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49)
이세계 편돌이-148화(149/331)
148화. 마침 비도 왔으니 다 같이 (3)
* * *
찰리, 그러니까 치와와가 화장실에 가 있는 동안 다른 손님들 주문을 마저 받기로 했다. 다음은 경관.
“전 괜찮습니다.”
“굳이요?”
“이게 제 일이니까요.”
오늘 아침에 마법이나 장비를 가지고 나오며 보고를 마쳤기 때문에, 여기서 뭘 더하거나 덜해 봐야 허위 보고가 될 뿐이라고.
“음….”
난 부정적이었다. 예산은 못 받더라도 포상 휴가라도 받을 수 있으면 받는 게 맞지 않나? 고생한 게 눈에 빤히 보이는데.
나야 매―직 바닷물에 들어갔다 나온지라 매장 상황이 어땠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긴 했지만, 꽤나 눈물겨운 디펜스였을 거라고는 짐작하고 있다. 아까 모래포대 쌓인 높이가 꽤 됐으니까.
경관 행색도 그래. 온몸이 모래범벅인 것에 더해, 손끝은 물에 퉁퉁 불어 쭈그러든 채다. 포대를 나르다 잘못된 건지 검지 손톱 끝은 절반쯤 부러져 있고….
“혹시라도 경비처리 안 되는 게 있다 싶으면, 그땐 톡 주십쇼.”
“예. 감사합니다.”
내가 자기 손톱을 보고 있단 걸 깨달았는지, 손을 뒤로 가리고는 무덤덤하게 대답해온다. 더 권해 봐야 사양만 할 것 같으니, 나중에 생각나거든 교수한테 개인적으로 찔러보든지 해야겠다.
“누나는. 누나도 사무소 통해서 알아서 청구하나?”
묻자, 누나가 짐짓 턱을 쓰다듬으며 잠시 고민하다 손가락을 딱 튕기고는 말해왔다.
“이찬. 너 통해서 따로 부탁 좀 해도 되냐?”
“어떤 거?”
“사무소 장비 중에 낡은 것들 몇 있거든. 그것들 좀 새 걸로 바꿔보자.”
“얼마나 낡았길래.”
“툭하면 고장 나고, 제대로 작동도 안 해. 아니면 부탁을 하겠냐.”
이건 이것대로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이번에 게이트에 다녀온 소감이, 어중간한 준비로는 엄두도 못 낼 짓이라는 것이었다. 점장이나 어르신이나 누나가 탈인간급 피지컬과 매지컬로 부분부분 땜질을 해 줘서 겨우 끝낸 거지.
누나가 일하는 헌터 사무소면 게이트 드나들 일도 많을 텐데, 거기에 툭하면 고장 나거나 작동도 제대로 안 하는 장비를 가져가는 게 말이 되나 싶다.
눈썹 찌푸린 채로 뚫어져라 누나를 바라봤더니, 누나가 피식 웃고는 한마디 더 덧붙였다.
“개인 사비로 사는 건 나라에서 A/S도 안 해주고.”
사람 구하는 돈을 나라에서 대 줘야지, 왜 개인이 쓰게 만드는 건질 모르겠네….
이 세상 마법청이나 헌터 협회의 예산배정에 관한 의구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으나, 따로 묻지는 않았다. 당장 게이트에서 어떤 장비를 쓰는지도 모르는데.
“그럼 그것도 따로 물어볼게. 다른 건?”
“없어. 고맙다, 야. 덕분에 망할 탐지기 삑삑대는 소리는 당분간 안 듣겠네.”
최소한 탐지기가 하나 있단 건 알았다. 뭘 탐지한다는 건지도 잘 모르겠지만 말야. 여튼, 이제….
“점장님께서는 나중에 따로 얘기하실래요?”
“응. 어차피 매장 정리하구, 젖은 상품들 분류하다 보면 밤 될 테니까.”
그사이에 얘기하면 될 것 같다. 메모장에 적어놓은 주문 항목 몇 개를 보며 생각하다, 밑에다가 두 줄을 더 적어 넣었다.
내가 뭘 적는지가 궁금했는지 엘레나 양이 다가와서는 폰 화면을 바라보더니, 의아하다는 목소리로 적은 내용을 중얼거렸다.
“어… ‘아무튼 가장 비싼 과자’, ‘아무튼 가장 비싼 햄버거’. 찬이 씨, 과자랑 햄버거 좋아하시나 봐요.”
“제가 먹으려는 건 아닌데, 좋아할 애들이 있어요.”
하나 녀석도 비 오는 날에 고생 많이 했으니 챙겨줄 수 있을 만큼은 챙겨줘야지. 멍멍이는 자는 놈을 깨워서 물어보기도 그러니, 떠오르는 것만 일단 적어봤다.
“좋아할 애들이요?”
“엘레나 양도 좋아하실 얘기니까,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게요. 이젠… 누구 남았지?”
“너 인마, 너. 너는 뭐 필요한 거 없어?”
똑같이 다가온 누나가 물었는데, 솔직히 난 떠오르는 게 없다.
