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29)
이세계 편돌이-128화(129/331)
128화.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였겠지만 나갈 때는 (6)
* * *
아니, 진짜 이건 또 뭐냐?
솔직해지는 묘약이랍시고 먹은 건데, 왜 잠자리 잡던 꼬꼬마 시절의 내가 튀어나와. 묘약병 헷갈려서 잘못 들고 온 거 아니야?
“그런데 여긴 왜 있어요, 아저씨?”
“아니. 야, 꼬마야. 너 이름이 이찬이라 그랬지. 혹시 무슨 찬 자 쓰냐?”
“밝을 찬 자요.”
“어떻게 쓰는데. 펜 갖고 오면 적을 수 있어?”
“저 한자 모르는데요?”
“이런 젠장할.”
이놈 나 맞는 것 같다. 나도 이 나이대에 내 이름을 한자로 쓸 줄 몰랐었기 때문이다. 더해서 검은 더벅머리에 인생 다 산 듯한 뚱한 표정도 그렇고.
어깨에 짊어진 잠자리채는 나무막대가 덧대어져 박스테이프로 감겨 있었는데, 저게 왜 저렇게 됐는지도 기억하고 있다. 매미 잡겠다고 설치다 부러트려 먹은 게 한두 번이었어야지.
“…….”
“아저씨?”
…처음.
두 쪽이 난 잠자리채를 양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어머니께서 박스테이프와 나무막대를 꺼내오셨었고, 그걸 보며 말했었다. 나무막대는 어디서 주워온 거냐, 그냥 새 잠자리채 사 달라고, 5천 원밖에 안 한다고.
떼를 쓰고 발버둥을 쳐도 요지부동이셨다. 내가 중간에 지쳐 나동그라질 즈음 잠자리채를 전부 고쳐서는 말없이 내밀어 주셨다. 한번 휘둘러 보라면서.
받아서는 일부러 세게 휘둘렀다. 그러다 잠자리채가 부러져 주면 그때는 새 걸 사주실 줄 알았거든.
하지만 아무리, 온 힘을 다해 휘둘러대도 고쳐진 잠자리채가 다시 망가지는 일은 없었고, 결국 시무룩한 기분으로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나중에는 내가 직접 고쳐 쓰게 됐고.
“야, 꼬맹….”
“?”
“…찬아.”
“왜요.”
“그 잠자리채는 몇 번째 고쳐 쓰고 있는 거냐.”
“여섯 번이요. 왜요, 아저씨도 딴 애들처럼 망가진 잠자리채 갖고 논다고 놀리게요?”
“그런 거 아냐. 그냥….”
옛날 추억이 떠올라서 그래. 좋은 추억.
말하려다 삼킨 뒤, 슬쩍 폰을 꺼내 카메라로 화면을 전환했다. 사진을 한 장 찍어두고 싶어서였다. 이 녀석 사진은 이제 더 가진 게 없으니까.
하지만 의미 없는 짓이었다. 옛날의 나를 똑바로 겨눴음에도, 화면 안에 모습이 전혀 비치질 않았기 때문이다. 밤하늘 야경 약간에 호텔 테이블, 침대가 전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건 마법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는 묘약. 마음속에 또 하나의 내가 잠깐 생겼다 사라진다 했었고, 생겨날 내가 어떤 식으로 굴지는 엘레나 양도 알 수 없다고 했었다.
그게 이 형태로 나타난 듯하다. 또 하나의 내가 몇 살의 모습으로 나타날지도 마땅히 정해진 게 없었던 거지. 이제 막 효능이 추가된 묘약이라 했으니까….
지금 눈앞의 이 녀석이 실체가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약효가 떨어지면 이 녀석도 사라지겠지.
자신이 사라질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홉 살의 이찬은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마법요?”
“그래. 마법.”
“에이, 세상에 마법이 어디 있어.”
전혀 안 믿는 눈치다. 하긴, 세상에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게 여덟 살 때였으니.
“야, 찬아.”
“아저씨. 죄송하지만, 저 바빠요. 매미 잡으러 가야 된단 말이에요.”
“매미 잡는 거 여름방학 숙제지? 곤충 관찰일기 써 오라는 거.”
“응? 어떻게 아셨어요? 아저씨면서.”
“다 방법이 있다, 짜샤. 야, 우리 거래 하나만 하자.”
“거래요? 우리 엄마가, 잘 모르는 어른이랑은 그런 거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냥 얘기만 잠깐 해주면 돼. 대신 매미 잘 잡는 법 알려줄게.”
