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39)
이세계 편돌이-138화(139/331)
138화. 단골손님 어셈블 (1)
* * *
점장이 출근할 때, 머리 색과 비슷한 연갈색 가디건에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오는 스커트를 입고 나온다. 오늘도 거의 비슷하게 입고 나왔다.
평소와 전혀 다를 것 없는 수수한 차림인데, 오늘따라 점장 인상이 유독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입은 옷이 젖기는커녕 물기가 단 한 방울도 없었기 때문이다.
온 사방에 널브러진 상품들 사이에서 무슨 일 있었냐는 듯 태연하게 서 있는 게, 과장 좀 보태면 신비하게 보인다. 레인코트로도 감당이 안 되는 날씨에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건지.
이걸 입 밖으로 내진 않았는데, 점장이 싱글싱글 웃으며 대답했다.
“공간이동으로 왔지. 슥슥 해갖구.”
“허어….”
“근데 나만 깔끔하니까 좀 눈치 보인다. 체질 잠깐 풀어볼래?”
체질을 풀고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오른손을 치켜들어 손가락을 딱 튕기는 점장.
동시에 몸에 느껴지던 축축한 감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옷이 가벼워졌다. 나 외에 다른 손님들도 모두 똑같이 됐고.
이후엔 가디건 주머니에 양손 집어넣은 뒤, 더없이 해맑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해온다.
“오늘 난 무적이야, 찬아.”
“그거 참 희소식이네요. 그런데 오늘 정확히 얼마나 무적이신 겁니까?”
“방금 두 번 무적이었으니까, 앞으로 일곱 번?”
시간을 물어본 것에 횟수로 대답을 해온다. 맥락만으로 알아듣자면, 마법을 공간이동 해오는 데에 한 번. 매장 안 옷들에서 물기 빼내는 데에 한 번 썼다는 얘긴가…?
아무튼 무적인 건 좋은데, 왜 하필이면 애매하게 아홉 번 무적이야.
잠깐 빨강 사기맵을 떠올리긴 했으나, 더 묻지는 않았다. 매장 상태며 단골손님들 행색이며, 점장 옷차림 제외한 모든 게 다 엉망이다.
이걸 어디서부터 수습해야 하나. 생각하던 도중, 옆에서 누나가 읊조리듯 점장을 불렀다.
“언니.”
전에 들어본 적 없는 무거운 목소리다. 살짝 덜 해맑아진 얼굴이 되어 대답하는 점장.
“윤하, 아침에 봤을 때보다 훨씬 더 피곤해 보이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 언니?”
“물론이지. 그 전에, 경관분부터 좀 쉬게 해드려야겠다.”
누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날 바라보길래, 볼일 보라는 의미 담아서 고개 끄덕여줬다. 점장이랑 누나, 경관 셋이서 볼일 본다 치고, 그러면….
“콜록. 차, 찬이 씨.”
이쪽을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시간 없으니 10분 내로. 우릴 바라보던 어르신께서 들고 있던 오토바이를 내려놓고는 물어보셨다.
“사장님. 오토바이는 어디로 가져가는 게 좋겠습니까.”
“어… 음료 진열대 쪽이 길쭉하니까, 거기에 세워두시면 될 것 같아요.”
“그럼 그쪽에 세워두고, 잠깐만 쉬고 있겠습니다. 살짝 팔이 쑤셔서 말이지요.”
팔이 쑤시다 말씀하시는 것치고는 어조가 무척 홀가분하다. 우리끼리 대화 나누는 동안 자리를 비켜주시려는 의도라 여기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말씀드리자 고개 끄덕이고는 오토바이를 끌고 매장 안쪽으로 들어가셨고, 난 엘레나 양을 반쯤 질질 끌다시피 하며 치와와 옆자리로 갔다.
터가 아주 안 좋은 곳이긴 하지만, 당장 매장에 앉을 만한 곳이 여기밖에 없다. 의자에 앉혀놓자마자 테이블 위에 납작 엎드려 웅얼대는 엘레나 양.
“폐 끼쳐서 죄송해요….”
