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44)
이세계 편돌이-143화(144/331)
143화. 단골손님 어셈블 (6)
* * *
― 야. 소리 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머리에 총 겨누고 협박해도 소리 안 낼 거다. 이 문어 다리를 절대로 화나게 해선 안 돼.
두께 50cm는 될 문어 다리가 코앞에서 흐느적거리고 있다. 시야 왼쪽 밑의 심해에서부터 내가 붙잡은 경사면으로 뻗어져, 손 뻗으면 닿을 위치의 벽을 스치듯 쓸어내렸다.
뭉툭한 다리 끝이 벽을 쓸어내리는 걸 멈추고 끝을 내게 향해오는 모든 과정 동안, 내가 낼 수 있는 온 힘을 다해 가만히 있었다. 거의 숨도 안 내뱉었으니까.
체감상 수십 초가 넘게 지난 뒤, 문어 다리가 서서히 심해 밑바닥으로 가라앉아 사라졌다. 속으로 5초를 더 센 뒤 물었다.
“저거 왜 저렇게 큼?”
― 원래 큰 건 저만해. 흔한 건 아니지만.
“…….”
― 여튼 잘 참았다, 이찬. 교육 다 받고 온 놈들도 저런 거 맞닥뜨리면 별짓 다 하거든.
나도 별짓을 하기는 했다. 그 별짓이 재수 좋게도 옴짝달싹 못 하는 짓이었을 뿐이지.
엘레나 양에게 받아온 진정약이 일을 제대로 해주고 있는 것 같다. 체감이 된다. 해외토픽감 문어 다리가 눈앞에 흐느적대다 사라졌음에도 딱 ‘개무섭네’ 수준의 감상밖에 안 들고 있다.
― 다른 셋은 괜찮아요? 언니는?
― 귀에 물이 들어가긴 해도 버틸 만하오. 사실, 가방 안이라 뭐 보이는 게 없어서 말이오….
― 안 보는 게 좀 더 나을 수도 있어, 멍멍아. 어르신은요?
― 저도 괜찮습니다. 헌데 윤하 양, 저 문어가 저흴 해하기 전에 먼저 제압하는 건 어떻습니까?
― 안 될 건 없는데, 필요하다 싶으면 말씀드릴게요. 저놈 지금 자고 있는 것 같거든요. 다리 움직이는 게 엄청 불규칙해.
주변 반응이 나에 비해 훨씬 덤덤한 것도 있겠고. 충분히 대처 가능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드니, 무서웠던 것도 점점 할 만하지 않냐는 자신감으로 바뀌어 주더라.
근거 따위 하나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차라리 이쪽이 낫다.
― 일단 계속 내려갈 건데, 숨 돌릴 시간 줘? 이찬?
“괜찮으니까 빨리 내려가자, 누나.”
그래도 빨리 끝내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어쩔 수가 없더라.
좀 더 내려가자, 짚어가며 내려왔던 절벽의 경사면이 아예 수직이 되어버렸다. 벽에서 손을 뗀 뒤, 붙잡아가며 내려오던 벽을 올려다보았다.
순식간에 보이지도 않게 됐다. 이젠 자력으로는 돌아가고 싶어도 못 돌아간다.
허우적대듯 팔다리를 휘저어 봤다. 몸이 바로 서기는커녕 자세만 더 이상해졌다. 위아래가 어딘지 구분하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우주를 유영하듯, 하지만 우주복은 없이. 하염없이 내려가기만 했다. 누나와 점장은 거의 보이지도 않고, 가까운 거리에서 어르신만 힐끗힐끗 이쪽을 바라보고 계신다.
걱정되신다는 눈치라, 손만 살짝 들어 보이고 말았다. 괜찮다. 아직은.
의문이 점점 많아진다. 우리가 어느 정도 속도로 내려가고 있는 것인지, 어디까지 온 건지. 심지어는 내려가고 있기나 한 건지.