이때의 나는 매미만 보면 냅다 잠자리채로 덮기만 할 뿐, 결과가 신통치 않았던 놈이었다. 잠깐 고민하던 녀석이 잠자리채 끝을 밑으로 쿡 찍고는 대답해 왔다.
“선제시요.”
“아니,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대신 받은 만큼 돌려줄게요.”
“매미 보여도 바로 가까이 다가가지 말고, 입가 쪽 잠깐 확인해 봐. 우물거리고 있으면 수액 먹고 있는 거니까 그때 덮으면 돼. 됐냐.”
난 이걸 여름방학 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됐었다. 내 조언을 곱씹던 녀석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침대에 툭 걸터앉았다.
“어떤 얘기 하시려고.”
“다른 세상 얘기.”
한다고 달라질 게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봤다.
처음 편의점에 들어가게 된 일, 점장을 만나고, 진상들 받아서 개처럼 고통받았던 일들, 그러다가도 이런저런 손님들 만나서 여러 얘기 나누고, 친해지게 된 일.
그간 평화로웠는데, 지금은 웬 게이트인지 뭔지가 나와서 개판이 나기 직전이다. 난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상황이고.
이야기를 맺은 뒤 내려다봤는데,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날 마주 보고 있었다.
“진짜요?”
“그럼 내가 미쳤다고… 아니. 너 이걸 진짜 믿냐?”
“솔직히 전혀 안 믿기긴 한데요. 그렇다고 아저씨가 미친 건 아닐 거잖아요?”
이해가 안 된다. 분명 똑같은 가정교육을 받았을 터인데, 이놈은 도대체 왜 이렇게 싹수가 노란 건지….
“진짜니까 하는 말이겠지, 뭐. 저도 거기 갈 수 있어요?”
“나중에 운 좋으면. 아무튼 진짜라 치고. 소감은 어떠냐.”
“부러워요.”
뚝 잘라 말하고는, 자기 잠자리채를 보며 중얼거린다.
“내 세상에도 마법 같은 거 있으면, 잠자리채 이렇게 고쳐 쓰지도 않았을 텐데.”
잠자리채 살 5천 원이 없어서 고쳐 쓰는 녀석이었으니, 이런 생각을 할 법도 하다. 했던 말들 중 하나를 다시 언급해 줬다.
“마냥 부러워할 곳이 아니라니까. 무서운 일 일어나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치고는 아저씨가 별로 무서워하는 표정이 아니라서 그렇죠.”
“내가?”
“아님 말고요.”
중간에 말 돌리는 것치고는 시선이 정직하다. 이 나이 때의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부분에서만큼은 절대로 시선을 피하지 않는 놈이었다.
지금은 그렇게 못 살고 있지만 말이다. 일단은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게이트를 무서워하는 게 아니면….
“지금 내가 뭘 무서워하고 있는 거냐?”
내뱉고는 스스로도 엉뚱한 말이라 느꼈다. 애초에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나 대답이 돌아왔다.
“그 세상에서 아저씨가 어떤 사람인지를 들키는 거요.”
“…뭐?”
“사회에 처음 나간 20살 때부터 지금까지 늘 쫓겨나기만 했던, 손가락질받는 게 일상이었던, 결국엔 뭐 하나 제대로 해낸 게 없었던 사람이라는 걸 들키는 거.”
……잠시.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너도 결국 마법이구나.”
평온한 표정이다. 내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 녀석도 결국엔 마법인 것이다. 진짜로 9살 코흘리개 시절의 내가 아닌, 내 마음속 무언가가 형상화된 존재.
때문에 내가 말하고 싶지 않았던 것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찌질하고 못난 놈인지도, 어딘가에 제대로 자리 잡질 못하고 수년을 살아왔다는 것도.
왜 내 자아랍시고 이 녀석이 나타난 건지도 이젠 알겠고. 난 이 녀석에게만큼은 이걸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아까, 너 사는 세상에도 마법 같은 거 있으면 좋겠다고 했었잖냐. 찬아.”
“네.”
“엄밀히 말해서, 없었던 건 아니야.”
PC방. 노래방. 주유소.
상하차, 대형마트, 키즈카페, 신문 배달, 호프집, 영화관, 패스트푸드점, 전화상담, 이삿짐센터, 빵집, 가구공장, 노가다.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 수많은 일들….
