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48)
이세계 편돌이-147화(148/331)
147화. 마침 비도 왔으니 다 같이 (2)
* * *
편돌이가 편의점 컵라면에 대해 잘 아느냐를 묻는다면, 케바케다. 고려해야 할 경우의 수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근무하는 매장의 일일 폐기 발생량이 얼마나 되는가, 편돌이의 점심값 상한선이 얼마인가, 편돌이가 나트륨 섭취량과 골밀도의 상관관계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등등.
내 경우, 컵라면에 한해서는 편슐랭 가이드북을 출간할 수 있을 정도로 빠삭하다 자부할 수 있다. 솔직히 건강 신경 쓰면서 컵라면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그냥 먹는 거지.
점장은 뭘 먹어도 괜찮으니 영수증만 잘 끊어 놓으라고 말하긴 했지만, 차마 그렇게는 못 하겠어서 꿋꿋이 내 돈 주고 사 먹었다. 그러다 보니 컵라면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는 식견이 생기더라고.
“그래서 라면이 어디 있다는 거야, 씹새야. 진열대 텅텅 비어있는데.”
“좀 기다려 보십쇼. 아까 지하에 쟁여놓은 것들 좀 있으니까.”
“이런 시팔, 편의점에 지하가 왜 있어?”
“와. 찬이, 매장 물에 잠기는 와중에 그런 일까지 한 거야?”
“많이는 못 했어요. 혼자 다녀올 테니까, 여기서 잠깐 쉬고 계셔요. 점장님.”
혼자서 사무실에 들어가야 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였다.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CCTV 테이블 위에 엘레나 양이 납작 엎드려 있는 게 보였다.
“으으….”
“허리 괜찮습니까? 아까 경관님이 삐끗하셨다고 하더만.”
“네, 괜찮… 어?”
내가 들어올 거라곤 전혀 예상을 못 했는지, CCTV 화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는 엘레나 양. 화면을 살펴봤는데, 멈춰 있더라고.
뭘 잘못 누르기라도 한 모양이다.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울상을 지으며 다시 엎어져 버렸다.
“찬이 씨! 무사하셨, 끄앙!”
“안 쓰던 근육 갑자기 써서 그런 겁니다, 그거. 이거 드시고 좀 앉아 계세요.”
받은 마법약들 중 안 썼던 게 딱 하나 있다. 회복약.
무사했냐는 질문의 대답이 될까 싶어 건네봤다. 어딜 회복할 일이 따로 없었을 정도로 무사했다고 말야. 울상이었던 얼굴이, 회복약을 바라보고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러다 내 눈치를 보고는 조심스레 물어왔다.
“찬이 씨, 저기 말인데요….”
“예.”
“혹시 제가 만든 약이 도움이 됐나요…?”
“됐다마다요. 약 없었으면 거기까지 가지도 못했을 겁니다.”
수중 호흡약, 진정약, 용해제, 빙결제. 단순 계산으로만 따져도 마법을 네 번 사용한 셈이다. 그중 하나라도 없었으면 게이트핵 근처까지 가지도 못했다.
이걸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하자, 그나마 안심한 듯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린다.
“다행이에요. 제가 아무래도, 그….”
“자기가 도움을 많이 못 준 것 같아서, 안 하던 힘 쓰는 일까지 해본 거다?”
“…네.”
“다들 출출하다고 해서 컵라면이나 좀 가지고 올라가려 하는데. 혹시 출출하세요?”
더 대화했다간 서로 평행선만 달릴 흐름이다. 주제를 돌리자, 잠깐 이해가 안 됐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는 엘레나 양.
그러다 아, 하고는 회복약을 조신히 한 모금 마시며 말해왔다.
“네! 엄청 출출한 것 같아요.”
“그럼 로비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라면 갖고 올게요.”
“저도 도와드릴게요. 어디로 가면 돼요?”
“지하창고에 모아놨는데,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서 그래요. 저 혼자 다녀올게요.”
적당히 둘러대자, 아까의 두 배로 고개를 갸우뚱해 온다.
“편의점에 지하창고가 있어요?”
