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25)
이세계 편돌이-124화(125/331)
124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2)
* * *
이런 씨, 이 교수 양반은 왜 전화를 걸라는 거야. 그냥 폰 꺼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하다, 톡전화로 전화 걸었다. 이미 톡을 읽어버린 이상 전화를 걸지 않으면 읽씹이 되어버리고 만다. 전화를 걸자 발신음이 두 번 울리고 끊겼다.
받자마자 이 양반이 꺼낸 첫마디.
[ 근황 보고하십시오. ]왜 일반전화 안 쓰고 톡전화 했냐고는 안 물어보는구만. 적당히 대답했다.
“…별로 안 좋은데요. 잠을 못 자서.”
[ 당신 건강 상태 물어보려고 전화받은 게 아닙니다. 바쁜 상황이니 빨리 말하십시오. 요점만 간단히. ]지가 전화하래 놓고 나한테 요점만 말하라는 건 또 뭔데?
이 뱀파이어의 이런 부분이 거북하다. 농담이 안 통해. 평소 인간관계가 어떨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실리주의적인 동시에, 콧대가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다.
타고난 성질이 더러워서가 아니란 건 안다. 나를 신경 써 주고 있다는 게 나도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한테 교수직을 권유하기도 했었고, 반마법사 사수랍시고 일거리를 이것저것 챙겨주려 하기도 했으니까….
이전에 만났을 땐 미처 생각 못 했던 부분이지만, 이게 뱀파이어들 종족 특성이 아닐까 싶다. 실리적이고 자아가 센 거 말야. 요점만 말하라 하니 일단 말은 해봤다.
“이번 달 할당량 두 건 중 한 건은 이미 잡아서 진행 중입니다. 다른 하나는 좀 애매하고.”
내 주머니 속의 작은 반마법사 자격증. 이 자격증을 써먹으려면 ‘반마법사로서 잘 활동하고 있다’라는 걸 입증할 수 있는 수준의 일을 받아 진행해야 한다. 매달 두 건.
두 건 중 하나는 묘약 다루는 제약회사 쪽 일 돕고 있고, 다른 하나는 경찰 쪽 일을 돕는 걸로 채워볼 생각이다. 설명하자, 잠시 후에 교수가 대답해 왔다.
[ 당분간은 그 페이스를 유지하십시오. 욕심부리지 말고. ]“부리라고 해도 안 부려요. 능력이 안 돼갖고. 근데 이거 물어보려고 지금 전화하라 하신 거예요? 바쁘시다며.”
[ 바쁜 게 맞고, 지금은 일이 있어 이동 중입니다. ]“어떤 일 보시길래.”
[ 말할 수 없습니다. 엠바고가 걸린 사안이기 때문에. ]듣자마자 흠칫했다. 엠바고. 설마?
[ 사수로서 조언하자면, 당신도 입 밖에 내선 안 될 말을 듣게 될 일이 머지않아 생길 겁니다. 그때는― ]“잠깐만요. 지금 일 보시려는 게 혹시 핵심 게이트 그거 때문이에요?”
바로 묻자, 이 양반이 우뚝 말을 멈춰버렸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아주 작게 숨 삼키는 소리 같은 것도 들려왔고. 이후에 말을 받는 게 꽤나 놀랐다는 눈치다.
[ 당신은 그걸 어떻게 안 겁니까? ]“저도 엠바고 걸린 사안이라 말 못 하는데요.”
[ …지금 어디 있습니까. ]“뭔 농담을 못 하겠네. 저도 이거 전해 들을 때 말하지 말라고 들었었는데, 이 게이트 일 맡고 계신 게 맞죠?”
[ 게이트 발생 임시대책위원회, 피해 예방과 대처의 자문역. 제가 맡은 직책입니다. 됐습니까. ]된 것 같아서 마저 말했다. 아는 헌터한테 들었고, 듣게 된 이유는 내가 근무하는 매장에 게이트를 통과해 온 유해조수들이 쳐들어와 개판을 쳤었기 때문이다.
그 유해조수들의 범행 경위와 과정을 마저 설명하자, 폰 너머에서 종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같은 게 들려왔다. 수 초가량 뒤에 교수가 내게 물었다.
[ 지금 졸립니까. ]“이 얘기 듣다 보니까 좀 깼습니다. 말해 주십쇼.”
[ 현재 위원회에서 차출한 국가자격증 보유 반마법사의 수가 60명입니다. 이 60명이 지도상으로는 대략… 30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을 담당하고 있고. ]여의도 면적이 4~5㎢쯤 된다. 그 면적의 6배에서 7배 사이.
“그 넓이가 60명으로 커버가 돼요?”
[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인원을 계속 차출하는 중이고. 차출 기준은 최소 경력 3년 이상, 그 기간 동안 일체의 결격사유 없이 자격을 유지해 왔는가. ]‘불가능하다’라고 딱 잘라 말하는 게 묘하게 이 교수답다. 실리주의적인 동시에, 안 되는 일을 붙잡고 있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없다는 게 모토인 양반이었으니까.
