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45)
이세계 편돌이-144화(145/331)
144화. 단골손님 어셈블 (7)
* * *
쇠창살 여는 건 내가 했다. 엘레나 양에게 받아온 마법약 다섯 개 중 세 번째, 금속 용해제.
코르크인지 고무인지 모를 재질의 뚜껑을 열자, 수은과 비슷해 보이는 액체가 손 위로 사르르 흘러내렸다. 말이 액체지, 사실상 반고체에 가까운 것 같다.
“누나. 이런 일 있을 줄 미리 알고 부탁한 거야?”
― 쇠창살 녹일 생각은 안 했고, 파이프나 다른 맨홀 뚜껑 같은 거 녹일 일 있을 것 같아서 부탁했었지.
“아하.”
― 그런데 너 손 괜찮냐?
딱 모래 한 줌을 손에 올린 느낌 정도다. 원래라면 금속 용해제를 손에 올리는 건 몹시 위험한 행위이니, 기이한 체질을 가진 편돌이가 아니라면 함부로 시도하지 않는 게 좋다.
손바닥에 고인 용해제를 쇠창살에 펴 바르듯 문지르자, 문지른 부분에서 끓어오르듯 수증기가 잠시 피어오르다 가라앉았다. 딱 내 손 모양으로 녹아내렸다.
몇 군데를 똑같이 한 뒤 마지막으로 밑부분을 붙잡아 녹이자, 우물 정 자가 되어버린 쇠창살이 덜그럭 밑으로 떨어져 가라앉았다.
너 나 할 것 없이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원형 통로에 가득 찬 물을 헤엄치듯 걸어 나아가길 수 분.
완만한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그 위로는 빛이 투과되고 있는 물의 표면.
마저 걸어 뭍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온몸에 힘이 쫘악 빠졌다. 이젠 눈치 볼 일 없겠다 싶어 바닥에 납작 엎드린 뒤, 팔다리 늘어뜨린 그대로 소감을 말했다.
“인생, 참….”
한 달 전 구인광고 뒤적일 때만 해도 내가 이러고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전혀 못 했는데 말이다….
감회에 젖어있자니, 내 등짝을 손바닥 두 개가 연달아 두드리기 시작했다. 손바닥 크기랑 세기가 각각 달랐다.
“이찬, 진짜 고생했다. 이제 진짜 금방이야.”
“맞아. 고생했어, 찬아. 그런데 몸은 괜찮아?”
“괜찮아지면 그때 말씀드릴게요. 근데, 저보다는 그….”
멍멍이 녀석이 걱정이다. 몸을 뒤집어 어깨의 부직포 가방 지퍼를 활짝 열었는데, 멍멍이가 움직이는 기미가 전혀 없었다.
내부를 들여다봤더니 멍멍이가 배를 발랑 까뒤집은 채로 부직포 가방 윗면만 올려다보고 있다. 간간이 들려오는 신음 소리.
“끼잉… 헥, 헥.”
“멍멍아. 방금 대체 뭘 어떻게 한 거냐…?”
적어도 내가 본 바는 이렇다. 저 카리스마 대빵 큰 문어가 순간 ‘멈췄다.’ 멍멍이가 멈춰달라고 부탁한 직후에 말이다.
그리고, 하수구로 통하는 길을 내어줬다. 마찬가지로 멍멍이가 잠깐만 길을 내어달라고 부탁한 직후에. 누나한테 다리 두 짝을 도난당해 화가 날 대로 난 상황이었을 텐데도 말야.
이 두 건이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생각은 못 하겠지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게 어딜 어떻게 봐도, 그….
“진심을 담아갖구 부탁해서 그런 거 아닐까?”
“점장님께서는 그렇게 보이십니까?”
“두 가지 중 하나지. 결과만 놓고 보면, 이 애가 정말 명령을 한 것처럼 보이긴 하겠지만….”
목소리와 함께, 작은 손 두 개가 부직포 가방 안으로 들어가 멍멍이를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이후, 등 위로 점장 목소리가 마저 들려왔다.
“이 애는 남한테 명령하거나 시키거나, 그럴 성격 아니잖아. 그치.”
“그렇기는 합니다.”
“아, 멍멍이 잠들었다.”
바로 몸 절반만 일으켜 점장을 올려다보았다. 멍멍이가 점장 품에 또아리를 틀어 웅크려 있고, 새액거리는 숨소리만 간간이 들려오고 있다.
잠들었다기보단 반쯤 기절한 것에 가까워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숨은 쉬고 있으니 다행이다. 품에 안긴 멍멍이 머리를 쓰다듬던 점장이 날 내려다보고는 싱긋 웃었다.
“이런 일 처음 해봐서 기운 빠진 걸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구. 아무튼 고생 많았어, 찬아.”
