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34)
이세계 편돌이-133화(134/331)
133화. 드래곤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 (2)
* * *
하나가 순혈 드래곤이다. 뿔을 통해 다른 이종족들의 마력을 감지할 수 있고, 감지한 마력을 통해 마음의 색을 볼 수 있다. 속 시커먼 악질은 말 그대로 검은색, 그 반대는 하얀색.
대면사기 예방 측면에서 더없이 훌륭한 재주지만, 큰 단점이 하나 있다. 나이가 워낙 어린 탓에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하다는 것. 하나에게 물었다.
“하나야. 진짜 미안한데, 잠깐 네 뿔 만져봐도 되냐?”
“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까치발을 들어 내게 머리를 내밀어온다. 엄지와 검지만 뻗어 뿔에 가져다 댄 뒤 다시 물었다.
“지금은?”
“와아.”
감탄하는 목소리가 몇 단계는 밝아져 있었다.
“이제 하나두 안 가려어여, 아조씨.”
“그러냐.”
“꼐속 이러케 있구 시퍼.”
순혈 드래곤이 뿔이 무진장 민감한 종족이랬는데, 이 녀석은 내가 뿔 만지는 거에 왜 이렇게 거리낌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여튼….
“잠깐 생각 좀 해 볼게.”
“내….”
“싫다는 게 아니라, 다른 것 때문에 그래.”
진짜로 생각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 이게 우연인가?
아닐 것 같다. 뿔에 느껴진다는 가려움이 내가 손을 가져다 대자마자 사라졌다. 마력과 연관이 있는 증상이 맞겠지.
하나가 뿔이 가렵다고 호소해 온 게 오늘이 처음이기도 했고. 이전 날들과 오늘의 차이점이라곤 하나뿐이다. 근처에 마력을 잔뜩 뿜어내고 있는 무언가가 나타났다는 것.
이종족의 마력을 감지하듯, 그 무언가의 마력도 똑같이 감지한 게 아닐까. 비약이라고 해도 할 말 없긴 하지만….
“아조씨?”
“…하나야.”
“내?”
“혹시 부탁 하나만 해도 되냐.”
의문점이 생긴 이상 확인은 해봐야 했다. 당사자가 동의한다는 전제하에. 하나가 고개와 꼬리 끝을 동시에 꾸벅이며 대답해 왔다.
“내.”
“뭐 부탁할 건지 아직 얘기도 안 했는데?”
“그치만여, 아조씨가여. 엄마야 선물 만드는 거 도와주셧구….”
“그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한 거지. 네가 부탁한 게 아니라.”
“또, 숙째도 도와주셧구. 친구 사기는 것두 도와주셧구.”
떠올리느라 내 말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 같다. 그나저나 내가 해준 게 뭐 이렇게 많냐?
“멍뭉이도 만나게 해 주셧구, 아.”
듣는 순간 심장이 덜컥 가라앉는 감각이 밀려왔다. 멍멍이 녀석을 마지막으로 본 게, 윤하 누나 재킷에 파묻힌 채로 밤하늘을 날아가는 거였다. 날개 달린 말 타고.
거리가 빗물로 이 사달이 났는데, 그 멍멍이 녀석은 비를 어디서 어떻게 피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 녀석만큼은 어떻게 연락할 방법도 없는데….
“아조씨. 멍뭉이 혹씨 어디 잇는지 아새여?”
“글쎄. 아는 사람 만나러 가는 거 본 게 마지막인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아으. 비 엄청 만이 오는대….”
“…그러게….”
생각하다 보니 마음이 좀 정리가 된다. 지금 부탁을 해도 되니 마니 고민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비가 이상기후에 가까울 정도로 쏟아지고 있다. 이상한 걸 없애고 나면 이 비도 수그러들어 줄 것이다. 분명 게이트 때문일 테니까.
“아무튼, 나 좀 도와줄 수 있냐.”
