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18)
이세계 편돌이-117화(118/331)
117화. 게이트가 편돌이에게 미치는 영향 (5)
* * *
물류 정리하는 법은 간단하다. 들어온 물류들의 각 품목명과 전표에 적힌 리스트를 대조해, 주문한 품목이 원하는 물량만큼 들어왔는지를 체크.
제대로 들어왔으면 펜으로 동그라미 치면 되고, 안 맞으면 안 맞는다고 업주에게 일러바치면 된다.
이 부분은 매장마다 다소 차이는 있어도 대체로 동일하지만,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차이점이 하나 있다.
[ 정리는 찬이가 말한 대루 하면 돼. 근데 허리 괜찮겠어? ]매장 크기에 따라 편돌이의 척추 건강 상태가 요동치게 된다는 것. 체크할 때 확인해봤는데, 소주 박스만 다 합쳐서 8박스였다. 1.5리터 음료 6개들이 박스도 6개.
이것들 다 하려면 몇 시간은 걸릴 것 같다. 말해오는 점장도 살짝 미안하다는 어투였다.
[ 내가 낮에 마법으로 슥슥 하면 되는데…. ]“제가 할게요. 이거 로비에 둔 거 손님들이 좋게 보지도 않을 거고.”
미안해하는 게 오히려 더 미안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점장 덕에 안 하고 지내 온 셈이니까. 말하자, 잠깐 말이 없던 점장이 툭 내뱉어 왔다.
[ 그럼 아예 아침에 통화하자, 찬아. 그거 다 하는 데 몇 시간 걸릴 거 아냐. 하고 나면 피곤할 거구.]“아니, 아까는 전화 기다린다고 제대로 못 쉬셨다면서요?”
[ 몰라. 나 잘 거야. 끝난 다음엔 허리 스트레칭 꼭 하구. 수고해. ]이러고는 냅다 끊어버렸다. 걱정해 주는 건 고맙지만, 내가 그래도 아직 나이가 20줄이다. 허리 스트레칭은 무슨….
* * *
물류를 전부 정리하는 데에 꼬박 2시간. 그동안 손님은 안 왔고, 내 허리는 작살이 났다.
“이런 씨….”
척추의 요정, 척추의 요정이 필요하다. 진짜 손님으로 한 번만 와주면 안 되나? 3번에서 6번까지만 어떻게?
이게 불가항력이었다. 소주 한 박스 무게가 10kg 정도 한다. 1.5리터 콜라 6개들이도 마찬가지로 10kg.
10kg 주류 열여섯 박스를 나른 뒤, 진열대에 채워 넣는답시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인 채로 작업했다.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허리에서 뚝 소리가 나더라고?
그 이후로는 몸 살짝 비틀 때마다 비명 질러가며 작업했다. 주류, 음료, 과자, 라면.
생필품만 남은 시점에서는 귀에 폰을 댈 힘도 없어서, 그냥 계산대에 엎어져 정문 밖만 바라봤다.
오전 7시 반까지도 한적하더라. 매출이 3만 원 찍힌 건 또 처음 본다.
이후 30분가량이 더 흘러서야 이종족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는데, 이 손님들 행색이 어제와는 또 달라진 상태였다.
어제는 출근하는 이종족들이 죄다 폰만 들여다보는 식이었다면, 이번에는 복장 자체가 무척 캐주얼해졌다. 아예 출근 자체를 안 하나?
생각하는 와중에 매장에서 통화하는 서큐버스가 하나 있길래, 살짝 귀를 기울여봤다.
―으응, 자기~ 우리 오늘 어디 놀러 가면 안 돼?
―응? 출근? 우리 회사 오늘 쉬어, 자기야. 학원지구 게이트 열린 거 있잖아.
―이렇게 맨날 게이트만 열렸으면 좋겠어. 그래야 자기랑 매~일 놀지.
―아, 자기는 오늘 출근해? 아쉽다… 아니, 아니지. 아예 내가 오빠 회사로~
목소리에 꿀이 아주 뚝뚝 떨어지고 있다. 듣자 하니, 이놈의 게이트 때문에 회사가 아예 일일 휴업을 하게 된 것 같은데 말야….
서큐버스가 물티슈를 사서 나간 뒤로는 손님들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고, 손님 수에 비례해 좀 더 많은 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령, 양복 입고 있는 이종족들이 죄다 죽을상을 하고 있다든가.
샌드위치 먹다가도 힐끔 캐주얼한 이종족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럽기 그지없다는 눈빛이다. 반대로 캐주얼한 이종족들 중에는 자기 애들을 데리고 나온 손님도 있었고.
“아빠. 저 샐러맨더 아저씨는 양복 입고 있는데, 아빠는 왜 조끼 입고 있어?”
“어. 아빠는 오늘 쉬는 날이야. 저 아저씨는 아니고.”
