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ic Realm Convenience Store Worker RAW novel - Chapter (156)
이세계 편돌이-155화(156/331)
155화.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7)
* * *
“이사요?”
“찬이, 처음 근무한 날에 내가 해줬던 얘기 기억나? 여기저기 이사 다닌다는 거.”
“어….”
기억이 나기는 한다. 이 편의점은 때로는 학원지구 앞, 때로는 지금 이 위치의 사거리, 가끔은 마왕성 앞에서 장사를 한다고 했었지.
근 한 달 동안은 이 사거리에서만 쭉 근무해 온 탓에 반쯤 잊고 살았었다. 떠오른 김에 물었다.
“그거 말인데요, 점장님. 이 세상에서 마왕성은 대체 뭐 하는 곳이랍니까. 짜장면 잘하는 집이에요?”
“응? 아주 질 나쁘고 사악한 마왕이 지내는 곳이었는데?”
“지내는 곳이었던 거면, 지금은요?”
“전쟁기념관 됐지. 입장료도 공짜야.”
말하고는 덧붙이길, 옛날에는 정말로 이 세상에 마왕이 존재했다고 한다. 대전쟁을 일으킨 당사자 얘기다. 그 마왕이 사망함으로써 전쟁도 끝이 난 거고.
이후에는 주인도 존재 이유도 잃은 마왕성 건물의 처우를 놓고 1주일가량 마라톤 회의를 벌이다, 원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해 전쟁기념관으로 만들어 버렸단다.
“밖에서 마왕성 보면, 진짜 감탄 나올 정도로 을씨년스럽다? 마법으로 그 시절 분위기까지 그대로 구현해 놨거든.”
“그럼 그 시절처럼 똑같이 무서워서 못 들어가는 거 아녜요?”
“아냐. 밖에 생긴 것만 그렇지 내부는 멀쩡하거든. 들어가면 사천왕들 연혁이나 옛날에 입던 마법 군복 같은 것들 있구 그래.”
사천왕은 또 뭐 하는 작자들인가 싶었으나, 제일 궁금했던 점은 얼추 해소된지라 따로 묻진 않았다. 날 바라보며 잠시 뜸을 들이다 덧붙이는 점장.
“물론 전혀 안 위험하고. 가끔 첨탑에서 박쥐 날아가는 정도?”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니까 좀 안심이 되네요. 그나저나, 그….”
“이사 가는 거?”
“네. 예전부터 미리 생각해두신 거예요?”
“올해는 6월 중순 즈음 가면 좋겠다― 생각은 하고 있었어. 그때가 제일 장사가 잘될 시기거든.”
어째서 장사가 잘되느냐 하면, 6월 중순이 학원지구 내 학원, 학교들의 학사 일정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시기라서다.
수많은 초, 중, 고등학교, 그중에서도 특히 마법 관련 계통으로 진학하는 학생들은 마법 용품들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시기이고, 대학교들은 종강 시즌―
“잠깐만요. 거기에 초, 중, 고등학교랑 대학교 수십 곳이 싹 다 몰려 있다는 말씀이세요?”
“응.”
“거기 부지 면적이 대체 얼마나 되는 겁니까?”
“그건 나도 모르지만, 안에 버스 운행하구 있던 건 기억나.”
아니, 뭐 애들 공부하는 곳에 버스까지 돌아다닌대….
내가 캠퍼스 생활은커녕 캠퍼스에 가 본 적조차 없는 놈이라 상상이 잘 안 된다. 딱 두 번 그쪽에 갈 일이 있긴 했지만, 출입구 근처 시험장 건물만 잠깐 들렀다 와본 게 전부였고.
하지만 점장이 얘기해 준 내용만으로 따져 보면, 매장 내에 거대한 헬게이트가 열리리라는 예감이 든다. 좀 더 생각하다 물었다.
“이사는 언제 가실 생각이십니까?”
“찬이 의견 들어본 다음에. 이사 가는 건 얼마 안 걸리거든.”
진열대 상품들 바꾸고 공간이동 하는 데에 5분도 안 걸릴 거라 한다. 내 입장에서는 근무지가 하루아침에 바뀌어버리는 셈이니, 배려 차원에서 묻는 것 같은데….