나도 마력 비스무리한 걸 볼 수 있긴 하지만, 하나처럼 다른 이종족들 마음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아니다. 감지할 수 있는 뿔이 달린 것도 아니고….
이 분야에선 나보다 하나가 더 타율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이어서 부탁할 게 뭔지를 설명하려 했는데, 하나가 바로 대답해 왔다.
“내. 머든지.”
“뭐든지?”
“아조씨가 잔뜩 도와주셧으니까, 저어도 잔뜩 도와드리구 시퍼여. 머든지!”
“그래, 고맙다.”
“근대여, 어뜬 거 하시는 거애여?”
“아까 우리 얘기했던 곳 가보려고 하는데… 잠깐만.”
우선은 매장 안에서 우산을 챙겨 나왔다. 가려는 곳이 딱 매장이 보이는 위치니, 열쇠로 걸어 잠글 필욘 없겠지.
다음엔 한 손은 우산 손잡이를 잡고 한 손은 하나의 머리에 뿔을 만질 수 있도록 얹었다. 손 뗐다간 또 가렵다며 긁어댈 게 뻔하다.
이후, 내 옷자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안 넘어지게 나 꼭 붙잡고 있어.”
“내.”
말하는 대로 옷깃을 꼭 부여잡는데, 발톱 끝이 옷을 파고들어 살짝 삐져나와 버렸다. 내색은 따로 않고 걸음을 옮겼다.
딱 3분을 걸어 4차선 교차로 한가운데에 도착했다. 오가는 자동차가 한 대도 없으니, 좀 여유롭게 해도 될 것 같다. 하나에게 말했다.
“여기서 뭘 좀 찾아보려고 하는데, 혹시 지금 뿔 가렵냐?”
“아녀? 아조씨깨서 잡아 주셔갖구.”
“이제부턴 점점 가려워질 거야. 아마도.”
며칠 전에 누나 일을 돕겠다고 했던 짓이 있다. 100의 마력을 가진 마법을 지워야 할 때, 100이 아닌 90 정도로 체질을 사용하는 것.
이걸 물타는 불, 불 태우는 물을 구분하는 데에 써먹었었다. 이번에 하는 짓도 똑같다. 내가 찾는 무언가의 중심부 마력이 100이라면, 그 바깥으로가 99에서 1까지겠지.
이 녀석의 뿔이 마력을 감지하고 있는 상황이니, 100 미만의 마력은 감지할 수 없도록 감지력을 죽인다면. 그땐 딱 100의 마력을 가진 중심부 위치만 알 수 있지 않을까….
가정이긴 했다. 내 몸뚱어리가 그렇게까지 일을 잘해 줄지 확신도 없고.
그래도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일이 잘 안 풀리면, 그냥 수고했다 하고 엄마 회사 같이 가주면 끝이니까. 이걸 하나에게 설명했는데, 처음엔 거의 이해를 못 했다.
“에… 그러니깐….”
“뿔 가려워질 때, 아니면 이상한 거 느껴질 때 딱 얘기해주면 돼.”
“내.”
잘 모르겠으니 일단 시작하자는 뉘앙스 같다. 어차피 내가 잘해야 할 일이 맞긴 하다. 잠깐 숨 고른 뒤, 뿔을 엄지손가락으로 슥 쓸어내렸다.
“지금 어떠냐? 숫자로 95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다시 심호흡한 후, 이번엔 80 정도를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어째 라디오 주파수 맞추는 기분이다.
“…아으.”
이번엔 몸 전체가 움찔하며, 내 옷자락이 꾹 잡아당겨졌다. 바로 물었다.
“뿔 많이 가려워?”
“…아녀. 참을 수 이써.”
“못 참겠으면 그땐 꼭 말해 줘야 된다. 알았지.”
“내.”
나도 우산 손잡이를 고쳐 잡았다. 손에 땀이 가득 차고 있다. 이 녀석한테 더 미안해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끝내고 싶다. 이번엔 90.
