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20)
이세계 편돌이-119화(120/331)
119화. 잊고 싶은 기억을 잊으려면
* * *
몇 년 전에 인력사무소 다니던 시절, 공사판에서 마주쳤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께서 하셨던 단골 멘트가 있다.
‘나가 왕년에는 말여, 쩌―어기 월남서 아주 중요한 임무덜을 맡았단 말여. 누구 모가지 따라면 따고, 바다를 헤엄치라면 헤엄치고. 알어?’
물론 난 그러려니― 하며 흘려들었다. 그 말들이 사실일 경우엔 필시 군대에서 ‘아주 중요한 취급’을 받을 내용들일 거고, 내가 들으면 안 되는 거잖아. 어디 끌려갈 일 있어?
지어낸 말이라면, 들을 필요가 없으니까 흘려들을 내용이 되는 거고.
지금 말씀하신 것도 그렇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르신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든 간에 나로서는 사실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방법이 없고, 그러니 흘려들으면 그만이다.
“한낱 늙은이의 말일 뿐이니, 믿어주실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말이지요.”
어르신께서도 이렇게 눈치 주시고 있고. 이왕 전제가 깔린 거, 한 발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그 반려분께서, 혹시 어떤 이유로 호위를 받으셨는지는―”
“좋은 이유는 아니었습니다.”
“…아.”
“그냥 그렇게만 알아두시면 됩니다.”
어투가 단호하다. 한 발 더 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내용이구나, 이거.
강제로 대화가 끊어진 셈이 됐지만, 여기까지 말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말하기 싫은 질문에 대해 최대한 대답을 해주신 거니까. 보답이 될까 싶어 말해봤다.
“아내를 반려라 지칭하시는 거, 전 살면서 처음 들어봅니다. 어르신.”
“…그러십니까?”
“엄청 높여 부르시는 거잖습니까. 서로 많이 사랑하시나 봐요. 엄청 오랫동안 같이 지내신 걸 텐데.”
“제게는 과분하리만치 착한 정령이었으니까요. 저도 보답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어르신 반려분 종족이 정령이었나보다.
정령. 나 사는 세상에서 보통 정령이라 하면, 일정한 형태가 없는 불이나 물방울 덩어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 식이지만….
여긴 그게 아닌 거겠지. 무척 인간같이 생겼지만, 그래도 인간은 아닌 존재. 지식이 늘었다.
“…….”
“음….”
말을 마친 어르신께서 생각에 잠겼는지 조용해지셨고, 분위기가 싸해져 버렸다. 나는 손녀딸에 대해 말씀하실 때 그랬듯, 반려분 얘기도 즐겁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야….
괜히 눈치 없게 긁어 부스럼을 만든 것 같다. 그래도, 부스러기를 더 만드는 한이 있어도 사과할 상황이 되면 하자. 생각하며 기다린 게 1분가량.
“…사장님께서 아까 말씀해 주셨지요. 업주님이 제가 소속했던 부대의 인원 중 한 분과 옛날에 협업을 하셨다고.”
“어… 예. 맞아요.”
정확히는 점장과 협업을 했던 분이 울프 어르신인지 아닌지가 의문이었던 거지만, 이건 이제 해결이 됐다. 같이 일했던 사이면 눈 마주치는 순간 알아봤겠지.
둘 중 한쪽은 얘길 꺼냈을 테고 말이다. 점장이 먼저 묻지 않았던 건, 울프 어르신과 이렇다 할 면식이 없는 상황에서 묻기엔 민감한 내용이 돼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혹시 어떤 분인지도 들으신 바가 있으신지요?”
“누구인지는 정확히 못 들었고, 대통령 호위했다고는 하셨어요.”
“아. 대장님이시군….”
짚이는 바가 있으신 건지 탄식하듯 중얼거리는 어르신. 이젠 어르신이 기사단 출신이라는 게 기정사실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지내는지도 들으셨습니까?”
“그것도 못 들었습니다. 점장님께서도 연락 안 하신 지 오래라 하시더라고요.”
“…그렇군요.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장님.”
말씀하시고는 또 침묵. 계산대에 손을 올린 채로 줄곧 내려다만 보셨는데, 드는 생각이 꽤 많으신 듯했다. 어쩌면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시는 걸지도 모르고.
적어도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기는 힘드신 것 같다. 슬쩍 권했다.
“어르신, 앉아서 얘기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밖에 보면 오늘 손님도 안 올 것 같고.”
“아… 예. 심려 끼쳐 드려 죄송합니다.”