나야 당연히 할 말 없다. 내가 이 매장에 지분을 갖고 있는 게 아니잖은가. 업주인 점장이 간다고 하면 가야지, 직원으로서 뭔 말을 더해?
어차피 그 근방에서 집 구하려고 했으니 출퇴근도 문제없고, 이렇다 할 짐도 없으니 준비할 것도 없다. 단지, 염려되는 점이 하나 있을 뿐이다.
하나를 내려다보니, 우리 하는 얘기를 어느 정도 이해한 듯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아니면 ‘이사’ 두 글자에 반응한 거든가.
“아조씨, 이사 안 간다믄서….”
“거짓말은 안 했다. 난 이사 안 가. 이 매장이 이사 갈 뿐이지.”
“우에엥….”
“우리 앞으로 못 보는 것도 아냐. 하나 너, 학원지구 쪽 유치원 다니는 거 아니냐?”
전에 한번 공간이동했을 때, 매장이 학원지구 정문 역 바로 앞 건물에서 나타났었다. 이번에 이사 가는 것도 그쪽이겠지.
이 녀석이 거기서 유치원을 다니고 있다 했으니, 앞으로는 더 자주 보면 자주 봤지 못 볼 일은 없을 거다. 설명해주자, 하나가 글썽인 눈물을 슥슥 닦고는 환하게 외쳐왔다.
“아하!”
“다음에 너 친구 생기면 걔네들도 같이 데려와 봐. 코앞이니까 걔네도 부담 없을 거 아니냐.”
“내!”
하나랑은 이렇게 잘 풀렸다 쳐도, 다른 단골손님들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잘 모르겠다. 특히 멍멍이.
이놈은 폰도 없어서 어디 이사 갔다고 톡 한 줄 보낼 수도 없다. 말도 없이 이사 갔다간 앞으로 평생 이놈을 못 보게 될 수도 있다. 조심스레 점장에게 말했다.
“점장님. 이거 말인데요. 그….”
“응.”
“혹시 하루 이틀 정도만 늦출 수는 없을까요? 이게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고, 말도 안 되는 소리기는 하지만….”
“말이야 되지. 나도 그 애 걱정되거든.”
“…예. 감사함다.”
“그래도 너무 늦출 수는 없어, 찬아. 알지.”
동의한다. 나조차도 요 며칠 찍힌 매출 전표를 보면 착잡함이 느껴지는데, 점장은 오죽하겠는가. 거리가 정상이 되기 전까지는 매출이 계속 이 지경일 게 뻔하다.
점장 생계, 내 월급이 달린 사안을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녀석만 오매불망 기다린다고 늦출 순 없다. 마냥 기다리기만 할 생각도 없고.
“이거 말인데, 아예 이 녀석 사는 곳을 직접 가 보고 오겠습니다.”
“아. 그럴래? 언제?”
“지금 바로요. 어차피 오늘 밖에 좀 돌아다닐 생각이었어요.”
점장한테는 학원지구 쪽에서 집 구해야 할 것 같다고 미리 톡을 보내놨었다. 좀 오래 알아보고 싶다고도 했었고.
어차피 집 둘러보는 건 하루 만에 다 못 끝낸다. 원룸 계약을 아무리 짧게 해도 최소 반년은 해야 할 텐데, 반년 살 곳을 하루 둘러보고 정해버릴 수는 없잖아.
“찬이, 몸은 괜찮겠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요 며칠 밤새고 낮에 돌아다녀 봐도 크게 피곤하진 않더라고요. 우선은….”
그 녀석 사는 곳이 어디더라?
내가 아는 건 학원지구 반대편에, 포메라니안 보폭으로 뚜방뚜방 걸어서 1시간 거리 시민공원에서 지내고 있다는 점 정도다. 내 걸음으로는 대충 30분 정도 걸리겠지.
절반 정도로 계산해 지도 앱을 설정해 보니, 다행히도 조건이 일치하는 공원이 딱 한 곳 있었다. 지도 앱 화면만 꺼둔 뒤, 지갑을 마저 챙기고 유니폼을 벗으며 말했다.
“인수인계 사항은, 어… 이렇게 퇴근하는 게 좀 어색하긴 하네요, 점장님.”