“…세 분만 하겠습니까. 누나는 어때. 괜찮어?”
아예 일어나서 누나 몸을 훑어봤는데, 아까 재킷을 벗을 때만 해도 흰색이었던 티셔츠가 검붉은 색으로 아예 변색이 된 채였다.
가죽 바지와 머리카락도 마찬가지였으나, 내 물음에 누나가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어버렸다.
“야, 이찬. 니가 내 걱정할 짬이냐?”
“그럼, 그… 먹물떡볶이 국물부터 어떻게 좀 해봐. 미관상 좀 그래.”
내 입으로 차마 피라는 단어를 못 꺼내겠다. 자기 몸을 슬쩍 훑어보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내 등 뒤를 올려다보며 마저 말했다.
“이번 일 다 끝내고. 진짜 코앞이야, 이제.”
“그것도 보면 알아?”
“어. 저기 봐봐.”
고갯짓으로 내 등 뒤쪽을 가리키는 누나. 바라보기에 앞서, 주변을 한번 둘러봤다. 이끼 낀 바위, 우리가 올라온 뭍, 기이하리만치 높은 천장.
마치 해저에 생긴 공동 같다. 큰 바위의 내부가 모종의 이유로 무너졌거나, 풍화, 침식 등을 거쳐서 형성된 거겠지. 가끔 이런 게 생길 수도 있다고 다큐에서 본 적이 있다.
동공 저편에는 사람 둘이 나란히 지나갈 수 있을 너비의 작은 동굴이 하나 더 뚫려있었다.
아니면 뚫리고 있든가. 동굴 출입구가 뒤틀리고 끝난 수준이 아니라, 망가진 드릴이 돌아가듯 쉴 새 없이 끼긱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전하는 동굴 내벽 한가운데에, 간간이 뭔가가 보였다가 사라지고 있다. 일그러짐.
전혀 집중하지 않고 있음에도 보이는 데에 더해, 단순히 일그러진 걸로 그친 것도 아니다. 거의 모자이크에 가까웠다. 마력 농도가 심한 곳은 아예 저렇게 되나 보다.
“저 안에 게이트핵 있는 것만 네가 건드리면 끝이야. 그런데….”
“그런데 뭐.”
“…그걸 이곳에 있는 놈들이 가만 내버려 둘 리가 없단 말이지.”
이곳 놈들이라니, 그건 또 뭐란 말인가? 주변에 온통 바위들뿐인데.
이 호기심을 누나가 해결해줬다. 발치의 모래사장에 박힌 조약돌을 하나 집어 들어서는 동굴 근처의 이끼 낀 바위를 향해 집어 던지는 누나.
조약돌이 바위를 톡 때리고 굴러떨어진 뒤,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신발 바닥으로 진동이 올라오는 것도 모자라, 동공 내벽이 덜덜 흔들려대고 있다. 올라온 뭍 표면은 찰랑대고 있고, 조약돌에 얻어맞은 바위가 점점 거대해지고 있….
“누나. 저게 골렘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
“어? 너 골렘 본 적 있냐?”
“그게, 모니터 너머로는 있기는 한데….”
그놈들은 MP 28을 소모해 고드름을 2개씩 2번 던지면 쓰러졌었다. 헌데 저 골렘들은 내가 2차 전직을 하더라도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 같다.
사이즈가 2층 건물만 했기 때문이다. 바위 십수 개가 모여 팔과 다리, 몸통을 이루고 있고, 조약돌에 얻어맞았던 이끼 낀 바위가 머리.
머릿수가 도합 6체. 바위에 눈코입이 달린 건 아니었지만,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 놈들이 지금 문워크를 하고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저놈들 지금 우리 쪽으로 오고 있잖아, 누나. 곤히 자는 놈들 굳이 깨웠어야 돼?”
“아까랑은 상황이 좀 달라. 안 깨우고 접근하면 저놈들이 기습을 해온단 말야. 한 대만 맞아도 명치가 오목해진다고.”
“그렇구만….”
“비켜 달란다고 비켜주지도 않을 놈들이고. 동굴 못 들어가게 지키고 있는 거니까.”
어떠한 게이트든, 게이트핵을 제거하는 걸 막는다는 본능을 지닌 마수가 반드시 존재한단다. 이것만은 핵심 게이트도 예외는 아니라고.
그리고, 이놈들만큼은 개체 수가 계속해서 유지될 것 같단다. 쓰러진 마수의 마나를 양분 삼아, 다른 바위들을 다시 골렘으로 만들어서는 우리 명치를 호시탐탐 노릴 거라는 게 누나 의견.
“그래서 내 계획이 이래, 이찬. 내가 저 바위들 부수고 있는 동안, 나머지 둘은 중화제 먹고 너를―”
“윤하 양.”
“…네, 울프 어르신?”