그러게 말이다.
상사 취향이 그렇다고 대답한 뒤, 혼자 내려가서 라면박스 들어다 날랐다. 날 쭉 기다리고 있던 건지, 눈 마주치자마자 다가와서는 반대편에서 라면박스를 맞들더라.
부피가 큰 게 아니라 같이 들면 오히려 불편한데 말야. 떠오르는 말을 삼킨 뒤, 어기적어기적 라면박스를 로비 한가운데에 올려놓았다.
이후, 주문을 받았다.
“점장님, 뭐 드시겠습니까. 연장자 먼저.”
“그럼 난 제일 늦게 고르는 게 맞지 않아?”
“편하신 대로 하셔요. 어르신, 어떤 라면 좋아하십니까?”
어르신들 입맛이라 하면 으레 사골, 된장 맛의 라면을 좋아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가 않다. 웰메이드 라면이 아닌 이상 호기심 삼아 한 번 드시는 게 끝.
그러고는 다시 빨간 뚜껑 라면들로 회귀하는 편이다. 어르신께서도 비슷한 입맛이실 줄, 라면 박스를 들여다보며 고민하던 어르신께서 노란색 뚜껑 라면을 하나 집어 드셨다.
확인해 보니 치즈맛 볶음라면이었다. 달고 짠 맛이 일품이지.
“제 손녀딸이 권해준 걸 먹어봤는데, 딱 제 입맛에 맞지 뭡니까.”
“음….”
“매운 걸 잘 못 먹는 편이기도 하고요.”
편슐랭 가이드는 오늘부로 폐간이다….
드시고 싶으면 드시는 거지 내가 뭔 말을 더 하겠어. 젓가락을 챙겨드린 뒤, 다음엔 경관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경관님께서는 뭐 드시겠습니까?”
“제일 저렴한 라면으로….”
“그런 거 신경 쓰지 마시고 그냥 좀 드세요. 힘 엄청 쓰셨잖어.”
청탁금지법 기준이 3만 원 미만이라 라면은 당연히 포함이 안 된다. 재차 권하자, 머뭇거리던 경관이 사골 국물 라면을 집어 들고는 내게 물었다.
“괜찮겠습니까.”
“든든해요. 좀 밍밍하긴 해도.”
“아뇨. 그것보단….”
“여기 있는 것들 가격 다 도찐개찐이니까, 그냥 드세요. 여기 젓가락.”
다음 손님. 치와와.
“이 중에 뭐가 맛있냐?”
“손님께서 어떤 라면 좋아하시는지에 따라 다르죠. 뭐가 좋으신데요?”
“맛있는 거.”
“그럼 제일 잘 팔리는 거 드릴 테니까, 이거나 드십쇼.”
빨간 뚜껑 라면 위에 젓가락 얹어서 쥐여준 뒤, 장사 대충 하냐며 눈이 튀어나오려는 걸 볶음김치 한 봉으로 달래서 보냈다. 다음.
“누나 뭐 드쉴?”
“아무거나 줘. 라면이 거기서 거기지.”
“라면 이름이 ‘아무거나’인 건 없는데?”
“그냥 내가 고른다, 인마.”
이러고는 짜장 맛 라면이랑 젓가락 알아서 챙겨 가더라. 이제 둘 남았다.
“저는 면발 얇은 게 먹기 편해서 좋더라고요, 찬이 씨.”
“얇은 것도 꼬불라면에 면만 얇은 거, 건면에 얇은 거, 국수 라면 있어서요. 덜 자극적이고 국물 깔끔한 거 어때요?”
“어… 좋은 것 같아요.”
떠오르는 대로 물어본 건데, 표정이 환해지는 게 호기심이 동한다는 얼굴이다. 젓가락 챙겨서 건네준 뒤, 점장과 나란히 쪼그려 앉아 마저 대화를 나눴다.
“점장님께서는 어떤 거 드십니까?”
“뚜껑 큰 거. 식혀 먹을 때 좋더라구. 찬이는?”
“저야 뭐, 여기 있는 건 거의 다 먹어봤으니….”
