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3)
이세계 편돌이-12화(13/331)
12화. 돌아가는 편돌이
자,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그런데 문제가 두 개 있다. 하나는 난 집에 가는 방법을 모르겠다는 점이었고, 다른 하나는 점장도 역시도 정확한 방법을 모르는 눈치였다는 것이다. 미칠 노릇이다.
이 탓에 내가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오로지 추측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었는데, 다행히도 점장이 생각해 둔 게 있다고는 했다. 새벽에 전화 끊은 뒤로 반나절 가까이 나 집 보내는 방법만 고민했다고.
“반나절 넘게 제 생각만 하셨다니 감개가 무량합니다, 점장님.”
“찬이 퇴근은 시켜야지. 아니면 여기서 계속 지내게?”
계속 지낼 생각 없고, 그럴 수도 없다. 내 집도 없는 딴 세상에서 뭘로 어떻게 버텨?
다 떠나서, 노트북 인터넷 검색기록도 다 지워야 된다. 나 진짜 무조건 집에 가야 돼, 안 그러면 큰일 나….
“근데 제가 뭘 도와드려야 되는 거예요?”
“일단 여기에 집 주소 좀 적어볼래?”
말하며 점장이 내민 건 작은 수첩이었다. 검은 수첩 표지에는 작은 문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사무실 CCTV 근처에서 보고 마법진이라 추측했던 문양들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이게 마법스크롤 같은 건가 보다.
받아 들어 주소를 적은 뒤 건네자, 점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처음 보는 주소긴 한데… 이게 맞는 거지?”
“도로명 말고 번지로 적을까요?”
“번지?”
“농담이구요. 그거 제 집 주소 맞아요.”
“헷갈리게 하지 마, 찬아. 나 진지하단 말야.”
말하며 뾰로통한 표정을 짓는 점장. 보고 있자니 더 긴장이 안 되는데 말야.
투덜대면서도 점장은 내가 집 주소를 적은 용지를 뜯어 손에 쥐고는, 이마에 맞대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런 뒤 눈을 뜨고 손을 펴자, 손에 쥔 용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오….”
“이제 좌표 등록은 끝냈고, 버튼만 누르면 이동할 텐데… 아마 내가 눌러봐야 제대로 작동 안 할 거야.”
“그것도 원리가 있나 봅니다.”
“공간이동에 세 가지 요소가 들어가거든. 좌표, 계산식, 시전자. 좌표는 여기가 네 집 주소가 맞다면 정상적으로 작동할 거고, 계산식도 수천 번은 써온 계산식이니 문제는 없을 거고….”
소거법으로 보면 시전자에 문제가 있겠다 싶었다.
“시전자가 공간이동을 시전할 경우엔 목적지에 대한 명확한 정보, 이동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해. 그런데, 이 세상에 너 사는 곳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이 누구겠어?”
“저겠죠.”
“그러니 버튼도 찬이 네가 누르는 게 맞는 것 같아.”
내 세상에 대해 제일 잘 아는 게 나라서 그 시전자도 내가 되어야 한다, 점장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 듯했다. 여기까지는 나도 이해가 됐다. 이해는 됐는데….
“이거… 마법이잖습니까.”
“응.”
“그리고 전 마법이 안 통하는 체질이고요. 제가 한다고 제대로 될 것 같진 않은….”
“그것도 나름대로 추측해 봤는데, 드래곤 비늘 정화했을 때 기억나?”
“네.”
“찬이 네가 아예 마법이 안 통하는 체질이었으면 단순히 정화만 되고 끝나진 않았을 거야. 비늘에 담겨있던 마력까지 다 증발해 버렸겠지.”
듣고 나서 잠깐 멍해졌다가, 등골에 오한이 싸악 밀려왔다. 자칫 잘못했다간 그 비늘이 다 못 써먹게 됐단 소리 아냐?
“점장님, 그때 무슨 확신이 있긴 하셨던 거예요?”
“있었지. 조금.”
“세상에. 뭔 확신 조금 가지고 수천만 원을 태우십니까.”
“그땐 신경 안 썼어. 어차피 네가 정화 안 해줬으면 못 쓸 물류였는걸.”
“것도 그렇네.”
“그때 느꼈던 게, 네 체질이 너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할지도 모른다는 거. 그걸 네가 여기에 알바하러 온 거랑 엮어서 한번 생각을 해봤는데….”
잠시 말꼬릴 늘이던 점장이 날 올려다보며 물었다.
“혹시 여기 알바하러 올 때 무슨 생각 하고 있었어?”
알바 구하는데 뭔 생각까지 해, 그냥 답답했지.
