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50)
이세계 편돌이-149화(150/331)
149화.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1)
* * *
정문 벨 짤랑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고, 눈뜬 직후엔 위화감이 가득 몰려왔다. 내가 어쩌다 잠이 들었던 거며, 지금 도대체 몇 시야?
거리에 안개가 제법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스름하긴 해도 아주 어둡지는 않은 걸 보면 해가 막 떠오를 시간대 같고, 행인이 하나도 없는 걸 보면….
아니. 행인이 딱 한 명 있기는 했다. 점장.
인도 끝의 경계석 보도블록에 서서는 편의점을 등진 채로, 깍지를 낀 손을 위로 뻗어 한창 기지개를 켜는 중이다.
기지개가 제법 만족스럽게 켜진 건지, 깍지 낀 손으로 주먹을 쥐어 내리고는 자기 허벅지 옆을 툭툭 두드린다. 보는 내가 다 시원하다.
잠시 후 몸을 돌려 돌아오려던 점장이, 엎드린 채로 눈만 뜨고 있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날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 앞 쇼윈도까지 다가와서는 손등으로 유리창을 콩콩 두드리는 점장.
엎드린 채로 머리만 살짝 끄덕여 인사했더니, 점장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받아줬다.
“찬이, 잘 잤어?”
“그럭저럭요. 근데 밖에 안 추우세요?”
“막 엄청 추운 건 아니구, 으슬으슬해.”
“그런 날씨가 감기 더 잘 걸리잖습니까. 얼른 들어오십쇼.”
점장이 들어오는 사이 슬쩍 고개를 돌려 시간만 확인했다. 오전 5시가 막 넘어가고 있다. 날이 밝을 때 잠들었으니, 내가 못해도 두 나절은 넘게 뻗어 있었단 얘기가 되는데….
“…점장님.”
“응?”
“고생 많으셨겠습니다.”
그 두 나절 사이에 매장이 말끔해졌다. 바닥에 가득했던 흙 발자국 하며, 빗물에 휩쓸려 자빠졌던 간이 진열대 하며.
못 팔게 된 상품들은 어쩔 수 없었는지 진열대 대부분이 텅텅 비어있긴 했지만, 이 점만 제외하면 며칠 전에 영업하던 때와 다른 점을 못 찾겠다.
이만큼을 청소하는 동안 내내 퍼질러 잠만 잤단 게 하도 미안해서 먼저 말을 꺼낸 건데, 점장이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해왔다.
“이 정도 갖구 뭘. 다 치우는 데에 30분도 안 걸렸는걸.”
“30분요? 겨우?”
“매장 치우는 데에 필요한 마법들은 옛날에 허가받아뒀으니까. 그러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신경을 안 쓰기가 힘든 내용이긴 했지만, 말해오는 어조가 정말로 힘을 하나도 안 들였다는 느낌이다. 매장 꼴이 엔간히 엉망이었어야지….
“뭐, 정 억울하면 찬이도 마법 쓰든가.”
내 얼굴 보고는 아예 작정하고 놀리듯 말해온다.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말라고 하니 나도 더 신경 안 쓸란다.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저 자는 동안 밖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좀 나아졌대요?”
“맞다. 안 그래도 찬이랑 같이 뉴스 보려구 했어.”
바로 카운터로 총총 달려가서는 태블릿 PC를 꺼내 오는 점장. 엎드린 내 옆자리에 턱을 괴고 앉아서는 거치대를 올린 뒤, 화면을 조작해 동영상 목록을 주륵 띄웠다.
뉴스를 녹화한 영상이 목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녹화된 영상 대부분이 다들 비슷한 소릴 하더라고.
[ 속보입니다. 마법청 측에서 핵심 게이트가 소멸되었음을 밝히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 [ 전파가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도심지 내 모든 가정에 전달되기까지는 시간이 경과될 것으로 보이나…. ] [ 허나 이미 발생한 일반 게이트들의 피해를 우려하여, 아직까지는 외부활동 및 외출을 삼갈 것을― ]“아직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닌가 봅니다.”
“응. 하루도 안 지났으니까.”
영상 중간중간에는 게이트가 발생하며 일어난 피해 상황들이 연달아 띄워지고 있다.
예를 든다면, 웬 컨테이너만 한 닭이 치킨집 위에 올라가서는 부리를 벌리고 있다든가. 가로등이 자동차 천장을 포크마냥 찍어서는 패대기를 쳐대고 있다든가….
우리 매장이야 반쯤 물에 잠기고 코앞에 먹구름이 생긴 게 고작이긴 했지만, 요 며칠 사이에 도심지에 상상 이상으로 기괴한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었던 듯하다.
수 시간 전에 촬영된 피해 영상이랍시고 나온 게, 은행나무가 단체로 거리로 튀어나와 집단시위를 하고 있는 장면. 저 얇은 뿌리로 잘도 걸어 다니고 있다.
“어이가 없네요, 그냥.”
“그 정도야?”
“네. 그냥 어이가 없는 정도.”