이걸 물어보고는 싶은데, 워낙 조용하니 말을 꺼내는 게 부담스럽다. 당장 출처가 어딘지도 모르는 문어 다리가 돌아다니는 판국에 소리를 내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 윤하야, 이제 얼마쯤 더 남은 것 같아?
다행히도 점장이 먼저 말 꺼냈다. 내 속 타는 냄새가 풀풀 풍겨서겠지.
― 이런 바다 테마 게이트에는 보통 해저 동굴 같은 게 있어, 언니. 동굴 출입구가 있을 만한 바위가 보이면 다 온 거라 생각하면 돼.
― 지금은 바닥도 안 보이니까, 아직 멀은 거고?
― 이제 2/3쯤 왔어. 마나 농도가 아까보다 더 진해져서, 그걸로… 잠깐, 좀 천천히 내려와야 될 것 같아요.
뭔가가 또 보여서인 듯한데, 천천히 내려가려 해도 속도를 줄일 방법이 없다. 다행히도 어르신께서 바로 내 다리를 붙잡아 주셨다.
그대로 반 바퀴 돌려 자세를 잡아 주셨는데, 신으신 구두 바닥 언저리가 은색으로 약하게 빛나고 있다. 빗물 딛던 것처럼 마력으로 뭘 하고 계신가 보다.
― 밑에 등불 빛 같은 게 보이는군요. 윤하 양.
― 네. 등불 빛 외에도, 좀….
“뭐가 있어? 누나?”
― 뭔가 있는데, 좀 많다.
뭐가 많은 거냐고 미처 묻기도 전에, 어르신께서 발치의 빛을 꺼트리시고는 내 팔을 붙잡고 밑으로 하강하셨다.
덩달아 딸려 내려가자 점장과 누나가 바로 보였고, 어르신께서 말씀하셨던 등불 빛의 정체도 확인할 수 있었다. 확인은 했는데, 저게… 씨….
“누나. 저거 초롱아귀잖어….”
이 명칭 말고는 어울릴 명칭이 없을 법한 물고기가 한 놈 있다. 문제는, 이놈 크기도 아까 본 문어 다리에 버금갈 만큼 비대했다는 것이다.
초롱처럼 생긴 발광체 밑으로 머리에 해당할 부위가 보였는데, 주둥아리를 뺀 나머지 부분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하다.
발광체 주변에는 새끼들로 보이는 군집이 하나. 아직 성장이 덜 된 것인지 초롱도 안 달려있고, 크기도 훨씬 작다. 딱 피라냐 크기.
그리고 문어 다리. 주둥아리가 천천히 문어 다리 쪽으로 다가가고 있다.
다가가면서는 서서히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개수를 헤아리기조차 힘든 이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딱히 누구에게랄 것 없이 물었다.
“저 미친놈이 저걸 왜 처먹으려 하는 거임?”
― …아, 젠장.
누나가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초롱아귀의 아가리가 닫혔다. 문어 다리에 이빨 수십 개가 박혔고, 그 순간.
― %#$~~~~~~!!
다리를 아야한 문어가, 깨물린 게 아팠는지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손톱으로 칠판을 긁는 소리에 가까웠다.
검붉은 액체가 흩뿌려지고, 문어 다리가 미친 듯이 요동친다. 요동치는 움직임에 맞춰 이빨을 박아넣은 초롱아귀도 딸려가듯 이리저리 휘둘려댔다.
혹등고래만 한 놈이 쥐불놀이마냥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단 말이다, 혹등고래만 한 놈이. 최대한 침착하게 누나에게 물었다.
“아니, 먹을 게 따로 있지 자는 놈을 왜 처먹냐고!!”
― 됐고! 다들 이제 저 꽉 붙잡아요! 마법 쓸 거니까!
곧바로 누나 바짓단을 한 손으로 부여잡았다. 어르신께서는 누나 재킷. 마지막으로 점장이 손을 붙잡음과 동시에 누나 몸이 급속도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알게 된 건데, 문어 다리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많고 거대했다. 문어 다리가 발아래, 머리 위의 어둠을 되는대로 휘저어대고 있다.