“그러게 말야. 커튼도 안 치구, 스위치도 안 켜구.”
“커튼여? 스이치?”
“그런 게 있다, 하나야. 넌 어떻게 할래. 점장님이랑 놀고 있을래?”
점장이 어느새 하나를 자기 무릎 위에 걸터앉혀 놨다. 어색해하는 기색 없이 무릎 양옆으로 꼬리랑 다리만 파닥이는 게, 점장이랑 있는 게 제법 편해진 모양이다.
내 물음에 고개를 들어 점장 얼굴을 올려다보고는, 약간 우물쭈물하며 말해온다.
“저어는여… 아조씨, 멍멍이 만나러 가시는 거져.”
“왜. 너도 가게?”
“그게여, 저어두 만이 걱정대갖구….”
이러고는 다시금 고개 들어 점장 눈치를 본다. 전에 점장이 같이 놀아줬으니 자기도 같이 있어 줘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눈이 마주친 점장이, 씨익 웃고는 하나 등을 토닥이며 말하더라. 장난기가 발동한 얼굴이다.
“잘 다녀와, 하나야. 나는 여기서 혼자서 외롭게 근무하다가, 가끔 담배 재고 세고 상품 진열하고 그러면 돼.”
“우으… 저기. 아, 맞다.”
말하고는 몸만 쭉 뻗어, 계산대 밑의 초콜릿 상자를 꺼내 점장에게 내미는 하나. 아까 같이 먹자고 했었던 그 초콜릿이었다.
“이거, 언니야 드새여. 다는 말구.”
“어머. 이런 건 어디서 났어?”
“이게여. 그….”
자기가 엄청 좋아하는 초콜릿이다, 엄마는 먹으면 이 썩는다고 1주일에 한 개밖에 안 사준다는 얘기들을 늘어놓는다. 저 초콜릿에 그런 비밀이 있었구만?
“저어는 갠차는대여, 그. 아조씨두 드셔야 대니까는….”
라는데, 내 눈을 보는 점장 표정이 ‘내가 다 먹어버린다?’ 하는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소신껏 말했다.
“나이 18세면 한창 삐칠 나이이기는 하죠, 점장님. 이해합니다.”
“빨리 안 돌아오면, 이 맛있는 거 나 혼자 다― 먹어버릴 거야. 알았지.”
* * *
한 손에는 스마트폰과 텅 빈 부직포 가방, 한 손은 하나 손을 부여잡은 채로 거리로 나왔다. 나와서 지도 앱을 확인해보니, 화살표가 오른쪽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빨리 가야대여, 아조씨. 안 그러면, 언니야가 초콜릿 다 먹어 버린다구 했으니깐….”
“그거 점장님께서 농담하신 거니까, 빨리 가지는 않아도 될 것 같다.”
“엣?”
“농담 맞을 거야. 아마도….”
나오면서 슬쩍 돌아봤는데, 점장이 초콜릿 상자를 그대로 유제품 코너 뒤편 시원한 곳에 넣어놓고 있었다. 하긴, 상온에 방치하면 녹아내릴 거 아냐.
“…그래도 너무 천천히는 걷지 말고. 기다리실 테니까.”
“내!”
솔직히 나도 그 초콜릿 먹고 싶다. 매장에 다른 초콜릿 몇 개를 사서 먹어봤었는데, 뭘 사 먹어도 하나가 내게 줬던 그 초콜릿 맛이 안 나더라니까?
이것도 근무 첫날의 일이다. 그때 어버이날 선물 만드는 거 도와줄 때만 해도, 이렇게 나란히 거리를 산책하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말야.
“그러고 보니, 어버이날 선물은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든?”
“내. 엄마야가 따로 보간해 둔다구 하셧서여. 그리구―”
인도에 널린 진흙들은 각자 자그맣고 큼직한 발자국을 남기면서 걷고, 빗물이 고인 웅덩이는 피해서 걷고.
20분가량을 걸으며 어버이날 선물이 어떻게 됐는지부터 시작해, 이런저런 대화들을 나눴다. 그중 하나가, 길에 돌아다니는 행인에 대한 것.
“하나야. 너, 길에서 마음씨 나쁜 어른들 피해서 돌아다니는 거잖냐.”
“내.”
