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26)
이세계 편돌이-125화(126/331)
125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3)
* * *
이후로 택시 오기까지 3분 동안은 톡만 했다.
[ 정말 안 피곤하시겠어요? ] [ 괜찮으니까 그만 좀 물어보십쇼, 벌써 네 번째야 ] [ 그래도 ] [ 또 그런다 ]어차피 지금은 잠 못 잔다. 바로 호텔에 도착하더라도, 머릿속 복잡해진 거 정리한답시고 이불에서 몇 시간 뒹굴거리기나 하겠지.
그렇게 시간 낭비할 바엔 차라리 나 필요하다는 사람이랑 잠깐 만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내가 밤새운 걸 알고도 만나자 하는 걸 보면,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 이러는 거일 테고….
[ 굳이 저 찾아오지도 마시고요. 어차피 택시 타고 어디 갈 생각이었어서 ]난민 신세가 된 걸 굳이 말하기도 그래서 적당히 둘러댔는데, 엘레나 양이 바로 질문톡을 보내왔다.
[ 어디루요? ]호텔 사진에서 주소지만 따로 잘라 보냈고, 잠시 후에 희소식이 왔다.
[ 와, 저 걸어서 6분 거리예요 ] [ 허어 ] [ 근처에서 살거든요 ]학원지구 쪽과 호텔 사이에 오피스텔 단지가 하나 있고, 그 오피스텔에서 출퇴근하고 있다나 뭐라나.
답장하려는 찰나, 멀리서 자동차 배기음이 들려왔다. 확인해보니 택시 표시등이 붙어있다.
[ 근처에 자주 가는 카페 한 곳 있는데 ] [ 커피 맛있어요 ] [ 그럼 그쪽에서 뵙는 걸로 하고, 주소 찍어주세요 ] [ 지금 택시 타야 돼갖고. 40분쯤 걸릴 것 같습니다 ] [ 네, 저 바로 준비하고 있을게요 ] [ 이따 봬요 ] [ 옙 ]이걸로 대화는 끝. 버스정류장 앞에 멈춘 택시 뒷좌석을 열고 돈을 꺼내다, 택시 기사와 눈을 마주쳤다. 중년 엘프였다. 아니, 왜 하필이면….
“어디 가쇼.”
뭐야. 왜 나한테 진상을 안 부리지?
생각하다 깨달았다. 나 지금 유니폼 안 입고 있잖아. 바로 폰 꺼내서 주소지를 보여주자,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내비게이션을 꾹꾹 눌러대며 말했다.
“만 이천 원쯤 나와요. 현금?”
“예. 현금.”
“벨트 매쇼. 출발하게.”
* * *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창밖만 바라봤다. 중간중간에 택시 기사가 말 한두 마디를 걸어오긴 했지만….
“뭐 바깥에 그리 신기한 게 있다고 뚫어져라 쳐다보쇼?”
“아뇨. 멀미 나갖고.”
적당히 둘러댔다. 진짜로 멀미가 나서는 아니었다. 정말로 신기한 게 몇 가지 있긴 해서였다. 예를 들면, 시가지를 막 빠져나와 대교를 건널 즈음.
동양풍의 용처럼 생긴 무지개가 강 위를 부유하고 있었다. 무지갯빛 용이 아닌, 무지개로 된 용 말이다. 그 밑으로는 대형 수중 분수대.
처음엔 내가 졸려서 헛것을 보는 건가 싶었는데, 분수대가 뿜어내는 물의 세기가 달라질 때마다 입을 벌려 포효하기도 했고, 분수대 주변에 또아리를 틀기도 했고….
그러다가 물이 뚝 끊김과 동시에 사라졌는데, 분수대가 다시 물을 뿜어내는 것에 맞춰 강 밑에서 승천하듯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 시점에서 택시 기사가 또다시 말을 걸어왔다.
“이 도시 오늘 처음 와본 거요?”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예. 처음입니다.”
한 달 됐다. 여기까지 나와본 게 처음이었을 뿐이지.
“아. 촌구석 살다 온 양반이었구만.”
