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43)
이세계 편돌이-142화(143/331)
142화. 단골손님 어셈블 (5)
* * *
대답하기에 앞서, 검푸른 바다를 슬쩍 바라보았다. 흠….
“정확히 몇 미터를 잠수하려고 하는 건데.”
“500미터.”
“흠…….”
“짜식. 쫄리냐?”
그렇게 말하며 누나가 피식 웃는 게 내 긴장을 풀어주려는 의도인 듯 했는데, 안 쫄리면 그게 편돌이야? 영화 속 용사지?
속으로 아무리 따져봐도,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맞냐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내 마지막 잠수기록은 초등학생 시절, 동네 목욕탕 냉탕에서 측정했었단 말이다.
그때 최고 기록이 80cm였다. 내게 미처 깨닫지 못했던 심해잠수부의 재능이 있고, 그걸 지금 각성해 기록을 100배 더 경신한다 해도 80m밖에 안 된다.
다 떠나서 잠수병 걸릴 게 뻔하잖아, 이거. 아니면 수압에 짓눌려 쥐포가 되어버리든가. 산소통 같은 거야 엘레나 양이 마법약 만들어준 게 있으니, 그걸로 어떻게든 되기야 하겠지만….
“무슨 생각하는지 아는데, 그 일 안 일어나. 지금은.”
설명이 생략됐단 걸 누나도 알고 있던 건지, 내 옆에 쪼그리고 앉아 한 손으로 퍼낸 물을 손날 쪽으로 흘려냈다.
물이 흘러내리는 게 일반적인 물과 달랐다. 일직선으로 주륵 떨어지질 않고 드라이아이스가 내려앉듯 퍼지고 있고, 그 속도도 느리다.
“게이트 내부가 생성되는 게 이런 식이야, 이찬. 처음엔 일정한 형태가 없는 마나 덩어리일 뿐이지만, 시간 지날수록 물리적으로 구현이 되는 거지.”
“아하….”
“이건 아직 바닷물 구현이 덜 된 거고. 바닷물처럼 생기긴 했지만, 아직은 바닷물보다는 마나 덩어리에 더 가까운 상태라고 보면 돼.”
때문에 수백 미터 바닷물에 짓눌려 납작한 편돌이가 될 일은 없을 거라는 게 누나 주장인 듯했는데, 듣고 있자니 다른 의문이 하나 떠올랐다.
“바닷물이 아니라 마나 덩어리 안에 잠수를 한다 치면, 그건 문제가 아예 없어?”
“그래서 다수결 얘기 한 거야. 나도 솔직히 이 짓까지 하긴 싫은데….”
“이거 외에 다른 방법은 없는 거지? 윤하야?”
도중에 점장이 물었고, 누나가 칼같이 대답했다.
“내 생각엔 그래, 언니. 저기 화산 뒷쪽에도 해변가 있는 거 보여?”
“응. 지금 보고 있어.”
나는 아직 못 봤다. 점장 시선이 향하는 곳을 그대로 바라봤는데, 누나 말대로 썩은 진흙들과 작대기 모양의 야자수가 몇 그루 보이긴 했다. 그 뒤로는 우리가 나왔던 것과 똑같이 생긴 하수도 출입구.
“우리가 반대 방향으로 걸었으면 저 출입구에서 나왔을 거야. 지금 여기 크기로 보면, 이 곳이 핵심 게이트 표면의 전부라고 봐야 할 것 같고….”
“그나마 시도라도 해볼 곳이 여기밖에 없다? 나머진 전부 통로뿐이라?”
“어. 그리고, 빨리 결정할수록 좋아.”
이러고는 덧붙이길, 지금 도시에 게이트가 거의 30분당 1개꼴로 생기고 있단다. 여기서부턴 추측의 영역이지만, 그 게이트 대부분이 여기서 생성될 거라고도 했고.
최대 30분 이내로 생성이 끝날 거라는 말로 이해된다. 그 후에는 도시 내 어딘가로 날아가 버릴 거고, 다시 다른 게이트가 다시 생성될 거라는데….
“그 게이트 내부환경이 어떨지가 미지수야. 재수 없게 설산지대나 정글 나오면, 그땐 진짜로 지하 뚫고 내려가야 돼.”
그 경우엔 시간 맞춰 내려갈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으니, 차라리 지하를 뚫고 내려가는 과정이라도 생략하자는 게 누나의 최종 의견이었다.
다 듣고 느낀 건, 이게 미친 짓이긴 해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미친 짓이라는 것.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시던 어르신께서 입을 여셨다.
“아직까지 의심되는 소리를 들은 건 없습니다, 윤하 양. 헌데 말이지요.”
“말씀하셔요, 울프 어르신.”
“발끝에서 미세한 진동 같은 게 규칙적으로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저 화산이 폭발할 때의 진동이라 여겼습니다만.”