“저한테 죄송해하실 건 없고. 내가 죽을 뻔했나? 엘레나 양이 죽을 뻔한 거지.”
“…으으.”
“그래도 말은 해야겠습니다. 뭔 일 일어날지 모르니까 오지 말라고 톡 보냈는데, 그걸 보고도 찾아올 마음이 들었어요?”
이유가 짐작이 가긴 했지만, 내가 직접 말할 내용은 아닌 것 같아서 입 다물고 있었다. 곧바로 예상 답안을 제출하는 엘레나 양.
“그게, 찬이 씨 엄청 걱정돼서!”
“아, 제가 걱정이 엄청 되셨다…?”
반은 미안하고, 반은 짜증 나는 감정 그대로 담아 말했다.
이 단골 양반들이 단체로 청개구리가 빙의하기라도 했나, 왜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무슨 양치기 소년이야?
“그, 그래도요….”
의기소침해진 채로 말해오는 게 이런 내용이었다. 오늘 아침 전파가 끊기기 직전까지 집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는데, 공중에서 촬영한 화면들 중에 익숙한 거리가 비쳤다고 한다.
“이야, 그새 TV에 저희 매장이 나왔었어요?”
“아주 잠깐요. TV에서 지하철역까지 물에 잠긴 거 보라고 막 나오는데, 찬이 씨 매장에 불 켜져 있는 게 보이더라구요. 다른 데는 다 불 꺼져있는데.”
그 잠깐 이후에는 화면이 먹구름으로 온통 뒤덮여버렸고, 이게 결정타였다. 저걸 어떻게 하냐며 한참 동안 거실을 빙빙 돌다가, 냅다 짐 챙겨서 뛰쳐나왔다고.
“그래서, 그 다음엔요.”
“택시 정류장에서 택시 잡았죠. 비가 엄청 많이 와서 그런지, 잡는 데에 한참 걸리기도 했고….”
어떻게든 잡기는 했는데, 목적지를 말해주는 순간 택시 기사가 거길 어느 미친놈이 가냐며 성을 냈다고 한다.
택시비 더블 불러가며 사정사정한 끝에 근처까지만 오는 걸로 어떻게든 합의를 봤고, 딱 비구름 안 닿는 곳에서 내린 뒤엔 헤엄을 쳐서라도 매장까지 찾아올 작정이었다.
“그렇게 오던 도중에 경관님 만난 거고?”
“네. 그 덕분에, 읍. 콜록! 콜록, 콜록!”
말하는 도중 목에 물이 올라오기라도 한 건지, 또다시 연신 기침을 해댄다. 기침 소리가 예사롭지 않아 물었다.
“지금 감기 걸리신 거 아녜요? 안에 입은 옷 다 젖어서 체온 엄청 떨어지셨을 건데.”
“아녜요! 잠깐 사레들려서 그래요. 레인코트 입어도 모자랄 것 같아서, 일부러 래쉬가드 입고 나왔고! 콜록!”
“…예?”
잠깐 멍해졌다. 안에 뭘 입고 나왔다고?
“래쉬가드요. 방수되는 가방 찾으려고 집 안 뒤지다가, 옛날에 수영복 사뒀던 게 떠올랐거든요. 내친김에.”
래쉬가드란, 수상스포츠를 위한 기능성 의복을 뜻한다. 야외에서 수영하며 생길 찰과상, 혹은 햇볕에 노출되어 생길 발진(rash)을 막는(guard) 용도.
쉽게 말해, 속옷 대용으로 전신수영복 비스무리한 걸 입고 왔다는 소리다. 대체 무슨 약을 해야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는 거지?
“어차피 안에 다 젖을 거, 래쉬가드 입고 나오면 훨씬 괜찮을 것 같았거든요. 오는 도중에 몇 번 헤엄칠 일이 있었는데, 엄청 편했고!”
실용성에 입각한 패션이라는 것 같은데,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을란다. 그래, 솔직히 누가 안에 뭘 입고 나오든 내가 알 바도 아니고, 물에 빠진 생쥐 꼴 되는 것보다야 이게 훨씬 낫지….
