의 자연재해였지만, 난 이 세상 자연재해가 내 세상 자연재해와 똑같은지조차 아직 모른다. 직설적으로 물었다.
“대충 뭔 일 일어나는데. 자연재해 말고.”
묻자, 누나가 살짝 어이없다는 얼굴로 되물어왔다.
“너 무슨 오지 같은 데서 살다 왔어?”
“밤에 고라니 돌아다니고 갓길에서 야생 감자 자란다, 왜.”
“이야, 그렇게라도 게이트 안 열리는 곳 있으면 나도 한번 살아보고 싶네.”
“행여라도 생각 말어, 그거 말고 좋을 거 하나 없는 동네니까. 여튼, 뭔 일 나는데?”
“음….”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아하. 하고는 날 가리키며 말해오는 누나.
“네가 본 그 고라니가 흉폭해지거나, 야생 감자가 짐볼 크기로 자란다 보면 된다.”
곧바로 고라니와 야생 감자를 머릿속에 그려본 뒤, 그 고라니가 드롭킥을 날려오거나 야생 감자가 4차선 도로를 굴러다니는 꼴을 상상해봤다. 음….
“개판이네.”
“그치? 진짜로 뭔 개판이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 크게 일어나는 게 지진이나 화재라서 예시 든 거고.”
지진이나 화재가 차라리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게 내가 미쳐서인 건지, 정상이어서인지 모르겠다.
“미리 막는 방법은 없고?”
“아주 없진 않아. 협회나 마법청에서 예보를 하긴 하는데, 한 번 할 때마다 범위가 좁아. 그래서 게이트 나오는 게 드문 곳들은 잘 안 하고―”
색출되는 확률도 낮은 탓에 주먹구구식으로 구르는 경향이 잦댄다. 어지간히 재수 없지 않은 이상 인명피해도 잘 안 일어나서 대수롭지도 않게 여긴다고들 하고….
“―뭐, 그래. 이걸로 설명 끝.”
이러고는 금연초 한 모금 깊게 들이쉬어 내뿜는 누나. 금연초 연기가 허공에 옅게 흩뿌려지고, 흩뿌려진 연기에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켠다.
“그런 이유로, 난 모레부터 또 뒤지게 구르게 생겼다. 5일 철야하고 왔더니 웬 날벼락이냐.”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해? 5일 철야하는 게?”
“물리적으로 안 되니까 마법적으로 했다, 짜샤. 몸 튼튼한 게 이럴 땐 참 좋아.”
120시간 동안 안 자고 현장 뛰게 해주는 마법이 따로 있는 듯하다. 이 세상 고용노동부는 24시간 불 켜져 있을 것 같네….
“여튼, 조만간 이상한 일들 일어날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고. 아니면 벌써 일어났냐?”
“여긴 늘 한결같지. 진상 놈들 와서 깽판치고, 진열대 좀 부서지고.”
“뭐가 부서져?”
“진열대 부서졌다고. 잘 해결했으니까 신경 쓰진 말고. 점장님께 뭐 들은 거 없어?”
“얘기 자체를 못 했지. 바빠 갖고… 아.”
움찔하며 밑을 내려다보는 누나. 멍멍이가 누나 다리에 머리를 비벼대기 시작해서였다.
움찔한 것도 잠깐, 금방 웃음 만개한 얼굴로 멍멍이를 붙잡아서는 들어 올린다.
“아유, 지루한 얘기 듣느라 고생했다. 근데 너 이렇게 들면 팔 아프진 않아?”
“괜찮소이다. 그것보다, 아까 얘기 말이오. 윤하 아가씨.”
“어떤 거. 게이트?”
고개 끄덕인 멍멍이가 의문 반, 당혹감 반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고라니가 난폭해질 수도 있다고 하셨잖소. 혹시 거기에 들개도 해당이 되오?”
누나는 고개를 갸웃했고, 난 듣자마자 깨달았다. 저 녀석 사는 공원 똥개들이 난폭해졌다는 게 설마 이 얘기인가?
“해당이 되긴 하지. 왜, 걱정돼서?”
“걱정이야 되오만, 그것보다는….”