코로나로 회사 박살 나고, 다른 회사들도 박살 나고, 알바할 곳들도 죄다 박살 나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져서, 이러다 집세에 보험료도 못 내게 되는 거 아닌가 하며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교통비도 아껴야 했기에 집 근처 알바를 구하려 한 거고, 무슨 일이건 근무 시간이 어떻게 되어 먹었건 상관없으니 어쨌든 일을 해야만 한다는 마음만 가득했던 것 같다. 이것도 생각이라면 생각인가.
짧게 요약해 답했다.
“절박했어요.”
“…이상한 거 물어봐서 미안하구, 찬이가 여기 오게 된 것두, 어찌 됐든 찬이 의지가 섞여 있을 거란 얘기야. 비늘 정화한 것도 그랬을 거고. 어떻게 생각해?”
“뭐든 되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긴 했습니다.”
“그치. 그걸로 생각해 본 게 찬이 체질은 찬이 의지에 따라 조절이 가능하다는 거. 찬이가 집에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어… 체질도 잠깐은 얌전히 있어 주지 않을까 싶어.”
내 속마음은 글쎄, 였다. 태양인 소양인 같은 사람 체질이 억누른다고 억눌리는 그런 게 아니잖아. 드는 걱정이 있어 물어봤다.
“얌전히 안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작동을 안 하겠지. 최악의 경우엔… 장치 자체를 아예 못 써먹게 될 거고. 마력이 사라질 테니까.”
“점장님은 이게 제대로 될 거라 생각하세요?”
“내 생각은 그래.”
난 자신 없었다. 집 가려다 점장 생계마저 박살 내게 생겼네.
“…그래도 한번 해볼게요. 괜찮으시겠어요?”
“응.”
장치 주인이 허락했으니 해볼란다. 이거 아니면 내가 집엘 못 가는데 어떻게 해?
“근데 의지란 걸 어떻게 가져야 하는 겁니까?”
“찬이가 집에 가고 싶은 이유가 있을 거잖아. 좋은 추억이라든가, 뭐 그런 거.”
“그런 걸로 돼요?”
“뭐… 집 가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필요하진 않잖아?”
그렇긴 하네.
근데 내 세상이 어떤 곳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최소한, 30줄도 안 들어선 풋내기가 쉽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곳은 결코 아니다.
그러니 내 식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29살 먹은 백수 청년에게 있어, 지금 세상은….
거지 같은 곳이었다.
직장은 진즉에 망해버렸고, 난 일자릴 못 구해 주 84시간 근무하는 편돌이가 되어버렸다. 뭔 망할 놈의 세상이 사람을 찔러 죽이려는 것도 적당히 하질 않는 탓에, 나날이 모난 가시만 늘어 발 디딜 틈조차 보이질 않는 곳.
어른이 된 이후로 좋은 일보단 힘든 일이 배로 많았고, 어렵게 쌓은 모래성마저 훅 불어내는 허망한 곳. 힘들게 일하고 돌아온 날 기특하다며 반겨주는 대신, 6평 단칸 원룸에 처박아 버리는 그런 곳. 내가 느끼기에 세상은 그런 곳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말이다.
살면서 행복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던 세상이었다.
어렸을 적, 초등학교 여름방학 방학식 날. 방학식 끝나고 문방구에서 친구들이랑 200원짜리 아이스크림 사 먹던 기억. 문방구 뒤편의 메달 뽑기 기계에서 대박이 터져버렸고, 난 영웅이 되었다.
아이스크림 들고 여럿이서 비포장도로를 걷다가, 한 친구가 자기 집에서 놀자고 하길래 아무 생각 없이 놀러갔었지.
친구 어머니께서 수박을 대접해 주셔서, 수박 먹으면서 너는 수박씨를 먹니 안 먹니 얘기하고, 발라먹는 거 귀찮은데 왜 씨를 굳이 발라먹냐며 말씨름도 하고, 이러다가도 금방 풀려서는 공 차고 놀고 그랬어.
매미 우는 소리,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 친구 어머니께서 그릇 설거지하는 소리 외에는 들려오지 않았으며, 안방에 누워 낮잠을 잤었던 아무런 목적의식도, 의미도 없었던 하루.
짧았던 그 하루가 내겐, 정말 미치도록 그립다.
억지로 의미부여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 친구들 중 몇은 이미 결혼을 해버렸고, 몇은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니까.
아니면 벌인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그때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겼기 때문에, 지금 와서 그만큼 더 소중한 순간이 되어버리고 만 거다.
하지만 그날이 내게 딱 한 가지는 각인시켜 줬다. 내게도 행복했던 순간이, 그리워할 수 있는 순간이 있긴 했었다. 분명 있었단 말야.
그러니 돌아갈 거다.
행복했던 순간이 분명 있었기에, 어떻게든 버텨나가다 보면 분명 행복해질 순간이 다시 찾아오지 않겠냐는 믿음을 주는 곳이라, 지금은 돌아간다.