이건 그러려니 치고, 다음 질문.
“방수 가방은 왜 필요하셨던 겁니까?”
“아. 그게, 잠시만요.”
기다렸다는 듯이 레인코트 뒤쪽에 자기 손을 집어넣는 엘레나 양. 차마 볼 엄두가 안 나서 고개 돌리고 기다렸다. 지퍼 열리는 소리, 부스럭거리는 소리.
그다음엔 테이블 위에 무언가가 덜그럭 올라가는 소리. 이제 됐다 싶어 확인해봤는데, 끈 달린 검은 주머니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채였다.
사이즈는 좋게 쳐줘 봐야 테니스 공 정도. 잔뜩 챙겨왔다는 것치고는 크기가 많이 작아 보였다. 저것도 마법 같은 게 따로 걸려있는 건가?
“이게 공간 확장 마법 걸려있는 주머니인데요.”
“아하. 저거 엄청 비싼 거 아니에요?”
“24개월 할부로 샀는데, 아직 반도 못 갚았어요. 마석 바꾸는 값도 어마무시하고,”
말하고는 시무룩해져 버린 엘레나 양. 괜한 걸 물은 것 같다.
“집에 있는 약 만드는 세트랑 마법 약초들, 약품들 잔뜩 챙겨서 가져왔어요. 혹시라도 찬이 씨 다치셨을까 봐 걱정돼서….”
엘레나 양이 묘약 회사 일과는 별개로, 집에서 마법약 만든다는 얘기를 했었다. 취미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마법약 공방 컨셉 카페까지 찾아갈 정도로 진심이기도 하다.
“꼭 다치신 게 아니더라도, 말씀해주시는 것들 어지간한 건 전부 만들 수 있고.”
더해서 자기가 자신 있는 분야에 관해 말할 때는 어투가 무척 담담해지는 편이기도 한데, 방금 한 말이 딱 그랬다.
노력해 보겠다― 이런 수준을 넘어 담담하게 사실을 말하는 느낌. 아무튼 내가 많이 걱정이 됐다는 것도 알겠고, 그래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도 잘 알겠다.
이게 고맙지 않은 건 아니다. 당연히 고맙다. 백번 고맙기는 한데….
“그래도, 다음부턴 이런 일 만들지 말죠. 저희.”
“네….”
“이거 진지하게 하는 말입니다.”
타인을 위한답시고 하는 행동이 오히려 타인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말로 꺼내기는 쉬우나, 쉬운 만큼 실수하기도 쉽다.
이걸 난 나이 스물넷에, 비싼 값 치러서 겨우 배웠었다. 그러니 엘레나 양도 가능할 거라 믿는다. 나처럼 무식하게 직접 가방끈 끊은 놈도 아니니 훨씬 더 빠르게 배우겠지.
“걱정해주시는 거 고마워요. 진짜 고맙고 감사한데, 나중에 제가 걱정할 것도 생각해주시면 훨씬 더 감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제 말 이해됐어요?”
“네… 콜록, 콜록!”
“어우. 더 길게 얘기 안 할 테니까, 일단은 좀 쉬셔요.”
엘레나 양도 멍멍이 녀석과 마찬가지로 긴장이 풀린 건지, 목소리에 힘 빠진 채로 지긋이 날 올려다보고만 있다. 여기까지 얘기하는 데에 딱 15분.
“…….”
누나와 점장, 경관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경관은 몸을 거의 추스른 건지, 유제품 코너 앞에서 근무복이나 어깨띠, 경광봉을 하나씩 점검하는 중이다.
다른 둘은 유제품 코너에서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한창 대화하는 중이고. 매장 전부를 눈으로 슥 훑은 뒤, 경관에게 다가갔다.
“몸은 좀 괜찮아지셨습니까? 경관님?”
“괜찮습니다. 사장님은 어떠십니까?”
“저도 괜찮아요. 그런데 경관님, 혹시 점장님이랑 누나한테 들은 얘기 없으세요?”
“…업주님께서 제게 따로 말씀하신 건 없고, 저 헌터분과는… 두 분이 지인이십니까?”
