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47)
이세계 편돌이-146화(147/331)
146화. 마침 비도 왔으니 다 같이 (1)
* * *
매장으로 돌아가는 과정 자체는 별거 없었다. 딱 5분을 쉬고 일어난 누나가 천장을 멀거니 바라봤는데, 잠시 후 천장 일부분이 느닷없이 폭삭 내려앉았다.
바닥에 떨어진 천장 구성물을 살펴보니 두꺼운 아스팔트 안에 보도블록이 거의 파묻히듯 박혀 있었다.
“이건 뭐임?”
“U형 보도블록 무게 규격이 3kg쯤 돼. 적당히 늘려서 알아서 무너지게 한 거야.”
“아하. 그럼 누나 규격은 몇 kg인데?”
“Kg은 내가 싫고, kg/f는 지금 알려줄게. 잠깐 와 봐.”
잠깐만 갔다가 도망가도 되냐, 물어보려다 말았다. 터벅터벅 걸어가 누나 옆에 서자, 누나가 셔츠랑 바지 벨트를 부여잡고는 점장에게 물었다.
“언니. 마법 몇 번 남았어? 두 번?”
“한 번. 지금 쓸까?”
“아까우니까 쓰지 마, 언니. 나 이걸로 계란 한 트럭도 날라 봤어.”
그 한 트럭 나르면서 깨먹은 계란이 혹시 몇 개냐. 물어보려 했으나, 누나가 미연에 차단했다.
“가는 길 편히 모셔줄 테니까, 몸에 힘 빡 줘라. 알았냐.”
“에이, 씨….”
직후엔 몸이 위로 훅 솟아, 거리의 보도블록 바닥으로 발부터 떨어져 나자빠졌다. 정글짐에서 뛰어내렸을 때의 딱 그 느낌이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걸 손으로 부여잡고 주변을 둘러봤는데, 매장은 안 보여도 몇몇 건물들이 눈에 익은 곳이었다. 매장에서 두 블록쯤 떨어진 곳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후엔 점장, 누나와 멍멍이, 어르신 순으로 밖으로 탈출. 점장이 내게 다가와서는 내 허벅지를 주먹으로 콩콩 두들기더라고.
“찬이, 괜찮아?”
“글쎄요….”
“혼자서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걱정되셨는지 어르신께서도 그렇게 물어오셨지만, 그래도 부축받을 정도까지는 아니다. 잠깐 몸 추스른 뒤 하늘을 올려다보니 여전히 새카맣긴 해도 더 이상 비가 내리지는 않고 있었다.
어르신께서 내 시선을 따라 똑같이 하늘을 올려다보시고는, 내 등을 툭툭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반려가 기뻐하겠군요.”
“예….”
“덕분입니다. 사장님.”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덕분은 뭘, 다 같이 잘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이다음부터는 그냥 걸어서 돌아갔다. 비가 그치긴 했어도 빗물이 전부 빠진 건 아니어서, 매장 근처에 다다랐을 즈음에는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첨벙이며 걸어야 했다.
매장 코앞까지 와서 보니, 경관이 정문을 활짝 열어두고는 웬 모래포대들을 내부에서 하나씩 꺼내 나르고 있었다.
그러다 우리 쪽을 힐끗 보고는, 모래포대를 툭 내려놓고 거수경례를 해온다. 잠시 후에 손을 내리고는 우릴 지그시 바라보다 물어왔다.
“일은 잘 풀리셨습니까.”
“어… 그럭저럭요.”
“고생하셨습니다.”
“뭘요. 그런데 뭔 모래포대가 이렇게 많아요?”
“마법으로 소환해서 미리 쌓아둔 걸 지금 치우는 중입니다.”
짧게 설명하길, 30분가량 전부터 먹구름이 고장 난 소화전인 마냥 비가 콸콸 쏟아졌댄다. 빗물이 테이블로 틀어막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 머리 위까지 푹 잠길 정도로 넘쳐흘렀다고.
때문에 미리 준비해둔 대민지원용 마법들로 모래포대를 잔뜩 소환해서 편의점 정문을 아예 봉쇄해 뒀다고 한다. 듣고 난 소감은, 상황이 꽤나 아슬아슬했다는 것.
