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37)
이세계 편돌이-136화(137/331)
136화. 우리 매장 정상영업합니다 (3)
* * *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 된 누나에게 짧게 설명했다. 이번에 게이트 찾고 민간피해 막겠다고 대책위원회에서 반마법사들 차출한 거, 거기에 내가 포함이 되어 있다.
“난 그거 3년 차만 뽑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이찬 너는 어떻게 뽑힌 거야?”
“내 사수가 대책위 고문이거든. 그래서 지인찬스 썼지.”
“네 사수? 사수가 있어?”
“그, 나 자격증 시험 치를 때 감독관 있잖아. 나 교수 시켜 먹겠다고 벼르고 있다는 그 뱀파이어. 그 양반이 법이 그렇다면서 사수 해주던데?”
“아, 그 뱀파이어. 대충 알겠다.”
마저 말했다. 교수가 이 일 할 거냐고 물어본 걸 내가 하겠다 말했고, 내 구역이 지금 있는 매장 근처로 배치가 됐다.
아는 전문가 지인한테 지도 정보 받아서 오밤중에 매장 근처를 한번 슥 돌아봤고, 수상한 냄새 풀풀 풍기는 곳이 한 군데 있어서 아는 전문가 지인한테 협조 요청해 확답을 받아냈다.
여기서 누나가 말을 끊었다.
“아는 전문가 지인들은 또 누군데.”
“지도 정보 준 지인은, 어… 누나도 전에 만났었잖아. 마스크 사 간 치와와 코볼트.”
“야 이찬, 그거 정신 나간 놈이잖아. 정말 믿을 만한 거 맞아?”
아주 합리적인 질문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하던 와중, 밖에서 또다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도 익숙한 목소리였다.
“야!! 이!! 씹새야!! 이런 씨발!!”
매장을 담가 버릴 정도의 폭우마저 뚫어 버릴 정도로 우렁차고,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였다. 잠깐의 정적 뒤에 누나가 물었다.
“이찬, 방금 개 짖는 소리 들리지 않았냐?”
“본견은 아무 소리도 안 냈소만.”
“네 얘기 하는 거 아냐, 멍멍아. 낯선 양반 찾아올 거 같으니까 잠깐 숨어 있어 봐라.”
내 말에 멍멍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산대 밑으로 폴짝 뛰어내렸고, 그대로 다리 힘이 풀렸는지 납작 엎드려 버렸다. 물에 휩쓸려 갈 뻔했던 긴장이 이제야 풀린 거겠지.
누나와 바로 쇼윈도 근처로 다가가 밖을 확인했는데, 저 멀리에서 익숙한 개머리가 급류를 거슬러 헤엄을 쳐오고 있는 게 보였다.
그것도 접영에, 완벽한 구분 동작으로 말이다. 머리가 규칙적으로 물에 잠겼다 빠져나오길 반복하는데, 그 와중에도 재주 좋게 고함을 질러대고 있다.
“야!! 야 이 씹새, 씨발!!”
여태 들었던 것 중 가장 화가 난 목소리다. 내가 뭐 죽을죄라도 졌어?
누나는 황당한 걸 넘어 넋이 나간 얼굴로, 나는 착잡한 기분으로 치와와를 멍하니 바라봤는데, 치와와가 기어코 매장 앞까지 헤엄쳐 와서는 정문 손잡이를 붙잡고 문을 쾅쾅 두드려 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런 소릴 하더라.
“화장실!!”
“예? 뭐라고요?”
“화장실 열쇠 내놔, 씹새야!!”
내가 제대로 들은 건가 싶어 되물어봤다.
“뭘 달라고요?”
“씨발!!! 똥 마렵다고!!”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들어봐야 할 것 같다. 전혀 내키질 않는다는 표정의 누나를 바라보자, 반쯤 구겨진 얼굴이 되어서는 정문으로 다가가 문을 밀어 열어줬다.
