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52)
이세계 편돌이-151화(152/331)
151화.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3)
* * *
점장이랑 대화 몇 마디 더 하고, 폰이랑 지갑 챙겨서 조용히 나왔다. 몇 발자국 나와서 슬쩍 뒤를 돌아보니 점장이 날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더라.
고개 꾸벅 숙여 인사한 뒤 퇴근길 걷는 내내 앞만 보고 걸었다. 집에 돌아와 손에 쥐고 있던 폰을 내려다보니, 땀이 흥건하게 배어 있는 채였다.
바지에 손 닦고 폰을 조작해 계좌를 확인했다. 천의 자리 빼고 진짜로 753만 원이 찍혀있다. 소감을 입에 담아봤다.
“야이 씨, 이게 도대체 뭐지…?”
판타지도 이런 판타지가 없다. 왜 편돌이 월급이 첫 달에 753만이 찍히는 거냐?
매장 나오기 직전에 점장이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긴 했다. 내가 주 7일 근무에, 근무시간이 오후 10시부터 오전 10시까지 딱 12시간.
이중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는 야간근무로 분류되어, 통상임금의 50%가 추가로 가산된다. 이 주 7일 8시간 근무만 쳐도 임금이 주휴수당 포함 약 400만.
나머지 4시간을 똑같이 계산하면 약 140만이고, 내 식대를 얼마를 줘야 할지를 점장이 검색해보니 직장인 식비 평균이 하루 1끼 8천 원 정도였댄다.
그게 30일, 400 + 140 + 24 해서 도합 564만.
여기에 더해 지하창고 물류 정리한다고 외주 반마법사 부르는 게 회당 45만 언저리에, 매주 한 번씩 부른다 쳐서 한 달 평균 4.5회라 계산하고….
다 합치고 나니 대충 750만 원 정도 나왔다고 한다. 이 설명을 단 한 번의 막힘 없이 유려하게 말해줬고, 다 들은 뒤에는 그나마 남은 정신력을 다 쥐어짜 내 물었다.
“추가수당은 5인 이하 사업장이면 안 줘도 되는 거 아니에요?”
“찬이네 세상은 그래?”
“주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고, 제가 이 세상 법을 따로 배운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좀….”
많지 않냐.
받는 입장으로서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 같아, 말을 끝까지 맺지는 못했다. 허나 무슨 생각인지 빤히 보인다는 듯, 씨익 웃으며 점장이 말을 받아줬다.
“불만 있으면 찬이가 업주 하든가.”
이쯤 되니 이젠 싫어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거 점장 인건비는 나오는 건가?
내가 매장 매출을 전부 꿰고 있는 건 아니지만, 하루 매출이 평균 어느 정도 찍히는지는 대략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하루 250, 점장이랑 나랑 반반씩.
평생 겪어선 안 될 사건 사고가 주 단위로 터지기는 해도 입지는 괜찮은 곳이고, 손님은 많이 온다. 손님이 많은 만큼 진상도 똑같이 많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 진상들마저 최근 며칠은 망할 게이트 때문에 오질 않았고. 점장이 본사 얘기를 꺼낸 적은 한 번도 없으니 본사에 수수료를 내는 것은 아닐 테지만….
“…모르겠다.”
무른다고 받아줄 사람도 아니고, 월급이 예상치의 두 배가 나왔다며 무르는 꼴도 상상해보면 우습다.
폰을 머리맡에 내려놓은 뒤, 팔베개를 하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칠백오십.”
살면서 계좌에 꽂아본 최고기록이 월 400이었다. 그것도 투잡에, 내 허리 디스크를 분말로 만들어 도핑해 겨우 찍은 수치다.
잘 버는 사람들이야 ‘750만? 그 정도면 먹고살 만은 하겠네.’ 하며 칭찬이나 한번 해주면 그만이겠지만, 난 아니다. 칭찬을 넘어 물개박수를 쳐주고 싶은걸?
능력이 없는 만큼, 이만한 돈과도 이세계와 마찬가지로 아예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당연히, 어떻게 쓸지도 전혀 생각해둔 게 없다.
기껏해야 집안 가전기기 정도. 벼룩시장에서 3만 원 주고 가져온 밥솥을 지금 8년째 쓰고 있는데, 이놈이라도 좀 바꿔볼까….
“…아니. 아니다.”
이런 사고 흐름이면, 조만간 ‘모처럼 돈이 생겼는데 좀 써 봐야 되지 않을까?’라며 청소기며 바닥 벽지며 닥치는 대로 바꿔댈 것 같다.