내가 핵을 못 없앴으면 매장이고 매장 내부의 손님들이고 전부 물에 떠내려갔다는 얘기로 들려서였다. 그사이 비가 더 심해졌다고 하니까.
“어우, 경관님도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아닙니다. 자주 하는 일이니까. 여튼….”
물에 젖어 쭈글쭈글해진 자기 손을 내려다보고는 마저 말을 잇는다.
“지금은 비가 좀 그친 듯해서, 모래포대를 다시 수납하려 하고 있습니다.”
“수납이요?”
“예. 한곳에 쌓아놔야 다시 종이에 담을 수 있으니까요.”
수첩 종이에 모래포대를 마음대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는데, 그게 정확히 어떻게 이루어지는 건지는 상상이 잘 안 됐다.
“그리고 내부에 계신 두 분은 무사합니다. 엘레나 님께서는 모래포대 나르는 걸 도우시다 삐끗하여 사무실에서 쉬시는 중이고, 치와와 님은….”
“야!! 야 이 짭새야, 야!!”
정문 안의 모래포대 벽 너머로 울분이 잔뜩 함유된 고함이 들려온다. 뒤이어 한마디가 추가됐다.
“노닥거리지 말고 빨리 치워!! 나 지릴 것 같다고!!”
“아까부터 계속 도와주고 계셨습니다.”
초치와와적인 인내심으로 버티고 있었던 듯한데, 저 양반 화장실 가겠다고 여기 찾아온 게 3시간이 넘었다. 저 정도면 나중에 내시경 한번 받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무표정한 얼굴로 정문 안쪽을 슬쩍 바라보는데, 한쪽 눈썹이 살짝 올라가 있다. 혹시나 싶어 물어봤다.
“혹시 저 양반 연행하시려는 건 아니죠? 폭언 욕설죄라든가.”
“폭언 욕설로 형을 집행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모욕, 협박죄는 존재합니다만.”
“뭐 하냐고!! 씨발!!”
“그래요?”
“예. 그리고 저 경우에는 불문에 부치려 합니다. 저분이 악의가 있어 저러시는 건 아닌 듯하니까요. 그래도….”
손을 한 번 깍지를 끼었다 편 뒤, 날 바라보며 말해왔다.
“마법청 해킹 건은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
“아니, 그게 농담이 아니었어요?”
“농담이었습니다. 그럼, 하던 일 마저 하고 있겠습니다.”
그러고는 정문 안으로 들어가선 물을 잔뜩 머금은 포대를 들어 올리는 경관. 내가 비핵화 운동에 앞장서다 온 탓에 몸이 힘이 없긴 해도, 노가다장에서 몇 달 굴러본 짬밥이 있으니….
“난 저 경관 분 좀 돕고 있을게, 이찬. 넌 쉬고 있어.”
“아니, 누나 안 힘듦?”
“아까 5분 쉬니까 나아졌다. 어르신께서도 쉬고 계셔요, 아까 바위 엄청 부수시던데.”
“아뇨. 저도 잠깐 쉬니까 나아졌습니다.”
이렇게 대화 나누고는 둘이 같이 정문 쪽으로 가버렸다. 쉬라고는 해도, 남들 다 일하는데 쉬는 건 좀… 아.
“점장님. 저 전화 한 통화만 하고 오겠습니다.”
“나도 같이 가두 돼?”
“굳이요? 그냥 쉬시지.”
“나도 드릴 말 있어서 그래. 찬이 사수분한테.”
교수랑 통화하려는 걸 바로 눈치챘나 보다.
알았다고 한 뒤, 매장에서 살짝 떨어진 곳까지 물 헤치며 걸어왔다. 사람들 모인 곳에서 통화하기 곤란한 내용이 오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엠바고가 걸린다든가.
전파는 통해도 전원이 들어올지가 살짝 걱정이 되긴 했는데, 심해 밑바닥까지 내려갔다 왔음에도 액정에 멀쩡히 불이 들어왔다.
전화도 잘 걸리는 것 같고. 귀에 폰을 가져다 대며 점장에게 물었다.
“이거 혹시 방수 마법 걸려있는 모델입니까, 점장님?”
“응. 내 건 일반 모델이라 고장 났지만 말야.”
“허어….”
“난 걱정 안 해. 어차피 찬이가 폰으로 고쳐주면 되니깐.”
