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42)
이세계 편돌이-141화(142/331)
141화. 단골손님 어셈블 (4)
* * *
일반적인 게이트들의 특징. 발생한 지점 주변의 공간을 빨아들이는 동시에 관문 역할을 겸하고, 내부에 다른 아공간을 형성한다.
“지금은 그 반대야. 발생한 지점 주변으로 공간이 부풀고 있고, 내부가 아니라 이곳 자체가 아공간이 되어버린 것 같은데….”
“그걸 보면 바로 알 수 있어?”
“대충은. 저쪽 하수도 끝에 보여?”
고갯짓만으로 하수도 저편을 가리키는 누나. 맨홀에서 새어 들어오는 빛이 유일한 광원인 탓에 어둡기 짝이 없긴 했지만, 딱 하나 의아한 점이 눈에 띄기는 했다.
저쪽 끝이 수평이 아니었다. 완만한 곡선을 그리듯 굽어있다.
여길 만들었을 수도공사 드워프들이 쓸데없이 미적 감각을 발휘했다거나, 공사 도중 보드카를 물탱크째로 들이마신 게 아니라면….
“여기가 지금 원 모양으로 부풀어 있다는 얘기야? 공간째로?”
“그거 맞어. 우리 서 있는 곳은 부푼 공간의 표면인 거고. 이제 머릿속에 좀 그려져?”
“어….”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문과 출신이다. 이걸 지금이라도 이실직고할까?
입 밖까지 튀어나오려던 걸 삼켰다. 그래도 중학교 과학 시간에 졸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가 게이트핵을 찾으러 가는 거고, 핵이라는 게 보통은 중심부에 있다.
그러면 이 게이트핵도 부푼 공간의 중심부에 있을 터다. 우리가 표면에 서 있다 했으니, 중심부로 가려면….
“여기가 끝이 아니라, 여기서 밑으로 더 뚫고 내려가야 한다?”
“그것도 맞고.”
“어떻게?”
주변에 보이는 거래 봐야 기이하게 비틀린 콘크리트 기둥 몇 개, 배수 파이프, 신발 바닥을 겨우 적시는 높이만큼 고인 구정물 정도. 적어도 여기서는 못 내려간다.
“…일단 뭐 있는지 확인 좀 해보고. 언니.”
“응, 윤하야.”
“이 공간이 구조가 정확히 어떻게 되어 있는지, 어느 정도 크기인지를 좀 확인해야 될 것 같아. 가능할까?”
“안 될 거 없지. 나도 잠깐 생각 좀 해보고. 음….”
수 초가량 팔짱을 낀 채로 생각하다, 바로 오른손 손가락을 튕긴다. 동시에 점장 머리 위에 핸드볼 공만 한 흰색 빛의 구체가 하나 생겨났다.
한 손으로는 두둥실 떠오른 구체를, 반대편 손으로는 주머니에서 폰을 꺼낸 뒤, 붙잡은 구체를 하수도 저편의 어둠을 향해 살포시 밀어 보낸다.
점장 손에서 떨어지자마자, 구체가 쏜살같이 어둠 저편으로 날아가 버렸다. 다음에는 점장이 엄지손가락으로 폰 화면을 꾹 누르고는, 우릴 올려다보며 말해왔다.
“속도는 초속 50m 정도로 해 놨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 스탑워치로 시간 잴 거구.”
“원래 탐지마법이 그래요, 점장님?”
“좀 달라. 음파탐지기처럼 쏘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까….”
그래서 음파 마법이 아니라 무소음 드론 마법을 썼나 보다. 스톱워치로 1분 언저리가 찍힐 즈음, 점장이 날려 보낸 방향의 반대편에서 구체가 다시 나타났다.
돌아온 구체를 손으로 슬슬 쓰다듬어 사라지게 한 뒤, 다시 누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점장.
“막히는 것 없이 직선으로 1분에 둘레가 3km니까… 중심까지는 500m 정도?”
“외에 다른 건 없고?”
“해변처럼 생긴 곳이 하나 있긴 했어. 꽤 넓었구, 좀 밝았구.”
“…거기까지는 얼마나 걸려?”
“음, 20분 정도?”
상상력이 좋지 않은 쪽으로 자극되는 발언이다. 누나가 호수를 내려가는 길목 후보군으로 선정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맞다면, 내가 3m 이상의 깊은 물에 들어가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이것도 마법으로 어떻게 되기는 하나― 생각하던 와중, 누나가 우릴 돌아보고는 마저 말해왔다.
“언니가 말한 쪽을 먼저 가서 봐야 할 것 같은데. 동의하세요? 어르신?”