바로 폰을 집어 들어, 받은 753만 원 중 100만 원만 남기고 전부 다른 계좌로 송금했다. 딱 집세에 폰 요금, 생활비. 혹시라도 버스 탈 걸 대비한 교통비에, 만약을 대비한 예비금.
하나 녀석이 또 오거든, 배 터지게 과자 멕일 돈 정도는 남겨놔야 할 것 같아서였다. 멍멍이도 그래. 늘 편의점 햄버거만 먹던 놈에게 신세계를 좀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외에도 어르신께는 신세 진 게 많으니, 나중에 담뱃값 보태드리고. 엘레나 양도 매장 와서는 늘 편의점 커피만 마셨으니 브랜드 커피라도 준비해두고.
경관한테는 청탁금지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피로회복제 몇 박스라도 쥐여주고, 누나가 밥 한 끼 하겠다고 그렇게 벼르고 있으니 밥 살 돈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고….
찰리. 치와와 양반은 줘봐야 씹새 소리 들을 게 뻔하니 간을 좀 봐야 할 것 같다. 마지막에 남은 돈으로는, 점장이랑 밥이나 한 끼나 했으면 좋겠다.
“돈 많으니까 좋네….”
6월이 돼서인지, 기온이 아침잠을 자기에 썩 괜찮았다.
일단 잠이나 자고, 나중에 생각해볼란다. 이 돈만큼은 내가 여태 벌었던 것처럼 어디 도망갈 일은 없을 테니까.
* * *
― 똑, 똑, 똑.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에 눈이 뜨였다. 또 뭐야.
인터넷으로 뭘 주문한 적도 없고, 내가 배달 음식을 시킨 것도 아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 비비며 시간을 확인해보니, 폰 화면에 오후 8시가 찍혀 있었다.
이 시간에 날 찾아올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네 친구 놈들은 전부 서울이나 지방으로 가버렸고, 나 혼자만 이 동네에 남아있다.
멍하니 현관문만 쳐다보고 있는 도중, 노크 소리가 한 번 더 들려왔다.
― 똑, 똑, 똑.
― 집주인이요. 집세 얘기 좀 하러 왔는데, 안에 이찬 씨 있습니까?
자기가 집주인이라는데, 집주인이랑 목소리가 달랐다. 6년간 늘 직접 찾아가 아줌마한테 돈을 따로 냈었는데, 이번엔 아예 남자 목소리다. 40대 초반 정도.
고민하다, 현관문으로 다가가 똑같이 노크를 했다. 이것만으로도 대답이 됐는지, 현관문 너머로 자칭 집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다른 게 아니고요, 이번 달이 그쪽 계약 갱신달이잖아요.
“……예.”
― 이번 달부터 월세 더 내셔야 돼요. 10만 원 정도.
“예? 10만 원을요?”
가능한 한 조용히 듣기만 하려고 했는데, 이 얘길 듣자마자 말이 불쑥 튀어나왔다. 아니, 월세가 관리비 포함 30만 원인데 뜬금없이 왜 10만 원을 올려?
― 그동안 싸게 지내셨잖아요. 계약기록 보니까 6년 넘도록 거의 비슷하게 내셨더만.
“그거야 인상률이… 아니, 그보다 누구십니까. 집주인 아주머니는 어디 가시고요?”
― 이번 달부턴 내가 집주인이에요. 나 지금 감기 기운 있으니까 굳이 나오진 마시고.
이제야 이 양반 정체가 뭔지 가늠이 된다. 집주인 아주머니 아들내미다. 월세 내러 갔을 때 이 목소리를 몇 번 들어봤다. 엄마 일을 물려받기라도 한 모양이다.
느닷없이 10만 원을 올린다 말한 이유도 연상이 됐고. 이 양반, 부동산 일을 해본 적이 아예 없는 거다.
임대료는 전 계약금 기준으로 5% 이상 올리는 게 안 된다. 이게 ‘계약갱신요구권’이라고 했던가? 정확한 명칭이 이게 맞나?
아무튼 집세 관련해서 갑질을 당하거든 내가 이걸 주장할 수 있다는 정도만 기억해뒀고, 아직 잊지는 않았다. 집주인 아주머니랑은 말이 잘 통해서 아직 이걸 주장한 적은 없지만….
이 양반은 엄마 일을 막 인계받아서 그런가, 의욕만 넘쳐서 관련 조항도 전혀 안 읽어보고 다짜고짜 주장부터 하러 온 게 현 상황 같다.