고등학교 졸업식 다음 날부터 하루에 2건, 닥치는 대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해낸 게 없었다. 일을 해본 경험이고 뭐고 없던 탓에 일을 못하기도 했었고, 사회성도 떨어졌었고….
일 끝나고 바로 버스 타러 갔어야 했으니 말이다. 어울릴 시간이 없었지. 그러면서 몸은 점점 못 버티고, 표정은 무너지고.
몇 년 뒤에는 그 어떤 말을 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느 일자리를 가도 음침한 놈이라며 기피당하고, 결국엔 쫓겨났다. 그게 길어야 3개월, 짧으면 1달.
우울한 나날이었다. 그래도, 버틸 수 있는 동력이 있었다.
“네가 말야.”
“…….”
“내게는 네가, 그 힘든 시간들 버틸 수 있게 해준 마법이었어.”
일하다 기절해서 링거 맞았을 때도, 이틀 입원했다는 이유로 짤린 직후에 바로 구인광고를 뒤적였을 때도, 그게 연례행사가 되어버렸을 때도.
이 녀석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옛날엔 행복했었으니까. 그러니 살다 보면, 언젠가는 또 행복한 날이 돌아올 테니까.
“그게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그땐 어떻게 하냐?”
“…….”
“내가 짧게 산 것도 아닌데. 29년을 살았는데. 그 29년 살면서 행복했던 거 죄다 긁어모은 것보다, 심지어는 널 떠올리는 것보다.”
“네.”
“…즐겁긴 했다. 이 한 달….”
진상들에게 온갖 고통을 받고, 온갖 해괴한 일들을 겪고. 돈만 벌어 튀겠다는 계획은 진즉에 산산조각이 났다. 하지만.
“누군가가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준 게 이곳이 처음이었어. 도와줘서 고맙다고, 내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해준 것도, 내가 남남이 아니라 말해준 것도, 전부.”
그래서 행복했다.
이젠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지내는 동안 난 분명 행복했어. 하지만.
“너도 알잖아. 난 늘 쫓겨나기만 하던 놈이었단 거. 버티려고 해도 결국엔 밑천 드러나서, 밝은 척하려고 애쓰다가도 결국엔 뭐가 터져서.”
“네.”
“늘 이런 순간이었어. 내게 뭔가를 기대해 올 때, 내가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질 못했을 때. 그다음 날, 다음 주면 난 이미 없는 사람이 되어있었다고.”
지금이 그 순간 같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할 것 같다. 생각 있습니까? 44번?
“그걸 내가 못 하면. 그땐 또 쫓겨나는 거 아니냐? 여기서 있었던 일들도, 원해서 내 발로 나온 적 없었던 수많은 일들 중 하나가 되는 거 아니야?”
그게 두렵다. 여기서 행복한 이 순간마저, 늘 그랬던 것처럼 없었던 일이 되어버리는 게. 결국엔 돌아오지 않을 추억으로 변해서, 사진으로조차도 간직할 수가 없게 되는 게.
이에 대한 대답을 해주길 바랐다. 아홉 살의 이찬이 고개를 저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저 아홉 살인데.”
“…그건 그렇네.”
“그치. 아저씨 하기 나름인걸.”
…나 하기, 나름이다.
생각하는 도중 어디선가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별 가득한 밤하늘의 달빛 머금은 전구 아래, 오후 9시의 호텔방 안.
매미가 울 시간도, 장소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귀에 똑똑히 들려온다. 난 이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녀석은 짐작이 가는 듯했다.
“저 가야 될 것 같아요, 아저씨. 오늘 못 잡으면 숙제 밀려.”
약효가 다 떨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남은 묘약을 더 마시면 붙들어 둘 수 있겠지만, 차마 그럴 생각이 안 들었다. 이만 보내줄 때가 됐다.
“잘 가라, 찬아.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네… 아, 아저씨.”
“어.”
“혹시 저한테 하고 싶은 말 또 없어요?”
있다. 그걸 알고서 묻는 거겠지. 머리를 쓰다듬어 줄까 하다가, 관뒀다. 내 손으로 이 녀석을 사라지게 하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말로만 했다.
“어머니한테 잘해 드려, 인마. 나처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네.”
그러고는 잠시 뒤, 눈 깜박하는 사이에 사라져 버렸다. 내 추억이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다, 침대 위로 기듯이 움직여 몸을 뉘었다.
천장에는 별이 가득했고, 기온도 적당하다. 달을 보며 잠드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