그나저나 이 얘기를 내게 해오는 이유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려 했는데, 교수가 생각할 틈도 없이 말을 이어왔다.
[ 본론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생각 있습니까? ]“아니….”
[ 의견을 묻는 겁니다. 하라는 게 아니라.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뭔지는 안다.
이 양반은 내가 외딴 산속에서 틀어박혀 인생 절반 정도 반마법만 깎다 온 은둔고수쯤 되는 줄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딴 세상 출신 고졸 편돌이가 아니라.
그러니까 교수직 제의도 했을 거고. 날 과대평가하는 거야 본인 자유고, 정정할 방법도 없으니 그러려니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경우가 다르다. 최소 경력 3년에 유지 기간 동안 결격사유 없음. 이거 베테랑만 뽑는다는 얘기잖은가.
그리고, 회사에서나 어디에서나 베테랑을 필요로 하는 이유는 대개 하나뿐이다. 어떤 상황이 터지든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난 그런 거 없다. 머리에 든 것도 없고, 뻣뻣하기 짝이 없는 놈이니까. 그래서 생각 없다, 다른 반마법사 마저 차출하는 게 좋겠다,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
[ 말하십시오. ]“생각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물리려고 했는데, 그 전에 뱀파이어가 말을 받았다.
[ 차출할 겁니다. 당신의 경력과 능력을 고려해 담당 구역이 배정될 거고, 그 구역 내에서는 일정 이상의 권한이 주어질 겁니다. 긴급상황 시 상부 동의 없이 대처가 가능하도록. ]“…없으면요.”
[ 아무 일도 안 일어나겠죠. 당신이 살았을 일상을 계속해서 살면 됩니다. 평범하게. ]들은 뒤, 잠깐 귀에서 폰을 뗐다. 폰을 고쳐 잡은 뒤 모서리에 이마를 대어 톡톡 두드려봤다.
관자놀이가 지끈거려서였다. 내가 이 얘기를 들으려 한 게 아니었다. 이건 내가 못 하는 일이 맞다. 분명 맞아.
이 판단이 틀렸다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자격증을 딴 것조차 내 능력 밖의 일이었고, 점장이나 누나가 도와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분명 합리적인 판단이 맞다. 못 한다 말하는 게 맞아. 맞는데. 분명 맞는데….
“…구역은 어디로 배정되는 겁니까.”
아가리가 이번에도 말을 안 듣는다.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끝까지 들어나 보자.
[ 당신의 경우, 그 매장을 기준으로 반경 1km의 원형 구역을 배정할 생각입니다. 아무래도 익숙한 곳이 감시하기도, 활동하기도 편할 테니까. ]“제 매장 주변에서 핵심 게이트가 튀어나올 경우엔요. 전 이 가능성이 있다고 분명 얘기를 들었단 말이죠?”
[ 그걸 감안해서 묻고 있는 겁니다. 생각 있느냐고.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걸 제가 할 수 있느냐가―”
[ 그것도 감안해서 묻고 있는 겁니다. 생각 있느냐고.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구만. 잠깐 뜸을 들인 뒤, 뱀파이어가 마저 말을 이었다.
[ 전 안 될 일을 붙잡고 있는 것만큼 미련한 일이 없다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보다 더 미련한 일은, 안 될 일임을 알면서도 남에게 붙잡고 있으라며 지시하는 일이고. ]“…….”
[ 긴말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44번. 생각 있습니까? ]능력은 된다. 이 얘기렷다.
의견을 묻는 건, 일을 맡을 때에 능력만이 필요한 게 아니어서일 터다. 의지도 중요하다. 이런 일 한번 해본 적 없는 놈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
마저 생각한 뒤, 하나씩 물어봤다. 내 방식대로.
“언제까지 정하면 됩니까.”
[ 이틀 뒤 밤 12시까지. 그 이상부터는 복잡해지는 게 좀 있습니다. ]“페이는요.”
[ 많지는 않습니다. 얻는 게 무엇이냐를 묻는 거라면, 경력으로 인정받겠죠. ]“그럼 교수님은 이 일 왜 하시는 겁니까?”
세상에 반마법학 교수가 이 뱀파이어 하나는 아닐 거잖은가. 뱀파이어가 돈이 궁한 것도 아닐 테고, 경력이야 당연히 차고 넘쳐날 테고.
난 ‘나라에서 까라는데 뭘 어쩌라고?’ 따위의 대답을 들을 줄 알았다. 딱 이 정도 기대하고 물어봤던 거였고. 허나, 교수가 예상 밖의 대답을 해왔다.
[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예? 왜요?”
[ 그게 지금 중요합니까? ]묘하게 날 선 대답이다.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을 때 튀어나오는 특유의 그거.