문 열자마자 댐 대용으로 세워놓은 테이블을 건너와서는, 온몸에서 빗물을 뚝뚝 흘려대며 다급하고 간절하게 읊조리는 치와와.
“씨발, 나 지금 뒤질 거 같아. 화장실, 화장실 열쇠 어디 있어?”
“카운터에 있긴 한데요, 뭐 하나만 여쭤봐도 됩니까.”
“뭐. 빨리 말해, 빨리.”
“왜 집 화장실에서 볼일 안 보시고 여길 오신 거예요?”
묻자, 참던 분노가 기어코 터져버렸는지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쳐온다.
“이 씹새야!! 변기가 넘치는데, 어떻게 똥을 싸냐고!!!”
직후에는 눈이 충혈되다 못해 피눈물을 흘릴 기세로 설명을 해왔는데, 밖에 먹구름이 생기기 시작한 직후부터 자기 집의 수도 관련한 모든 것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싱크대, 싱크대 배수관, 수도꼭지, 샤워기, 좌변기 등등. 물에 집이 절반가량 잠길 즈음까지도 자기 일 하고 있었는데, 도중에 갑자기 배가 아파졌다고.
“집이 물에 잠겼는데 일을 했다고요?”
이건 내가 아니라 누나가 물어봤다. 어이없다는 투로 묻는 누나 말에, 똑같이 어이없다는 투로 대꾸하는 치와와.
“그럼 일 안 해? 지금 마법청 씹새끼들 서버 작살나서 일이 태산인데, 집 좀 물에 잠겼다고 손 놓으면. 니가 내 일 대신 해 줄 거야?”
“아뇨.”
“나도 알아, 씨발. 그러니까 똥만 싸고 간다고. 똥만 싸고 갈 거니까, 빨리!! 화장실 열쇠 내놓으라고!!”
이 시점에서 누나가 판단을 포기한 건지 뒤로 두 발자국 물러섰고, 이 양반의 대응을 온전히 내가 맡게 되었다. 일단 매뉴얼대로 답했다.
“상황이 안타깝기는 한데, 좀 힘들 것 같습니다.”
“왜!!”
“추측이긴 한데, 손님 오피스텔 사실 거 같거든요. 몇 층 사십니까?”
“4층!!!”
“4층 오피스텔 물이 역류하는 상황인데, 저희 화장실이라고 똑같은 꼴이 안 났겠어요?”
차마 직접 확인하고 싶지는 않아서 돌려 말하자, 치와와가 눈 한 번 안 깜박이고 10초가량을 날 가만히 노려보았다.
그러다가 지도 눈이 따가운지 눈물 한 방울을 또르르 흘리는데, 보고 있자니 이 양반이 처음으로 안쓰럽게 느껴지더라. 그래, 얼마나 배가 아프면 이러겠어….
잠시 후, 자기 등 뒤에서 노트북을 꺼내는 치와와. 화장실 마렵다고 뛰쳐나온 양반이 저건 또 어떻게 챙겨온 거야.
“후.”
숨을 고르며 남은 테이블 중 하나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는, 물에 잠겨 자빠진 의자 중 하나를 집어다 자리를 잡고는 말했다.
“일하면서 참는다….”
그러고는 일을 시작했다. 치와와가 다니는 회사의 비글 사장한테 저 모습을 보여주면, 내년 연봉협상에 좀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하는 도중, 누나가 치와와에게 다가가서는 물었다.
“노트북은 왜 갖고 왔어요?”
“방수 노트북이니까 신경 끄고, 늬들 할 일이나 처해. 아니면 내 똥 대신 싸 줄 거야? 씨발?”
“…….”
말없이 다시 돌아온 누나가 이것도 한번 해명해 보라는 얼굴로 날 바라봤다. 떠오르는 대로 변명했다.
“방금 봤다시피 직업정신 하나는 쩌는 양반이라, 나도 속는 셈 치고 한번 믿어봤었지.”