“예.”
대답하자, 머리만 살짝 돌려 둘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는 가라앉은 어조로 대답해오는 경관.
“헌터분께서 일이 잘못되거든, 매장 상황 유지를 부탁한다고 하셨습니다.”
“어… 예?”
“자세한 건 직접 들어보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별로 내키지는 않다는 뉘앙스였다. 살짝 고개 끄덕인 뒤 누나와 점장 옆에 섰는데, 막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더라.
“언니, 이런 일 해본 거 오랜만이잖아. 내가 언니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오랜만이기는! 나 아직 한창이라구, 윤하야.”
“누나. 도중에 끼어들어서 미안한데, 경관님한테 대체 뭔 얘기 한 거임?”
빠지라는 얘기 들을 거 각오하고 끼어들었다. 누나나 점장이나 따로 딴지를 걸지는 않았고, 누나가 바로 본론을 얘기해왔다.
“이찬. 밖에 저거 찾느라 고생했고, 넌 여기서 쉬고 있어.”
“쉬어도 될 상황이면 쉬겠는데, 뭔 얘기 한 거냐니까?”
“언니랑 나랑 단둘이서 갈 거야. 매장 손님들은 경관님께 맡기고.”
“둘이서? 둘이서 맨홀 밑에 갔다 온다고?”
“지금 인원이 모자라단 말야. 도움이나 지원요청 해봐야 이미 늦었고―”
자기가 마법을 건 사물으로부터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질 경우, 사물에 건 마법이 풀려버린다고 한다.
때문에 점장과 자신이 내려갈 경우에 매장이 어찌 될지 모른다며 말을 해왔는데….
중간에 끊었다. 누나가 건 전제 중에 틀려먹은 게 하나 있어서였다.
“인원 안 모자라. 누나.”
“그건 뭔 소리야?”
“뭔 소린지 지금부터 말할 거니까, 한번 들어나 봐봐. 점장님도요.”
“응. 어떤 얘긴데?”
미리 떠올려둔 것들을 떠오르는 대로 이야기했다. 지금 매장이 정확히 어떤 상황이고, 매장 손님들이 지금 여기에 왜 찾아온 거며, 이 단골손님들이 지금 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는가.
그리고, 난 뭘 할 것인가.
여기까지 말하자 점장은 꽤 많이, 누나는 아예 눈이 동그래졌다. 둘 중 점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진심인 거지? 찬이.”
“아직은요.”
“응. 그럼 난 찬이 존중할래.”
“너 물릴 마음은 없어?”
“물리고 싶을 때 되면 그때 따로 말해줄게, 누나.”
“그럼 그렇다 치고, 저 손님분들은. 지금 우리 하는 일 도와주겠대? 대피 안 하고?”
이건 난 모른다. 아직 의견 물어본 게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 여기서 말이라도 꺼내 볼 수 있는 놈이 나 하나밖에 없다. 매장 안의 손님들이며, 점장이나 누나며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게 아니잖은가.
믿는 건 딱 하나다. 난 매장 손님들 대할 때, 항상 진심으로 대했었다.
그러니 이 손님들도 내가 진심으로 말하면 알아주리라 믿는다. 치와와가 행복회로 타는 냄새 난다며 투덜거릴 게 걱정되기는 하지만….
“어차피 이젠 대피하려고 해도 못 하잖아. 아니야?”
“…….”
금연초가 마려운지 파이프를 꺼내 손가락에 끼워 빙빙 돌리다, 멈추고는 대답해오는 누나.
“해. 나도 너 존중해 줄 테니까.”
좋다. 심호흡 한 번 한 뒤, 냅다 외쳤다.
“손님분들! 쉬시는 중에 죄송한데요!”
외침과 동시에 일제히 시선이 이쪽을 향하는 게 느껴졌다. 일하고 있는 치와와 놈 빼고. 살짝 속이 근질거리긴 했으나, 마저 말했다.
“제가 할 얘기가 좀 있어서 그런데, 잠깐 모여보시겠습니까?”