머쓱해져서 입을 다물고 있었더니, 교수가 작게 한숨 한 번 쉬고는 마저 말을 잇더라고.
[ 말한 기간까지 결정해서 연락 주십시오. 당신도 잠은 자야 할 테니. ]“어… 잠깐만요. 그러고 보니 말인데.”
[ 또 뭡니까. ]“제 집 가는 길이 게이트 때문에 터져버렸거든요. 이럴 때 나라에서 뭐 안 해줍니까?”
실기 시험 끝나고 이 뱀파이어와 대화 나눌 때, 국가자격증을 따면 여러 가지 혜택이 있다고 했던 게 떠올라서였다.
교통비야 매장에서 돈 가져나온 게 있으니 괜찮고, 숙박비 정도는 아낄 수 있지 않을까. 게이트가 내 집 가는 길 터트려버린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고.
4, 5만 원이라도 아낄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물은 건데, 내 말에 뱀파이어가 아예 들으라고 한숨을 쉬더라. 그 뒤, 톡 소리 한 번.
[ 사진 확인하십시오. ]화면을 돌려서 확인해 봤더니, 모텔도 여인숙도 아닌 5성급 호텔 사진이 떡하니 올라와 있었다. 사진 밑에 적힌 숙박비가 28만 원.
“아니, 여긴 뭔 잠 한 번 자는데 28만 원이나 내래?”
[ 국가자격증 보유 반마법사가 누릴 수 있는 혜택 중 하나입니다. 지배인에게는 따로 연락해 둘 테니, 거기서 묵든 하십시오. ]“허어….”
[ 오늘 대화한 사항은 이틀 뒤 자정까지 결정해서 보내고. 이만 끊겠습니다. ]이러고는 뚝. 폰을 내려 사진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호텔 외관이 어딜 봐도 외교관이나 묵을 법한 곳이다. 여기 이불 달라고 하면 주나? 난 푹신한 침대에선 오히려 잠 못 자는데….
“…에이 씨, 모르겠다.”
설마 5성급 호텔에 바닥 이불 하나 없겠어. 호텔까지 가는 경로를 확인한 뒤, 버스 배차 전광판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노선 상관없이 가장 빠른 버스가 40분.
이것도 그 망할 게이트 때문이겠지. 바로 콜택시 어플을 깐 뒤, 버스정류장 명칭을 적어 문의 톡을 보내봤다. 잠시 후에 온 답장.
[ 저희는 게이트 상관없이 연중무휴예요. 혹시 종족이 어떻게 되세요? ]이 콜택시 회사는 사장이 레이시스트인가? 생각하며 인간이라 적어 답장했더니, 잠시 후에는 대답이 이렇게 왔다.
[ 소형택시로 보내드릴게요. 3분 정도 걸려요 ]바로 수긍했다. 오크나 곰 코볼트 같은 종족들은 소형차 못 탈 거 아냐. 알았다고 톡 보낸 뒤, 버스정류장에 등을 기대어 마저 폰을 확인했다.
아까 못 봤던 톡을 하나 더. 이번 건… 엘레나 양이다. 시간은 10시 10분이 찍혀있고, 내용은….
[ 주변에서 게이트 막 열렸다 닫히고 있대요! ] [ 찬이 씨는 별일 없으세요? ] [ 찬이 씨? ] [ 찬이 씨 ] [ ㅠㅠ ] [ ㅠㅠㅠㅠㅠㅠㅠㅠ ]이거 답장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다. 오늘 회사 쉬냐고 톡을 보내자, 3초도 안 되어 답장이 왔다.
[ 별일 없으셨구나 ] [ 다행이에요 ] [ 아 ] [ 네 오늘 쉬어요 게이트 때문에 ] [ 찬이 씨는 안 졸리세요? ]이건 내가 밤샘근무 하는 걸 아니까 물어본 것일 테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 지금은 멀쩡하네요. 신기하게 ]머릿속에 말 한마디가 맴돌며 잠기운을 죄다 쫓아내고 있다. 할 이유가 없는 일을 왜 하냐 물었을 때 뱀파이어가 했던 답변. 하고 싶어서 했습니다.
이게 유독 기억에 남더란다. 죽어라고 실리 따지는 양반이 돈도 경력도 인정 안 되는 일을 왜 하고 싶어 하는 걸까. 교수로서의 일탈, 뭐 그런 건가….
[ 음…. ] [ 저기, 찬이 씨 ]와중에 톡 한 줄. 잠깐 후의 톡 내용은 이러했다.
[ 혹시 아침에 잠깐, 시간 내어주실 수 있나요? ] [ 아주 잠깐이면 돼요 ] [ 묘약 건으로 짧게 얘기 나누고 싶은 게 있어서 ] [ 제가 찬이 씨 계신 곳으로 찾아갈게요 ]손이 제법 빠르다. 잠깐 고민하다 답장했다.
[ 그러죠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