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22)
이세계 편돌이-121화(122/331)
121화. 만 2세 토르람쥐 쥐생 최후의 람쥐썬더 (2)
* * *
비둘기가 날아와 편의점 쇼윈도를 들이받는 상황이 자주 있느냐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애초에 도시 비둘기 놈들 날지도 않잖은가. 날개는 폼으로 달려있고.
때문에 방금까지는, 비둘기가 아니라 짱돌이 날아와 매장 쇼윈도를 깨먹은 건 줄 알았다. 날아온 게 쇼윈도를 부순 김에 겸사겸사 진열대도 몇 개 부수고, 유제품 진열대의 우유를 터트리기 전까지도 말이다.
비둘기임을 확신한 건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나서였고.
―구구. 구구구.
“야, 이찬! 괜찮냐!”
터진 우유팩을 멍하니 바라보던 와중, 뒤에서 누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문 쪽을 보니 산발이 된 머리를 막 쓸어넘기며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이 누나는 어떤 연유로 오게 된 것인가. 궁금했으나, 일단은 질문에 대답부터 했다.
“난 괜찮은데, 우유 두 통이 크게 다쳤어.”
“농담할 그게 아니라! 정문 닫으랄 때 닫지―”
“아니, 없는 걸 어떻게 닫어?”
내 대답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정문 쪽을 돌아보고, 그을린 바닥타일 두 개를 번갈아 확인하고는 재차 물어왔다.
“정문이랑 바닥은 왜 이렇게 됐냐?”
“벼락 쏘는 다람쥐가 부쉈음.”
“그건 대체 무슨, 근데 너 지금 묘하게 침착한 것 같다?”
침착한 게 아니라 어이없어할 기운조차 없어서 그렇다. 내가 그래도 인생을 사악하게 산 건 아닌데, 도대체 왜 이런 시련이….
누나 말대로 정문 닫았다 한들 뭐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고. 이왕 침착해진 거, 나보다 더 흥분한 누나 정신이라도 차리게 해주는 게 낫겠다 싶었다.
“누나는 어쩌다 오게 된 거야. 저 비둘기 쫓고 있었어?”
“…아. 그래, 말 잘했다.”
자기도 정신 차렸다는 듯이 손을 깍지 껴 풀고는, 비둘기를 가리키는 누나.
“일단 저거부터 좀 잡자.”
“어떻게. 뭐 도와주면 되는데?”
“아직은 없고, 저 비둘기 한번 직접 봐봐.”
잘 보라길래 잘 봤다. 비둘기는 이제 막 유제품 코너에서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기어나오고 있었는데, 이 녀석도 오늘 봐온 것과 똑같이 상태가 괴상했다.
―구구구구―
―끼릭.
사실 제일 괴상했다. 저 비둘기의 몸통이 온통 금속이었기 때문이다. 재질이 뭔지는 몰라도 아주 맨들맨들하다.
“저놈은 날개가 왜 저래. 임플란트 같은 건가?”
“임플란트는 개뿔. 추측이지만, 게이트 안에서 뭐 잘못 건드렸다가 저렇게 된 것 같다. 저항을 덜 받아서인지 더럽게 빠르고.”
“저 비둘기가 게이트 들어갔다 나와서 저렇게 된 거라고?”
“추측이라니까. 여튼, 저 녀석을 좀 못 움직이게 해야 하는데… 어?”
뭔가 발견한 건지 살짝 눈을 크게 뜬다. 나도 따라서 바라봤다.
저놈이 유제품 코너를 들이받은 탓인지 온몸이 우유 범벅인 상태이긴 했지만, 날개가 털이 아닌 금속이 된 덕인지 날개가 젖거나 하지는 않은 상태다.
대신, 이유는 몰라도 날개 한쪽이 반쯤 뜯겨나가 있다. 전신이 금속인 비둘기가 날개는 왜 저렇게 된….
“괜찮으십니까, 사장님?”
뒤에서 어르신 목소리에 뒤이어 숟가락 십수 개가 바닥에 땡그랑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확인해 봤더니, 떨어진 게 숟가락이 아니라 강철 깃털 한 움큼이었다.
“어르신, 이건 왜 들고 계신 거에요?”
“저 비둘기에게서 뽑았습니다. 날아오는 걸 봤을 때는 아예 붙잡으려 했는데, 하필이면 라이터를 쥐고 있었던지라….”
붙잡지 못한 게 한이라도 됐다는 듯 입은 양복의 손목 부분을 매만지시는 어르신. 난 저 비둘기놈 날개에 손을 뻗을 수 있다는 것조차 신기한데 말이다.