이 귀쟁이 아재 말 참 곱게도 한다. 그래도 이왕 대화 물꼬가 트인 거, 궁금한 거라도 한두 개 물어보자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저 밖의 용은 왜 저러고 있는 겁니까.”
“왜 저러긴? 이제 6월 다 됐는데.”
“6월이 돼서 저런다고요?”
“6월 되고 더우니까 분수대 트는 거지, 뭔 이유가 더 있어?”
더 물어보려다 말았다. 아무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서였다.
대신 먼 곳의 공원 쪽을 살펴보니, 택시 기사 말대로 여름이나 되어야 볼 수 있을 법한 것들이 몇 개 더 있긴 했다. 오리 보트, 바나나 보트 같은 것들.
저건 좀 정상적이다 싶어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오리 보트가 느닷없이 하늘에 부리를 치켜올리고는 꽥꽥대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뭔?
2인승 바나나보트는 스스로 지 껍질을 까며 탑승 가능 인원을 늘려가기 시작했고. 주변을 마저 바라보다 물었다.
“손님은 거의 없는 것 같네요.”
“이 시국에 보트 타는 미친놈이 어딨어? 다 일하고 집에 처박히기 바쁘지.”
“게이트 때문인 거죠?”
“뭐, 그렇지. 손님은 여기 그, 호텔에는 왜 묵으러 가는 거요. 관광?”
“그건 아니고, 사정이 있어서 잠깐 왔는데.”
“참 재수도 없네. 하필이면 이때 사정이 생겨?”
그랬을 것 같다. 이 위치가 내 세상으로 따지면 서울의 어느 대교쯤 될 거다. 대교 앞뒤 강변도로로 늘 차가 빽빽하고, 공원에는 늘 사람들 뛰거나 산책하고 있는 그곳.
허나 여기는 대교 위에도, 강변도로에도 차가 거의 없다. 공원에는 아예 이종족 하나 없고. 한편에 주룩 늘어선 전동킥보드 개수도 수십 대가 넘어간다.
이것도 내가 상상했던 광경은 아니었다. 대교 마지막 지점에서 신호등에 걸려버렸고, 신호를 기다리던 택시 기사가 툭 내뱉었다.
“게이트만 아니었어도 볼거리 많았을 텐데 말이요.”
“…그러게 말입니다.”
“심심하더라도 좀 참으쇼. 목적지 다 왔응게.”
* * *
15분이 더 지나서야 미터기의 말이 다리를 멈췄다. 이것도 지금 확인하고 안 건데, 말 머리에 뿔이 하나 달려 있더라. 유니콘이었나보다.
“여기서 길 건너면 딱 목적진데. 더 가줘?”
“아뇨, 직접 갈게요.”
“14,000원이요.”
백 원 자릿수가 딱 맞아 떨어져서였다. 2만 원 내고 6천 원 거슬러 받은 뒤, 폰에 적힌 주소지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목적지로 향했다.
행인이 뜨문뜨문한 거리를 5분쯤 걸어 도착을 하긴 했는데, 건물이 글쎄.
“허.”
헛웃음이 튀어나올 정도로 이상하게 생겼다. 그러니까, 주전자?
역사가 한 600년쯤 되어 보이는 주전자를 크기만 키워 세워놓은 듯한 기이한 형태의 건물이었다. 외벽 색을 보면 벽돌이 아니라 도자기 같다.
혹시나 싶어 외벽을 직접 만져봤는데, 진짜 도자기였다. 건물 용도가 카페여서 외형을 도자기 주전자로 만든 거면, 국밥집은 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
근처의 야외 테이블 의자에 앉아 이 문제를 5분가량 고민하는 사이,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찬이 씨!”
고개 들어 바라보니, 도보 쪽에서 엘레나 양이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살짝 고개 꾸벅이자, 잰걸음으로 달려와서는 얕게 숨을 몰아쉰다.