이런 젠장할,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저 바닷속에 마수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네. 저는 무조건 있다고 보고 있어요.”
이 세상에 마수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솔직히 그딴 게 세상에 어디 있냐는 심정이었다. 갈기 활활 불타는 말이라든가, 다이어 울프 이빨이라든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나랑 하등 연관이 없을 일 같아서였다. 편의점 카운터에서 바코드만 찍으면 됐지, 뭐 그런 것까지 눈으로 직접 봐야 하나….
그렇게 애써 회피해 온 대가를 이제서야 기어코 치르게 생겼다. 그것도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물 반, 마나 반인 바닷속에서 말야.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여기까지는 감안했다. 확인차 물어봤다.
“누나.”
“어.”
“이거 말곤 방법이 없다. 맞아?”
이쯤 말하고 말았다. 누나가 알아서 알아들었을 테니까. 내 물음에 누나가 일말의 주저 없이 답해왔다.
“내가 큰일 날지언정 넌 안 나. 맹세한다.”
“갈게. 그러면.”
죽을 각오 따위는 안 했다. 지키지도 못할 각오를 백날 한다고 뭐 달라져? 어차피 강도가 목에 칼 들고 협박하면 바로 말 바꿀 텐데.
그래도 어떻게든 할 일 끝내고 돌아가겠다는 마음은 있다. 내 할 일을 안 하면 내 직장이 터지고, 내 생계도 터지고, 이제야 겨우 알기 시작한 지인들 안위도 똑같이 터져버리고 만다.
그럼 가야지, 뭐 어떻게 해. 안 들리도록 마른침 한 번 삼킨 뒤, 내가 먼저 화제를 꺼냈다.
“다른 두 분은 어떠세요?”
“사장님께서 가신다면, 전 당연히 따라가는 게 맞지요.”
“이게 당연할 일까지는 아니긴 한데….”
“아뇨. 당연한 겁니다.”
이걸 임무 비슷한 거라 여기시는 거면, 그렇게까지는 안 하셔도 된다. 미리 대답을 준비했는데, 어르신께서 몸 숙여 바짓단을 접으시고는 예상에서 한참 벗어난 말을 하시더라.
“젊은 청년이 이렇게 용기를 냈는데, 제가 어찌 가만히 있겠습니까.”
내가 마른침 삼키는 소리를 들으셨나 보다. 하긴, 너희들끼리 가란 말은 곧 죽어도 안 꺼내실 분이기는 해….
“찬아.”
이번엔 점장. 아까부터 미리 준비한 건지, 가디건 소매를 두 번 접어 팔 위쪽까지 올린 채다.
“나, 찬이한테 할 말 있어.”
“어떤 거요?”
“여기서 말구, 저 밑에서.”
양말을 가디건 주머니에 욱여넣고는 날 올려다보는데, 언뜻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 듯 보였다. 확신은 할 수 없지만, 그늘에 가까운 무언가였다.
“그러니까 나도 갈 거야.”
점장답지 않게 알쏭달쏭한 말이었으나, 점장이 입을 꾹 다물어버린 탓에 더 묻지는 못했다. 여하튼 이제 우리 넷은 간다고 치고.
이제 내가 할 게 두 개 남았다. 우선 어깨에 멘 부직포 가방 지퍼를 살짝 연 뒤, 가방 구석에 모여있는 약병을 꺼내 손바닥에 펼쳐 보였다.
그 중 진정약만 남기고 다시 집어넣은 뒤, 살짝 열린 가방 입구에 대고 물었다.
“야, 멍멍아. 넌 어쩔 거냐?”
어르신께서는 아직 이 녀석이 말한다는 걸 모르신다. 적당히 짖거나 낑낑대고 말 줄 알았는데, 대뜸 멍멍이가 이런 말을 해왔다.
“본견, 사장님과 같이 있을 때가 제일 즐겁소이다. 두 번째로 즐거운 건 밤거리를 산책하는 것이고.”
“어… 그래.”
“지금 사장님을 따라간다면, 두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것 아니오?”
“아마도?”
“그럼 따라가겠소. 아직 본견이 뭘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소만….”
자신 없다는 듯 말꼬리를 흐리다, 곧바로 정신을 차렸는지 말을 맺는다.
“…아. 바깥의 어르신께는, 상황이 나아지거든 제대로 인사드리겠다 전해주시오. 방금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척 곧은 분 같더구려.”
이러고는 조용해졌다. 잠깐 생각하다, 최대한 별일 아니라는 투를 가장해 어르신께 말씀드렸다.
“그렇다고 합니다, 어르신.”
어르신께서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이냐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계셨으나, 표정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너털웃음을 한 번 짓고는 가방을 바라보며 말하는 어르신.
“예. 나중에 차라도 같이 한잔하지요.”
그렇다고 한다. 곧바로 꺼낸 진정약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전부 들이켠 뒤, 누나에게 말했다.