그리고, 누나와 어르신이 서로 초면이다. 서로 어떻게 반응할지가 살짝 궁금했는데, 누나가 바닥의 강철 깃털을 내려다보고는 어르신께 물었다.
“어르신. 혹시 성함이?”
“울프입니다.”
“네. 울프 어르신. 혹시 방금 뽑으신 깃털 좀 써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프로페셔널하구만. 곧바로 떨어진 깃털을 한 움큼 집어 들어서는, 위아래로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이 정도 무게라 이거지.”
누나가 무게 다루는 마법을 쓴다. 자격증 따려고 강도질하는 ATM 잡는 걸 도와줄 때, 단검 한 자루의 무게를 무겁게 해서 ATM 부수는 데 써먹었던 게 기억난다.
그 마법을 이번에도 써먹으려는 심산인 듯한데, 이번엔 과정이 달라서인지 연상이 잘 안 된다. 조용히 바라보고 있자 누나가 깃털을 바닥에 후두둑 떨어트리더라고.
그러고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야, 이찬.”
“어.”
“비둘기 말야, 날개가 서로 대칭이겠지?”
“아마도? 사람 팔도 대칭이잖어.”
“그렇지. 그럼 무게도 서로 같을 거고.”
마지막 말은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듯하다. 비둘기 방향으로 손을 뻗은 누나가, 사과를 으깨 쥐듯이 서서히 주먹을 쥐었다.
동시에, 날개 두 쪽 중 멀쩡했던 쪽이 바닥에 쿵 처박혔다. 딱 날개 끄트머리 부근, 어르신께서 뽑은 반대쪽 날개와 같은 위치만.
―구구. 구구구구.
“좋아. 이제 네가 나설 차례다. 가라, 이찬몬.”
“지금 저거 만지고 오라고?”
“어. 할 수 있겠어?”
맨몸으로 아이언둘기에게 다가가야 하는 상황이 영 내키진 않지만, 까짓거 한번 해보지 뭐. 이마로 벼락도 받았는데 이 정도쯤이야.
비둘기가 놀라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가, 무거워진 쪽 날개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렀다.
누르자, 비둘기의 몸을 뒤덮고 있던 금속이 순식간에 평범한 털로 바뀌어 버렸다. 잠시 후에는 누나가 마법을 푼 건지 벌떡 일어나서는 푸드덕대더라.
―구구구구….
어지간히도 당황한 건지 제대로 지저귀지도 못하고 뒤뚱뒤뚱 걸어가 버렸는데, 퍽 불쌍하지는 않았다. 난 저 비둘기보다 매장 쇼윈도가 훨씬 더 불쌍하다.
“윤하 누나, 방금은 뭐 어떻게 한 거야?”
“나 무게 다루는 마법이 말야, 비슷한 무게의 물건이면 멀리서도 무겁게 할 수 있어. 이거 익히려고 몇 년 머리 싸매긴 했지만.”
손으로 깃털 들었다 내린 게 무게 재려고 그랬던 건가 보다. 반대쪽 날개가 끄트머리만 무거워진 것도, 딱 어르신께서 뽑은 날개만큼만 무게를 잴 수 있어서일 거고.
“외에도 이것저것 할 줄 알고. 지금은 상황 끝나서 마법 못 쓰니까, 나중에 보여줄게.”
“어… 그냥 안 보면 안 되나? 잠 못 잘 것 같은데.”
“시끄럽고, 너 오늘 진짜 왜 그렇게 침착하냐? 전문가 달고 이런 일 처음 해본 거일 텐데.”
“누나 오기 전에 멘탈 담금질 한 번 했어.”
람쥐썬더, 짱뚜라미, 6옥타브 고라니. 전부 설명하자, 누나가 잠깐 눈살을 찌푸렸다가 폈다.
“그 고라니는 뭐, 딴 녀석이 알아서 해주겠지….”
누나 말고도 이 근방에 헌터가 따로 있는 모양이다. 말을 늘이며, 몸 돌려서는 어르신을 바라보는 누나.
누나가 먼저 고개를 꾸벅 숙였고, 어르신께서도 꾸벅 모자를 벗어 고개를 숙이셨다. 이후엔 서로 대화를 몇 마디 나누더라.
“숙녀분께서는 헌터이신가 봅니다. 좋은 일 하시는군요.”
“좋은 일은 뭘요, 마법 쓰는 용역이지. 저 녀석 봐주셔서 고마워요, 어르신. 엄청 걱정했거든요.”