정확히는 ‘그래도 20층 빌딩만 한 거대 문어가 튀어나오진 않았네―’라는 생각만 들고 있다. 핵을 없애러 다녀온 게 좋은 추억은 못 돼도, 내 간덩이만큼은 십수 배로 불려준 것 같다.
이걸 떠올리는 순간, 연이어 궁금한 게 떠올랐다.
“점장님. 멍멍이는 어떻게 됐습니까. 걔 아직 자요?”
“음… 밤에 일어나긴 했는데, 윤하가 집에서 쉬게 한다면서 데려갔어.”
“어? 누나 왔다 갔어요?”
“자정 지나서 바로. 매장 물류 새로 주문받는 거 까먹었다면서 직접 오더라구.”
사무소에서 보고 마친 뒤에 말 타고 날아왔다가, 마침 깨어 있는 걸 보고는 데려갔다고 한다. 흙이 잔뜩 묻어 엉망이 된 게 보기 그렇다는 둥, 목욕이라도 시켜야겠다는 둥.
혹시라도 공원에 돌아갔다거나 한 거면 택시부터 부를 생각이었는데, 누나가 데려갔다고 하니 그나마 안심이 되긴 한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걔랑 얘기를 좀 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같이 쫓아오느라 고생했다든가, 밑에서 큰일 하나 해줬다든가….”
“찬이 자는데 깨우면 엄청 미안할 것 같다고 하더라구. 그건 당연히 이해해 줄 거라고 말해줬지.”
“이해해야죠. 원래 그런 성격인데, 뭐.”
“응. 그리고, 밑에서 멍멍이가 해준 일 말인데….”
이 부분에서는 점장이 잠깐 말을 늘이다,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해왔다.
“그 애는 기억 못 하더라구.”
“네? 그런 일도 있어요?”
“영물은 잘 모르겠지만, 마법사는 그런 일이 간혹 있어. 자기 적성에 대해 잘 모르던 마법사가 우연히 적성에 맞는 마법을 쓰고, 그 반동으로 후유증이 남는 거.”
마법의 적성이 꽤나 모호하단다. 생각한 만큼의 마법을 생각한 만큼을 쓸 수 있는 것도 적성이고, 미처 생각지도 못한 마법을 생각지도 못한 수준으로 쓸 수 있는 것도 적성.
전자의 경우가 100의 마력으로 딱 100의 마법을 완벽하게 발휘할 수 있다면, 후자는 100의 마력으로 150, 200의 마법까지를 불안정하게나마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엔, 체내 마력이 고갈돼서 몸에 이상 현상이 일어나. 대표적인 게 장기간의 수면, 혹은 십수 분가량의 일시적인 기억 손상. 아무래도 뇌를 많이 쓰니까.”
“쉽게 말하면, 과열이 됐다?”
“응. 그 애가 마법사는 아니니까 온전히 대입하긴 좀 그렇지만… 내가 봤을 땐 증상이 거의 똑같더라구. 찬이도 비슷한 거 이번에 겪었고.”
“저요?”
“13시간 동안 곤히 잠들었던 거 말야. 난 그게, 단순히 몸이 힘들거나 밤을 새워서는 아닐 거라구 생각해.”
듣고 나니, 나도 단기 기억상실까진 아니어도 이상 현상을 한번 겪기는 했었다. 하나 녀석 뿔을 손으로 처음 건드렸을 때.
그러고 나서 20분 정도는 멀쩡하다가, 수면제라도 먹은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었다. 그러다 정신없이 잠들었고, 몇 시간이 지나서야 눈을 떴었다.
하나가 말하기로는 대학병원에서도 뿔을 어쩌질 못한다 했었는데, 이유가 이 현상과 맥락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어지간한 반마법사가 건드리면 그 반동이 온다든가….
“찬이도 마법사가 아니니까, 나야 이렇지 않을까― 하고 추측하는 정도지만 말야.”
“그래도 그럴싸한 것 같긴 합니다. 마법 지우는 일이니, 마법사가 겪는 현상이랑 아주 연관이 없지도 않을 것 같고. 여튼, 뭐….”
기억을 못 하면 말해주면 그만이지 않나? 안 그래도 자존감 낮은 녀석인데, 이걸 알려주면 ‘본견이 무척 굉장한 포메라니안이었구려!’ 하면서 당당하게 걸어 다닐 수 있을….
“…어….”
“나는 아직 말 안 했구, 찬이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생각을 좀 해봐야 할 문제다.
이 녀석이 이미 무모한 짓을 한 전력이 있는 놈이잖은가. 입에 거품 문 도베르만 무리한테 시비를 걸러 가서는, 꼬리 절반을 삭발당해 찾아왔던 놈이다.
이번 일을 곧이곧대로 알려줬다간, 이걸 어떻게든 써먹어 보겠다며 똑같은 짓을 할지도 모른다. 전에 주의를 주긴 했지만, 혹시 모르니까….
“나중에 간을 좀 보겠습니다. 점장님.”
“응.”
세상 돌아가는 뉴스로 시작해, 멍멍이 안위를 걱정하는 걸로 대화가 끝났다. 슬슬 몸을 일으켜보려 했는데, 다리에 힘을 주자마자 다리가 비명을 지르더라.