“왜?”
이 대화가 오가는 순간, 샐러맨더의 표정이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울적해졌다. 샌드위치 다 먹고 나가면서는 수염, 꼬리마저 축 늘어뜨리더라.
그럭저럭 일상적인 풍경이었다. 여튼 선택받은 자들은 약속의 장소로 향했고,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통근 지하철로 향했으며….
10시 5분 전에 점장이 왔다. 인사부터 하려 했는데, 점장이 들어오면서 절반 정도 입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이것부터 물었다.
“점장님. 무슨 불만이 있으셔서 입술을 그리 삐죽 내밀고 계세요?”
“안녕, 찬아.”
“예. 좋은 아침입니다.”
“나는 아주 약간 좋은 아침이야.”
일이 있는 거 같긴 한데, 뭘 알아야 대꾸를 해주든 말든 하지. 입 삐죽 내민 그대로 터덜터덜 걸어와, 딱지 비스므리한 걸 내게 내미는 점장.
확인해 보니, 딱지가 아니라 파스였다.
“지금쯤 허리 아파할 거 같아서, 밖에서 사 왔어. 내 가게엔 약한 것밖에 안 들여놨으니까.”
“…사실 아픈지 좀 되긴 했습니다. 삐끗해갖고.”
“조심해. 찬이는 영원한 18세가 아니잖아.”
아니, 진짜 평소 점장이랑 뭔가 다르지 않냐?
원래라면 활짝 웃은 채로 ‘허리 두들겨줄까? 내 손 매콤하니까 조심하구’, 이러면서 허리를 열심히 두드렸을 사람이잖아. 오늘은 왜 이래?
“그, 혹시 제가 물류 정리한 것 때문에 그러시는 겁니까?”
“응? 그 덕분에 약간 좋은 건데?”
“허어….”
“찬이가 물류 정리해 준 거 아니었으면, 기분이 아주 안 좋았을 거야.”
허리를 희생한 보람이 있구만. 점장 눈을 바라봤는데, 나랑 눈 마주친 점장이 똑같이 시선을 피하질 않았다.
그러다 잠시 후. 심통 난 표정에서 우울한 표정으로 바뀌어버렸다.
“미안해. 찬이 잘못이 아닌데.”
“이해합니다. 저도 아침에 책장에 새끼발가락 찧은 날엔 피아식별 안 하고 짜증 내고 다니거든요.”
“그건 어쩔 수 없지. 음….”
점장이 답답한지 머리카락마저 배배 꼬아대기 시작한다. 이것도 여태 한 번도 본 적 없는 버릇이다.
서너 바퀴가량 머리를 꼽고 나서는 대뜸 나한테 오른손을 내밀더라.
“찬아, 잠깐 손 좀 잡아줘.”
별로 내키진 않았으나, 상사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월급쟁이의 숙명이다. 손 내밀어 악수하듯 부여잡자마자 점장 표정이 확 밝아졌다.
“아, 역시. 마법 관련된 일이었구나.”
“뭐가요?”
“내가 기분 안 좋은 게 말야, 주변에서 마법 관련해서 안 좋은 일 일어나려 할 때면 늘 이렇더라구.”
점장 추측으로는 그 안 좋은 일이 발생하며 내뿜는 극미량의 마나가 공중에 떠돌고, 그걸 피부가 자기가 본능적으로 감지해서인 것 같단다.
쉽게 말해 촉이 좋다는 얘기였는데, 이건 당사자 입으로 말하긴 좀 그런 내용이 아닌가….
“그걸 찬이가 체질로 막아준 거지. 와, 진짜 기분 좋다….”
“아무튼 기분 좋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점장님.”
“나, 아예 찬이 손잡고 근무할래.”
“그건 좀 그렇고. 저 내일 정시출근 해야죠.”
“응….”
“일단 인수인계하겠습니다.”
손잡은 채로 인수인계했다. 첫째, 오늘 야간 매출이 많이 아프다.
“그럴 거 같기는 했어. 나오면서 뉴스 봤는데, 아예 가급적 외출하지 말라고 하더라구.”
“아. 그거 저도 들었습니다. 아까 손님들이 얘기하시더라고.”
“다른 사항은 따로 없구?”
“따로 없어요. 손님이 원체 안 와서 분실물 발생하지도 않았고, 혹시나 싶어서 물류 체크 두 번 해봤는데 물류도 멀쩡했고. 다음은….”
멍멍이랑 윤하 누나 왔다 간 일 정도다. 멍멍이가 혼란을 겪었던 것, 누나가 물 태우는 불 가져온 거, 도중에 멍멍이 데리고 날아가 버린 것.
전부 이야기하자, 점장이 살짝 감탄했다는 듯이 손을 흔들었다.
“그걸 그렇게 해결을 하네. 찬이 전문가 다 됐어, 아주.”