“지금은 어떠냐.”
“어….”
이번엔 좀 애매한 건지, 어리둥절한 얼굴로 온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하나. 헌데, 시선 대부분이 땅 쪽에 꽂혀 있었다.
뭔가 느껴지는 게 있나 보다. 이번엔 93 정도….
“앗. 아조씨, 아조씨.”
“왜, 뭔가 좀 알겠어?”
“여기.”
어딘가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확인해 보니 하늘도, 빌딩 근처도, 뻗은 4차선 도로 위 그 어느 곳도 아니었다.
땅바닥이었다. 정확히는, 우리 서 있는 곳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의 맨홀 뚜껑. 멍하니 바라보다 물었다.
“저 아래라고….”
“그런 거 가타여. 저 아래가 까매.”
“얼마나 아래쪽이야?”
“엄청 아래여. 어엄청 아래.”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은 기분이다.
내가 본 학원지구 쪽 게이트가 허공에서 나타났었다. 시계탑 꼭대기 언저리, 온 사방이 텅 비어있는 곳. 그 광경을 보면서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나타날 공간이 있어서 나타났다.’라고.
땅 아래는 그게 안 될 거라 생각했다. 흙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그 위로 다른 흙이며 구조물이며, 온갖 것들이 짓누르는 압력도 셀 거고 말야.
빈 공간이 전혀 없을 테니 뭐가 나타날 수도 없다,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헌데, 맨홀 뚜껑 보니까 바로 알겠다.
하수도 내부는 비어있잖은가. 그 안에서라면 게이트 같은 게 나타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지 않나. 하나에게 재차 물었다.
“엄청 아래쪽?”
“내. 만이만이.”
하수도 파이프 매설 기준이 지하 2.5m 정도. 많이많이 아래쪽이라고 표현할 정도는 못 된다. 이것도 게이트의 영향인 건지, 이세계 하수도의 스케일이 다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하는 어조며 눈빛이며 자신감이 넘치고 있다. 더 묻지 않고, 맨홀 뚜껑을 막연히 바라보았다.
빗물에 잠겨 잘 보이진 않지만, 손잡이고 손가락을 끼워 넣을 틈새고 없어 보인다. 저걸 자력으로 열려면 성능 좋은 빠루가 필요할 것 같다.
“다음에는 어뜬 거 도와드릴까여?”
“…아니. 이거면 될 것 같아.”
“정말여?”
“어. 정말로. 막힌 거 뚫어줘서 고맙다, 하나야.”
고마운 마음에 머리를 슬슬 쓰다듬어줬다. 쓰다듬는 도중에도 손등이나 머리카락 위로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져 댔다.
이 잠깐 사이에 비가 좀 더 거세진 모양이다. 이젠 비가 얼마나 내리나 올려다볼 엄두도 안 난다.
“하나야. 많이 고맙고, 너 슬슬 가 봐야 될 것 같어.”
“에애….”
“오랜만에 봐서 나도 반갑긴 한데, 비 더 내리면 너 집에 아예 못 들어가. 진짜로.”
“헛. 그럼 엄마야가 걱정하시는대.”
“그러시겠지. 나도 똑같이 걱정할 거고. 일단 걷자.”
“내.”
4차선 교차로 한가운데에 오래 서 있는 게 바람직한 일도 아니니까. 뿔에 계속 손댄 채로 마저 교차로를 지나, 하나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계속해서 걸었다.
도보에 흐르는 빗물을 헤쳐 가며 10분 즈음 걸었을 무렵, 하나가 우뚝 자리에 멈춰 서서 내 옷깃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여기서부턴 혼자 갈 수 있서여, 아조씨.”
“괜찮냐? 중간에 횡단보도나 내리막, 오르막 없어?”
“내. 쪼오기.”