내가 마법진 그려진 종이를 찢어 마법을 쓰거나, 임시 작업실이 필요했던 게 아니잖은가? 눈 뜬 게 아니꼬워서 주먹으로 한번 갈겼을 뿐이고, 지가 아프다며 알아서 사라져 줬는걸.
그나마 매장 보수나 인건비 같은 게 떠오르기는 하지만, 매장 보수는 점장이 할 주문이랑 중복되는 점이 꽤 많을 거다. 인건비야 뭐, 알아서 챙겨줄 거고….
“정 떠오르는 거 없으면, 나중에 일감이나 잘 챙겨달라고 해봐. 엄청 잘해줄걸?”
“일감?”
“생각해 봐. 나름 경력 있는 반마법사들 죄다 소집해서 굴려도 못 하던 일을 한 달도 안 된 초짜가 끝냈는데, 당연히 여기저기서 데려가려고 하지 않겠냐.”
“…그러니까, 내가 졸지에 유망주가 되어버렸다?”
“왜. 안 내켜?”
잠깐 생각한 뒤 대답했다.
“아~아, 이런 데서 눈에 띌 생각 따위 없었는데 말이지…!”
“뜬금없이 뭔 헛소리야.”
그렇잖은가. 만약 내가 이 일을 했단 게 알려지면, 다른 놈들도 나한테 게이트에 들어갔다 나오라고 할 거 아니야?
이런 경험은 한 번이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당장 오늘 일만으로도 밤에 가위눌릴 게 분명한데, 억지로 악몽 꿀 거리를 늘릴 필요도 없지 않나.
내가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편의점 카운터에 서서 받은 일감만 해도 몇 개고, 당장 이 일만 해도 따라가는 게 고역인 상황인데….
내친김에 교수한테 이거나 좀 부탁해야겠다. 누가 자기한테 게이트 얘길 하거든 나 없는 셈 치라고.
마저 적은 뒤 폰을 닫자, 타이밍 좋게 짤랑 정문 벨소리가 울리고 치와와가 들어왔다. 막 목줄을 풀기라도 한 듯 해방감이 가득한 얼굴이다.
들어와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어르신 머리를 힐끗 바라보고는 날 부르는 치와와.
“야, 씹새야.”
“뭐요.”
“저 할배 머리 염색 좀 해주고 그래라. 머리가 뭐냐 저게?”
찰리 씨가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가, 개소리 강도도 그만큼 높아진 것 같다. 어르신 반응이 걱정되어 어르신 쪽을 바라보니, 어르신께서 너털웃음만 지을 뿐 별말이 없으셨다.
“저분은 원래 머리 색이 저러시… 맞죠? 어르신?”
“예. 은빛늑대 늑대인간입니다.”
“지랄, 내 외갓집 할매 하는 말이랑 레퍼토리가 똑같네.”
늘 그렇듯 한결같은 어조로 투덜거리고는, 지 츄리닝 바지에서 지갑을 꺼내 2만 원을 계산대 위에 슥 올려놨다. 지갑이 물에 젖어서인지 돈도 물에 푹 젖어있다.
“나중에 저분 염색약이나 하나 사 드려라. 나 간다.”
“허어….”
“고생했다.”
이러고는 지 노트북을 챙겨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버렸는데, 편의점 염색약 가격이 12,000원 정도 된다. 주는 건 좋은데 저 양반은 거스름돈을 좀….
모르겠다. 그냥 라면이나 사 먹지 뭐.
치와와가 나간 직후, 이번엔 경관 허리춤의 무전기에서 무전음이 들려왔다. 무전기를 집어 바라보던 경관이 내게 홱 고개를 돌리고는 말해왔다.
“상부에서 절 찾는 듯하니,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걸 받지도 않고 아세요?”
“상부 무전은 소리가 다릅니다.”
감으로 알아챈 걸 농담이랍시고 말한 듯했는데, 원체 표정 변화가 없는 엘프라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된다. 마저 말하는 경관.
“그리고, 밖에 수재민분들도 아직 많을 테니….”
말하며 음료 진열대 부근에서 침수됐던 오토바이를 끌고 와서는, 열린 정문으로 반쯤 나가다 말고 다시 날 돌아보더라.
“고생하셨습니다. 이찬 님.”
손을 흔들어 받아주자, 고개를 한 번 꾸벅이고는 쇼윈도 왼편으로 걸어가 사라졌다. 끌고 가는 움직임이 가벼웠으니 크게 걱정은 안 해도 되겠지.
“나도 슬슬 간다, 이찬. 사무소 침대에서 좀 뻗어 있든지 해야겠네.”
“집에는 안 가고?”
“오늘 일 보고한 다음에 물어보는 거 있으면 대답해 줘야지. 사무소에 직원 있으니까, 보고는 직원한테 대신 좀 해달라고 하고. 엘레나 씨는 어떻게 할래요?”
“…네? 저, 저요?”
“가는 방향 같으면 돈 아끼고 좋잖아요. 택시 탈 건데.”