그중에는 초롱아귀가 딸려 다니는 다리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저놈이 끌려다니는 압력을 못 이긴 건지 이빨만 처박은 채로 일체의 미동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새끼 초롱아귀들이 뒤따라 헤엄쳐 다니고 있고. 간간이 문어 다리에 이빨을 박아넣으려는 걸 보면, 화가 나도 단단히 난 것 같은데….
“누나! 이제부터 뭐 어쩔 건데!!”
― 저놈들 저러기 시작한 이상 사려도 소용없어, 지체 없이 바로 갈 거야! 바닥 닿거든 셋은 바로 입구부터― 잠깐 놔 봐!
점장과 어르신께서 바로 손을 놓았고, 내가 약간 늦었다. 몸이 자유로워짐과 동시에 위로 솟구쳐서는 위로 양팔을 뻗는 누나.
그 손 위로, 문어 다리가 누나의 팔 위로 휘둘러졌다.
골리앗의 몽둥이를 손으로 막는 다윗의 꼴이었다. 찰나의 순간, 누나가 어떻게 됐을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허나, 잠시 뒤.
누나는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하다. 오히려 문어 다리 쪽이 반쯤 잘려 나가서는, 온 사방에 피를 철철 뿜어내댔다.
그 핏속에서 여러 가지가 보였다. 피 묻은 얼굴을 슥 닦아내는 누나, 손에 쥔 단검, 얼굴 일그러뜨린 채로 올라간 입꼬리도.
― 좋냐? 내가 다리 찢어발기니까 행복해? 어?
― #[email protected]$~~~~!! $%~~!!
― 좋으면 다리 더 갖고 와! 좋아 죽고 싶어질 만큼 회 쳐줄 테니까!!
고통에 겨운 비명 소리, 누나가 악에 받쳐 욕 내지르는 소리가 뒤섞여 들려온다. 의욕이 넘치는 건 좋은데,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않나?
― 윤하야! 릴렉스!
― 릴렉스 하고 있어! 언니!
말하며 자기 재킷을 벗어서는 손을 놓는다. 수직으로 곧게 떨어진 재킷이 점장 머리에 떨어졌고, 점장이 머리를 더듬어 재킷을 잡아 품에 안았다.
― 이놈 가만 내버려 두면 우리 끝까지 쫓아올 거야. 잠깐 상대 좀 하고 있을 테니까, 먼저 내려가서 출입구 찾아! 알았지!
― 알았어! 그래도 무리하진 말구!
잠깐 상대한다느니 무리하지 말라느니, 상황에 안 맞는 대화 내용이 오가고 있다. 이 와중에 몸부림치던 문어 다리는 완전히 찢어져 가라앉고 있고….
이해하려 하면 안 된다. 가끔 이런 일도 있는 세상인 거야.
가능한 만큼 머리 비운 뒤 재킷을 부여잡았다. 재킷의 지퍼가 꼭짓점이 되어, 재킷이 밑으로 훅 기울어 하강하기 시작했다.
누나가 순식간에 멀어져 보이지 않게 됐다. 일이 잘못되거든, A급 헌터도 별거 아니었다며 씹어먹을 안줏거리로 삼을 거다. 지가 싫으면 알아서 돌아오겠지.
영겁 같은 십수 초, 재킷이 바닥에 닿았다.
엎어지자마자 바로 반쯤 몸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팔놈의 심해 밑바닥, 바위 말고는 보이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해초, 출입구는커녕 물 빠질 수챗구멍조차 없다.
“점장님, 뭐 좀 보이세요? 제가 이 물속에서 눈이 갑자기 나빠져서 지금―”
― 고개 좀 숙여 볼래, 찬아?
질문에 부탁으로 대답해온다. 바로 고개 숙이자, 점장 스커트 옆에 오른손이 머물러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중지와 엄지가 맞닿아있다.