“제 호위 대상께서 동의하신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저는… 예. 가야죠.”
그래도 최대한 빨리 대답했다. 내가 관광하러 온 것도 아니고, 의욕 떨어트리는 대답 해 봐야 눈치 없는 놈이란 얘기나 들을 테니까.
* * *
출발하기 직전, 점장이 오른손 손가락을 툭 튕겼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아까와 똑같은 테니스 공만 한 크기의 구체가 생겨났는데, 아까 것보다는 훨씬 밝았으나 두둥실 떠다니는 움직임이 느릿느릿했다.
“그러고 계시니까 머리에 전구 떠오른 거 같습니다, 점장님.”
“그치? 그거 살짝 노리긴 했어.”
만족스럽다는 듯 자기 머리 위를 한번 올려다보고는, 손가락을 펼쳤다 접으며 말해왔다.
“이제 네 번 남았네.”
“어….”
“그래도, 어두워서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보단 나으니까. 나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 잘 기억해 둬, 찬아.”
“…예.”
생각을 잘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손전등이라도 가져올 걸 그랬네.
이다음엔 어르신께서 모자를 벗으셨다. 주변에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니, 가능한 한 감각을 기울여 보겠다는 이유에서였다.
“저희는 일이 없을 때는 늘 한가하니까요.”
위협이 없으면 호위할 일도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다. 이 시점에서 누나가 어르신 정체가 궁금했는지, 내가 했던 유도신문을 똑같이 했다.
“기사 일 하실 때요? 울프 어르신?”
“예, 윤하 양. 대리기사 일이 그렇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나 때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받아치셨고 말이다. 기분 탓이겠지만, 이런 대화를 하는 걸 내심 즐기시는 것 같기도 하고….
“아, 네. 대리기사셨지….”
“주변 소음 줄이는 마법 써 드릴까요, 울프 어르신?”
“괜찮습니다. 업주님 수고를 덜어 드리려고 하는 일이고, 소음도 적당히 있는 편이 좋거든요.”
말씀하시면서는 털이 복슬복슬하게 덮인 귀 끝을 간간이 쫑긋거리신다. 슬슬 집중하시려는 것 같아 한마디만 더 말씀드렸다.
“부탁 좀 드릴게요, 어르신.”
“예.”
이렇게 짤막하게 준비 끝난 뒤엔 15분가량, 얕은 물을 찰박이며 걸었다. 외의 소리라고는 간간이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 어디선가 바람이 새는 소리가 고작이다.
걷는 도중, 누나가 이런 얘기를 해왔다.
“소음 듣고 마수들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다들 주변 시끄럽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서 걸어줘요. 괜히 시간 낭비하긴 좀 그래.”
“마수? 여기가 게이트 내부도 아닌데 마수가 있어?”
뒤따라 걸어가며 물었다. 마수가 게이트 내부에서만 서식한다고 전에 말해줬던 걸 분명 기억하고 있다. 묻자, 누나가 천장의 배배 꼬인 파이프를 올려다보며 대답해줬다.
“여기가 게이트 외부라고 부르긴 좀 애매하잖냐. 저게 저렇게 됐는데.”
“참….”
“저기도 의심스러운 거 하나 있고 말야. 봐봐.”
누나가 말하며 곁눈질한 곳을 보니, 하수도 외벽 구석에 웬 타르 덩어리 같은 게 엉겨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살짝 꾸물거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저게 슬라임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내부에 슬라임핵 떠다니는 거 확인하기 전까진 몰라. 그냥 기름 덩어리일 수도 있고, 아니더라도 지금은 가만히 있는 것 같으니까 그냥 두는 거고.”
“왜 가만히 있는 거임?”
“물리적으로 핵 건드리는 것만 아니면 안 움직이거든. 청각기관이나 후각기관도 없고, 주변 액체만 빨아들이고 나면 얌전해.”
더해서 빨아들인 액체의 성분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성질이 있다고 한다. 저게 슬라임일 경우, 구정물을 빨아들였으니 구정물 슬라임이 되겠지.
이걸 듣고 나니, 농담 삼아 할 말이 하나 떠올랐다. 슬쩍 물어봤다.
“누나. 쟤네가 액체를 먹고 사는 거면, 콜라도 잘 먹나?”
“먹겠지. 근데 그건 왜 물어?”
“저것들 핵 건드리면 움직일 거 아냐. 콜라 먹고 몸이 콜라로 변해버리면, 움직이다가 지멋대로 터져버리거나 하지 않을까?”
“…….”
“민트 캔디나 아이스크림 던지면 더 크게 터질 거고.”