평소처럼 출퇴근 길에 들른 게 아니어서 그런가, 정장 차림이 아니라 가슴팍에 리본 달린 블라우스를 입고 있다. 어제 청바지에 남방이라도 입고 출근한 게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죄송해요, 오래 기다리셨죠!”
“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 그나저나….”
“네?”
“옷 잘 어울리시네요. 구두도 그렇고.”
말해야 될 것 같아서 해봤다.
내가 모쏠이고 밖에서 여자를 만나본 적은 없지만, 왠지 이 상황에서는 복장 얘기를 먼저 꺼내야 될 것 같더라.
근데 지금 말하는 게 맞나? 드라마나 영화에선 이러던데. 엘레나 양도 당황했는지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엇. 그, 그래요? 그냥 아무거나 입고 나온 건데!”
“그런 거면 저만 하겠습니까, 달랑 남방에 청바지 입고 나온 건데….”
“아뇨! 전혀요. 찬이 씨 유니폼 안 입고 계시는 거 처음 본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그렇긴 하네요. 상황 참 신기하네.”
“그러게요. 신기하네….”
여러 가지 의미로 신기한 상황이다. 내 세상서 알바 구하러 왔을 때만 해도 이렇게 밖을 거닐고, 이 서큐버스랑 밖에서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는데….
“…….”
“…아, 음.”
잠깐 서로 말이 없었다. 이왕 만나게 된 거, 분위기라도 편의점에서처럼 좀 풀어보자 싶어 물었다.
“이곳 말인데, 이 주변 카페들도 다 비슷하게 생긴 거예요? 전 처음 봐갖고.”
이 질문에 엘레나 양이 잠깐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짓다가, ‘아.’ 하고는 답해줬다.
“여기 컨셉 카페예요, 찬이 씨. 엄청 신기하게 생겼죠.”
“컨셉 카페면, 내부가 창고나 은행처럼 생긴 그런 거 얘긴가 보네.”
“네. 여기는 옛날 마법약 공방 컨셉이라, 신기해서 한번 와봤거든요.”
안 그래도 신기한 곳이 더 신기해지고 있다. 마법약 공방 컨셉은 또 뭔데….
“와서 아메리카노 먹어봤는데, 커피 맛이 엄청 좋았어요.”
“그럼 됐지, 뭐. 들어가… 아니, 문손잡이는 또 왜 이렇게 생겼대.”
중세풍 나무 문에, 고목나무로 된 손잡이가 구부러지듯 달려있다. 끼익 열고 들어가자, 내부 구조는 외관에 비해 훨씬 더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우선, 카운터 쪽에 보이는 잔들이 커피잔이 아니었다. 죄다 포션병이야. 천장에는 샹들리에,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회전계단.
외에도 바닥타일을 뚫고 자라난 나무 몇 그루의 줄기가 천장을 뒤덮고 있는데, 바리스타가 당장 도망가지 않고 무덤덤한 표정인 걸 보면 의도한 인테리어인 듯 보였다.
그나저나 저 바리스타는 종족이 또 뭔지 모르겠다. 나무? 살아있는 나무 아니야 저거?
마지막으로, 커피 우리는 기계를 웬 이상한 것들이 차지하고 있다. 플라스크에 삼발이 양초 등등, 당장 포션이라도 만들 수 있을 듯한 그것들.
“이 정도면….”
거의 컨셉에 잡아먹혔다 봐도 되지 않나. 이 흐름이면 아메리카노도 포션 병에 담아서 건네줄 것 같은데?
“진짜 마법약 공방 같죠. 아, 찬이 씨 뭐 드실래요?”
“그냥 사양하면 안 될까요?”
“아녜요, 매번 찬이 씨한테 받기만 했는데!”
“그건 뭐….”
“그러지 마시구, 저도 한 번 사게 해주세요. 네?”
“…그럼 아메리카노, 라지 사이즈 부탁드리겠습니다.”
솔직히 목이 좀 타긴 했다. 내 말에 엘레나 양이 고개 끄덕이고는, 쪼르르 달려가서 커피 두 잔을 주문하고 돌아왔다.
이후엔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자리를 잡자마자 핸드백에서 태블릿PC를 꺼내는 엘레나 양.