하여 테이블에 먼저 앉으셨고, 난 음료 진열대에서 생수 두 병을 꺼내 가져왔다. 자리를 바꾼 덕인가, 어르신께서 조금이나마 숨이 트이셨는지 마저 말을 이으셨다.
“부대원들과는 전쟁이 끝난 직후에 만났던 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서로 무사했던 걸 축하하며 사진을 찍은 뒤 헤어졌었지요.”
“그 이후로 연락은 따로 안 하셨던 겁니까?”
“예. 서로 간에 약속한 게 있었습니다. 그 전쟁이, 저희에게 좋은 기억만 남겼던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럼 어떠한 기억이 있었는가. 이 세상서 살아온 이종족들이라면 역사책의 중요 사건들을 떠올려 가며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터다.
하지만 난 그럴 수 없다. 이방인이니까.
때문에 내 세상의 기억을 인용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읽었던 교과서에는 이런 일들 대부분을 다소 생략하되, 간결하고 명확하게 서술해 놓았었다.
어떠한 전투에서 사망자 총 몇 명. 참혹한 전투였다.
이분들의 경우엔 그 참혹함이 특히 더했을 것이다. 누군가를 호위한다는 건, 호위 대상에게 가해지는 위협을 대신해 받아내야 한다는 말과 다를 게 없잖은가?
그만큼 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억으로 남았을 테고 말이다. 뭔가를 떠올리고 싶지 않을 때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걸 떠오르게 만드는 모든 것을 버리는 것.
“서로 각자의 길을 가기 직전에 대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서로가 다시 만나고 싶어지거든, 안 좋은 기억 모두를 잊은 뒤에 만나자고 말이지요.”
“예….”
“헌데, 그게 벌써 수십 년이 지난 일이 되어버렸군요.”
세월 참 빠르기도 하지.
한마디로 말을 맺으시고는 느릿느릿 생수를 잡아 뚜껑을 열고, 여러 모금 들이켜셨다.
물을 마시면서도 시선은 계속 앞을 향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계신다. 내려놓으실 때까지 기다린 뒤 여쭤봤다.
“다시 뵙고 싶으신 건가요? 그분들?”
“그런 것 같습니다. 전부 잊은 줄 알았는데, 단 한 번의 대화로 이렇게 생생히 떠올라 버렸으니.”
“그러면―”
“그래도, 딱히 만나 뵙고픈 마음은 없습니다.”
거의 칼로 자르듯 말을 끊으시는 어르신.
머릿속이 복잡해지셨다는 게 눈에 보인다. 어떻게 복잡해진 건지도 얼추 알 것 같고.
대장님이란 분이 이렇게 말했다고 하셨다. 그 기억을 전부 잊은 뒤에 서로 다시 만나자고.
어르신께서는 아직 그게 안 되신 것이다. 잊은 줄 알았다 말은 하셨지만, 이게 진짜여서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글쎄…?
한 번이라도 잊어봤다면, 잊는 방법을 아는 것이잖은가. 그 방법 그대로 행하면 해결될 일을 이리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는 없다 생각한다.
잊어본 적이 없다, 잊지 못하셨다는 전제를 깐다면. 나는 아직 잊지 못했기에 부대원들을 만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 잊으면 만나자, 이게 대장님 마지막 명령이 된 셈이니까.
아니면 그들은 잊은 기억을 자신이 찾아가 들춰내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하시는 것일 수도 있겠고. 어느 쪽이든 합리적이다. 반박할 수도, 마음도 없다.
그래도… 떠오르는 말이 없는 건 아니다. 최대한 조심스레, 어르신께 여쭈었다.
“…그, 혹시 제 생각을 한번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주제넘은 짓이란 건 아는데….”
“아닙니다. 사장님께서도 묻는 것에 답해주셨으니, 저도 당연히 사장님 말을 들어야지요.”
허락 맡았다. 남자끼리 물리기 없는 겁니다, 어르신.
심호흡한 뒤 내뱉었다.
“저는, 어르신께서 앞으로도 그 기억 못 잊으실 것 같습니다. 어르신 혼자서는요.”
전쟁의 참혹한 기억. 수십 년 전에 쌓인 기억이다. 잊으려고 수십 년이 지나도록 혼자서 노력을 했는데 그게 안 됐다?
그럼 그냥 안 되는 거다. 지금까지의 방법으로는 안 돼.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럼 그 방법이 뭐가 있는가. 어르신께서 누군가랑 대화를 해보셨을까?