누나가 먼저 손을 건네고, 어르신께서 받으셨다. 서로 악수.
“서윤하예요, 울프 어르신. A급이고.”
“호오. 젊으신 분 같은데, 벌써 그렇게까지…?”
“어려서부터 해서 연차가 많이 쌓였거든요. 어르신께서는 어떤 일 하시나요? 범상치는 않은 분 같아서.”
“기사입니다. 대리기사.”
“아하. 기사면… 네? 대리기사요?”
“그렇습니다. 대리기사.”
옛날 나랑 반응이 똑같다. 둘이 마저 대화하게 놔두자는 생각으로 폰을 집어 들어, 매장에 박살 난 것들을 하나씩 고쳐보기로 했다.
우선은 정문. 이놈이 제일 많이 부서졌던 게 신경이 쓰이더라고. 그다음엔 벌레 또 못 들어오도록 쇼윈도 고치고, 진열대 고치고.
마지막으로 벼락 맞아 박살 났던 타일도 고쳤고, 여기서 막혔다. 떨어지기만 한 물건들은 다시 진열하면 그만이라지만, 아예 박살이 난 것들이 문제여서다.
예를 들면, 터진 우유팩이라든가. 이건 시간 되돌려 원래대로 돌린다 쳐도, 흘린 우유를 주워 담아 다시 판다는 게 맞는 짓 같지는 않은데….
“이찬. 이건 굳이 고치지 마라. 언니가 매장 보험 들어놨을 거야.”
서로 대화가 끝난 건지, 어느새 와서는 내 어깨에 손을 짚는 누나. 바로 물었다.
“비둘기가 우유팩 터트린 것도 보험처리를 해 줘?”
“해 주지. 게이트 엮인 건데.”
“게이트? 또 뭔 놈의 게이트야.”
“그것도 설명해 줄 건데, 일단 이거부터 좀 닦자. 우유 비린내 난다.”
하여 나는 대걸레로 우유 닦고, 누나는 우유팩 파편 쪼가리들 주워 담고. 어르신께서 도와준다 하신 건 사양했다. 10년 치 도움을 오늘 하루 만에 다 받았으니까.
우유 닦은 자리를 물걸레로 두어 번 더 닦은 뒤, 어르신과 누나와 같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았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손가락 두어 번 띡띡거린다고 박살 난 게 고쳐지는 게 참 신기하다.
“어르신. 저 이 녀석이랑 잠깐 얘기 좀 하려는데, 혹시 괜찮으세요?”
“저야 괜찮습니다만… 제가 들어도 되는 부류의 이야기입니까?”
“어디서 말씀만 안 하신다면요. 도와주시기도 했고, 들어두시면 좋을 내용이기도 하고.”
“그렇다면… 옆에서 듣고 있겠습니다.”
말씀하시고는 자세를 고쳐앉으셨고, 난 불안해졌다. 대체 뭔 일을 겪고 왔길래 이렇게 전문스럽게 얘기를 하냐….
“네가 오늘 봤다는 게 귀뚜라미, 다람쥐, 고라니잖냐. 방금 산비둘기 봤고.”
“그게 산비둘기였어?”
“그래. 이 넷에서 공통점 같은 거 안 느껴지냐?”
“느껴지지. 편의점에서 마주치면 기분 거지 같다는 점.”
“아니, 이놈은 진짜 맞고 싶나.”
누나가 등짝을 후리려고 하길래 얼른 떠오르는 답을 말했다. 귀뚜라미, 고라니, 산비둘기, 다람쥐. 전부 산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내가 어제 말했었잖아. 산림공원 쪽에 게이트가 열렸을 수도, 안 열렸을 수도 있다고.”
“어….”
“열렸어. 그것도 오늘 내내 여기저기.”
소주 한잔이 고파지는 한마디였다. 누나도 금연초가 마려워 죽겠다는 얼굴로 내뱉고는 마저 말을 잇는다.
“난 아침에 사무소 전화 받고 출동했고. 그 곰탱이는 참, 휴일을 준다 했으면 연락을 하질 말든가….”
곰탱이. 예전에 찾아와 명함 건네줬던 그 불곰 코볼트를 말하는 것 같다. 자격증 시험 따다가 누나 법인카드가 앵꼬난 일로 내게 직접 청구하러 온 그… 아니.
“쉬라고 한 거면 쉬게 해줘야지, 거기는 왜 5일 철야한 사람을 불러다 일을 시켜?”
