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30)
이세계 편돌이-129화(130/331)
129화. 치와와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1)
* * *
오후 8시로 설정해 둔 알람 소리에 맞춰 일어나 보니 허리가 찌뿌둥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난 바닥이불에서 자는 거 아니면 늘 이렇다니까?
창문을 닫아놓고 잔 탓인지 내부 공기가 텁텁하기도 해서, 맑은 공기도 쐴 겸 베란다로 나왔다. 기지개를 켜며 도시를 한번 슥 둘러보았다.
어두웠다. 이 도시를 나 살던 세상에 대입하면 서울 언저리는 될 거다. 저녁 시간에 서울 건물들 절반이 불이 꺼져있는 모습.
지금 여기가 딱 그 꼴이다. 휘황찬란해야 할 오후 8시의 도심지가, 빌딩과 건물들 중 절반가량의 전등이 꺼져 숨만 겨우 붙어 있는 듯 보였다.
자동차 없이 텅 빈 도로는 점선 차선이 뚜렷이 보이고 있고, 듬성듬성 높인 가로등 불빛은 왠지 모르게 연약해 보인다. 카운터에서 상상했던 야경이 이런 모습은 아니었는데 말야….
“…에라이.”
출근이나 할란다. 적당히 씻고 이불 정리하고, 천장에 떠 있는 달전구는 그대로 냅뒀다. 손도 안 닿는 걸 어떻게 치우나 싶다.
카드키 챙겨서는 로비로 내려왔는데, 아침에 봤던 여우 코볼트가 카운터에서 머리만 빼꼼 내민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가가서 카드키 내밀며 물었다.
“혹시 지금 카드키 드리면 퇴실 처리되나요?”
“아뇨. 다시 오실 때 신분증 보여주시면 돼요. 혹시 도와드릴 게 있을까요?”
“딱히, 아. 근처에 택시 정류장 있습니까?”
밖으로 나가서 대로변으로 가면 바로 있다고 하더라. 고개를 꾸벅였더니, 여우 코볼트가 마찬가지로 인사를 받고는 말해줬다.
“나중에 또 찾아와 주세요, 손님.”
잠깐 고민하다 대답했다.
“네.”
이후로는 밖에 나와서 택시 잡고, 미터기 유니콘이 발 구르는 거 잠깐 구경하고. 이번 택시 기사는 리자드맨으로 보이는 도마뱀 코볼트였는데, 큼지막한 꼬리가 좌석 밑에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잘못했다간 밟겠다 싶어 옆으로 자릴 옮겼는데, 리자드맨 택시 기사가 넉살 좋은 어투로 말해왔다.
“고마워요, 손님. 안 그래도 꼬리 때문에 병원 자주 다니는데.”
“어… 뭘요.”
“가는 길 심심하시면 라디오라도 틀어드릴까요?”
단순히 나 들으라는 것보단, 자기도 은근 뉴스를 듣고 싶어 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라고 하자 바로 라디오 전원을 켜서는 볼륨을 높였다.
흘러나온 첫 뉴스가 유독 귀에 밟혔던 탓에, 편의점 도착하기까지는 뉴스에 귀만 기울인 채로 있었다.
[ 오늘 오후 2시, 마법청과 헌터 협회에서는 도심지 내 핵심 게이트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 [ 발생 기한은 대략 3일 전후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기간 동안 도시 북부의 주민들께서 가능한 외부활동을 삼가실 것을 당부하기도…. ]* * *
편의점 앞 거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만 원짜리 두 장을 미리 꺼내 준비해 뒀다가, 버스정류장 앞에서 멈출 즈음 내밀고 돈 거슬러 받았다.
“덕분에 오늘 그래도 개시는 했네. 밤길 조심히 들어가십쇼, 손님.”
“옙.”
내가 오늘 첫 손님이었던 모양이다. 택시비가 13,600원이었는데, 미터기 유니콘 각설탕 값이나 나올지 모르겠다.
택시가 떠나는 걸 확인한 뒤, 주변만 슬쩍 둘러보고 매장으로 들어섰다. 늘 그랬듯 점장이 카운터에 서 있었고, 눈 마주치자마자 손 인사를 건네왔다.
“찬아, 하이. 밖에서 자는 건 어땠어?”
“오랜만에 침대에서 자서인지 허리가 좀 찌뿌둥합니다. 오늘 장사는 어땠어요?”
“응, 오늘 망했어.”
바로 카운터로 들어가서 POS기를 확인해 봤다. 금일 매출이 2만 원도 채 안 됐다.
“담배는 그대로구, 현금 받은 것도 없구. 인수인계 끝.”
“손님은 몇 분 받으신 거예요?”
“저기 저 한 분.”