“이제 어쩔 거야, 누나. 준비체조?”
“물 그렇게 안 차가워, 짜샤. 그래도 천천히 들어가는 게 맞아 보이기는 해. 괜히 우리 내려간다고 떠들고 다닐 필요는 없으니까….”
* * *
짧은 준비. 엘레나 양이 준 수중 호흡약을 다섯이서 나눠 사용했다. 코로 약 복용하는 것도 초등학생 시절 이후로 처음이다.
복용한 후에는 점장이 머리 위로 오른손 손가락을 한번 튕긴 뒤, 헛기침을 흠흠 하고는 설명해줬다.
“물 들어가서도 평소처럼 대화할 수 있게 해봤어. 반경은 20미터 정도.”
“어… 텔레파시 같은 건가?”
“텔레파시는 아니구. 피시전자가 텔레파시 쓰는 데에 익숙한 게 아니면, 머릿속으로 비명 지르는 것까지 전부 튀어나와 버리거든.”
그래서 딱 ‘입으로 말한다’라는 조건을 단 마법을 사용했다고. 내가 마법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런 마법까지 기초적인 마법에 포함이 되나 싶기는 했다.
“여러 마법 섞어서 비슷하게 효과만 내봤지. 안 그러면 나 잡혀가.”
“아하. 걔네들이 말을 대충 했나 봅니다.”
“응. 걔네들이 말 대충 했어.”
한 가지 마법을 한 번, 여러 가지 마법을 섞어서 한 번. 둘 다 똑같은 한 번이란 거겠지. 아무튼 그렇다니 그런 줄 알란다.
이후, 나도 바짓단과 소매를 접어 무릎과 팔까지 올렸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니, 딱 발등 언저리만 겨우 보였다.
그래도 아까보단 확실히 맑아진 게 느껴진다. 누나 말대로 물이 차갑지도 않았다. 차갑다, 따듯하다를 따지기 이전에, 까끌하다.
“이대로 내려가면 돼?”
“어. 밑에는 경사 엄청 가파를 텐데, 당황하지 말고.”
“알았어.”
마지막으로 심호흡 한 번 한 뒤 물속으로 들어갔다. 머리까지 잠기는 데에 여섯 걸음이면 충분했다.
바닷속 내부의 풍경은, 적어도 내게는 어두웠다. 밤하늘을 부유하는 기분이다.
물 색이 원체 시커먼 탓에 이런 듯했다. 아니면 내 몸뚱아리가 바싹 쫄아버려서 보여야 될 것들도 미연에 틀어막고 있든가, 몸에 마력이 없어서 그런 거든가.
다른 셋은 움직이는 데에 거침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보이지는 않았지만, 두런두런 들려오는 말소리들이 대체로 평온하다.
― 아직까지는 괜찮은 것 같은데. 어때? 윤하야?
― 괜찮은 것 같아. 그런데 언니, 우리 말하는 거 멀리까지도 다 들려?
― 전혀. 딱 우리끼리만 들을 수 있게 해놨어.
― 참, 언니는 이런 마법을 대체 어떻게 쓰는 건지 모르겠네….
― 억울하면 윤하도 왕년의 대마법사 해.
― 됐어, 언니. 내 마법 하나 다루는 것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여태 들어왔던 일상적인 대화 톤에 가까웠다. 듣다 보니 느낀 게, 점장과 누나가 서로 친하다는 건 알아도 정작 어떻게, 왜 친해졌는지는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자칭 영원한 18살과 30살 A급 헌터가 서로 어떤 연유로 만나서 친해진 것인가. 점장이 은퇴하기 이전에 만난 건지, 아니면 그 이후에 만난 건지도 모르겠고….
― 여러분, 잠깐 멈춰보시지요.
이건 어르신 목소리다. 멈추라고는 해도 당장 방법이 없어서, 딛고 있던 경사면의 손 닿는 곳을 아무 데나 부여잡았다. 웬 해초를 잡은 것 같다. 아니면 쓰레기봉투 끄트머리거나.
수 미터 떨어진 옆에서 흐릿하게 어르신 모습이 보이긴 했는데, 어디 한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말고는 모르겠다. 불안함에 물어봤다.
“뭐가 있어요? 어르신?”
― 예. 그리고,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듯합니다. 속도가 빠르지는 않습니다만….
지금 바로 움직이면 닿을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
다가오는 게 돌고래든 물고기든 감촉이 있을 건데, 닿을 테니 주의하라는 건 무슨 의미인가 싶었다. 허나 잠시 뒤, 무슨 말씀을 하신 건지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정말로 뭔가가 다가온 것이다. 고목 나무 두께에 가까운 무언가였는데, 표면에 오돌토돌한 무언가가 촘촘히 붙어있다. 그러니까, 이게.
“…빨판?”
문어 다리처럼 보인다. 같은 체급의 해산물로는 크라켄이 있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