“…그래. 저 치와와는 믿는다 치고, 다른 전문가는 누구야.”
막 리코더 불기 시작한 7살짜리 순혈 드래곤이다. 이걸 그대로 말했다간 누나가 분명 로우킥을 날리려 들 텐데….
“그, 실명 공개하는 걸 꺼리는 분이셔서….”
“그럼 어떻게 알게 된 건데. 지금은 어디 있고?”
“엄크 떠서 집에 갔음.”
“뭐가 떠?”
“아무튼 마력 감지 부분에서는 독보적인 전문가니까, 그냥 속는 셈 치고 좀 믿어보라고. 내가 아무 근거 없이 이러고 있겠어?”
이대론 답이 없겠다는 생각에 아예 태세를 변환했다. 계속해서 내 얼굴을 바라보던 누나가 작게 한숨 한 번 쉬고는 말했다.
“지금 핵심 게이트 찾겠다고 온 사방이 난리야, 짜샤. 마법청에서는 연산식 고치는 대로 탐지 마법 쉴 새 없이 쏴대고 있고.”
“어디에 쏴대고 있길래.”
“정부 기관 건물, 땅값 비싼 곳, 고위직 공무원들 사는 곳 근처.”
누나가 설명하길, 이 매장 주변이 핵심 게이트가 발생 고위험군 지역이긴 해도 100%까지는 못 된다고 한다.
더해서 중요 시설들이 몰린 중심지에 비해 우선도가 상대적으로 낮기도 하고. 극단적으로 말해, 물난리가 나든 말든 크게 상관이 없는 지역이라 생각하고 있단 얘기다.
“나중 가면 해주긴 하겠지만… 한참 나중에나 해주겠지. 어디 말하면 시위 일어나기 딱 좋을 내용이니까 어디 말하지는 말고.”
여기까지 들은 내 소감은, 이 세상 윗대가리 새끼들이 제정신인가 하는 거였다. 위험한 곳 빤히 내버려 두고 왜 지들 필요한 곳부터 똥가루를 뿌려대는 건데?
“그럼 나 혼자 1인시위 하는 건 돼? 누나?”
“너 그러는 거 이해하는데,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란 말야. 높으신 분들 요청 밀어내고 이곳에 탐지마법 써 달라고 끼어드는 거니까.”
“지금 어디 있는지 대충 아는 상황인데, 그래도 탐지마법 써야 돼?”
“마법청 쪽은 몰라도, 우리는 그래. 확실한 거 아니면 못 움직이니까.”
말하며 덧붙인 게, 헌터 쪽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단다.
사지 멀쩡한 헌터들은 죄다 대민 지원 가거나, 게이트 닫겠다고 구르고 있거나, 윗대가리들의 요청을 받아서 다른 곳에 핵심 게이트가 있는지를 수색하고 있다고.
어느 전문가한테 자문받은 건지를 물어본 것도 이 이유에서란다. 공신력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이 아니고서야 뭔 헛소리냐며 무시할 테니까….
“…못 받겠네, 그러면.”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게 맞다. 전문가랍시고 모인 게 유치원 다니는 순혈 드래곤, 경력 2주 차 초짜 반마법사, 바지에 지리기 직전의 치와와다?
솔직히 나라도 못 믿는다. 심란한 마음에 누나에게 물었다.
“그럼 누나는. 이러고 있어도 괜찮아?”
“난 너 믿으니까 이러고 있는 거지. 이찬 네가 보통 평범한 녀석이냐.”
“…그나마 위로가 되네.”
“지금 컨디션 괜찮으니까, 어디가 수상한지나 한번 말해봐. 직접 가서 보게.”
멀지는 않다. 카운터 쪽으로 가, 멍멍이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말했다.
“잠깐 밖에 나갔다 올 테니까, 여기서 좀 쉬고 있어 봐. 알았지.”
“알았소이다.”