“그럼 이건 어때?”
말하며 점장이 직접 골라준 라면이, 벼락 맛 라면이었다.
우리 매장 라면이 종류가 제법 되고, 그중에는 내 세상에서는 본 적 없는 기이한 컨셉의 라면들도 몇 있기는 했다. 이세계스러운 라면들 얘기다.
예를 들면, 진짜로 슬라임을 먹는 듯한 식감을 살려 면발에 국물이 꾸덕지게 묻어나오는 라면이라거나, 공감각적인 느낌을 살린 듯한 라면이라거나.
그리고, 솔직히 이런 것들은 입에 대지도 않았다.
멀쩡한 라면들 놔두고 벼락 맛 라면을 먹어야 할 이유도 없었을뿐더러, 벼락 맛이 무슨 맛인지 도통 짐작이 되질 않아서였다. 진짜 무슨 맛인데 이거. 위장 건강의 소중함을 벼락처럼 깨닫게 해준다는 의미인가?
“이거 괜찮습니까?”
“먹어보진 않았지만, 옛날에 엄청 많이 팔리기는 했어. 지금은 좀 시들해졌지만.”
TV나 SNS를 통해 반짝 유행하는 타입의 라면인 듯한데, 이런 라면들이 오래가질 못한다. 미디어로 부풀려진 기대심리를 맛이 따라가질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알 바인가? 상사가 먹을 만하다는데.
“그럼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근데 저희 온수기 멀쩡해요?”
“찬이 내려간 사이에 확인해 봤는데, 전원만 차단됐더라구. 내가 올려놨지.”
“아주 잘하셨습니다. 손님분들, 물 나온다니까 받으시면 될 것 같아요.”
이렇게 라면도 다 골랐겠다. 한 줄 서기로 뜨신 물 차례대로 받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빗물에 잠겨서 더러워진 의자들 수건으로 슥슥 닦고.
테이블에 일렬로 앉아 라면이 익기만을 기다렸고, 3분 뒤 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 땡.
점장이 맞춰둔 알람 소리에 맞춰 뚜껑 뜯는 소리가 매장을 가득 메웠다. 이후에는 젓가락 뜯는 소리. 나도 젓가락을 뜯어, 벼락 맛 라면을 한 젓가락 집어 먹어봤다.
겨자 맛이 살짝 나긴 해도 무난했다. 이놈들이 맛이 아니라 색깔만 노란 벼락 색으로 맞춰놓은 거였어….
그래도 맛있으니 됐다. 손님들이 죄다 속이 많이 출출했던 건지, 긴 시간 동안 라면 면발 후루룩거리는 소리만 매장에 잔뜩 울려 퍼졌다.
도중에는 잡설 딱 한마디.
“시팔, 존나 맛있네.”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평화로우니 좋구만.
* * *
면발 먹는 소리가 잠잠해질 즈음 폰을 꺼내 메모장을 켰다. 브레이크 타임 끝났으니 이제 다시 일을 해야지.
“손님분들. 저희 해산하기 전에 이것만 마무리 짓고 가려고 하는데요. 혹시 개인적으로 쓰신 돈이나 필요한 것들 따로 있으십니까?”
“필요한 거면 어떤 거 말씀이세요, 찬이 씨?”
“이 일 하면서 쓴 돈 있으면 나라에서 물어주겠대요. 말만 들어보면 해 달라는 거 다 해줄 기세더라고.”
수화기 너머로 박수갈채까지 받은 만큼, 나도 좀 당당하게 요구해 볼 생각이다. 내가 쓴 거라고 해봐야 내 정신수명 약간에, 마법약 몇 종류가 전부이긴 하지만… 아.
“예를 들면, 이번에 마법약 만들어주신 거 재룟값이라든가. 그 재료들 온라인으로 주문하셨을 거 아녜요. 돈 내고.”
“어… 네. 그런데 저는 취미로 산 거라서….”
“그럼 나랏돈으로 취미활동 지원받는 셈 치죠. 이런 기회 얼마나 있겠어. 재룟값 얼마예요?”