“아침에 일 때문에 뵙자고 말씀드렸었잖아요, 찬이 씨.”
“예.”
“그게, 사실 윗분들이 엄청 만족스러워하셨거든요. 다른 반마법사분들이랑은 2주 정도 걸릴 작업인데, 찬이 씨가 해주셔서 엄청 빨리 끝났다면서 막.”
요 며칠 겪고 들은 일 중 그나마 반가운 소식 같다. 여튼 엘레나 양 회사의 윗사람들이 나와 작업한 결과물을 좋게 봐줬는데, 이럴 때면 뭐다?
“그게, 그래갖구….”
“네.”
“…찬이 씨께 혹시… 나중에 다른 일도 같이 할 수는 없겠냐구….”
윗선에서 ‘그 양반 붙잡아라~’라고 권유하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 같다. 첫마디에서는 왜 말을 늘이는가 했는데, 이 이유에서였나보다.
“여쭤보라고… 그래서요….”
“전화로는 좀 그래서, 아예 만나서 얘기하려 하신 거다?”
“네….”
바로 대답했다.
“상관없어요, 저는.”
이 묘약 일이라면 내가 그럭저럭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생각이다. 내 결과물이 괜찮다고 해줬잖은가. 나야 잘 모르지만, 전문가인 그쪽 판단이 그렇다 하니 맞는 거겠지.
어차피 이번 달 할당량 두 건을 채운 뒤에도 일은 계속해야 하고, 이왕 할 거면 잘할 수 있는 일을 대화 잘 통하는 이종족과 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지금 경우에는, 엘레나 양과. 바로 대답할 줄은 몰랐는지 눈을 살짝 크게 떠온다. 말 뒤에 덧붙였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이번 일 제가 끝까지 잘 마무리하면, 그때 다시 물어봐 달라는 거.”
“네?”
“그야, 앞날 모르는 거잖습니까?”
묘약 갖고 했던 첫 미팅은 어떻게 잘 넘겼지만, 다음 일도 똑같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한 건 더 잡아서 진행을 했는데, 만약에 그 일을 내가 조졌다고 쳐봐. 그랬다간 엘레나 양 입장이 난처해질 게 뻔하다.
윗선이 시킨 대로 반마법사 붙잡아온 거니 직접적으로 책임은 안 묻겠지만… 당분간은 회사에서 움츠린 채로 지내게 되지 않을까.
그건 내가 싫다. 생각은 이렇지만, 괜히 생색내는 것 같아 말은 못 하겠고. 적당히 얼버무렸다.
“아직 이번 일 덜 끝났으니까, 다 끝내고 생각해 보는 걸로. 그때까진 일정 항상 비워둘 거고, 의향도 있고 긍정적으로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해주십쇼.”
“…네. 죄송해요, 찬이 씨.”
“진짜 툭하면 죄송하대. 신경 안 써요, 일이잖어. 그런데 전에 했던 일이 정확히 어떻게 잘됐다는 거예요?”
주제를 바꿀 겸 물었다. 내 물음에 엘레나 양이 가방에서 태블릿PC를 꺼낸 데에 이어, 전에 봤던 묘약병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이거 가지고 나오신 거예요? 랩실에서?”
“네. 제가 아예 전담하게 돼서, 실장님께 따로 부탁드렸어요. 찬이 씨 일정이 늘 비어있는 건 아니니까 일정을 좀 유연하게 잡고 싶다고.”
하여 보존마법도 한 달 단위로 빵빵하게 걸어서 줬고, 그 탓에 예산도 좀 더 들어갔다고. 이번엔 내가 미안해할 차례 같다.
“전에 봐주셨던 것 토대로 안정성을 좀 높였고, 회의하면서는 다른 효능도 추가해 볼까― 하는 의견이 나왔었거든요. 이건 그 효능이 추가된 거.”
“아, 그래요? 어떤 효능?”
묻자, 엘레나 양이 약병을 내려놓고는 답했다.
“스스로한테 솔직해지는 효능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