“혹시 많이 피곤하시지는 않습니까?”
어르신께서 조곤히 물으셨다. 시선은 누나 다리를 향하신 채다. 어르신 시선을 받은 누나가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고는, 다른 한 손으로 허벅지를 붙잡으며 웃어 보였다.
“살짝 다리 떨리긴 하네요. 오랜만에 좀 큰 놈을 잡아봐서 이런가―”
“저 골렘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제 호위 대상을 반드시 해하려 든다. 제가 이해한 게 맞는지요.”
“…네. 맞아요.”
여기까지 듣고 나서야 이해했다. 어르신께서 오크 십수 명 어깨를 3분컷 하셨을 때의 그 서늘한 감각을 다시 한번 느껴보시려는 것이다.
“어르신, 저놈들 어깨도 없는 놈들인데….”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목의 넥타이를 살짝 풀어 헤친 뒤, 사박사박 모래 위를 걸어 골렘에게 다가가는 어르신.
서로 제법 가까워졌다 싶을 즈음, 골렘이 머리 위로 오른손에 위치한 바위를 번쩍 치켜들었다. 치켜든 바위가 곧바로 어르신의 옆구리로 향했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무척 육중하다. 그사이, 짧은 헛기침 소리 한 번.
“흠.”
직후, 바위가 동공 천장으로 솟구쳤다.
눈 깜짝할 새에 잔상만 남기며 솟구친 바위가 동공 천장에 처박히고, 오른손이 날려진 반동으로 골렘의 몸체가 반쯤 뒤로 기울어졌다.
다리로 삼은 한쪽 바위로 몸을 지탱하려던 걸 어르신께서 마저 걷어차자, 그 바위마저 왼쪽 벽으로 날아가서는 반쯤 박혀버렸다.
순식간에 손발을 잃은 골렘이 무릎을 꿇고, 몸통에 해당하는 부위가 어르신 눈높이까지 내려왔다. 몸통을 바라보며, 무미건조한 어투로 중얼거리신다.
“이젠 손이 좀 닿겠군요.”
그러고는 몸통 쪽 바위에 한 손을 뻗어선 그대로 붙잡아 뽑아내셨다. 중심축을 잃은 골렘이 더는 형체를 유지할 수 없었는지 어르신의 코앞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뽑아낸 바위를 옆으로 휙 내던지시고는, 우리 쪽을 바라보며 물으셨다.
“일단은 편한 대로 해보았는데, 혹시 유의할 점이 있습니까? 윤하 양?”
“…아뇨. 저것들 좀 당하고 나면 동굴 출입구를 막으려고 들 테니까, 그것만 신경 써 주시면 돼요.”
“그럼 마저 수행할 테니, 윤하 양께서는 잠시 쉬고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다시 몸을 돌려, 골렘들 무리를 바라보는 어르신.
다섯 체의 바위 골렘들 모두가 어르신을 노려보기만 할 뿐, 일체의 미동도 하고 있질 않다. 어차피 지켜야 할 곳이 정해져 있으니, 남은 시간동안 버티고 있겠다는 의도일 터다.
아니면 겁을 집어먹은 거든가. 적어도 지금 어르신께서는, 위압감으로 상대를 굴복시킨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계셨다.
“오라.”
서슬 퍼렇게 벼려진 목소리다. 단 두 글자에, 5체의 골렘들이 일제히 세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이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르신께서 피식 웃으시고는, 양손을 한 번 편 뒤 주먹을 쥐셨다. 손등에 우두둑 힘줄이 돋아나고, 서서히 짐승의 그것으로 변해갔다.
“그렇다면, 내가 가겠다.”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나 싶던 순간, 수십 걸음 거리를 찰나의 순간에 다가가는 어르신. 손 뻗으면 닿을 위치에서 곧바로 주먹을 휘둘러, 골렘 한 체의 발을 바위였던 것으로 만들어버리셨다.
바위가 잘게 산산조각 나는 게, 통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신경 쓰신 게 아니냐는 생각이 순간 들더라. 곧장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우리 몇 분 남았어?”
“20분. 아까 마력 중화제 받아온 거 꺼내 봐, 언니랑 나랑 반반씩―”
“내가 갔다 올게, 윤하야. 찬이랑 같이.”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조급하단 느낌이 드는 어조였다. 점장이 바로 덧붙였다.
“나눠 먹는 것보단 한 명이 먹는 게 훨씬 더 효과 좋잖아. 윤하는 여기서 쉬다가, 어르신 잘못되시거든 도와드려.”
“힘든 거야 뭐, 원래 내 일이 이런 걸….”
“점장님이랑 둘이서 되는 거면 그냥 둘이서 다녀올게.”