어깨가 툭툭 두드려지는 동시에 엘레나 양이 몸을 움찔하는데, 낯 가리는 성격에 넉살 좋은 누나가 저래 오니 정신을 못 차리는 게 눈에 보였다.
“…저, 저는 학원지구 쪽으로 가요. 근처가 집이거든요.”
“그럼 딱 역 앞까지 가서 내리면 되겠네. 괜찮아요?”
그래도 안면이 조금은 트여서인지 싫다고는 안 한다.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쉽다는 눈치로 날 바라보는데, 듣고 싶어 하는 얘기가 뭔지 짐작이 됐다.
“내일이나 모레 또 봬요. 저 어디 안 가니까.”
“…네!”
“이렇게 둘이 가고, 울프 어르신은요. 좀 이따 가시나요?”
“아뇨. 저도 슬슬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반려가 걱정할 때가 됐으니까요.”
“그렇구나. 택시 타시고?”
“뛰어가려고 합니다. 택시로는 좀 늦을 테니까요.”
문장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느낌이 드는 말이긴 했지만,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셋이 나란히 걸어 나가다, 경관과 마찬가지로 날 돌아보고는 말해왔다.
“오늘 고생했다, 이찬. 이 말 오늘 몇 번을 하는지 모르겠네.”
“많이 할수록 좋지요. 사장님께서 고생하신 게 맞으니까요.”
“마, 맞아요. 엄청 고생하셨어요, 찬이 씨.”
돌림노래로 말해 오니 누구 말에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적당히 대꾸하고 말았다.
“잘 알았으니까, 다들 들어가셔요.”
이렇게 인사해서 보냈다. 이후 매장에는 점장과 나, 그리고 텅텅 빈 진열대들과 간간이 널브러진 상품들 몇 개만이 남았다.
별생각 없이 손님들이 나간 정문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점장이 낭랑한 목소리로 툭 말을 던져왔다.
“찬이가 인망이 참 좋아. 그치?”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제가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솔직하게 좋다고 하면 되지. 나 부러워해도 좋다― 해도 되구.”
저 양반들이 모인 발단만 생각해 봐도 차마 그러지는 못하겠다. 일 터질 테니까 오지 말란 말에 죄다 모여버린 결과가 이 상황인 거잖아?
일이 잘 풀려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편의점이 8인실 병동이 될 뻔했다. 아니면 단골손님들끼리 나란히 손잡고 삼도천을 건넜다든가.
“그래서 찬이가 세 배 열심히 한 거잖아. 잘 풀렸으니 됐지, 뭐.”
“적당적당 하시네요.”
“난 확실하게 꺼진 불은 다시 안 봐도 된다는 생각이야, 찬아.”
그건 그래. 나도 후환 안 남기려고 마지막에 죽어라고 팔 휘적거렸던 거긴 하다. 다음에 문자 보낼 때나 좀 조심하든지 해야지, 원….
“…점장님은 이제 어쩌시겠습니까. 아까 말씀하신 대로 매장 정리?”
“응. 찬이는? 퇴근할래?”
“매장 꼴이 이 모양인데 퇴근은 뭔 퇴근이에요. 저도 도와야죠.”
“아. 그거 말인데, 찬이가 꼭 해야 할 일 있어.”
“어떤 거 말씀이십니까.”
“우선, 몸에 힘을 좀 빼구….”
이건 또 뭔 소리야. 물어보려고 점장을 바라보았으나, 점장 얼굴이 느닷없이 유난히 뿌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주변 풍경도 마찬가지다.
“…점장님. 그.”
“그다음엔, 의자에 앉구.”
내 등에 두 손바닥을 대고는, 쇼윈도 테이블 방향으로 슬슬 밀어내는 점장. 체격 차이가 거진 두 배인데, 점장이 미는 손길에 저항을 못 하겠다.
그대로 떠밀려 의자에 털썩 주저앉자, 이번에는 내 머리를 잡아 테이블 쪽으로 아주 살포시 누르기 시작한다. 뺨이 테이블에 닿자, 점장이 목소리를 낮춰 말해왔다.
“다음엔 팔베개하구, 눈 감구.”
“…지금 이거 마법이에요? 점장님?”
“마법은 무슨, 어차피 통하지도 않으면서.”
그런 것치고는 말하는 대로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것 같아서 그렇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시키는 일만큼은 안 하고 버텼다. 눈 감으면 이대로 곯아떨어질 것 같다.
“다음엔 자면 돼. 푹.”
“…그럼 매장은 누가 치워요. 멍멍이 일어나면 밥도 멕여야 되는데….”
“어허. 상사가 일 시키는 건데. 안 들을 거야?”
이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상사 명령인데 내가 뭘 어쩔 수 있겠어.
“찬이는 오늘 할 만큼 했어.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더.”
눈을 감자, 점장의 말이 구름 너머의 목소리처럼 멀게만 들려오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게 이 한마디.
“고생했어. 찬아.”
그리고, 내가 뭐라도 대답을 했다는 기억뿐이었다.
“점장님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