― 아무튼 이런 줄 아시고, 혹시 할 말 있어요?
할 말은 따로 없지만, 문 열고 들이받을 생각은 있다.
감기 기운 있으니 나오지 마라, 이건 핑계일 게 뻔하다. 자기도 켕길 짓 한다는 걸 아니까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도망갈 생각으로 온 거겠지.
한창 코로나가 기승이니, 자기한테 옮을 수도 있다고 엄포를 놓는 거다. 말투가 고까운 걸 보면, 내 나이를 이미 알고 있는 것 같고….
― 할 말 없으면 가고.
진짜 들이받을까? 계약서 가져와?
고민하다, 제3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이쪽이 제일 마음에 드는 선택지였다. 발을 떼는 발걸음 소리가 들리길래, 얼른 손등으로 문 세게 두드리며 물었다.
“계약서 언제까지 싸인하면 되는데요.”
― 월말까지. 빠를수록 좋고.
“예. 잘 가십쇼.”
― …나이도 어린 놈이, 말투 한번 싸가지없네.
남한테 싸가지를 따지려면 니 싸가지부터 먼저 챙겨왔어야지.
사납게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멀어져간다.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 뒤, 샤워를 마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었다.
출근까지 1시간 반가량이 남긴 했지만, 오늘은 좀 일찍 출근할 생각이다. 어차피 매장에 손님도 많이 없을 테고, 뭘 하기엔 또 애매한 시간이니까.
마지막으로 폰과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와 매장으로 향했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자, 예상대로 한산한 매장에 점장 한 명만 덩그러니 계산대에 서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살짝 놀란 얼굴로 벽걸이 시계를 바라보는 점장. 잠시 후, 웃는 얼굴로 인사해왔다.
“하이. 오늘 엄청 일찍 왔네?”
“일이 있어서 좀 일찍 일어났는데, 일 마치고 나니까 잠이 다 깨버렸습니다.”
“어떤 일?”
“별일은 아니었어요. 오늘 근무는 어떠셨습니까?”
“응, 큰일 났어.”
“아이고.”
카운터로 들어가 POS기를 들여다보니, 매출이 10만 원도 채 안 찍혀있다. 게이트가 여닫힌 후폭풍이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래도 10분에 한 분꼴로 손님 오고 계시기는 하니까, 하루 더 지나구 나면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아.”
“뉴스에 다른 내용이라도 나온 거예요?”
“비슷한 내용만 살짝씩 바뀌어서 나왔어. ‘이젠 안심해도 될 것 같다.’ ‘이젠 안심해도 된다.’ ‘이젠 진짜루 안심해도 된다.’ 이렇게.”
이걸 나 살던 세상과 비교해 본다면, 지진이 났던 동네에 관해 나라에서 안심해도 좋다는 말을 꺼낸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안심하라고 해도 안심하기 힘들다는 점이 특히.
“그건 다행이네요. 점장님, 인수인계 사항 따로 있습니까?”
“찬이, 그거 직업병이야.”
“어… 그러네.”
분명 시간을 보고 왔음에도 매장 도착하자마자 인수인계 사항부터 묻고 있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하고 뼛속까지 이세계 편돌이인 게 아닌가….
“그럼 뭐 도와드릴 건 없을까요?”
“괜찮아. 낮에 손님 하도 안 오셔서, 청소를 무려 세 번이나 했거든. 잡담이나 하자, 우리.”
“그럼 그러죠, 뭐. 점장님 하실 말씀 있으세요?”
“나는 따로 없는데, 찬이한테 궁금한 거 있어. 첫 월급 받은 걸로 뭐 할지― 라든가.”
아, 이거. 안 그래도 먼저 말 꺼내려 했다.
“점장님께서는 이만한 돈 생기면 보통 뭐 하실 것 같으십니까?”
“나는 바로 저축부터 하지. 나중에 뭔 일 생길지 모르는데.”
“저랑 똑같으시네. 저도 저축부터 하고 나중에 고민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그러니까….”
가뜩이나 신세 진 게 많은데 이런 것까지 일일이 물어보는 게 맞나….
고민하다 그냥 말했다. 나중에 중개비로 밥이라도 한 끼 사지, 뭐.
“점장님, 혹시 이 세상 원룸 아시는 거 있으십니까?”
“원룸?”
“예. 똑같은 곳에서 계속 사니까 질려 가지고, 이사를 좀 와보려고요.”
그 동네에서 29년을 살았다. 이젠 슬슬 벗어날 때도 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