* * *
편돌이가 오랬다고 진짜 왔다. 매장 내 인원수가 일곱에 한 마리. 열거한다면 나, 점장, 윤하 누나, 울프 어르신, 엘레나 양, 치와와, 이루엘 경관, 멍멍이.
딱 두 명을 제외하면, 내가 아는 인맥이 사실상 여기 다 있다.
하나 녀석이 지금 어떻게 됐을지가 걱정되긴 했지만, 최소한 여기보다는 안전한 곳 가 있겠지. 교수야 뭐, 자기 할 일 하고 있을 테고….
“야, 편돌아.”
“왜요.”
“그 강아지는 뭐냐?”
“끼잉….”
매장에 모르는 얼굴이 워낙 많아서인지, 내가 끄집어내기 전까지도 멍멍이가 나오려 들질 않더라. 무릎에 앉혀놓은 채로 마저 말을 이었다. 얘도 들을 건 들어야지.
“물에 떠내려가는 걸 구했는데, 얘가 대인공포증이 있더라고요.”
“헥, 헥.”
“대인공포증은 뭔?”
“어머. 엄청 귀엽다….”
“쓰다듬는 것도 나중에 쓰다듬으시고. 지금 인원이 많으니까, 하고 싶은 말들 있으시면 나중에 손 들고 해주십쇼.”
다들 나이를 드실 만큼 드셔서인가, 알아듣고 고개 끄덕여주더라. 키즈카페 알바 할 적에 손들고 발언하라고 하면 어느 쪽 손 말하는 거냐며 토 다는 애들이 꼭 하나씩은 있었는데 말야.
“우선, 지금 상황이 대충 이렇습니다. 손님분들.”
상황 자체는 길게 얘기할 게 없었다. 지금 우리 편의점 지하에 핵심 게이트가 있고, 손님들 전부 큰일 나게 생겼다.
이에 대한 반응이 다양했는데, 산전수전 다 겪었을 어르신이나 경관은 무덤덤했던 반면, 치와와는 몹시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야. 그게 왜 하필이면 내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서 튀어나오는 건데?”
“저도 싫어요. 싫은데, 다른 곳에서 나타나면 그 근처 사는 분들도 다 똑같은 소리 하지 않을까요?”
“이런 썅, 똥 싸러 왔다가 별일을 다 겪네.”
그래도 원체 성깔이 괴팍해서 그런가, 별일 치부하고는 말더라. 외에도 엘레나 양 표정이 무척 우울해졌는데….
“그…러면, 다른 분들도 다 같이 큰일 나시는 거죠?”
“예. 문제는, 지금 그중에 저희가 제일 큰일 나게 생겼다는 거고….”
여기서부터가 핵심이다. 잠깐 생각하다, 매뉴얼대로 했다. 원래 분위기가 심각할 때면, 처맞을 말을 하는 놈이 하나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제가 오지 말라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그렇죠?”
이건 다들 찔리는지 아무 말 안 하더라. 그래, 다들 나 보러 온 거잖아. 내가 와서 같이 큰일 나 달라고 했어?
“이왕 오신 김에 저 좀 도와주십쇼. 저 아직 첫 월급도 못 받았습니다.”
반쯤 서로에 대한 소개를 곁들어가며 말을 이었다. 치와와 놈은 코딩을 잘하고, 엘레나 양은 약을 잘 만들고, 어르신께서는 어깨를 잘 뽑으시고, 경관은 대민 지원의 스페셜리스트다.
그리고 점장은 왕년의 대마법사요, 윤하 누나는 A급 헌터니, 우리끼리 머리 맞대고 고민 좀 하다 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겠냐는 것.
“대충 여기까지인데, 혹시 하실 말씀 있으시면 손 들고―”
“야, 씹새야.”
늘 그렇듯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어 처먹는다. 자기 어금니에 뭐라도 꼈는지 발톱으로 어금니를 긁어대며 묻는 치와와.
“그럼 넌 뭐 할 건데?”
이건 아까 생각해뒀다. 바로 말했다.
“내려갈 겁니다. 핵심 게이트 닫으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