작게 속삭이듯 대답해 온다. 다음으로 누나를 바라보며 손가락으로 밖을 가리킨 뒤, 테이블을 건너 밖으로 나왔다.
밖에 나오는 순간 폭우가 전신을 후려갈기기 시작했고, 겨우 마르나 했던 옷들이 또다시 2kg쯤 물을 먹어 무거워졌다. 이 망할 놈의 비는 적당히를 몰라, 적당히를.
건물에 걸친 저 망할 먹구름이 내가 건드리면 사라져 줄까, 아닐까. 손으로 가리며 생각하던 도중, 누나가 대뜸 반대쪽 손을 부여잡고는 말했다.
“야, 이찬. 네가 찾은 거 어디에 있어.”
“쭉 걸어서 3분. 그건 왜?”
“체질 풀어 봐. 내가 앞장설 테니까.”
풀래서 풀었다. 내 손을 한번 고쳐 쥐고는 성큼성큼 앞으로 걷는데, 자전거마저 떠내려 다닐 급류 속에서도 아까처럼 일체의 저항이 없다.
따라가는 느낌이 어째, 보트 붙잡은 채로 반쯤 끌려가는 기분이다. 중간쯤 갈 즈음 떠오르는 게 있어 물었다.
“누나 무게는 누나 마음대로 할 수 있어?”
“어. 살아있는 거엔 내가 찝찝해서 못 쓰는데, 내 몸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까. 그 녀석 고삐 안 쥐고 날아다니는 것도 요령 부리면 할 수 있고.”
“그렇구만.”
“근데 이거 전에 너한테 얘기 안 해줬었던가?”
“안 해줬지. 전에 비둘기가 매장 박살 냈을 때도 그냥 말없이 사라졌었잖어.”
“그럼 지금 말했으니까 좀 봐줘.”
“봐주긴 뭘 봐줘? 날아다니든 말든 누나 맘이지.”
그간 못했던 대화를 하는 셈 치며 마저 걷기를 2분. 아침에 하나가 짚어 줬었던 맨홀 뚜껑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이 뚜껑 따면 돼?”
“어.”
바로 말없이 몸을 숙여 맨홀 뚜껑에 손을 얹고는, 뚜껑 테두리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단숨에 끄집어내는 누나.
이제서야 이 안에 뭐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확인하는 순간에는 탄식과 감탄이 동시에 튀어나오더라.
“이야, 참….”
우선, 빗물이 전혀 빨려 들어가고 있질 않다. 보이지 않는 공기 벽에라도 막혀있는 것 같다.
또 내부가 정상이었다면, 이곳에 철심을 박아 만든 사다리가 멀쩡히 존재했을 것이다. 하수도 내부를 보수하려거든 맨홀을 통해 진입해야 할 테니까.
그 사다리가 나선구조로 배배 꼬여가고 있었다. 꼬인 게 아니라, 꼬여가고 있다.
그러다 때로는 원래 상태로 돌아오기도 하고, 때로는 L자 모양으로 구부러지기도 하고. 눈의 착각인 건지 벽이 뒤틀리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코 정상은 아니다.
여기까지 확인한 뒤 누나를 바라봤는데, 어느새 주머니에서 금연초를 꺼내 물고 있더라. 그래도 의견은 물어야 했다.
“어떤데, 누나. 여기 맞는 거 같아?”
“…이런 썅….”
맞다는 것 같다. 물 들어간 금연초를 뻐끔대는 누나를 바라보는 도중, 오늘 세 번째 겪은 현상을 네 번째로 겪었다. 고함 소리가 아니라, 속삭이듯이 조용히.
“건강하신 것 같아 다행이군요, 사장님.”
목소리 들린 쪽을 돌아보니, 익숙한 중절모와 은색 수염이 보였다. 자잘한 주름만큼이나 인자한 얼굴 표정도.
“어? 아니, 어르신. 언제 오신 거예요?”
“방금 막 온 참입니다. 그나저나, 두 분께서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