자기 꼬리를 슬쩍 들어 보인 뒤, 오늘 공원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읊조리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안타깝다는 듯, 누나 얼굴이 착잡해졌으나….
이야기 중간에 진지해졌다. 멍멍이를 내려놓고는 자기가 직접 몸을 쭈그려 앉더라.
“그 공원 위치가 정확히 어디야?”
“이 매장을 나가서 30분, 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있는 곳이외다.”
앞발을 쭉 내밀어 도로 오른편 끝을 가리키는 멍멍이. 멍멍이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다, 쭈그려 앉은 채로 금연초를 빨더라. 담배 땡기는 상황인가 보다.
“…학원지구 반대쪽이네.”
중얼거리고는 몸을 벌떡 일으키는 누나. 바로 컨테이너로 가서는 손잡이를 잡은 뒤,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들여다보니, 아니.
“이찬, 이것들 좀 같이 꺼내자.”
“이런 씨, 뭔 놈의 라면을 이렇게 많이 가져왔어?”
컨테이너 내부가 과자며 라면박스며 음료며, 알이 아주 꽉꽉 들어찼다. 지금껏 물류를 점장이 받아왔지, 내가 한 건 처음인데 말야….
“야, 전표.”
“…어.”
그래도 못 할 건 없다. 옛날에 해 봤으니까. 전표 받아 뒷주머니에 욱여넣은 뒤, 누나가 꺼내주는 물류를 받아 보도 위에 늘어놓았다.
그렇게 받은 게 라면 20박스, 캔 음료 15세트, PET 음료 18세트, 맥주 18세트. 이후로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드럽게 많네, 진짜.
“야. 마지막.”
마지막으로 생필품 담긴 봉투를 건네주고는, 컨테이너 문짝을 닫고 멍멍이를 들어 끌어안는다.
“멍멍아. 미안한데, 말했던 공원까지 같이 가줄 수 있을까?”
“물론이외다. 그 전에, 사장님께―”
“갔다 와, 인마.”
눈치껏 대답한 뒤,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5일 철야했다고 툴툴대지만 말고 제대로 좀 쉬는 게 어떰?”
“나 아니면 확인 못 할 상황이잖냐. 나중에.”
이해는 된다. 정황상, 누나는 멍멍이가 먹고 사는 공원 근처에 게이트가 열렸었다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도 그게 맞는 것 같고….
다른 헌터들한텐 이걸 말 못 한다. 아니, 진짜 뭐라고 해. ‘이 멍멍이가 공원 들개들이 흉폭해졌다는데 가서 확인 좀 해볼게요.’라고?
그 멍멍이 좀 데려와 보라고 할 게 뻔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누나가 멍멍이를 자기 재킷 안쪽에 욱여넣는 걸 지켜봤다. 잘 안 들어가더라.
“아가씨, 살살! 차라리 고삐를 물게 해주시오!”
“안 돼. 이 녀석 나 아니면 등에 아무도 안 태운단 말야. 안 보이게 여기 숨어있다가, 내린 다음에 슬쩍 말 걸어봐. 알았지.”
“걘 왜 그러는데?”
“낸들 아냐, 서로 말이 통했던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되겠다.”
다 들어갔는지 누나가 손을 뗐다. 누나가 입은 재킷의 열린 지퍼 사이로 멍멍이가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는 형세다. 그대로 말에 올라탄 채 말의 머리를 쓰다듬는 누나.
“이찬, 물류 정리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
“됐으니까 빌딩 들이박지나 말어.”
“오냐. 그럼… 빠이.”
“어. 빠이.”
“안녕히 계시구려, 사장님! 본견, 깨달음을 얻어 돌아오겠소이다!”
말이 날갯짓을 시작하는데, 도중에 작게 멍멍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헌데 윤하 아가씨. 안전벨트 같은 건 없소?”
“없는데?”
이러고는 날아가 버렸고, 거리 앞에는 나와 물류 박스 80박스가량이 남았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우선은….
점장에게 바로 전화부터 걸었다. 신호 두 번 울린 뒤 점장이 받았다.
[ 어, 찬아. ]“점장님. 잘 쉬고 계십니까?”
[ 아니? 찬이 전화 기다리느라 잘 못 쉬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