못 하셨을 것 같다. 특수부대에서 맡은 임무를 어느 누구한테 털어놓냐고. 이세계 출신 편돌이? 난 자신 없다. 나도 오래 산 건 아니었으니까.
다른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 한다. 대화 대상으로는 누가 좋은가. 자기가 겪은 일을 아주 잘 이해해 줄 이가 좋겠지. 정확히는, 똑같은 일을 겪어본 자들.
“잊은 뒤에 찾아오라. 대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하셨었죠. 저는 그걸 좀 다르게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사장님.”
어르신께서 무덤덤한 어조로, 곧바로 대꾸해 오셨다.
이게 이유인 것 같다. 전직 군인. 군인에게 있어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이기에, 자체 해석 없이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
잊거든 만나자. 이건 잊으라는 명령이기도 하다. 잊는다는 건 무의식의 작용이다. 잊어야 한다고 의식하는 시점에서 이미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어버린다.
그분은 대장님이고, 상관이다. 나 같은 편돌이조차 떠올릴 수 있는 걸 모르고, 구태여 의식하라고 말했을 것 같진 않아. 그럼 그 말을 도대체 왜 했을까.
“헤어지는 그 순간, 그분이 상관으로서 명령하신 게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 저는.”
“…….”
“상관이니까 더 많은 일을 겪으셨을 거고, 그래서 더 힘드셨을 거고. 그렇기에 마지막에 부탁을 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부탁 말씀이신지요.”
“혹시라도 네가 먼저 잊거든, 날 찾아와 그 방법을 알려줄 수 있겠냐는….”
합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그때로부터 세월이 많이, 평등하게 흘렀다. 어르신께서 수십 년, 그 대장분께서도 수십 년.
그때야 두 분 다 젊으셨을 테니 나이에도 큰 의미가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그게 큰 의미가 있을진 모르겠다. 20세와 27세, 80세와 87세를 비교해 보면 와닿는 점이 다르잖은가?
서로 비슷한 연배가 되셨다는 얘기다. 그리고, 비슷한 연배인 어르신께서 못 잊으셨는데 그 대장분이라고 잊었을 거란 보장이 있나?
내 생각엔 아닐 것 같다. ‘잊으면 만나자’라고 먼저 언급을 한 시점에서, 이게 잊어야만 할 기억이라는 걸 그 대장님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잖은가.
“제 생각일 뿐이긴 합니다. 생각일 뿐이지만, 그분에게도 잊기 어려운 기억일 수 있어요, 이게. 잊을 자신이 없어서, 일부러 여지를 남겨두신 게 아닐까.”
“…제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실 수도 있다. 이 말이신지요.”
“저라면 그럴 것 같아요. 똑같이 힘든 일 겪은 건, 똑같이 힘든 일 겪었던 사이끼리 푸는 게 낫지. 그게 제일 편하잖습니까.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찾아간다고 내가 도움이 될까’를 걱정할 수 있다. 어르신께서는 결국 잊지 못하셨으니까. 가서 왜 왔냐고 묻거든 할 말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나라면 이렇게 말할 거다. 넉살 좋게.
“술 한잔 따르러 왔습니다, 대장님. 이라고요.”
“…….”
“그간 잘 지내셨냐고도 여쭤볼 거고.”
옛날 일들은 잊었나. 못 잊었습니다.
그런데 왜 찾아왔나. 못 잊으셨을 것 같아서 찾아왔습니다.
하긴, 그때 적당히 참혹했어야지. 예, 참혹했지요.
서로가 방법을 알지 못한다 해도, 서로를 위로할 수는 있지 않나. 잊어야 할 기억을 잊지 못한 자들끼리 괴로웠던 걸 토로할 수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생각하며 말을 마친 뒤 어르신을 바라보니 모자를 깊게 눌러쓴 상태셨다.
콧등 위에서 눈 밑까지. 그래서 눈이 보이질 않았다. 이 상태로 말을 이어오셨다.
“대장님께서는 강인한 분이셨습니다. 갓 배치된 저를 유독 신경 써주셨고, 단체 임무가 있거든 늘 앞장서셨죠.”
“참군인이시네.”
“예. 그래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장님께서 말해주신 방향으로는 말이지요….”
모자 안쪽으로 눈가를 슥 돌리신 뒤, 들어서는 다시 내려놓으셨다. 원래의 인자한 말투로 돌아온 채였다.
“말씀해 주신 것들, 깊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아뇨, 오히려 제가 죄송하죠. 주제넘게 이것저것 떠오르는 대로 말했는데, 그걸 깊게 생각해 주신다 하셔갖고….”