그건 그렇네. 신호음이 딱 네 번 울린 뒤 수화기 너머로 한창 부산스러운 목소리들이 들려왔는데, 귀를 기울여보니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 …것들 다… 디서 나온 거야…. ] [ 배차… 뭐? 트럭이 물에 왜― ]이어서는 교수 목소리.
[ 제가 해결할 테니, 저 흙더미들은 그대로 두십시오. 무슨 일입니까? ]“무슨 일인지 말씀드리기 전에, 웬 흙더미예요?”
[ 마법청 주차장에 수천 톤 정도 되는 흙, 파이프, 기타 것들이 나타났습니다. 제 일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살짝 짜증이 실린 어조였다. 이건 또 뭔 일인가 싶어 점장을 바라보니, 시선을 피한 채로 뒷머리를 긁적이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혹시 짐작 가는 거 있으십니까?”
“응. 말할 타이밍 되면 말해줄게.”
[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우선 희소식부터 들려주는 게 맞아 보인다. 잠깐 고민하다, 그냥 직설적으로 말했다.
“게이트핵 없애고 왔는데요. 이제 뭐 하면 돼요?”
[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거 없애고 왔다고요.”
이후엔 아주 자세한 설명을 요구해오길래, 좀 더 풀어서 말해줬다. 수단 방법 가리지 말라는 말 듣고 내 나름대로 발로 뛰어서 핵심 게이트 위치를 찾아냈는데, 찾아내고 보니 딱 3시간 남은 상황이었다.
보고하려고 해도 전화 통화도 안 되고 그래서, 급한 불부터 끄자는 심정으로 내려가서 게이트핵에 주먹질 좀 하고 빠져나왔다. 이걸로 끝.
다 말한 뒤에도 한참 동안 반응이 없어서 찝찝함에 마저 말했다.
“제가 먼저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전파가 안 통해서 전화가 안 되더라고요. 어떻게 마법청 접수원분께 따로 말씀을 드리기는 했는데….”
[ 그건 어떻게 한 겁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했죠. 혹시 전달 못 받으셨어요?”
[ 아직 못 받았습니다. 정황만 본다면, 이 마법청 앞의 흙들은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생긴 부산물이라는 말로 들리는데. 맞습니까? ]이 부분은 내가 말 안 했지만, 듣고 나니 아까 내가 했던 짐작이 맞았다는 확신이 생기더라. 일을 저지른 당사자가 변명하듯 덧붙였다.
“그 흙들을 없애려면 어딘가에 이동을 시켜야 하잖아, 찬아.”
“아무튼 그렇다고 치고요. 그래서요?”
“사람 없는 한적한 곳이 거기밖에 안 떠오르더라구. 마법청 주차장 엄―청 넓으니까.”
“뭐 운동장 같은 곳 있잖습니까. 이 날씨에 경기도 안 할 거고.”
“…그, 그치만, 운동장 관리원분은 마법 못 쓰실 거 아냐.”
급하게 떠올린 변명이라는 티가 팍팍 묻어나긴 했으나, 그렇다니 그런 줄 알련다.
“맞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수단 방법 안 가린 걸로 쳐주시면 안 되나?”
[ 이 흙더미가 게이트 발생으로 인한 이상 현상인지 아닌지를 파악해야 해서 물어본 겁니다. 책임을 물어보려던 게 아니라. ]“그럼 폐기물 무단투기로 벌금 안 내도 되는 거예요?”
[ …저만 알고 있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뭘 해야 하냐고 물었는데…. ]이 양반 실리주의적인 성향이 이럴 때는 마음에 든다. 그래, 지금 흙더미가 어디에 몇천 톤 쌓여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당장 우리 매장이 장사를 할 수 있는지 없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지.
[ …마법청 측에 보고는 어떻게 했습니까? ]“사수님 이름 대고 핵심 게이트 처리하러 간다고 하고, 인원 여유 되는 대로 좀 도와달라고 사정사정하고, 예산 좀 달라고 했어요.”
“뭔 비용이요?”
[ 인건비, 자재비, 자문 비용 등. 당신이 핵을 제거하는 데에 사용된 비용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 제출하십시오. 검토 후에 예산 책정해 전달하겠습니다. 외에 다른 사항 있습니까. ]당장은 없다. 없는데, 이거 돈 준다는 얘기야?