“혹시, 어… 그거 말고는 없어? 어머니께서 뭘 주셨다든가.”
이 녀석 엄마 회사까지의 거리가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고, 길도 탁 트여있다. 그 짧은 시간 새에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지는 않지만, 혹시 모르잖아.
굳이 우리 매장에 오는 게 아니어도 밖에 돌아다닐 일도 있을 테고. 굳이 상상하게 하고 싶진 않아서 돌려 말했는데, 하나가 내 말을 바로 이해한 눈치였다.
“엄마야가 주신 거 있서여!”
“그렇겠지. 어떤 거?”
“그게… 잠시만여.”
잠깐 내 손을 놓고는 책가방을 벗어 들어 보이는데, 가방끈 밑에 작은 호출벨 같은 게 걸려있다. 누르면 큰 소리가 나는 그런 건가?
“이거여. 누르며는, 엄마야 친구분들이 와 주신다구 그랫서.”
“어머니 친구분들이면… 설마 드래곤들 얘기야?”
“내. 엄마야 회사에서 놀 때며는, 가아끔 저랑 가치 놀아주셔여.”
애 엄마 회사에도 근무하는 드래곤들이 몇 있고, 평소에는 애 엄마나 하나처럼 인간 형태로 변신해 지내나 보다.
그러다 이 호출벨 눌리는 순간 집채만 한 드래곤으로 변해서는 날아오는 거고. 잠깐 호출벨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드래곤분들은 많이 크시냐?”
“아녀? 엄마야만큼 크시지는 않아여.”
“흠….”
한번 눌러볼까?
크기는 크지 않다지만, 드래곤들이 무리 지어 하늘 날아다니는 광경을 살면서 얼마나 볼 수 있겠어. 나도 이 세상에서 근무하는 동안 단 한 번도 못 봤다.
이 의견을 제시하자, 하나가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붕붕 저었다.
“안대여. 아조씨. 예전에여, 밑에 전화기를 빠뜨려갖구, 이거 눌러서 엄마야 친구분들께 부탁했는대여….”
하수구 근처에서 폰을 잘못 갖고 놀다 빠뜨려 버렸다는 얘기같다. 마저 물었다.
“어. 그런데?”
“오셔서는 죄다 뿌수셔갖구, 따른 어른분들 오셔서는 그분들 혼나셧서.”
“그건 혼날 만했다.”
“내. 그러니깐, 제송하니까 누르면 안 대.”
이 일에서 죄송하다는 결론이 왜 나오게 된 건지는 몰라도, 이 녀석이 다른 드래곤들에게 애정을 꽤 많이 받고 있다는 것만은 알겠다. 애 폰 꺼내주겠다고 하수구 밑을 때려 부쉈다잖아.
“저여, 이제 밖에서는 폰도 잘 안 꺼내여.”
“좋은 거 배웠네.”
“그러니깐, 아조씨도 걸으면서 전화기 보시면 안 대여. 큰일 나.”
“난 지도 봐야 되니까 어쩔 수가 없다, 야. 10분만 기다려 봐라.”
“내.”
얘기하고 나니 떠올랐는지, 손잡고 걷는 내내 힐끔힐끔 내가 들여다보는 폰을 따라서 올려다보더라. 덕분에 폰을 쥔 손에 땀이 배기 시작했다.
고개 들어 주변 지형을 확인하거나 도로명 주소를 확인하길 10분. 시민공원으로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 길 안내를 종료합니다. ]먼 곳까지 둘러보니 출입구가 여러 개였고, 우리가 서 있는 곳에 입간판이나 정문이 존재하진 않았다.
그래도 안쪽에 가로수나 벤치, 작동을 멈춘 분수 같은 게 보이고는 있다. 그러니 시민공원 맞겠지. 하나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하나야. 멍멍이가 이 안 어디에 있을 것 같냐?”
헌데, 하나가 공원 오른편의 검은 무언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만 있었다. 따라서 바라보다,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싶어 눈을 비벼봤다.
“…아니….”
“아조씨, 아조씨.”
“어.”
“쩌어기, 다른 멍멍이가 누워 있서여.”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다. 도베르만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이 공원에서는 흑풍파라 불렸을 그 녀석들 중 한 놈인 듯한데….