“자격증 땄으니까 전문가 맞죠, 뭐. 여튼, 멍멍이는 누나 타고 다니는 말한테 가르침을 얻겠다고 떠나버렸고. 끝입니다.”
“말? 윤하가 타고 다니는 걔?”
이번엔 놀란 눈치다. 점장도 누나가 말 타고 다니는 건 알고 있지 않나?
“알기는 아는데, 걔는 나만 보면 막 머리 물어 뜯으려구 들거든. 맨날.”
“걘 왜 그런대요?”
“나도 몰라. 그래서 따로 얘기도 안 했었어. 멍멍이 털 다 뜯어먹힐 거 같아서.”
들은 뒤, 멍멍이가 말 입에 물려 민둥산이 되어버리는 광경을 상상해봤다. 멍멍이 입장에선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을 것 같긴 하다.
“그래도 멍멍이한테 안 그러는 거 보면, 동물끼리는 통하는 게 있나 부다.”
“그러게요. 그리고, 누나가 멍멍이 데려간 거는….”
“공원에서 게이트 열린다는 거. 그건 좀 걱정되기는 해.”
“그러십니까.”
“응. 공원이면 늘 이종족들 많을 거 아냐.”
산림공원은 숲속 친구들이 뛰놀 뿐인 곳이고, 학원지구 시계탑 꼭대기는 톱니바퀴를 고치러 가지 않는 이상 올라갈 일이 없을 곳이다. 반면, 공원 한복판에 게이트가 열린다면….
“…만약의 얘긴데요. 그 안에 빨려 들어가 버리면 어떻게 됩니까?”
“바로 다치지는 않아. 난폭한 마수들한테 걸리지만 않으면.”
“난폭한 마수면, 갈기에 불붙은 말이라든가?”
“헬 호스 얘기구나. 걔는 그래도 얌전해. 물 마실 때 건들면 화 엄청 내지만.”
반대로 난폭한 마수들에게 걸릴 경우, 최소 부상에서 최대 사망까지는 감안해야 한다고. 들으면서는 정글에 맨몸으로 떨어진 상황과 크게 다른 점을 못 느끼겠더라.
“그래서 헌터들 1순위 업무 중 하나가, 게이트 안에 빨려 들어간 이종족들 찾아내는 거구. 철야를 하면 대부분 이 이유에서야.”
“고생하네요, 참.”
“그렇지. 윤하한테, 오늘은 아예 푹 쉬라구 전화 해둬야겠다.”
“그러셔요.”
이렇게 대화가 맺어졌고, 점장이 고개를 돌려 쇼윈도 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드는 생각이 몇 개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두 가지 생각뿐이다. 하나는 내일 정시출근하려면 지금 퇴근해야 한다는 것.
“10시 지났으니 슬슬 들어가 보겠습니다, 점장님.”
“응.”
다른 하나는, 이 뭔지도 모를 것 때문에 거리에 행인이 한 명도 없다는 거. 이러다 매장 망하는 거 아닌가 싶다.
* * *
퇴근해서는 늘 하던 대로 씻고, 자고, 일어나서 간단하게 씻고.
사건사고들을 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이세계가 아닌,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세상 사건사고들.
인적 하나 없는 길에서 스마트폰을 켜, 화면을 조작해 걷는 동안 훑어보았다. 고작 3, 4일도 채 되지 않는 사이에 여기저기에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더라.
[ 수산시장에서 큰불, 다행히도 인명피해는 없어 ] [ 아울렛에서 큰불, 사망 0명 부상 8명 ] [ 광산 붕괴, 사망 0명 부상 2명 ]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지금 이 뉴스들을 보고 있는 것과 이종족들이 게이트 관련 뉴스를 보던 것. 이 두 개가 크게 다르진 않을 터다.
저쪽 세상에선 이런 일이 일상일 테니까. 어딘가에서 화재가 나는 것과 어딘가에서 시공의 균열이 열려버린다는 게 차이점이기는 하지만….
그러니 괜히 의식할 필요 없다. 게이트도 비슷한 거야.
게이트가 계속 열리든 말든 이세계에서는 각자 볼일들 보고 살 거고, 나도 내 할 일 하면 그만인 일이다. 그러다 끝날 거고, 늘 그래왔듯 진상 놈들 다시 받고 살게 되겠지.
생각하며 매장 안으로 들어섰고, 정문 앞에서 잠깐 멈칫했다. 카운터에서 점장이 익숙한 얼굴과 대화를 나누고 있어서였다.
“호오. 사장님께서 그렇게까지….”
“네. 그래서 찬이가 두 번째두― 어, 찬아. 하이.”
“예, 점장님.”
인사드린 뒤, 바로 어르신께도 인사드렸다.
“울프 어르신, 잘 지내셨어요?”
“저야 늘 잘 지내는 편이지요. 사장님께선 어떠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