“일손 모자라니까, 짜샤. 나도 이해하고. 아무튼, 거기서 하루 종일 게이트 찾아다니고 있었고….”
게이트를 어떻게 찾아다니는지를 말해줬는데, 이건 머릿속에 딱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됐다. 산에서 담배꽁초 찾는 과정과 비슷하다.
“대충 초소형 게이트 세 개 찾아서 보고하고, 진입 가능한 D급 하나는―”
“잠깐만. 초소형 게이트는 또 뭐야. 사이즈가 작아?”
“어. 야구공 크기. 작아서 들어가질 못하니까 위치 적어서 보고만 올려뒀고. 보고 다 올린 뒤엔 D급 하나 닫고 대기했고, 퇴근하래서 지금 막 퇴근하는 중이었는데 말야.”
퇴근하는 도중에 또 전화를 받았댄다. D급 게이트 하나 더 열렸다고. 이 D급이 얼마나 위험한 건지가 궁금했지만, 자꾸 말을 끊는 것 같아 당장은 잠자코 들었다.
‘네가 들어갈지 말진 나중에 결정할 건데 일단 와 봐라’라는 전화 받고 욕지거리 몇 번 내뱉은 뒤, 산림공원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여기서 2km 떨어진 곳에서 또 접수가 온 거야. 여기 게이트 열린 거 같다고.”
그 접수를 받고 바로 방향을 틀어 가봤더니, 웬걸. 안에서 아이언둘기 한 마리와 눈을 마주쳤단다. 눈 마주치자마자 날아올라서는 근처의 신호등 하나를 들이받아 부순 뒤 달아나버렸고.
“그 게이트가 산림공원에 있는 거랑 연결이 되어 있었던 거지. 산림공원 쪽 게이트로 그 비둘기나 다람쥐가 들어가서 이 근처 게이트로 나온 거고….”
“어디 몸 좀 담그고, 이뻐 보이는 마석도 주워나온 거다.”
“그래. 대충 그런 상황이었던 거야. 아까는.”
말하고는 목이 타는지 잠깐 침을 삼키는 누나. 지금껏 들었던 내용 중, 가장 알아야 될 것 같은 내용 하나를 골라 되물었다.
“2km 떨어진 곳에서 열렸다고. 게이트가.”
“…어. 사실 이 얘기 하려고 일부러 말 좀 길게 한 거야.”
말하며 재킷 앞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는 누나.
“산림공원 쪽 게이트는 학원지구랑 연결되어 있었고, 이번에 다람쥐나 비둘기는 아예 게이트를 연결통로로 써서 튀어나왔고. 여기까진 이해했어?”
“어.”
“보통 이런 식으로 게이트가 지나치게 동조하고 있을 때, 주로 의심하는 게 이거야. 이 게이트들 전부를 잇는 핵심 게이트가 어딘가에 있다.”
열리는 게이트들의 허브 역할을 하는 게이트가 따로 있다는 얘기 같다. 그게 어디 있는지는 보통, 게이트들의 발견 정보를 종합해 가장 중심지를 찾는다고.
“여기서 또 어제 했던 얘기를 해야 되는데, 그 애가 그랬잖아. 시민공원 쪽에서 이상한 일 일어났었다고.”
멍멍이 얘기다. 흑풍파 들개들이 대화가 안 통할 정도로 난폭해졌었다는 거.
이 시점에서부터 누나가 펜으로 테이블에 하나씩 점을 찍기 시작했다. 삼각형 모양으로 위, 왼쪽 아래, 오른쪽 아래.
이후엔 삼각형의 꼭짓점을 하나씩 짚으며 읊었다.
“이 테이블이 지도 대용이라 생각해. 위에 점이 학원지구, 왼쪽 밑이 산림공원, 오른쪽 밑이 시민공원.”
읊은 뒤에는 우수수 점들을 찍기 시작했는데, 점들 위치가 모두 삼각형 내부였다. 열다섯 개 즈음을 찍은 뒤, 방점을 찍듯 점 하나를 콕.
“여기가 2km 떨어져 있었다는 그 게이트고.”
마지막으로는 작은 원을 그린 뒤.
“추정해 보면, 이 원 안에 핵심 게이트가 곧 생기거나 할 것 같은데….”
“어.”
“이 원 안에 이 편의점이 포함되어 있다.”
들은 뒤, 수 초쯤 생각하다 다시 물었다.
“이 원. 그러니까, 근처에?”
“어. 여기 근처에 핵심 게이트 열릴 것 같다고.”
이렇게 말을 맺고는, 잠시 뒤에 막막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아니면 이미 열렸을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