그대로 손가락을 튕기는 점장. 등 위로 축구공이 터지는 듯한 진동과 소리가 연달아 느껴지고, 들려왔다. 내 사방으로 넝마가 된 물고기들이 쏟아져 내린다.
가감 없이 축구공만 한 놈들이었다. 더해서 이빨 날카로운 게 예사롭지가 않다. 자기 손가락을 바라보며 점장이 낮은 어투로 중얼거렸다.
― 이제 세 번 남았네. 아니면 네 번인가?
“세 번 맞는데요, 다 써도 모자랄 상황 오면. 그땐 점장님 어떻게 되시는 겁니까?”
― 짐짝이 되겠지. 나두 그건 싫으니까, 빨리 찾는 게 좋겠다.
솔직한 대답이다. 뒤를 돌아봤는데, 어르신께서 바로 내 어깨에 손을 얹고 한 손으로 등을 받쳤다. 등 뒤에서 받쳐주는 듯한 자세가 됐다.
― 이제 위로 떠오르실 일은 없을 겁니다. 가시지요, 사장님.
대답 없이 행동으로 보였다. 걷는 도중에 문어가 내지르는 비명 소리, 무언가 부욱 찢어져 밑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누나가 다리 하나를 더 해먹었나 보다.
그리고, 눈앞의 새끼 초롱아귀 한 마리.
졸지에 대치상태가 되어버렸는데, 눈알 튀어나오려는 게 꼭 코딩 잘하는 그 양반을 연상시킨다. 이 새끼들은 지들 대빵이 실수한 걸 왜 우리한테 성을 내고 지랄이야….
― 멈추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씀하시는 동시에 뛰쳐나와, 초롱아귀의 몸을 손으로 붙잡는 어르신. 붙잡은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초롱아귀의 옆을 엄지로 지그시 누른 뒤, 놓으셨다.
힘없이 배를 까뒤집는 초롱아귀를 잠깐 내려다보시다, 다시 돌아오셔서는 내 등에 한 번 더 손을 얹으며 말해오셨다.
― 군집까지는 무리 없이 가능할 듯 합니다. 이대로 계속 가지요.
“예… 예. 계속, 가겠습니다.”
이젠 목소리가 떨리려고 한다. 약빨이 슬슬 떨어져 가는 건지, 이성적으로 두려워서 이런 건지는 모르겠다. 아랫입술을 깨문 채로 마저 걷고, 걷고. 또 걸어서.
시야 끝에 바위로 된 벽이 보였다. 아까 내가 짚으며 내려왔던 벽의 끝인가 보다. 그 밑으로는 격자로 된 쇠창살.
하수구 구멍 같다. 게이트 환경과 하수도가 반반 섞여 있는 상태니, 저게 동굴 입구일 터다. 바로 고개를 들어 누나를 불렀다.
“누나! 윤하 누나, 찾았으니까 내려와! 빨리!!”
― …!! ……!!
“빨리 내려오라고!! 지금―”
뭐 하냐, 더는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누나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문어 다리 두 개와 함께.
칼자국이 잔뜩 난 다리 두 개가 하수구 구멍을 틈새 하나 없이 가로막아 버렸다. 두께가 아까 것보다 훨씬 더 두꺼운 게, 저 부분이 다리 끝이 아니라 중간 부분쯤 되는 듯했다.
잘린 다리들 중 하나에 누나가 팔을 깊숙이 꽂은 채였다. 그 위로 문어 다리 십수 개, 어쩌면 더 많을 수도 있을 다리가 쉴 새 없이 꾸물거리고 있다.
― 야, 이찬. 어디야.
“…….”
― 어디냐니까?
그리고 그 중심. 문어 몸통이 우리 머리 위에 있었다. 먹구름이 하늘 전체를 가려버린 것처럼, 어두워질 수 없을 심해 속이 좀 더 어두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문어 몸통에 달린 눈은 나를, 점장을, 어르신을 내려다보고 있다. 슬금슬금 남은 문어 다리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이건, 이건 좀.