쇼윈도 쪽 테이블을 가리키는 점장. 잠깐 밥이나 먹으러 온 손님인가 보다― 하고 바라봤다가,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점장님. 저거 혹시….”
“저분이 찬이가 말한 그분 맞지? 치와와 손님.”
“어….”
처음엔 긴가민가했다. 저 양반이 사복 차림으로 온 걸 보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치와와 코볼트가 저 양반 하나뿐인 건 아닐 거잖은가?
하지만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고, 개발바닥으로 분당 1,200타를 뽑아낼 수 있는 치와와는 흔하지 않을 터다. 잠시 뒤, 익숙한 목소리로 익숙한 내용이 들려왔다.
“빌어 처먹을 비글 새끼, 이런 개같은….”
“그 양반 맞는 것 같습니다. 근데 언제 온 거예요?”
“찬이 퇴근하고 한 시간 뒤에.”
내가 오전 10시 퇴근했으니 11시에 왔다는 얘긴데, 지금 시간이 10시가 거의 다 됐다. 지금 여기서 11시간을 저러고 있는 거라고?
“내 일 방해 안 할 테니까, 자기 일하는 거 방해하지 말라 하시더라구.”
“점장님 뭐라고 부르면서 그랬어요? 저는 씹새로 개명당했어가지고.”
“땅꼬맹이라 하시던데?”
점장 키가 추정 160cm가 좀 안 된다. 치와와 떡대가 190 언저리니 지 눈에 땅꼬맹이로 보이기야 하겠다.
“그러면서는 우유 잔뜩 사주셨어. 어릴 때 우유 많이 먹어야 키 큰다고.”
말하고는 계산대 밑 쓰레기통을 슬쩍 보여주는 점장. 검은콩두유에 바나나 우유, 딸기 우유며 편의점 우유란 우유는 죄다 하나씩 사다 가져온 게, 딱 치와와나 할 법한 발상이었다.
“이건 또 참….”
“덕분에 약간 기분 좋아졌구. 내 생각에, 저분 아주 나쁜 분은 아닌 것 같아.”
명랑하게 말해오는 게, 우유 산 걸로 매출을 올려줘서라기보단 우유 먹고 키 클 나이대로 보였단 얘기 들은 게 좋아서가 아닐까 싶은데….
“18살이면 충분히 키 클 나이거든?”
“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나저나, 기분이 좋아지셨다고요?”
며칠 전에 기분 관련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말하자, 그나마 생글생글하던 점장 표정이 순식간에 우울해졌다.
“사실, 아침에 출근하고 나서부터 기분이 엄청 안 좋았어갖구….”
점장이 말했었다. 자기가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주변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긴다고.
처음 들었을 때는 이걸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런데, 점장이 기분이 안 좋다고 얘기한 바로 그날 저녁에 토르람쥐와 강철둘기가 내 직장을 박살 내 버렸단 말이지?
점장 기분과 매장 건강 상태가 정비례 관계에 있다 생각하기는 힘들지만,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는 있겠다 싶었다. 떠오르는 대로 물었다.
“연산식 쓰시는 건 잘 풀렸어요?”
“잘됐구, 내일은 찬이 제대로 퇴근할 수 있으니까 전혀 걱정 안 해두 돼.”
“알겠습니다. 그게 아니면, 다른 일 하시는 거 때문에 그러신 거 아닌가?”
“다른 거?”
“연산식 얘기할 때 말씀하셨었잖습니까. 원래는 하루 걸릴 일인데, 혹시 몰라서 이틀 잡으셨다고.”
그 혹시가 뭔지는 못 들었지만 말야. 점장이 이 물음에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냐. 잠깐… 얘기만 하러 가는 거거든.”
“어디에 누구랑요?”
“마법청에 아는 지인.”
아는 지인과 잠깐 얘기하러 간다는 것치고는 점장 표정이 무척 미묘했다. 억지로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 억지로 내키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의 중간 즈음 되어 보인다.
더 물어봤다간 우울한 점장 기분이 더 우울해질 것 같아 주제를 돌렸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떠오르는 게 딱 두 개밖에 없다.
“아까 돌아오면서 뉴스 봤습니다, 점장님. 핵심 게이트 엠바고 풀렸다 하더라고요.”
“응. 나도 봤어.”
“그거랑은 상관이 있을까요?”
“…….”
“아니면 저 치와와 양반 때문에 그런 거겠죠, 저 양반 올 때마다 저도 기분 겁나게 착잡해지는데.”
농담이랍시고 건네본 거였으나, 점장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많은지 카운터 위만 말없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러길 수 초.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다.”
“네?”
“찬아. 미안한데, 지금 바로 근무교대 해줄 수 있을까?”