솔직히 말하면서 무진장 쫄렸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 누군가한테,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이 적정선인가? 상대가 내 말을 주의 깊게 들어줄 사람인가?
그 대상이 어깨탈골 스페셜리스트라면 특히 고민해 봐야 할 문제다. 어르신께서 그러시진 않으리란 믿음에 말했던 것인데, 천만다행히도 내 믿음이 통했다.
묵은 숨 푼다고 몰래 라마즈 호흡을 하던 와중, 어르신께서 날 지그시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제가 처음에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사장님과 이런 대화를 나눌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지요….”
“저도 그렇긴 합니다.”
“참 신기한 곳입니다. 사장님도 그렇고, 업주님께서도 그렇고.”
내가 신기한 놈 맞긴 하다. 딴 세상서 날아온 놈이 나 말고 몇이나 더 있겠어. 그리고 점장 얘기라면….
“점장님께서 스스로 왕년의 대마법사라 하시기는 하는데, 이게 진짜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허어. 왕년의 대마법사라면, 편의점 이전에도 이것저것을 하신 겁니까?”
“그러신 거 같습니다. 제가 들은 건 몇 개 없긴 한데―”
이 얘기 하면서 분위기나 좀 풀어보자 싶어 입을 열려다 멈췄다. 정문 쇼윈도 밖에서 행인 하나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어서였다.
걸음걸이가 팔자걸음인 게 어째 불길하다. 가까이 온 걸 보니 귀가 뾰족한 게 특히나 더 불길하고. 정문 앞에 서서는 문 잡고 한참을 서 있는 거 보면 딱 봐도….
“…어우, 취한다.”
취한 중년 엘프. 즉, 진상이다. 정문을 여는 건지 붙잡고 쓰러지는 건지, 문 열림과 동시에 바닥에 드러누워서는 나뒹굴기 시작했다.
“야, 야아아. 손님 왔드아아아.”
손님이면 손님답게 좀 굴었으면 좋겠다. 슬쩍 일어나, 어르신께 양해를 구했다.
“잠깐 저분 좀 치우고 오겠습니다, 어르신.”
“같이 가시지요. 필요한 일이 있거든 돕겠습니다.”
부담스러웠지만, 어르신께서 묘하게 의욕적이신 것 같아 따로 말은 안 했다. 정문 틈에 걸친 엘프의 어깨를 툭 건드리자마자 엘프가 버럭 소리를 질러왔다.
“야아아!! 감히 손님 몸에 손을 대에?!”
“그, 화 좀 그만 내시고. 이런 데서 주무시면 입 돌아가요.”
“지랄하네! 야. 이거 줄 테니까, 가서 소주나 한 병 가져와 봐.”
그래도 물건 살 정도의 정신은 박혀 있나 보다― 싶었는데, 이것도 오산이었다. 이 엘프 놈이 주머니에서 아주 괴상한 것을 꺼내왔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람쥐를 말이다.
“아니, 다람쥐는 또 어디서 잡아 온….”
“야. 받고, 가서 술 가져와 빨리.”
편의점에 이런 진상들 간혹 있다. 현금도 카드도 아닌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꺼내 내밀고는 물물교환 해달라 하는 양반들.
진짜 거나하게 취한 양반들이 특히 이런다. 해결 방법은, 그냥 경찰 부르면 된다.
“빨리 받으라고, 소주 달라니까!! 손님 무시해 지금?!”
“제가 연락을 할까요, 사장님? 아니면―”
“아뇨. 일단 이 손님부터 좀 치우고.”
찬바람 들어오는 게 싫어서였다. 적당히 요구 들어주다 일으켜 내보내자는 생각으로 엘프가 내민 손을 확인해 봤더니,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영락없이 다람쥐가 맞았다.
밤갈색의 꼬리 복슬복슬하고 발톱 얄쌍한 그 설치류 말이다. 헌데, 이 녀석이 손에 뭔가를 들고 있다.
주먹 쥔 손가락 틈새에 가려서 보이진 않았지만, 이게….
“어….”
아니, 진짜 뭐냐. 도토리?
크기는 분명 도토리가 맞는데, 묘하게 색깔이 이상하다. 보라색에, 어디서 분명 본 적이 있는 돌멩이 같은 게―
“물러나시지요, 사장님.”
뒤에서 어르신께서 말씀하셨고, 목덜미가 확 잡아당겨졌다. 뒤로 나뒹구는 동시에, 짤막한 다람쥐 울음소리.
―찍!
동시에, 천장에 벼락이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