“…뉴비한테는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점장님…?”
― 너무한 거 맞지. 찬아.
― 부. 부, 부부부, 부디!
대뜸 어깨에 멘 부직포 가방에서 말 더듬는 소리가 들려왔다. 뻣뻣하게 고개 움직여 가방을 내려다봤는데, 지퍼가 살짝 열려있는 채였다.
그 틈새로 멍멍이가 위를 올려다보고 있다. 문어와 눈이 마주친 듯했다. 위험하니까 들어가라, 미처 말하기도 전에 멍멍이가 마저 외쳤다.
― 멈춰 주시오! 문어 어르신!
목소리가 와들와들 떨리고 있다. 이 외침이 끝나는 시점에서, 문어 다리가 우리 반경 2m 가까이까지 다가와 감싼 상태였다.
이 상태 그대로 멈췄다. 십수 개의 다리가 전혀, 미동조차 없다.
― 보, 본견은 맛이 없소, 사장님께서는 더 맛이 없고! 윤하 아가씨도, 대사장님도, 늠름하신 울프 어르신께서도 마찬가지외다!
― …….
― 문어 어르신을 해하려는 의도도 마찬가지로 없소이다, 우린 그저 출입구를 지나가고 싶을 뿐이오. 그 뒤쪽에 볼일이 있기 때문이오! 그 볼일이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콜록! 캐헹!
1시간 가까이 말을 아끼고 있어서였는지, 대뜸 소리를 지르려니 목이 멘 모양이더라고. 그래도, 문어는 제대로 알아들은 듯했다.
지금 여길 말하는 거냐는 듯, 잘린 다리를 살짝 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잘린 다리 틈새로 하수구의 쇠창살이 언뜻 보였다가 가려졌다.
― …그, 본견이 이 자리에서 보이지는 않소만, 그게 맞을 것이오! 그곳만 지나가게 해주신다면 본견, 문어 어르신께 무척 감사할 것이외다.
― …….
― 나중에 뵙거든, 본견이 가장 좋아하는 햄버거를 드리겠소. 그러니 잠깐만, 아주 잠깐만 길을 내어 주시겠소이까?
이러고는 내 가방 안에서 꾸벅 고개를 숙이는 멍멍이. 멀리서 단검을 쥔 채로 듣고 있던 누나가 날 바라보는데, 지금 이게 대체 뭔 상황이냐는 얼굴이었다.
나도 똑같은 표정일 거다. 그냥 결과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멍멍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문어가, 눈동자를 굴려 출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후, 길을 내어줬다. 이건 또 뭔 어이 터지는 상황이야.
― 야. 방금 뭐야, 이찬. 쟤가 언령이라도 쓴 거야?
“언령이 뭔데?”
― 나는 뭔지 알지.
“그래요? 언령이 뭡니까?”
― 대답하기 전에, 자리부터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아. 얘들아.
― 동의합니다. 쇠창살 때문에라도, 뒤에 저것들이 더 쫓아올 수는 없을 테니까요.
문어가 떡하니 버티고 있어서인지, 새끼 초롱아귀들이 우릴 뜯어먹겠다고 안달을 내면서도 섣불리 다가오지는 못하고 있다.
아직은 안전해 보이지만, 이 문어가 언제 수틀려서 우릴 잡아먹으려 들지는 알 수 없다. 누나가 자기 단검을 허리춤에 끼워 넣고는, 어이없음 반 속 시원함 반의 목소리로 말해왔다.
― 이게 뭔 일인진 모르겠지만, 아무튼 뭐….
잘린 다리 사이로 보이는 쇠창살을 바라보고는, 손가락으로 창살을 가리키며 덧붙인다.
― 피부 찌릿찌릿한 게, 저 안쪽 맞는 것 같아. 거의 다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