당장은 그 각이 전혀 보이지 않긴 하지만… 이럴 때면 다들 으레 하는 말 있잖은가. 인생 길다, 뭐, 어쩌고.
공감한다. 삶은 길다.
그러니 살다 보면, 분명 한 번쯤은 또 좋은 날이 오겠지….
“…….”
“끝났니?”
“대충은요.”
이쯤 생각하면 되겠다 싶어 버튼을 눌렀다.
아무런 소리도 빛도 나지 않아 점장을 바라봤으나, 문제가 있다는 표정은 아니었다. 십수 초가 더 흐른 뒤, 점장은 정문의 블라인드를 슬슬 걷었다.
그렇게 정문 밖에 펼쳐진 광경은… 내 집 근처의 사거리였다. 드디어.
“어때?”
“잘 된 것 같아요.”
“이걸로 두 개 알았네. 찬이 체질은 찬이 의지에 따라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거.”
“나머지 하나는요?”
“내가 납치범이 되진 않겠다는 거.”
말하고는 해맑게 웃길래, 나도 따라 웃었다. 점장이 잠금쇠를 풀어 열어준 문으로 나가려다, 제법 괜찮은 생각이 떠올라 입에 담았다.
“잠깐 구경이라도 해보실래요? 점장님도 다른 세계는 처음이실 것 같은데.”
“나중에. 30분 넘었는데, 자리 너무 오래 비우면 신용 떨어지잖아.”
“그건 그렇네요. 아, 그리고 또….”
“응.”
“나중에 제가 다시 여기 올 수 있을까요?”
묻자, 점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안 오게?”
“와야죠. 하루 일한 것도 아깝고, 저 금일봉 받고 나를 만큼 양심 없는 놈 아닙니다.”
“내 생각도 그래.”
“그냥 어떻게 오냐, 이거죠.”
“나야 모르지. 내가 찬이를 부른 게 아니라, 찬이가 날 찾아온 거니까.”
이후, 점장이 갑자기 떠오른 듯 기다려 보라 하고는 계산대로 가서 뭘 가져왔다. 작은 유리병에, 내용물 색이 좀 밝았다.
“찬이 집 보낸다고 주는 걸 깜박했다. 이거 포션.”
“허어, 이걸 진짜 만드신 거예요?”
“그럼 가짜로 만들겠니. 적당히 큰 소리를 들으면 알아서 깨어나도록 만들었으니까, 알람 맞춰 놓고 자기 전에 마셔. 엄청 상쾌할 거야.”
“뭔 원리예요?”
“설명하면 알아?”
“알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도 효과가 있으면 좋겠네.”
“뭐… 최소한 맛은 좋을 거야. 설탕도 좀 넣었거든.”
그렇다니 그런 줄 알기로 했다. 점장에게 마지막으로 인사했다.
“저녁에 올게요.”
아직도 웃고 있는 점장에게 고개를 꾸벅이고, 밖으로 나왔다.
* * *
집에 돌아와서는 곧바로 씻고 이불에 누웠다.
저녁 9시에 알람을 맞추긴 했는데, 바로 잠들진 못했다. 도저히 잠이 안 와서 그랬다. 졸려 죽겠는데 눈 감으면 정신이 오히려 또렷해지는 딱 그 상황이야.
차라리 구인 사이트라도 좀 뒤져볼까 했으나, 관뒀다. 지금 심정으로는 좋은 직장이 생겨도 바로 이력서 넣을 생각은 못 할 것 같아서였다.
이 알바가 페이가 좋잖은가. 찾아오는 손님 손놈들 대부분이 외견상 짐승 놈들이긴 했지만, 점장도 사람은 좋았고.
편돌이 일을 평생 하지는 않겠지만, 당장은 할만하다 봐도 좋지 않나….
머리가 잘 안 돌아간다. 때가 됐다 싶어 점장이 준 포션의 병뚜껑을 열었다.
이것도 마법으로 만든 걸 테니 원래는 내 몸에 안 통하는 게 맞을 거다. 근데 아까 점장이 말했고, 경험도 해봤잖은가. 내 체질은 내 의지로 어느 정도 컨트롤이 가능하다고.
포션병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지금 더럽게 졸리고 개꿀잠이 자고 싶어. 그리고 점장이 이거 먹으면 개꿀잠 잘 수 있다니까 내 말 좀 들어줄래, 내 몸통아? 이러면 되나?
생각하며 들이켰고, 1분 동안은 별 느낌이 없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도대체.”
하긴, 그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
…….
[ 띵딩딩~ 굿모닝~ 띵딩― ]뭐… 뭐야.
[ 빰빠빠 빰, 빰, 빰빰빰빠― ]아니, 왜 벌써 9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