이 질문에는 누나가 얼이 빠졌는지 말이 없었다. 대신 점장이 대답해줬다.
“찬아. 나 그거, 옛날에 TV 광고에서 봤어. 잘 팔릴 것 같아서 우리 매장에도 한번 들여놨었는데.”
“오. 매출 잘 나왔습니까?”
“하나도 안 팔려서 다 폐기 처분했지. 얼마 안 가서 금방 단종됐구.”
“무슨 맛이었길래.”
“약초 맛.”
나도 안 먹을 것 같다. 콜라면 콜라고 약초면 약초지, 약초 맛 콜라는 또 뭐야. 건강과 맛, 두 마리 토끼를 다 방생하려고 그런 건가?
“…야, 이찬.”
“어.”
“그 생각 해보니까 긴장 좀 풀렸다. 땡큐.”
“그럼 다행이고.”
간간이 곁눈질해 보는데, 누나 얼굴이 살짝 굳어있더라. 아무튼 이렇게 몇 분을 더 걸어, 중간 목적지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했다.
찾아올 필요성은 확실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단 얘기다. 일단은 주변이 밝은 데에 더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는데, 그 이유가 하필이면….
“이런 씨, 여긴 또 뭐야?”
여기가 해변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인과관계를 거쳐야 도심지 하수도 지하에 해수욕장이 조성될 수 있는 거냐?
그것도 단순한 해변이 아니었다. 지나온 길에 있던 구조물들이 뒤틀린 것처럼 이곳도 똑같이 뒤틀려 있었는데, 고작 파이프나 기둥 몇 개가 뒤틀리고 만 수준이 아니었다.
그냥, 그냥 더럽게 이상했다. 바닷물 색이 심상치 않게 시커먼 건 둘째 치고, 야자수 줄기가 나무줄기가 아니라 배수 파이프다. 대체 왜?
야자수 잎도 단순한 잎사귀가 아니라 색만 비슷한 분리수거 쓰레기봉투를 벅벅 찢어 아무렇게나 달아놓은 것 같고, 모래사장은 하수구 밑바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썩은 흙으로 되어있었다.
화룡점정을 찍은 건, 저 멀리에 보이는 활화산이었고. 화산 꼭대기에서 쏟아져나오는 화산재에 간간이 화산탄이 섞여 나와 바다에 떨어지는데, 보다 보니 뜬금없이 군고구마가 땡기더라.
“덥네.”
이게 누나의 한줄평이었는데, 목소리가 심드렁한 게 썩 달가운 상황은 아닌 듯했다. 난 이것보단 좀 더 자세한 평가가 필요하다.
“왜 하수도에 이딴 게 있는 거야. 여기가 멕시코 옥수수밭이라도 돼?”
“멕시코는 또 어디야?”
“나 사는 시골구석에 매운 음식 전문점 한 군데 있어. 여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 이런 게 왜 존재하는 거임?”
“단순히 존재하기만 하는 게 아니야. 생성되고 있는 거지.”
들은 직후엔 동문서답이라 생각했으나, 쓰레기장 해변을 좀 더 살펴보고 나니 누나 말이 이해가 됐다. 때꾸정 바닷물, 배수 파이프 야자수, 썩은 진흙사장.
이 모두가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바닷물은 점점 맑게, 야자수는 점점 더 그럴싸하게, 진흙사장은 점점 건조하게. 며칠 전에 누나와 이것과 비슷한 광경에 대해 대화한 적이 있다.
“이게 그러니까, 해변 테마의 게이트가 생성되고 있는 거다…?”
“어. 여기서 생성된 뒤엔 사라지고, 학원지구랑 산림공원 쪽에서 반반씩 나타나겠지.”
게이트가 지역별로 내부 테마가 다르다고 했었다. 학원지구 쪽 게이트 내부가 해변처럼 생겼고, 산림공원 쪽은 화산지대.
이곳이 지금 그 게이트를 생성하는 공장이나 다름없다는 얘기였다. 야자수 생긴 구조를 보면, 하수도 내부에 있는 구조물들을 끌어다가 매개로 삼고 있는 것 같고.
“그래도 하나는 알겠다. 우리가 헛짓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
이건 문외한인 나도 알 것 같다. 이런 게이트가 일반적인 거였으면 누나가 진즉에 말을 했을 테니까. 점점 맑아지는 물을 바라보던 누나가, 우릴 돌아보며 말해왔다.
“여기서부터가 문제지. 이건 다수결로 좀 정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떤 걸?”
“여기 잠수해서 내려가야 할 것 같거든. 혹시 너 잠수할 줄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