“그거야 상관없죠, 9시 55분인데. 근데 혹시 급한 일 있으세요?”
괜찮다고 하자마자 점장이 짐 챙기는 동작이 유독 급해 보여서였다. 지갑을 챙겨 자기 핸드백에 욱여넣고는 어깨에 들쳐메며 대답하는 점장.
“윤하 잠깐 만나 봐야 될 것 같아.”
“누나랑 연락이 됐어요? 누나 엄청 바쁜 거 아닌가?”
“잘은 안 됐는데, 어디 있는지는 말해줬거든. 윤하가.”
근무하며 연산식 짜는 도중에 몇 개 문자를 보냈는데, 딱 한 줄 답장이 왔다고 한다. 지금 학원지구에서 신나게 구르고 있어서 연락 못 한다고.
“아예 내가 직접 찾아가려구. 미안해.”
“뭘요. 5분 일찍 교대하는 게 뭐 대수라고.”
점장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몇 가지 있었는데, 내가 알아서 해야 할 것 같다. 카운터 밑에서 점장 폰을 꺼내 건네며 말했다.
“폰 두고 가실 뻔했네.”
“아.”
“점장님 볼일 보셔요. 저도 제 일 보겠습니다.”
눈 마주친 직후, 점장도 내가 할 말이 많단 걸 알아챈 표정이 되어버렸다. 허나, 점장이 핸드백을 다시 내려놓지는 않았다.
“이따 연락 줄게, 찬아.”
이러고는 손 흔들며 퇴근. 정문 나서자마자 폰을 들여다보는 게 택시를 잡을 요량인 듯했다. 들어오기 직전에 버스정류장 전광판을 봤었는데 아예 버스가 다니질 않더라. 여튼….
이제 근무교대도 했고. 담배나 현금도 변동사항이 없으니 검수할 일도 없고. 청소도 당장 급한 건 아닌 것 같고, 뭘 한다.
“야, 씹새야!”
할 일이 생겼다. 유니폼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로 치와와에게 다가가자, 치와와가 의자에서 몸만 튼 채로 내게 물었다.
“너희 오늘 몇 시까지 영업, 이 씹새가 주머니에 손은 왜 넣고 있어?”
“저희야 24시간 연중무휴죠. 손님도 주머니에 손 넣어보세요. 편하네, 이거.”
“이런 씨발.”
“근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버스 타셔야 돼요?”
“이 씹새가, 집이 걸어서 코앞인데 내가 버스를 왜 타?”
이 치와와가 매장 근처에 살았구만. 쓸데없는 지식이 늘었다. 치와와가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북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마저 말을 이었다.
“일 덜 끝나서 마저 하고 가려고 그런다.”
“아니. 손님 집 없으세요?”
“방금 내가 집이 걸어서 코앞이라고 말하지 않았냐?”
“그럼 왜 여기서 일을 하시는 건데요.”
“비글 씹새끼가 마법청 일감 받아와서 그거 해야 돼, 씹새야. 이 시간에 일하는 것도 개같은데 자꾸 꼴받게 할래?”
내가 무슨 일 하는질 물어본 게 아니라, 그걸 왜 여기서 하냐고 물어본… 아니지.
“마법청 일감은 또 뭐야. 거기서 코딩 필요한 일이 있어요?”
“그럼 시발, 거기 놈들은 다 븅신 새끼들이라서 일기장으로 DB 관리하고 그러겠냐?”
이러고는 분노 가득한 목소리로 말해오는 게, 마법청은 마법과 전산 두 방법을 모두 사용해 이중 보안이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할 경우의 장점이, 마법사는 해킹을 못 해서 보안을 뚫을 수 없고 해커는 마법을 쓸 줄 몰라서 보안을 뚫을 수 없다고. 도중에 말 끊고 물었다.
“손님 보안 IT 쪽 일 하신다면서요. 해킹이랑 그게 상관이 있어요?”
다시 말하지만, 난 IT나 코딩 관련해서는 문장 한 줄 출력할 줄도 모르는 무지렁이다. Print f가 도대체 뭔데. F를 인쇄하시오? 왜?
“…….”
치와와가 ‘아니 세상에 이런 빡대가리가 있나’ 하는 얼굴로 날 바라봤으나, 실제로도 그게 맞아서 굳이 반박은 안 했다. 잠시 뒤, 치와와가 이 악문 채로 말해왔다.
“내가 해킹해서 보안 직접 뚫는 일 한다.”
“왜요?”
“그렇게 해야 어떻게 뚫는지, 어떻게 해야 안 뚫릴지 알 거 아니야, 이 편돌이 새끼야. 너 지금 일부러 뇌 안 쓰고 있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