“…어우.”
“찬이, 많이 찌뿌둥해?”
“아뇨. 금방 나아져요, 이거. 전에도 몇 번 이렇게 자 봤고.”
그게 10년 전 한창 공부할 때였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말야. 솔직히 팔이며 허벅지며 내 것 같지 않긴 하지만, 여기서 찌뿌둥하다고 대답하면 그건 그것대로 염치없는 소리가 아닌가….
― 딱.
생각하는 도중, 점장이 앉은 채로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온몸 가득했던 저릿한 느낌이 사라지고, 붕 뜨는 기분이 살짝 생겼다 가라앉더라.
“이젠 더 빨리 나아질 거야. 어때?”
“이거 한 번 남은 마법 쓰신 거죠. 점장님.”
“응.”
“거, 좋은 데 좀 쓰시지….”
“직원 복지 챙기는 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다구.”
마법이 무척 유용하다는 걸 게이트핵 내려가며 눈으로 직접 봐서 그런가, 고작 팔 저린 것 낫게 한다고 마법을 쓰는 게 낭비 같아서 그렇다.
팔을 내려다보며 엉거주춤 서 있자, 점장이 태블릿 PC를 챙기며 일어나 말했다.
“그래도 퇴근하고 나면 푹 자, 찬아. 효과가 길게 가지는 않을 거거든.”
“그래요?”
“사용할 때는 중독성 없게, 효과는 길게 6시간, 그것도 나중에 알아서 풀리도록 해야 돼. 이렇게 안 해두면 나중엔 이 마법 없이 못 살아.”
옛날에는 운동선수나 직장인이 근육통, 요통 회복할 시간도 아깝다며 너도나도 진통 마법을 처방받아 몸을 망치는 경우가 더러 있었댄다.
이게 심화된 결과로 마사지 관련 직종과 재활의학과의 인기가 수년간 수직상승하다, 관련 법이 제정된 직후에는 다시 사그라들었다고.
“어제 엘레나 양은 허리 삐끗한 걸 약 먹어서 회복하던데 말입니다.”
“그런 건 괜찮아. 일시적으로 허리 삐끗한, 그러니까… 불상사니까.”
“뭔가 기준이 애매하네요.”
“그치. 워낙 애매해서, 어지간해서는 개인끼리 이런 거 잘 안 해줘. 잘못되면 큰일 나기도 하구, 소송이라도 걸리면 마법을 쓴 쪽이 거의 무조건 지거든.”
물에서 건져줬는데 보따리 내놓으라는 경우, 혹은 물에서 건져주려다 어디 한 곳을 부러뜨려 먹는 경우가 자주 있다는 게 점장 설명.
때문에 이런 마법을 개인이 서로 걸어줄 때는 두 가지 경우밖에 없단다. 하나는 마법 시전 이전에 법적 효력을 지닌 계약서를 작성할 것. 다른 하나는, 서로 신뢰할 것.
“그래서 생각한 게, 엘레나 씨 있잖아. 난 어제 처음 뵀지만.”
“예.”
“찬이한테 약 주는 거 보고 엄청 좋은 분이라고 생각했어. 찬이 그만큼 믿는 거 아니면 약도 안 만들어 주셨을 거잖아?”
“어… 그게 그렇게 되네.”
“그래서 걱정 많이 했는데, 이젠 안심하려구.”
이러고는 진짜로 뭔가를 안심했다는 듯 표정을 푸는데, 뭘 걱정했다는 건질 모르니 공감도 하기가 힘들다. 약을 잘못 만들었다든가, 그런 거?
“그런 게 있어.”
그런 게 있다 하니 그런 줄 알란다. 여튼 점장이 걸어준 마법이 오래가지는 않는다고 했으니, 몸이 멀쩡한 동안은 뭘 해야 하나.
“…점장님. 이건 좀 뜬금없는 얘기이긴 한데요.”
“어떤 게?”
“저한테 이런 체질이 왜 있는 걸까요?”
이유가 궁금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입 밖으로 내지만 않았을 뿐이지.
내가 원하든 말든 이 체질은 계속 내 몸에 붙어있을 테고, 난 이 체질을 앞으로도 계속 써먹을 거다. 덕분에 단골들 무사히 집에 보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뉴스에나 나올 거사를 한번 치르고 나니, 이젠 좀 다른 생각이 든다. 특별히 오컬트를 공부해 본 적도, 접신해 본 적도 없는 내가 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이번에도 휘발성으로 끝날 의문이긴 하다. 늘 그래왔으니까. 허나 내 의문을 들은 점장이 잠시 입을 다물고, 내 등 뒤쪽의 벽걸이 시계를 바라보았다.
따라서 바라봤다. 이제 5시 20분이다. 시계를 보는 도중 점장이 말해왔다.
“찬아. 이왕 말 나온 김에 얘긴데, 나 해보고 싶은 게 하나 있어.”
“어떤 거요?”
“나, 찬이 집 놀러 가도 돼?”
“……예?”
“찬이 사는 세상을 한번 가 보구 싶어. 지금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