손가락으로 높이 솟은 빌딩 한 채를 가리킨다. 저것도 보니까 기억이 난다. 이 녀석 엄마가 저 빌딩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했었지.
빌딩까지의 거리가 멀지는 않아 보인다. 하나가 앞으로 두어 발자국 장화를 철벅이며 걷고는, 날 돌아보며 꾸벅 인사를 해온다.
“저 갈깨여.”
“가면서 넘어지면 안 된다. 알았지.”
“내. 나중에 또 봬여, 아조씨.”
“그래야지. 다음에는 과자 잔뜩 먹자고. 맑은 날에.”
“히히.”
웃고는 몸 돌려 제 갈 길을 가는데, 도중에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 앞에서 우뚝 멈춰 서는 게 보였다. 바로 외쳤다.
“그런 데서 놀지 말고! 발 헛디디면 넘어진다!”
내 외침에 우비 밑으로부터 꼬리를 쭈뼛 들어 올리고는, 허둥지둥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럴 거면 뛰지 말라고도 말할 걸 그랬다.
잠시 후에 하나가 시야에서 사라졌고, 혼자 남았다. 걱정이 태산이긴 했지만, 행인 한 명 없는 거리에서 누군가랑 부딪칠 일은 없을 거고….
나도 해야 할 게 좀 많다. 매장으로 향하며 폰을 꺼냈다.
새벽에 마법청 전화번호를 미리 확인해 뒀었다. 999. 나 살던 곳에선 999가 응급 서비스 전화번호였는데 말야.
전화를 걸고 잠시 후에 통화음이 들려오긴 했으나, 기계음이 무척 심했다.
[ #[email protected]세요. …$#의 ……, …입니다. 음성 안#[email protected]…. ]중간에 하도 뚝뚝 끊겨대서 뭔 소리 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귀가 먹먹해질 지경이라 아예 전화를 끊어버린 뒤, 폰 우상단 구석을 확인해봤다.
통화권을 이탈했다는 아이콘이 떠 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건 갑자기 왜 이래. 게이트 또 너야?
답답함에 다른 데 전화를 걸어봤다. 점장에게. 톡을 확인했다는 표시가 아직도 뜨질 않아서 반쯤 기대를 접고 걸었던 건데, 점장이 받았다.
[ @#!, 잘#[email protected]? ]소리가 엉망인 건 여전했지만 말이다. 일단 내 할 말부터 했다.
“점장님. 오늘 근무교대 하실 수 있으신 겁니까?”
지금 시간이 9시 30분 언저리인데, 어떻게 생각해 봐도 점장이 제때 올 수 있을 거란 생각이 안 들어서였다. 버스고 택시고 보이는 게 하나도 없는데 여길 무슨 수로 와?
점장이 내 목소리를 듣긴 한 건지 뭐라 계속 말을 해왔는데, 여전히 기계음 한가득에 뚝뚝 끊겨 제대로 들리질 않았다. 답답함에 마저 말했다.
“게이트요, 점장님. 게이트 때문에 이런 거 같습니다.”
[ ……. ]이번엔 말이 아예 뚝 끊겨버렸다. 내 복장 터져서 죽어버릴 것 같….
― 딱.
느닷없이 폰 너머에서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점장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 찬아. 이젠 잘 들려? ]“잘 들립니다. 그런데 이건 또 어떻게 하신 거예요?”
[ 잘 들린다는 얘기지? ]“네. 잘 들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신, 혹시 점장님께서는 제 목소리 안 들리세요?”
[ 찬이 목소리 안 들리냐는 얘기 한 거면, 응. ]그렇댄다. 이 상태로 계속 통화해 봐야 선문답밖에 못 된다. 점장도 똑같이 생각했는지, 덤덤하게 자기 할 말을 해왔다.
[ 우선 미안해, 찬아. ]“어떤 게요?”
[ 오늘 좀 늦을 것 같아. 마법 쓰는 거 허락받는 게 시간이 좀 걸려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