나도 거들었다. 점장 나름대로 의도가 있어 보여서였다. 지금이야 골렘들 상대로 무쌍을 찍고 계시지만, 어르신 혼자 계실 게 걱정되기도 했고….
누나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내가 누굴 걱정할 처지가 아니긴 하다만, 최소한 누나보다는 다리를 덜 떨고 있다.
“언니. 괜찮겠어?”
“괜찮으니까 하는 말이지. 내가 이런 일 안 해본 것도 아니구, 멍멍이 자는 동안 돌봐줄 사람도 필요하구.”
“…….”
여전히 고민이 많은 듯했으나, 당장 고민할 상황이 아니란 걸 누구보다도 잘 알 거다. 답답한지 자기 머리를 벅벅 긁적이고는, 점장 품에 손을 뻗어 멍멍이를 끌어안는 누나.
“언니. 마법 한 번 아껴놨다가, 나 불러야 할 상황 있으면 그걸로 불러. 3초 안에 갈게.”
“응.”
“이찬 너도. 내부 구조가 어떻든, 어디 뛰어내리거나 하지 마라. 알았어?”
“당연히 그래야지, 내 다리 부러질 일 있나….”
“그럼 더 말 안 한다. 잘 다녀와. 둘 다.”
현장 책임자가 허락했으니 되는 건 줄 알란다. 점장과 나란히 선 뒤, 어르신과 골렘들이 뒤섞여 싸우는 곳을 슬쩍 바라봤다.
공원 조경용 화강암만 한 바위들이 이리저리 치솟고, 날아가고, 박살 나고 있기는 했지만… 이쪽으로 안 튀게 어르신께서 알아서 잘해 주시겠지.
“살짝 돌아가야 될 것 같다. 그치.”
“예.”
점장이 먼저 앞장섰으나, 뒤처지는 게 찜찜해서 나란히 달렸다. 막 다리가 날아가 주저앉은 놈의 뒤를 뜀걸음으로 지나쳐, 동굴 출입구 앞에 섰다.
코앞에 서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게, 내벽이 배배 꼬여 형성된 게 어지간한 험난 지형은 명함도 못 내밀게 생겨 먹었다는 것. 이건 또 어떻게 지나간다….
고민하는 도중, 귀 옆에서 손가락 튕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내벽 곳곳에 자리 잡고 있던 이끼며 잡초 등이 순식간에 불어나, 내벽 전체를 빈틈없이 덮어버렸다.
꾸물대던 벽이, 온갖 풀들이 끼워져 덜그럭거리고 있다. 그 위를 발로 툭툭 디뎌 보고는 내게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이는 점장.
“틈새마다 이것저것 잔뜩 끼워놨으니까, 당분간은 걱정 없을 거야.”
그러고는 폴짝 이끼 위로 뛰어, 기울어진 동굴 바닥을 걷기 시작한다. 양팔을 옆으로 뻗어 외줄 타기 하듯 걷는 게 약간 위태로워 보였다.
뒤따라가 점장 손을 붙잡았다. 그래도 내가 균형감각 괜찮단 말은 자주 들어봤다. 살짝 놀란 눈치였으나, 잠시 뒤엔 점장도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고마워, 찬아.”
“뭘요.”
이후, 말없이 나란히 걸었다. 꿈틀대는 게 아주 멈춘 건 아니어서, 간간이 바닥 지형이 바뀌는 걸 신경 써야 했기 때문이다.
풀에 발이 푹푹 빠지는 것도 거슬렸고. 도중에는 나도 발이 푹 빠져 고꾸라질 뻔했는데, 점장이 양손으로 끙끙대며 붙들어 매 줬다.
여기가 딱 중간지점이었다.
다시 자세 잡고 동굴 앞쪽과 뒤쪽을 한 번씩 바라보니, 구멍 크기가 일정하더라고. 점장에게 가능한 편안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봤다.
“아직까진 별일 없네요, 점장님.”
“응.”
이러고는 다시 침묵한 뒤, 걷기 시작했다.
점장이 오늘따라 유난히 말이 없다. 이건 기분 탓이 아니다.
솔직히 말할 상황이 별로 없긴 했다. 상황 자체가 급하기도 했고, 물속에 들어가서는 거대 문어나 이빨이 네 다스인 초롱아귀한테 고통받았었으니까.
그놈들 중 하나만 잡아다 수산시장에 가져다 놔도, 그날로 수산시장에 그놈들 동상이 세워지겠지. 하지만 지금까지도 말이 없는 건, 뭔가 이유가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적어도 점장이 지금 상황이 위기라 느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면 긴장해야 할 상황이니 조용히 있자고 먼저 말을 했겠지….
“찬아.”
“예.”
이제서야 점장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다소, 꽤 많이, 울적했다.
“미안해.”
“또 뭐가요, 점장님.”
“찬이, 이런 일 하게 만든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