메모장에 손가락 얹은 채로 묻자, 엘레나 양이 잠깐 고민하다 대답해줬다.
“다 합쳐서 80쯤 들었던가…?”
“얼마라고요?”
“80이 맞았던 것 같아요. 무이자 6개월 할부.”
정신이 아득해지지는 않아도, 개울 저편에서 손을 흔들어 보일 정도까지는 됐다. 엄지손가락 두 마디만 한 약 다섯 병 만드는데 80을 태워야 돼?
싶었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딱히 내가 놀랄 일은 아니더라. 가슴을 치더라도 마법청 예산 배정하는 양반들이 칠 일이지.
“일단 80 적고. 다른 건요?”
“어… 급한 게 아니면, 천천히 생각해봐도 될까요?”
“그럼 오늘 밤까지 생각해보시고 문자 주세요. 어르신께서는요?”
“저는 잘 모르겠군요. 어깨가 다소 뻐근하긴 합니다만….”
“그럼 건강검진 받아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어르신께서 오늘 굴착하신 바위가 수십 개는 될 테고, 마력도 꽤 많이 쓰셨을 거다. 이 정도면 충분히 정상참작을 해주지 않을까.
묻자, 어르신께서도 잠시 생각하시고는 답하셨다.
“제가 아니라 제 반려가 받는 건 가능할는지요. 반려가 최근 재채기가 심해져서….”
“한번 물어는 볼게요. 밑져야 본전이지.”
“감사합니다, 사장님. 다른 건 떠오르는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시라고 했다. 다음에는 가장 가까이 있던 치와와를 바라보았는데, 치와와가 무슨 미친 짓을 하는 거냐는 얼굴로 날 내려다보았다.
“이 미친놈이, 마법청 털어먹은 해커한테 마법청 돈을 뜯어서 주겠다고?”
“싫으시면 말고요. 어차피 성함도 말 안 해주실 건데 돈을 어떻게 달라고 해….”
“찰리.”
“예?”
뭘 차리라고?
“이름이 찰리라고, 씹새야. 귀먹었어?”
아니, 귀로는 제대로 들었다. 머릿속에서 문자화가 안 됐을 뿐이지.
찰리라는 이름의 경우, 미국 쪽에서 반려견 이름을 작명할 때 자주 쓰이는 이름 Top 3에 속한다. 1위가 베일리, 2위가 맥스.
3위에 속하는 이름이 왜 이세계에서, 그것도 하필이면 이 치와와 입에서 튀어나오는 건지는 쥐뿔 모르겠기는 하지만….
난 이름 가지고 사람 잘 안 놀린다. 내 이름만 해도 초등학교 때 별명이 식당에서는 반찬, 운동장에서는 똥볼찬이었으니까. 적당히 물어봤다.
“이봐요, 찰리. 어떤 게 필요한 거예요?”
“이 새끼가?”
“농담이고요. 뭐 필요하십니까.”
“제로콜라나 한 박스 달라고 해, 씹새야. 니 명의로.”
차마 마법청에 블랙리스트로 등재되고 싶지는 않은 듯했는데, 이럴 거면 지 이름은 왜 말한 거야….
이것도 그러려니 하련다. 이 양반이 오락가락하는 게 한두 번이어야지. 제로콜라 한 박스를 적은 뒤 마저 물었다.
“다른 건요.”
“요강, 씹새야. 퀵배송으로.”
“그거 말인데요. 이제 물 거의 다 빠졌으니까 변기 물 잠긴 것도 잘 내려갈걸요?”
갑자기 떠올라서 말해봤다. 멍하니 날 바라보던 치와와의 얼굴 곳곳에 주름이 가득해지더니, 울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쳐왔다.
“이 씹새끼가!! 그걸 왜 지금 말해!!!”
이러고는 정문을 숄더 태클로 날려버린 뒤, 매장 건물 뒤편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가더라. 점장을 올려다보자, 점장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입을 열었다.
“최근에 손님분들 거의 없으셔서 화장실 문 안 잠갔어. 찬이는?”
“저도 안 잠갔습니다. 여튼 이건 됐고, 다음 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