[ 그럼 안 줍니까? ]“어….”
[ 이쪽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따로 찾아가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리고 뭐요.”
뭔 말을 하나 싶어 기다렸는데, 목소리는 안 들리고 전화기 너머에서 작은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여섯 번.
이후, 무덤덤한 목소리로 교수가 말을 맺었다.
[ 고생했습니다. ]이러고는 전화가 뚝 끊겼고,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이 실리 오지게 따지는 양반이 지금 날 보고 들으라고 박수를 친 건가? 보이지도 않는데?
“엄청 감명 깊었나부다. 그 교수분 말야.”
“에이, 설마요….”
“난 그렇게 들리던데?”
깊게 생각하고 싶은 주제는 아니었다. 이것보단, 다른 게 더 신경 쓰인다.
“이 양반이 저희 돈 준다는 것 같은데, 저희 매장 물에 잠긴 것도 청구하면 받아줄까요?”
“모르겠네. 보험사랑 나라에서 지원금 주는 것만 생각하구 있긴 했는데….”
“그럼 한번 청구해 볼게요. 외에 또 필요하신 거 있어요?”
“생각 좀 해보구. 막 엄청 급한 건 아닌 거 같으니까, 들어가서 얘기하자.”
하긴, 죄다 모래 포대 나르는 와중에 딴청 부리고 있기도 좀 그렇다.
점장과 나란히 매장 앞으로 돌아오니, 정문 2/3를 틀어막고 있던 모래 포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니 누나는 몸에 또 힘이 빠진 건지 계산대에 등을 붙이고 누워있었고, 어르신께서는 어깨가 뻐근하신지 한창 풀고 계시는 중이었다.
일단은 누나한테 말을 걸었다. 이건 누나가 잘 아는 분야 같아서였다.
“누나. 누나 모래포대 나르는 동안 통화하고 왔는데 말야.”
“야, 힘드니까 좀만 이따가 하면 안 되냐?”
“그냥 누워서 들어봐. 이번에 핵 없애고 온 거, 나라에 청구하면 교수가 돈 주겠다는데. 이거 어떻게 함?”
이걸 듣고는 누나가 느릿느릿 몸을 일으켜 짤막하게 말했다.
“한 분 한 분 물어봐야지. 뭐 필요하냐고.”
“아니, 이게 백지수표는 아닐 거 아냐.”
“아니긴 한데, 비슷해. 진짜로 터무니없는 액수만 아니면 어지간해선 다 들어줄걸?”
우리가 제법 큰 건을 빨리, 그것도 깔끔하게 처리해서라거나, 밉보일 짓은 안 했다거나.
다소 주관적인 이유들을 말해줬는데, 이건 나도 직접 체감을 해봐야 할 부분 같다는 말로 들렸다. 그러니 이건 넘긴다 치고, 물어본다면… 음….
“저기, 손님분들.”
이젠 비가 콸콸 쏟아지지도 않는다. 딱 매장 내에 적당히 들릴 정도로 말한 뒤, 손님들을 한 명씩 바라보며 물어봤다.
“저희 이거 한 걸로 나라에서 뭐 준다는데, 혹시 필요한 거 있으세요?”
묻자, 치와와가 일말의 지체도 없이 답했다.
“요강.”
“아니, 그거 말고….”
“그럼 라면이나 달라고 해, 씹새야. 나 아침 안 먹어서 출출하다.”
배가 아프든지 고프든지 둘 중 하나만 해라. 이 양반 진짜 배 아픈 게 맞긴 한 거야?
설령 배가 아픈 게 맞더라도, 이게 당장 달라고 드론으로 특급 배송을 해주는 것도 아니다. 또, 아침을 굶었다는 이유로 나라에 라면 한 봉지를 청구해버리면 그건 그것대로 어이가 없지 않나….
싶었으나, 생각해 보니 나도 배가 고프긴 했다. 어제 오전에 호텔에서 출발한 직후부터 아무것도 먹질 못했으니 꼬박 30시간을 굶은 셈이다.
“…뭐….”
어차피 일도 다 끝났고, 급한 것도 아니다. 매장을 둘러보며 다시 물었다.
“혹시 라면 드실 분 있으십니까? 쟁여 둔 거 좀 있는데.”
죄다 손을 들었다. 하긴, 비 온 날엔 라면이 딱이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